“평화”라고 말하나 평화가 없다
1.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라고 선포하는 자들과 관련하여 오늘날 ‘예레미야’ 반열은 어디에 있읍니까?
예언자 ‘예레미야’는 그 당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끼어 있지 않았읍니다. 오늘날의 ‘예레미야’ 반열 역시 ‘예레미야’ 당시에 “평화!”를 외치던 사람들의 본을 따르는 그리스도교국의 대변자들 가운데 끼어 있지 않습니다. 마침내 참을 말한 사람들로 증명될 사람들은 누구일 것입니까? “평화!”의 선포자들일 것입니까? 아니면 소위 “재난을 외치는 자들”일 것입니까?
2, 3. (ㄱ) 안정되고 영속적인 평화의 근원으로서 사람들은 무엇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읍니까? (ㄴ) 그러한 평화의 근원이 무력함을 예시하기 위하여 ‘예레미야’는 어떻게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읍니까?
2 세계적인 문제의 평화로운 결과를 얻기 위하여 초인간적인 도움을 기대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느끼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정되고 영속적인 평화의 근원으로서 기대를 거는 이는 고대 예언자 ‘예레미야’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평화를 위한 초인간적인 힘은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거짓 신들임이 증명될 것입니다! 평화의 거짓 신들이 왕과 군왕들, 제사장들, 예언자들 및 관심가진 대중의 평화에 대한 애매한 꿈을 이루어 주지 못함으로 그들을 실망시킬 것에 관한 경고의 말씀이 있읍니다. 영감받은 예언자 ‘예레미야’는 그 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라는 지시를 받았읍니다.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예레미야 7:32-34에 예언된 때] 사람들이[‘바벨론’ 정복자들]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그들의 [숭배의 대상물로서] 사랑하며 섬기며 순복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라].”—예레미야 8:1, 2.a
4. 무덤을 모독하는 일은 거짓 신들의 숭배자들에게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들은 무엇을 경험할 만한 가치조차 없읍니까?
4 그렇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땅 거민들에게 그렇게도 빛나는 희망을 제시하는 빛을 발하던 천체가 ‘누가 진리의 하나님인가?’ 하는 의문이 해결될 재난의 기간에는 너무나도 무력하게 보일 것입니다. 종교계와 정치계에서 이름난 사람들의 무덤을 모독하는 일은 여호와의 십계명을 범하고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경멸을 나타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평화스럽게 죽음의 잠을 잘 수도 없읍니다. (욥 3:13-19) 여호와 보시기에는, 거짓 신들의 열성적인 숭배자들이 보호가 되는 성소를 얻지 못합니다. 성서의 하나님과 그리스도교적 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면서 명백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자들은 특히 그러합니다. (출애굽 20:1-6; 요한 1서 5:21; 고린도 후 6:16) 그들은 죽은 자들에 대한 존경을 경험할 만한 가치조차 없읍니다!
5. ‘여호와의 증인’의 박해자들은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조롱이 어떻게 그들 자신의 신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까?
5 그러므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박해한 자들에게 책임 추궁의 날이 올 것입니다. 그들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지금 와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고 비웃으며 그들을 조롱한 자들입니다. (시 22:7, 8) 박해자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기쁨을 돌린 그리스도교국이 멸망당하게 될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그들의 거짓 신들이 과연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그들은 그들이 조롱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그들이 받들은 신들이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6, 7. (ㄱ) ‘바벨론’ 유배자들은 어느 쪽을 더 좋아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로 돌아오라고 그렇게도 호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응은 ‘예레미야’ 시대와 같이 어떠합니까?
6 ‘예레미야’ 당시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생존자들이 있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바벨론’ 땅으로 유배를 당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에게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택할 만한 길일 것입니다. (예레미야 8:3) 여호와께서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 자손에게 자기와의 평화로운 관계로 돌아오라고 호소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원전 607년까지 이 세상의 “편안한 길”로 갔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축복 아래 평화스러운 장래를 위한 안전한 기초를 놓지 못하였읍니다. 현대에도 그리스도교국은 “편안한 길”을 택했읍니다. 기원 1919년 이래 수십년에 걸쳐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증인들로 이루어진 ‘예레미야’ 반열은 성서의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알렸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대부분의 교회 성원들은 청종하기를 거절하였읍니다. ‘예레미야’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꼭 같습니다.
7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 각각 그 길로[편안한 길로, 신세] 행하도다.”—예레미야 8:4-6.
8. 그 때에 문제가 되었던 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어떻게 분별력을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까?
8 ‘예레미야’ 시대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언약 백성을 조사하실 때 일어난 문제는 무엇이었읍니까?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무엇입니까? 과거나 지금이나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봄이 온 것을 분별해야 하는 철새처럼 분별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기후처럼 추운 북쪽 겨울 동안에 따뜻한 남쪽으로 가서 안식처를 취했던 북쪽 새들은 즉시 집을 짓고 짝을 지을 북쪽으로 돌아 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비교하여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예레미야 8:7) 기원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기 전인 예수와 사도 시대에도 역시 마찬가지였읍니다. (마태 16:2-4; 누가 19:44) ‘예레미야’ 반열의 현시대에도 그리스도교국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치료되지 않은 상처
9, 10. (ㄱ)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지혜가 있고 율법을 잘 안다고 주장합니까? (ㄴ) 그들의 주장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한 일의 결과를 당할 것을 어떻게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까?
9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에게 지혜가 있다는 주장은 주로 성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학교 교육을 받은 것에 근거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성서의 하나님의 법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서의 하나님께서는 다르게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까운 장래를 미리 내다보시고 계십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교국의 문제를 다룬 결과가 실제로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예견하시면서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마지막 문제가 터지는 때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그러므로 [적군의 침공을 받을 때에]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田地)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예레미야 8:8-10.
11, 12. (ㄱ) 그리스도교국의 “서기관의 붓”은 어떻게 “거짓”되었읍니까? (ㄴ) 예레미야 8:9에 의하면 그리스도교국의 필자들의 ‘펜’이 거짓 것들을 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여호와께서 예언하신 것과 반대로 일들을 기록하는 면에서 현대 그리스도교국의 “서기관의 붓”은 머지 않아 “거짓” ‘펜’임이 증명될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쓰지 않았읍니다. 따라서 이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교국을 위하여 그렇게도 많은 것을 기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펜’ 혹은 “붓”은 참으로 “거짓”되었읍니다. (다니엘 12:9)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예레미야 8:9에서 여호와께서는 “보라, 그들이 [유명한 지혜로운 자들]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그들의 설교의 주제로 성서로부터 하나의 성귀를 인용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설교 가운데서 그들은 성서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무효케 하는 인간이 만든 전통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 혹은 일반적인 사회 개혁 운동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처럼 행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 영혼에 관하여,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하여, 하나님의 성품 등에 관하여 성서가 가르치는 것보다도 희랍 철학과 “이 세상 지혜”를 앞세웁니다. (고린도 전 3:19) 그러나 그들은 덫을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세상적 지혜에 근거한 정책의 실패로 말미암아 “잡히”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수욕을 당하며 무서운 결과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13.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성원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부정한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데 대한 책임이 주로 누구에게 있읍니까? 어떻게 그렇습니까?
13 교직자들은 그들의 “양떼”에게 명성과 물질적 상을 약속해 주는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도록 격려해 왔읍니다. 그들은 빈자를 상하게 하고 부자의 편을 들어왔읍니다. 그들은 종교적 봉사에 대한 재정적 보상을 요구해 왔읍니다. 그러한 본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교회 성원의 큰 자로부터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영적 관심사를 나중에 두고 ‘부정한 이득’ 혹은 “더러운 이”를 첫째로 두는 사실에 대하여 큰 책임이 있읍니다. (베드로 전 5:1, 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그러한 자들이 그리스도교국에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그들의 ‘부정한 이득’을 다 잃는 것을 여호와께서 막으시지 않는 것은 아주 적절한 일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이 성취될 것입니다.
14. 교직자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영적 상처를 어느 정도로 고쳤읍니까?
14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아직도 영적 의사의 대우를 받고 있읍니다. 그러나 1918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래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영적 “상처[히브리어, 쉐버]”를 고치는 데 성공하였읍니까? 이제 그 이래 60년의 기록은 교직자들과 그들의 동료들인 종교 지도자들에 관한 진상을 알려 줍니다. 그 기록은 그들이 병의 원인을 알아내는 일과 그리스도교국이 “큰 환난”을 생존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받아 멸망을 경험하게 될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음을 알려 줍니다. 그들은 단순히 계속 증세를 치료할 뿐,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교국이 멸망당할 운명에 있게 한 참다운 원인을 치료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상처가 여호와 하나님께 마치 가벼운 것인양 겉으로만 가볍게 “심상히” 고쳐 주었읍니다.
15. 교직자들은 그들이 사용한 종교적 치료 방법을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그들은 어떠한 말로써 그들의 양떼를 확신시키고 있읍니까?
15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래 교회 성원들의 수는 엄청나게 성장하였읍니다. 그러나 이들 성원들의 영적 상태와 여호와 하나님과의 그들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교직자들이 사용한 종교적 치료 방법은 문제를 개선시키지 못하였으며, 세상적인 것의 교회 침투를 막지도 못하였읍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이것을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읍니다. 교직자들은 그들의 치료 방법에 대하여 상당한 자신을 가지고 있읍니다. 말로써 병든 양떼를 방심시키면서 현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교국에게 “평강하다, 평강하다” 혹은 “평화다, 평화다” 하고 계속 말로 확약을 해 주고 있읍니다.—예레미야 8:11, 또한 신세.
16. 교직자들은 어떻게 ‘예레미야’ 반열과 반대되는 말을 합니까?
16 이렇게 해서 이 종교 지도자들은 거짓을 행합니다. 그들은 양떼에게 그리스도교국이 기본적으로 나쁜 것이 전혀 없다고 느끼게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그리스도교국의 관계는 좋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손에 환난을 기대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반열이 “큰 환난”에서 그리스도교국이 먼저 멸망될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고 말합니다.—예레미야 6:14.
17. 여호와와 그리스도교국 사이에는 왜 실제로 평화가 없읍니까?
17 그리하여 그리스도교국의 대변자들은 ‘평화가 없’는데도 그러한 말로서 평화를 보증함으로써 위협적인 상태를 속여 왔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교국 사이에는 평화스러운 관계가 없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죄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덮어지지 않습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그리스도교국의 엄청난 죄는 용서받을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교국과 평화로우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국 앞에는 “평화”나 영적 번영이 아니라 멸망이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 교직자들과 교회 성원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여호와께 “가증한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예레미야 8:12.
18. 그리스도교국에 어떻게 멸망이 임할 것이며, 그 멸망은 어느 정도일 것입니까?
18 멸망에 대해 그러한 방심의 태도를 가진 교직자들과 양떼는 “홀연히” 마치도 “잠시간에” 그러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 4:20; 6:25, 26) 1918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교국을 철저히 조사해 오셨으며 가까운 장래 즉 그분이 정하신 때에 고대 ‘예루살렘’에 하신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국에 예리한 주의를 기울일 것임에 틀림없읍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교국의 자기 과신자들은 걸려 넘어져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깨끗이 일소하실 것입니다. 이삭을 주을 만한 남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이 얻도록 허락하신 어떠한 물질적인 것도 ‘없어져’ 적의 손으로 들어 갈 것입니다.—예레미야 8:12, 13.
19. (ㄱ)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의 징조가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예레미야’ 시대에 시골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였으며, 그들의 기대는 어떻게 실망으로 변하였읍니까?
19 기원 33년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께서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에 임할 멸망을 예언하셨을 때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다가올 멸망이 가깝다는 징조가 있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다’도에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들이나 시골에 있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는 안되었으며, 즉시 안전을 얻고 살아남기 위하여 온 ‘유다’로부터 나와야 하였읍니다. (마태 24:15-18; 누가 21:20, 21) 그러나 ‘예레미야’ 시대에는 멸망시키는 ‘바벨론’ 군대가 가까이 옴에 따라 사람들은 시골을 떠나 ‘예루살렘’과 기타 요새지로 들어가서 피난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였읍니다. 포위를 당한 동안 힘껏 저항하다가 더 이상 힘이 없으면 조용히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의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도움이 오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들이 쓴 약인 “독한 물”을 마시게 하셨읍니다. 그들의 거짓 “선지자들”의 확약에 따라 ‘평강을 바랐’읍니다. 그러나 어떠하였읍니까?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 뿐”이었읍니다. 멸망의 침략자의 소리 혹은 보고가 들려왔읍니다.—예레미야 8:14-16.
20. 예레미야 8:17에 의하면 멸망 집행자를 보낸 책임은 누구에게 있으며, 이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20 ‘예레미야’ 시대에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 자손에게 멸망 집행자를 보낸 분은 여호와였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전과 그분의 땅을 더럽힘으로써 그분 앞에 가증한 일을 행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예레미야 8:17) 그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뱀에 물렸을 때에 믿음으로 장대에 달려있는 구리 뱀을 쳐다 보기만 하면 나을 수 있게 한 ‘이스라엘’의 ‘모세’가 없었읍니다. (민수 21:4-9; 요한 3:14, 15) ‘바벨론’인들이 실제로 멸망시키고 황폐시키는 자들이 될 것이었읍니다. 기원전 609년에, 포위당한 ‘이스라엘’ 자손은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께 받은 이들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술법으로 막을 수 없었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피난한 “견고한 성읍”은 여호와의 심판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없었읍니다.
21. 예레미야 8:18, 19에서 국가적 재난이 임하게 된 것을 여호와께서 기뻐하시지 않았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21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국가적 재난이 임하게 된 것을 전혀 기뻐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유다’ 땅에 거민이 없게 될 것과 생존자들의 대부분이 먼 ‘바벨론’으로 유배당하게 될 것을 예언하심으로 합당한 경고를 하셨읍니다. 거기에 유배된 비참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기이하신 일’에 놀라고 그분께 도와 달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슬프다, 나의 근심이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심중이 번뇌하도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바벨론]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하는도다].”—예레미야 8:18, 19.
22. 하나님의 하시는 그 일이 왜 이상하게 보일 것이며,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2 ‘유대’인 포로들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시온’)을 그렇게도 추락시키셔서 그들의 하나님의 집인 전도 없고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왕으로서 ‘다윗’ 왕의 후손이 앉을 보좌도 없이 버리실 것인가를 이해할 수 없었읍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에 일시나마 얼마나 모독이 되는 일입니까! 그 당시에도 그것이 이상하게 보였다면 그리스도교국의 다가오는 멸망은 더욱 더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 이유를 여호와께서는 도움을 구하는 ‘유대’인 포로들의 외침에 대한 답에서 알려 주십니다.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예레미야 8:19ㄴ; 이사야 28:21.
23. 예레미야 8:20에 의하면, 그리스도교국의 신봉자들의 구원을 위한 희망은 그들의 행위로 말미암아 어떠한 일이 있게 되어 있읍니까?
23 그리스도교국의 구원의 희망은 비성경적입니다. 그들은 멸절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신봉자들이 이렇게 말할 때가 오게 되어 있읍니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구원의 수단을 생산하는]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예레미야 8:20) 우리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 끼어 있지 않도록 합시다!
24. 우리의 소식과 같은 재난의 소식으로 말미암은 슬픔이 예레미야 8:21, 22에서 어떻게 반영되어 있읍니까?
24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사람들은 우리가 전하는 이러한 소식으로 슬픔을 느낄지 모릅니다. 오래 전에 ‘예레미야’도 자기가 제사장으로 섬기던 전이 멸망될 운명에 있는 것과 자기의 동족이 살륙과 흩어짐을 당할 일에 대해 슬픔을 느꼈읍니다. 자기 동족의 영적 회복이 절망적임을 알고 아무런 복수심이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딸 내 백성이 상[‘쉐버’, 히브리어, 혹은 손상]하였으므로 나도 상[‘세바’, 히브리어]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예레미야 8:21, 22.
25.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에 치료 방법이 있을 수 있읍니까? 영속적인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25 고대 ‘예루살렘’과 ‘유다’ 땅의 손상된 영적 상태는 치료될 수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원전 607년에 참으로 ‘바벨론’에게 손상을 입었읍니다. 오늘날 이 늦은 시기에 그리스도교국을 고칠 수 있는 영적 ‘길르앗’의 유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교국에게 “홀연히” 멸망이 임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참과 영속적인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떠나도록 할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에 관한 일련의 기사는 29면에 계속됨)
[각주]
a 바룩 2:24, 25, 「공동번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