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피조물을 과도하게 추앙하는가?
1. 심지어 그리스도교국에 있어서까지 숭배에 있어서 어떤 상태를 볼 수 있읍니까?
세계 곳곳마다 동물이나 사람을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것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이들 중 어떤 것들은 공공연하게 신들로 인정을 받고 있읍니다. 어떤 것들은 신이라고 불리우지는 않지만 그러한 것들에 찬양과 관심을 집중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따르고 거기에 전념하여 사실상 그것들을 신들로 취급하고 있읍니다. 사실 그리스도교국에서도 자기들이 섬긴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에게보다는 그러한 것들에게 봉사를 더 많이 바치는 자들이 많습니다.
2. 여호와께 대한 전적 헌신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2 성서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전적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20:5, 신세) 참 하나님께 온전한 충성과 온 마음을 다한 봉사를 드리는 일로부터 조금이라도 이탈한다면, 그 숭배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 사람의 영적, 도덕적 짜임새는 파괴되고, 그는 점차 타락하여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우상 숭배를 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의 지존성을 인정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이스라엘’에서의 “우상” 숭배
3. ‘에스겔’ 시대에 ‘예루살렘’의 숭배 상태는 어떠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그 일에 대해 어떻게 하셨읍니까?
3 고대 ‘이스라엘’에서 제사장들과 종교적 선생들은 율법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결국 하나님께 대한 전적 헌신이 놀랄 정도로 타락하는 정도까지 이르렀읍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멸망되기 직전에는 상태가 하도 악화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위치한 성전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자행되는 모든 일들을 세세히 알고 계심을 모든 사람들이 알기를 원하셨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 중 정직한 사람들을 염려하셨으며, 그들이 하나님께서 그 나라에 벌을 내리시는 이유를 알도록 해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에게 그들의 지도자들이 성전에서 자행하고 있는 충격적이고도 가증한 일들을 보여 주시고 그것을 폭로하게 하셨읍니다.
4, 5. ‘에스겔’은 환상 중에 어느 장소로 옮기워 왔으며, 그는 먼저 무엇을 보았읍니까?
4 환상 중에 ‘에스겔’은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기워서 여호와의 안내를 받아 그곳에 있는 성전을 구경하였읍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보고합니다.
5 “그가 나를 이끌고 뜰 문에 이르시기로 내가 본즉 담에 구멍이 있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이 담을 헐라[담에 구멍을 뚫라, 신세] 하시기로 내가 그 담을 허니[담에 구멍을 뚫으니, 신세] 한 문이 있더라.”—에스겔 8:7, 8.
6-8. 성전 내부를 들여다 보았을 때에 ‘에스겔’은 무엇을 목격하였읍니까?
6 확대된 구멍을 통해서인지 혹은 그 곁에 있는 “한 문”을 통해서인지 ‘에스겔’은 들어가서 발생되고 있는 일들을 볼 수 있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7 “또 내게 이르시되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서 행하는 가증하고 악한 일을 보라 하시기로 내가 들어가 보니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같이 오르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에스겔 8:9-12.
8 상상해 보십시오! 참 숭배를 인도해야 할 이 사람들이 가증하고 더러운 곤충과 짐승들을 신으로 섬기고 있었읍니다. 그들을 큰 나라로 만들어 주고 그들에게 깨끗하고 의로운 율법을 주신 분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그러한 일을 자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 상태는 극도로 타락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가증한 일들을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진화론의 위험성
9-11. 오늘날 그리스도교국 사람들은 어떻게 짐승 숭배의 형태에 걸려들어 있읍니까?
9 공언한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그러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사실상, 오늘날 그러한 위험성이 크게 존재합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10 한 가지 예로, 교인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진화론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자기들이 바닷속에 살던 원시의 단세포 생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것을 믿고 있읍니다. 그 다음 그들의 조상은 그러한 단세포 생물에서 출발, 점차 진화하여 간단한 형태의 물고기 시대를 거처 양서류로 그리고 좀 더 복잡한 육지 동물로 발전한 다음 결국 인간이 나타나 곧게 서게 되었다고 그들은 믿고 있읍니다.
11 만일 어떤 사람에게 그가 뱀 가정의 출신이라고 한다면 그는 싸우려고 달겨들 것입니다. 만일 그의 조상이 멍청한 원숭이, 쥐 또는 개였다고 말한다면 그는 심히 치욕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에 따른다면, 사람은 그러한 조상으로부터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사람을 그러한 짐승의 수준으로 타락시킵니다.
12. 진화론은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12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진화론은 최고의 지성을 가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혹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서 사람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으며, 짐승보다 훨씬 더 높은 지성과 이지력과 도덕적, 영적 특질을 부여받았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하나님이 거짓말하였다고 진화론은 주장합니다.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은 진화론을 믿은 나머지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의 힘을 “어머니 자연”이라고 의인화하여 숭배합니다. 그것은 극도의 타락이며 신성모독이며, 엄청난 우상 숭배입니다.
국가주의, ‘스포츠’, 인기의 대상물들
13, 14. 어떤 사람이나 나라의 특성을 표현하기 위해 짐승이나 새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반드시 나쁩니까?
13 또한 국가주의 문제에서 그리고 ‘스포츠’와 오락 분야에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피조물이나 사람이나 기타의 것들을 우상으로 숭배할 가능성이 있읍니다. 어떤 방법으로 그러합니까?
14 먼저, 들짐승들이나 새들을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십시오. 아마 개개의 시민들은 그 나라의 상징물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어떤 새나 짐승의 이름을 선택하여 어느 나라를 묘사 혹은 대표하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자기 백성을 돌본 것을 독수리가 새끼를 돌보는 것에 비유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 지파의 사자”라고 불리웠읍니다. 사자는 담대한 공의의 상징입니다. (출애굽 19:4; 계시 5:5) 또한 족장 ‘야곱’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 대해 예언할 때 그들이 나타낼 어떤 성격을, 그러한 성격을 소유한 짐승들에 비하여 설명하였읍니다.—창세 49:9, 14, 17, 27.
15. 그렇다면, 그러한 국가의 상징물들은 언제 우상이 됩니까?
15 그러나 국가적인 상징물의 경우에 있어서 문제는, 그러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숭배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숭배가 관련되어 있는가 않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 사람들의 태도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당신은 그러한 상징물들을 볼 때, 생각과 감정이 어떤 영향을 받습니까? 당신은 자신의 민족이나 국민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낍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하나님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었으며, 하나님은 어떤 인종이나 국민을 편애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인식합니까?—사도 17:26.
16. 자기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팀’이나 선수들을 추앙하는 점에 있어서 ‘스포츠 팬’들은 어느 정도까지 합니까?
16 ‘스포츠’에 있어서, 당신은 지방의 ‘스포츠 팀’이나 당신이 좋아하는 ‘팀’에 대해 어떻게 느낍니까? 오늘날 유명한 선수들은 영웅으로 추앙을 받으며, 그들의 “팬” 즉 애호자들은 그들의 본을 따르려고 애를 쓰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습니다. 그들의 ‘사인’을 받으려고 대단히 소란을 피웁니다. 선수들이나 ‘팀’에 대하여 심한 논쟁, 심지어는 극력한 싸움이 일어나기도 하며, 그들에 대해 거액의 돈을 걸기도 합니다.
17. (ㄱ)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쁜 사람들입니까? (ㄴ) 그러한 선수들을 숭배하는가 안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ㄷ) 단순히 선수라는 이유로 그들을 추앙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어떠한 질문들이 있읍니까?
17 이것이 어떻게 하여 “우상” 숭배가 됩니까? ‘팀’이나 경기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영웅”이라고 하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숭배가 되는 것은 “팬”에게 주는 영향과 태도입니다. 그러한 선수들이 튼튼한 신체와 유연한 근육을 가졌다고 하여 그들을 우상화해야 합니까? 이러한 재능을 제외하고 그들의 인격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생활 태도를 본받을 만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사랑, 친절, 하나님께 대한 믿음, 즐거움, 평화, 자제 등의 성품을 가지고 있읍니까? 그들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 옵니까? 그들 자신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까? 자신의 이름을 높입니까?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든 간에 사람을 우상화해서는 안됩니다.
18, 19. ‘스포츠’ 문제에 있어서 우상 숭배 쪽으로 기우는지 않는지를 무엇으로 결정할 수 있읍니까?
18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여러 가지 ‘스포츠 팀’과, 경기자들의 여러 가지 득점 실점과, 평균 점수 등을 알아 내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친다면, 그 사람의 진정한 관심과 애착심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더 배우는 점에는 얼마나 관심이 있읍니까?
19 문제는, 그 사람이 과연 무엇을 명상하는가? 그는 무엇을 하고 보고 읽기를 좋아하는가? 그는 무엇을 존중히 여기는가? 입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셨읍니다.—마태 6:21.
20. 참 숭배에 수반되는 열정과 ‘스포츠’에 수반되는 열정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20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와 봉사에 있어서는 과도하게 되는 법이 없읍니다. 실로 거기에는 즐거움과 열정과 열성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선한 결과를 가져오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많은 ‘스포츠’ 애호가들과 경기자들의 열광과 열정은 그들이 그 ‘게임’이나 경기자들을 우상화하고 있는 증거가 됩니다. 예를 들어, ‘팬’들이 경기자들이나 심판자들에게 병을 던지고, 야구나 축구 경기가 끝난 다음에 소란을 피우고, 잔디를 뽑고 기물을 부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21, 22. 고대 ‘로마’의 ‘스포츠’와 오늘날의 어떤 ‘스포츠’와의 사이에 유사한 점들이 있읍니까?
21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 ‘로마’식 검투사의 싸움을 좋아할 수 있겠읍니까? 많은 경기 특히 미식 축구, 권투, ‘학키’ 등의 접촉 경기에 있어서는 그것과 약간이라도 비슷한 점이 있지 않습니까?
22 예를 들어, ‘프로’ 미식 축구에는 “자살단”이라는 것이 있읍니다. 그들은 「라이프」지에서 말한 바와 같이 “특정한 폭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시합에 들여 보내지는 사람들입니다. 자살단이 되기 위한 요구 조건은 「라이프」지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야만적인 본능과 전혀 두려워할 줄을 모르는 성격”입니다. 선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만 생각한다. 정신이 없을 정도로 채이면, 다른 두 세 사람을 정신없을 정도로 걷어차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기분이 상당히 좋다.”
23. 운동 경기에서 자신의 건강을 위험에 처하게 하며, 다른 사람을 해치는 사람을 왜 우상 숭배자라고 할 수 있읍니까?
23 돈, 명성, 영예 혹은 어떤 다른 것을 얻으려고 경기를 이기기 위해 어떤 사람이 자신의 건강을 위험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다른 사람을 불구자로 만들거나 심지어 죽이기까지 할 때에, 그것은 ‘스포츠’에 대해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확실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료의 영광보다는 자신의 영광을 더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그것은 창조주께 정면으로 불순종하는 것이며, 어떤 다른 것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며, 그것을 자신의 정열과 노력을 바칠 가치가 더 있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24, 25. 모든 ‘스포츠’에 있어서 그것이 신체적으로 난폭한 것이든 아니든,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경계해야 합니까?
24 모든 ‘스포츠’가 신체적으로 그렇게 난폭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든 간에,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과 주의력을 뺏아갈 정도로 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25 그리고 우리는 ‘스포츠’만이 우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읍니다. 만일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영화 배우, 음악가, 가수, 또는 다른 인기의 대상물을 감탄스럽게 바라보고, 그 사람들의 연기를 보거나 목소리를 듣는 데 과도하게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는 그들 때문에 하나님의 숭배를 소홀히 하는 것이 됩니다.
자신의 마음 태도를 살피라
26, 27. 예언자 ‘욥’은 사람이 자기 마음 속으로도 우상 숭배를 범할 수 있음을 어떻게 말하였읍니까?
26 그러므로,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러한 일들을 지나치게 정열적으로 지지한다면, 그러한 일에 마음을 쏟는다면, 우리는 우상 숭배를 하는 것이 됩니다. 설사 공공연하게 그러한 감정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정신 태도와 마음을 살필 필요가 있읍니다. 고대의 예언자 ‘욥’은 자기의 마음 속에서도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할 수 있다고 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27 “언제 태양의 빛남과 달의 명랑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가만히 유혹되어 손에 입맞추었던가? 이 역시 재판장에게 벌 받을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니라.”—욥 31:26-28.
28. 마음이 교묘한 유혹을 받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지적하셨읍니까?
28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전적 헌신을 약화시키는 어떤 피조물이나 물건에 애착심을 가지도록 마음에 유혹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우상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죄가 됩니다. 우리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길로 이끌어 갈 만한 일에 우리의 마음이 유혹되도록 놔두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지적하신 예수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읍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라].” 그는 또한 마음이 자신을 사로잡아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할 수 있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태 15:19; 5:28.
29.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육체의 연습이 차지할 적절한 위치는 어디입니까?
29 오락과 운동은 적절하게 한다면 좋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올바른 순서를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하였읍니다.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디모데 전 4:7, 8.
30.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영광을 돌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나쁜 정신 태도에 빠집니까?
30 그러므로 ‘에스겔’의 환상이 오늘날 대단히 강력하게 적용됨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어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올무에 걸렸던 바와 같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도 그렇습니다. 짐승 숭배와 “우상” 숭배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문책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 중에 여호와는 “전적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임을 알고, ‘그는 그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그의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상 숭배에 빠진 사람들이 있읍니다.—이사야 42:8.
31. 사도 ‘요한’은 영광을 추구하는 일이나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헛된 일임을 어떻게 설명하였읍니까?
31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들은 대단히 교활한 올무인 “이생의 자랑”을 경계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것은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사도 ‘요한’은 말하였읍니다. 자신을 위해 영광을 추구하는 일이나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일은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나가버릴 영광입니다. ‘요한’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 1서 2:1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