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서기관이 최근에 당신을 방문한 일이 있는가?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더라.”—에스겔 9:2.
1. 왕의 서기관의 방문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중요합니까?
지금까지 여러 햇 동안, 왕의 서기관이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 왔읍니다. 그 서기관이 최근에 당신도 방문한 일이 있읍니까? 당신은 이러한 질문을 받고 놀랄지도 모르겠읍니다. ‘왕의 서기관이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온 일은 한번도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위험한 시대라서 낮모르는 사람이 찾아오는 것이 두려워 문을 꼭 잠가 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 문을 열어 주었더라도 그 사람이 왕의 서기관인줄 몰라보았는지도 모르겠읍니다. 당신이 그의 신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하여 그가 당신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 서기관의 일은 대단히 긴급하며, 그는 당신을 위하여 당신을 방문하고 있읍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알겠는가? 이 왕이 누구이며, 그의 서기관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가 방문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려 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시대는 위험한 사건 곧 우발적인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불안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2. 무슨 왕이 여기에 관련되며, 그의 서기관을 사람들에게 보낸 일은 왜 오늘날 살펴보아야만 할 일입니까?
2 우리의 이 특이한 질문은 그러한 질문이 나오게 된 환경에 비추어 보면 이해할 수 있읍니다. 오늘날의 세계 상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오래 전에도 그와 같은 상태가 있었는 데, 좀 더 규모가 작았읍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그 상태는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의 본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교훈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그것을 고대 역사 가운데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 교훈이 필요하며, 항구적인 유익을 얻으려면 그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따라야 합니다. 그 옛날 모형적인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가장 위대하신 그 왕, 바로 그 왕이 관련되어 있읍니다. 그 왕이 지금 보내신 서기관은 오래 전에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위하여 그 왕이 내보내셨던 사람에 해당합니다. 지상에 있는 왕으로서 그러한 일을 할 왕이 얼마나 되겠읍니까? 적어도 이 위대하신 왕은 그렇게 하셨읍니다. 그 왕은 오래 전 비슷한 환경 하에서 그 일을 하심으로써 우리 시대에도 그렇게 하실 것을 전영하셨읍니다. 오늘날 우리를 계몽시키고 인도하시기 위하여 그 왕은 그 일에 대해 자세한 기록이 남도록 하셨읍니다.
3. 2,582년 전 그 당시 세계 강국의 상태와 한 왕가가 오랫 동안 다스려 온 한 왕국의 상태는 어떠하였으며, 그 왕국이 당한 사건은 왜 세계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읍니까?
3 이제 과거의 기록을 열어서, 지금으로부터 2,582년전 즉 기원전 612년으로, 소급해 올라가 봅시다. 바로 얼마 전에 강력한 세계 강국(바벨론)이 새로 세계 정치 무대에서 주도권을 잡게 되었읍니다. 기원전 1077년부터 465년 동안 하나의 왕 계통에서 통치를 해 온 한 왕국이 멸망되기 직전이었읍니다.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그 왕국은 앞으로 5년 밖에 남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기원전 607년에 그의 수도 ‘예루살렘’이 파괴되었고 그 왕국의 하나님을 섬기던 성전도 파괴되었읍니다. 이 사건은 인류의 전체 세계에 영향을 줄 사건이었읍니다. 바로 그 해에 2,520년의 기간이 시작되었으며, 그 기간에 ‘바빌로니아’ 세계 강국, ‘메대-바사’ 세계 강국, 희랍 세계 강국, ‘로마’ 세계 강국 그리고 영미 세계 강국이 차례로 인류를 지배하였읍니다.
4. 그 세계 지배의 기간은 어떠한 면으로 방해받지 않는 기간이었으며, 그것은 언제 끝났으며, 왜 기원전 612년은 오늘날 우리에게 관심이 있읍니까?
4 우주의 최고 세력을 가지신 분은 자기가 설립한 왕국을 통하여 이들 세계 강국들의 세계 지배를 방해하시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역사적으로 그 방해받지 않고 세계를 지배한 오랜 그 기간은 기원 1914년에 끝났읍니다. 그 해에 인류 역사상 제1차 세계 대전이라고 부르는 세계적인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결국에 가서는 이중 세계 강국인 영국과 미국을 포함한 28개국이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관심을 기울이는 오래 전 그 해 곧 기원전 612년이 그 당시에 위급한 해였으며, 현재의 위급한 때를 전영했음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5. 기원전 612년에 10,000명의 ‘유대’인들은 어디에 있었으며, 그 해에 ‘에스겔’은 환상 중에 무슨 경험을 하였읍니까?
5 기원전 612년 이전에 이미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에서 ‘바벨론’으로 유배된 사람이 10,000명이나 있었읍니다. (열왕 하 24:14) 이 사람들 가운데는 후에 여호와의 예언자가 된 사람들로서 ‘다니엘’과 제사장 ‘부시’의 아들 ‘에스겔’도 끼어 있었읍니다. (다니엘 1:1-6; 에스겔 1:1-3) 기원전 612년은 유배당한 이 두 사람이 사로잡혀간 지 6년째 되는 해였읍니다. 그해에 예언자 ‘에스겔’이 환상을 보았읍니다. 그가 몸으로는 ‘바빌로니아’의 ‘그발’ 강 근처 ‘델아빕’이라고 하는 곳에 있었지만 영으로는, 곧 영감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옮겨갔읍니다. (에스겔 3:15; 8:1-4) 그는 환상 중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국의 하나님인 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하여 건축한 성전을 구경하게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신 자기를 숭배하기 위해 형상이나 그림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셨읍니다. 그런데 이 천지의 하나님의 숭배에 바쳐진 성전에서 ‘에스겔’은 거짓 신 숭배에 사용되는 형상들과 벽화들을 보았읍니다. 예를 들어 ‘에스겔’이 본 광경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읍니다.
6. 성전을 구경하는 중에, ‘에스겔’은 ‘이스라엘’ 장로 70인이 무엇을 하는 것을 보았읍니까?
6 “각양 곤충과 가증한 짐승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우상을 그 사면 벽에 그렸고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 중 칠십인이 그 앞에 섰으며 ‘사반’의 아들 ‘야아사냐’도 그 가운데 섰고 각기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향연이 구름 같이 오르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이 땅을 버리셨다 하느니라.”—에스겔 8:10-12.
7. 여호와께서 우상 숭배하는 70인의 장로들에게 무엇을 행하시더라도 정당하시며, 왜 그렇습니까?
7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는 70명의 장로들이 그러한 말을 하고, 여호와의 숭배의 집을 이러한 방법으로 퇴폐시키고 더럽혀도 벌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지의 여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었읍니다. 그것도 조만간 밝혀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 장로들은 가증스럽게도 십계명의 첫째와 둘째 계명을 범하고 있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전적 헌신을 요구하시고 자기의 영광을 거짓 신들과, 자기의 찬양을 우상과 나누지 않는 면에 있어서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서 거짓 숭배를 자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의 잘못과 범죄에 대해 벌을 내리시더라도 정당한 일이었읍니다. (출애굽 20:1-6; 이사야 42:8) 하나님은 그러한 일에 벌주시겠다는 결심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예언자 ‘에스겔’에게 알리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자기의 성전 안에서 태양 숭배가 행해지는 것까지 보여주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8. 여호와께서는 합당한 형벌을 내리시기로 결심하셨음을 어떤 말로 나타내셨읍니까?
8 “나도 분노로 갚아 [70명의 장로들은 소경으로 생각한 하나님의 눈이] 아껴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에스겔 8:13-18.
9. 이 점에 있어서, 여호와는 그럭저럭 넘어가는 하나님이 아님을 무엇이 증명하며,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 대하여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9 그와 비슷한 위급한 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읍니까? 여호와는 무자비한 하나님인가? 그는 우리 시대의 위급한 상태가 그 절정에 달하게 될 때에 아무에게도 자비를 나타내지 않을 것인가? 하고 질문해야 하겠읍니까? 위선적이고 거짓된 숭배자들이 자기네 그릇된 행동의 결과를 당하도록 놔두신다고 해도 우리는 조금도 하나님을 비난할 수 없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바로 이러한 일을 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그럭저럭 넘어가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예언자 ‘에스겔’이 속해 있던 그 백성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 역사적 사실은 그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만물 가운데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읍니다. 현세대의 인류도 역시 그 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는 무슨 희망이 있읍니까? ‘에스겔’의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발생한 사건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이제 ‘에스겔’이 한 말을 들어봅시다.
그 도시에 주의를 기울임—어떻게?
10, 11. (ㄱ) ‘에스겔’이 듣는 데서 큰 소리로 외친 분은 누구였으며, 어디서 외쳤읍니까? (ㄴ) 그분에게는 왜 그 도시에 관하여 명령을 내리실 권리가 있었읍니까?
10 “그가 또 큰 소리로 내 귀에 외쳐 가라사대 이 성읍을 관할하는[주의를 기울인, 신세]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아오게 하라 하시더라.”
11 ‘에스겔’이 들을 수 있도록 이 명령을 발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에스겔 9:1) 그분은 어디 계십니까? 그분은 무서우리만치 높은 바퀴가 달린 병거 위의 영광스러운 보좌에 좌정하여 계십니다. 그 병거의 네 바퀴 하나 하나의 곁에는 하늘의 ‘그룹’이 서 있읍니다. (에스겔 8:2-4; 10:1, 2) 그분은 왕이시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명령을 내리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왕”이십니다. (디모데 전 1:17, 새번역; 계시 15:3, 신세) 그분은 실제로 ‘에스겔’의 민족을 다스리는 보이지 않는 왕이시었으며,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은 보이지 않는 왕이신 여호와의 보이는 대표자로서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다고 말하였읍니다. (역대 상 29:23; 에스겔 20:3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의 ‘예루살렘’을 “큰 임금의 성”이라고 부르셨읍니다. (마태 5:35) 그러므로 그분은 ‘예루살렘’ 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하여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왕권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에스겔’이 본 이 연속적인 환상 중의 다음 환상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소각되게 되었읍니다. (에스겔 10:1-7; 열왕 하 25:8, 9; 역대 하 36:17-19) 그러나 그 도시가 완전히 타없어지기 전에 그 거민들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12. 살륙하는 기계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이 도시에 주의를 기울인 자들”이라는 말은 누구를 의미하지 않았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보이지 않는 왕 여호와께서 큰 소리로 “이 성읍을 관할하는[주의를 기울인, 신세] 자들로 각기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들고 나오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소리가 들렸을 때에 ‘예루살렘’의 거민들에게는 그것이 불길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에스겔 9:1) 그 살륙하는 기계를 누구에게 사용할 것입니까? ‘예루살렘’의 거민들에게 사용할 것입니까? 그들 모두를 살륙할 것입니까? 그러한 살륙하는 기계를 가진 자들을 “이 도시에 주의를 기울인 자들”이라고 하였읍니다. 그 말은 그 당시 왕위에 있는 ‘시드기야’ 왕도, 그 정부의 방백들도, 군사령관도, 성전 대제사장도, 둘째 제사장도 의미하지 않았읍니다. 이 사람들이라면, ‘예루살렘’에 사는 자기 백성들에게 살륙하는 기계를 휘두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장을 한 사람들은 누구였읍니까?
13. 그러면 환상 중의 기계를 든 자들은 누구였으며, 그러므로 ‘바벨론’ 군대에 대하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13 그들은 “분노로 갚”으시려고 하는 여호와께 종속된 자들로서 ‘예루살렘’ 거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을 집행할 자들이었읍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그들은 “이 도시에 주의를 기울인 자들”이었읍니다. 비록 환상 가운데서는 그들이 사람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 성읍 거민들에게 불리한 심판을 집행하는데 사용될 여호와의 거룩한 천사들이었읍니다. 역사를 보면, 이 반역적인 도시에 여호와의 심판을 집행할 때 ‘바벨론’ 군대가 눈에 보이게 사용되었읍니다. 그러나 이들은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상징된 자들이 아니었읍니다. 이들 ‘바벨론’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치는 하늘의 천사들에게 단순히 고용되었을 뿐입니다.
14. 여호와께서 명하시자 기계를 든 사람 몇 명이 나왔으며, 어느 방향에서 왔읍니까?
14 여호와로부터 왕명이 내리자 무장을 한 사람이 몇 명이나 나타났으며, 그들은 어느 방향으로부터 왔읍니까? ‘에스겔’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가 본즉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잡았고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 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에스겔 9:2.
15. (ㄱ) 환상 중의 “여섯 사람”은 실제로 누구였으며, 그들이 나온 방향은 무엇을 예고하였읍니까? (ㄴ) “분노로 갚”으시겠다고 한 여호와의 결의는 어떻게 승리를 거두었읍니까?
15 손에 살륙하는 기계를 든 사람이 여섯 명이었읍니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천사들을 대표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 내에 거주하는 수천명의 거민은 문제도 되지 않는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수가 여섯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불완전한 점이 있었다든가, 그들이 집행자로서의 활동에 부적합하였다는 의미가 아니었읍니다. 이들 여섯 명의 집행자들이 “북향한 윗문 길로” 온다고 하였읍니다. 이것은 ‘바벨론’ 군대가 여호와의 천사 집행자들을 대표한 지상의 도구 역할을 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처들어올 때에 북쪽으로부터 올 것을 예고한 것이었읍니다. 남쪽으로부터는 ‘예루살렘’의 ‘시드기야’ 왕의 청원을 받고 온 애굽의 ‘바로’의 군대가 올라왔읍니다. 그러나 이들 연합군은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격퇴당하고 말았읍니다. “분노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겠다는 여호와의 결의는 좌절될 수 없었읍니다. 살륙하는 기계를 가진 상징적 “여섯 사람” 곧 하나님께서 “이 도시에 주의를 기울인 자들”이라고 한 자들은 하나님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저항을 받더라도 승리를 거두게 되어 있었읍니다.
16. 이러한 환경으로 볼 때에, 나라들이 가까운 장래에 직면할 것은 무엇입니까?
16 그 예언적인 환경이 지니고 있던 강력한 힘을 오늘날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현재 이 전세계적인 사물의 제도가 가까운 장래에 당할 운명은 단순히 인간의 힘만의 멸망과 파멸이 아닙니다. 이들 급진적이고, 무정부적이고, 허무적이고, 무질서한 인간 요소들은 완전히 파괴하고 진멸하는 데 실패할지라도 이 악한 사물의 제도를 “분노로” 처치할 여호와의 초인간적인 천사들은 그것을 완전히 쓸어버릴 것입니다. 이 썩고 더러워진 사물의 제도는 흔적도 없어져버릴 것입니다!
17. 그리스도교국이 포함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어떤 이유들이 있읍니까?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왜 경계해야 합니까?
17 그리스도교국도 그렇게 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오늘날 이 사물의 제도의 주요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특히 고대 불충실한 ‘예루살렘’과 그의 영토인 ‘유다’ 땅으로 상징된 조직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여호와라고 이름하신 성서의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조직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국이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국은 여호와 하나님과의 종교적 언약을 파괴하고 이 세상의 이교로 자신을 더렵혔으며 따라서 참 그리스도교를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종교적 이름이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예언적인 “여섯 사람”이 살륙하는 기계를 가지고 그리스도교국에게 주의를 돌릴 준엄한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에 속한 사람들은 이것을 참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18. 이 부수는 일은 언제 일어날 것이며, 그것을 피할 수 있읍니까? 우리 개개인에 대하여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18 그리스도교국까지 포함해서 이 전체 사물의 제도를 치고 산산히 부수는 일은 절대 틀림없이 이 세대 내에 일어날 것입니다. 심판을 철저히 집행하시려고 하늘 병거를 타고 오시는 우주의 왕 여호와의 손으로부터 나올 이 세계적 대격변을 절대 막을 수는 없읍니다. 이들 상징적인 “여섯 사람”이 살륙하는 기계를 가지고 세속적인 것들을 처부수는 일을 시작하기 전인 지금 우리가 개인적으로는 그에 대처하여 행동을 취할 수 있읍니까?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하여 예언자 ‘에스겔’의 환상 중에 본 예언적 ‘드라마’를 계속 살펴봅시다.
왕의 서기관을 식별함
19. 북쪽으로부터 와서 놋제단 곁에 선 사람은 몇 명이었으며, 그들은 모두 무장을 하고 있었읍니까?
19 북쪽으로부터 성전 마당에 들어와 놋 제단 곁에 선 이들이 단지 “여섯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곱이었읍니다. 그런데 일곱째 사람은 다른 여섯 사람들처럼 무장을 하지 않았읍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더라” (에스겔 9:2) 그러면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20. 일곱째 사람은 누구였으며, 그는 ‘예루살렘’의 ‘시드기야’ 왕을 섬기고 있었읍니까?
20 바로 이 사람이 왕의 서기관입니다. 그가 군인과 같은 복장을 하지 않고 먹과 붓이 들어 있는 먹그릇을 찬 것은 그가 서기관임을 나타냅니다. 그 역시 그 도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는 하늘의 병거에 좌정하신 분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틀림없이 여호와의 서기관입니다. 그 당시 지상의 ‘예루살렘’에 있던 눈에 보이는 보좌는 ‘다윗’ 왕 계통의 ‘시드기야’ 왕이 차지하고 있었읍니다. 그 서기관은 반역적인 ‘시드기야’ 왕의 서기관이 아니라 영원하신 왕 여호와의 서기관입니다. 과거 ‘에스겔’ 당시에는 그가 누구였으며, 오늘날은 그가 누구입니까?
21. 베옷 입은 사람이 천사였는지 아니었는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환상 가운데서 그가 수행한 것과 같은 결과가 과거 ‘에스겔’ 시대에 성취되었읍니까?
21 그는 여호와의 심판을 집행하는 하늘의 천사들을 대표하는 “여섯 사람”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 역시 하늘의 천사 혹은 천사군(群)을 상징합니까? 만일 그가 보이지 않는 하늘의 천사라면 그가 최근에 당신을 방문하였는지 않았는지를 어떻게 알겠읍니까?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명한 일로 볼 때에, 그는 이곳 지상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용되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상징함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에스겔’ 시대를 되돌아 보면 성서 가운데 어떤 사람도 실제적으로 이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이 받은 명령을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없읍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던 예언자 ‘예레미야’는 그 일을 하지 않았읍니다. ‘에스겔’도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단순히 여호와의 성령에 감동되어 환상 중에만 ‘예루살렘’에 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사람이 서기관의 먹그릇을 차고 ‘예루살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서 본 사업을 한 일이 없지만 마치 실제 사람이 그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임명된 일을 수행한 것과 같은 그러한 서기관 일의 유익한 효과는 나타났었읍니다. 그러므로 먹그릇을 찬 사람은 그 당시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업적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였읍니다.
22. 이 환상의 기본적인 성취는 누구에게 혹은 언제 있을 것이 분명하며, 그러면 오늘날 왕의 서기관은 누구입니까?
22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어떠합니까?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에 대한 환상은 기본적으로 우리 시대에 적용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말세를 만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 10:11) 과거 ‘에스겔’ 시대에는, 그 도시가 멸망되기 전 남은 기간에 성벽으로 둘린 ‘예루살렘’ 내부에서 한 사람이 그 일을 해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고 하는 기록이 없읍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실체적인 “도시”가 그리스도교국이라는 것과 그 세계적인 규모를 생각한다면 한 사람이 그 일을 다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이 여러 해에 걸쳐서 해 내야 할 만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 대한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환상 중의 사람은 현대의 복합적인 사람 즉 연합된 사람들의 집단을 상징하는 것이 틀림없읍니다. 그들 모두는 동일한 사업에서 한 분의 지휘 하에 함께 일하며, “영원하신 왕” 여호와의 봉사에서 동일한 목적을 위해 일하고 있읍니다. 그러한 것이 우리 시대의 왕의 서기관입니다.
23, 24. (ㄱ) 왜 육적 ‘유대’인들은 베옷 입은 사람의 환상을 성취하지 않습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여호와를 위하여 서기관의 일을 하고 있읍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3 이 복합적 “서기관”이 여호와의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하여 오늘날 그것이 ‘유대’인 집단이라고는 말할 수 없읍니다. 여호와는 그들의 조상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었으며, ‘모세’의 하나님이었지만, 오늘날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 곧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봉사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무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되신 예수를 불행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인 메시야 곧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거기서 제외되고 있읍니다. 더군다나 그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국 전체에서 ‘에스겔’의 환상에서 보인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이 수행한 일을 성취하는 그리스도인 사업을 하지 않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도 연합체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의 서기관 일을 하지 않고 있읍니다. 그러한 교직자들은 그러한 일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천사들을 통하여 여호와에 의해 곧 멸망되리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예로 ‘바티칸’ 시의 ‘로마 가톨릭’ 교황이 1971년 4월 11일 부활절에 한 말이 있읍니다.
24 그 이튿날자 「뉴욕 타임즈」지에는 “4월 11일 ‘로마’ 발신” 특별 기사가 다음과 같이 실렸읍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오늘 희망에 찬 부활절 ‘메시지’에서 ‘현 세계를 인도하는 빛인 위대한 사상들이 소멸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였다. ‘세계 통일은 달성될 것이다’고 교황은 주장하였다. ··· 자신이 ‘희망의 메시지’라고 부른 그 ‘메시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의 존엄성은 형식적으로만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인정될 것이다. 모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불가침성은 전반적이고 효과적인 지지를 받을 것이다. 무가치한 사회적 불평등은 제거될 것이다. 국민 상호 관계는 평화롭고, 합리적이고, 우호적으로 될 것이다.”
25.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복합적인 사람의 현대적인 실체는 왜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집단 가운데서 볼 수 없읍니까? 그러나 그 복합적인 사람을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무엇이 있읍니까?
25 종교 교직자들과 그리스도교국의 단체들은 우리 시대에 대한 성서 예언들을 믿지 않고 자기네의 온갖 가증한 것을 영속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예언적인 사람의 현대적인 실체는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집단 가운데서 볼 수 없읍니다. 그렇다면 누가 “가는 베옷을 입”은 현대 복합적인 사람의 일을 해 왔읍니까? 전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이 그 복합적인 “사람”이 누구인가를 밝혀 줍니다.
26. 그러면, 1931년 이래 밝혀진 바와 같이 누가 왕의 서기관입니까?
26 그들은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소규모적인 집단으로서 1931년에 이들은 그리스도교국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과, 따라서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의 활동이 현대적으로 적용되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입니다. 1931년 7월 30일 미국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시에서 열린 이들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대회에서 그 날 오후 3시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이라는 강연이 있었으며, 이 연설이 끝난 직후에 「에스겔서」 1장부터 24장까지를 설명한 「입증」이라는 책이 대회에 모인 수천명에게 발표되었읍니다. 그보다 4일 전 즉 1931년 7월 26일 일요일에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이 대회는 자기들을 그리스도인들로서 나타내는 칭호인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칭호를 채택하였읍니다. 단순히 이름만이 아니라, 그 이후 그들이 수행한 사업으로 보더라도 지존하신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의 임무를 20세기에 성취하고 있음이 틀림없이 증명됩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현대의 “왕의 서기관”입니다. 그가 최근에 여러분을 방문한 일이 있읍니까?
27, 28. (ㄱ) ‘에스겔’의 환상 가운데,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이 사람들의 계획에 따라 사람들로부터 명령을 받았는지의 여부를 어떤 사실이 보여줍니까? (ㄴ) 일곱명 중에서 누가 먼저 활동하게 되었으며, 무엇을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읍니까?
27 이 기름 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사업이 어떤 인간의 계획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은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잘 상징되어 있읍니다.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이 누구에게서 지시를 받는가를 알려 주기 위하여 ‘에스겔’은 자기가 보고 들은 바를 이렇게 기술합니다.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더라].”—에스겔 9:3; 10:2.
28 이와 같이 바퀴들 곁에 자리잡은 네 ‘그룹’들 위에 머물러 있던 여호와의 영광이 옮기워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문지방에 자리를 잡았읍니다. 여호와께서 이제 참으로 자기의 성전에 계시게 되었으며, 바로 그분으로부터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은 일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읍니다. 그 지시는 더러워진 성전의 불충실한 제사장들로부터가 아니었읍니다. 이 사람은 살륙하는 기계를 가진 “여섯 사람”이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행동을 취해야 하였읍니다. 그는 이들 여섯 명의 집행자들보다 먼저 가서 어떤 일을 해야 하였읍니까?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에스겔 9:4.
29.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성전 안에서 표하는 일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며, 왜 ‘예루살렘’으로 보냄을 받았읍니까?
29 여호와께서는 이 사람에게 성전 안을 순행하면서 표를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읍니다. 거기에는 이마에 표를 받을 만한 사람이 없었읍니다. 예언자 ‘에스겔’이 성전을 순시하는 동안에 숭배자들이 성전에서 거짓 숭배를 자행하고, 어떤 여인들은 거짓 신 ‘담무스’를 위하여 울기는 하였어도 성전 안과 ‘예루살렘’ 안에서 행해지는 모든 가증한 일 때문에 우는 사람은 없었읍니다. (에스겔 8:13, 14) 따라서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은 성전 밖으로 나가 “‘예루살렘’ 성읍 중”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불충실한 ‘예루살렘’ 전체에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셨읍니다.
30.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을 어떻게 찾아 낼 것이었으며, 무슨 이유로 그들은 지정된 그 장소에 표를 받았읍니까?
30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탄식하며 우는 자”를 찾아낼 것입니까? 광장이나 장터에 가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가정, 즉 집집으로 가야 하였읍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람들이 진정으로 토로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며, 그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할 것인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조급한 작업이 아니라 참을성있고 성실하게 집에서 집으로, 이 문에서 저 문으로 다니면서 정직하게 살피고, 편애하지 않고, 그 왕도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보고 진실로 탄식하는 사람들에게만 표를 해야 하였읍니다.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은 이 사람들에게 웃옷을 벗으라고 하여 심장이 있는 가슴에 표를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벗에게나 원수에게나 다 공개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마에 구별하는 표를 하였읍니다. 특별한 옷이나 위선적인 종교적 연설이 아니라 이 표가 그들이 여호와의 숭배자임을 나타낼 것입니다.
[201면 삽화]
‘에스겔’은 환상 중에 70명의 장로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여호와의 숭배의 집을 더럽히면서, ‘여호와는 우리를 보지 아니하신다’고 말하고 있었다
[203면 삽화]
여섯명의 무장한 사람들이 왕의 서기관을 뒤따랐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이 부패한 제도를 조만간 쓸어버릴 천사들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