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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집집으로 방문하여 전파하였다파수대—1979 |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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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워틀리’ 씨는 애초의 생각은 그들을 자기 종교로 개종시키려는 것이었다고 이들에게 말해 주었다.
첫 날 아침부터 ‘캐티’와 그의 짝은 일용할 성귀를 토론하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는데, ‘워틀리’ 씨 부부도 앉아서 참여하도록 초대하였다. 그 연로한 부부는 기꺼이 그 초대에 응하였다. 어느날 아침에 토론된 귀절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는 에스겔 18:4의 말씀이었다.
“응? 영혼이 죽는단 말이야?” 하고 ‘워틀리’ 씨는 물었다. “잠깐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무언가 좀더 배워야겠는걸.” 그리하여 그와 그의 아내와의 정기적인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영혼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자, ‘워틀리’ 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가씨들, 들어 봐요. 이제 다시는 내가 우리 교회에서 영혼불멸 교리를 가르칠 수 없겠어요.” 그래서 그와 그의 아내는 교회에서 탈퇴하였으며 ‘캐티’와 그의 짝과 함께 집집으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워틀리’ 씨가 다니던 교회 성원 중 얼마가 그들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있어, ‘워틀리’ 씨 집에서 집회가 마련되었으며, 집단의 규모가 늘어나자 집회를 위해서 상점을 하나 빌려서 사용하였다. 다른 읍에 사는 한 증인이 찾아와서 집회를 사회하게 되었다. 마침내 ‘여호와의 증인’의 새로운 회중이 구성되었다.
집회 장소가 너무 좁아지자 ‘워틀리’ 씨는 이렇게 말하였다. “회중을 위해 땅을 기증하고 싶군요” 얼마 안 있어 그 지역에 왕국회관이 건축되었다. ‘프랭크 워틀리’ 씨는 그의 사망시까지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으로서 변함이 없었으며, ‘캐티 윌리엄스’는 이제 32년째 ‘파이오니아’를 하고 있는데, 아직도 정기적으로 집집으로 방문하여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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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으로 방문하여 증거하는 일에 대한 외부 사람들의 논평파수대—1979 |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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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으로 방문하여 증거하는 일에 대한 외부 사람들의 논평
여호와께서 배도한 ‘예루살렘’에 심판을 집행하실 때가 되었을 때 그분은 예언자 ‘에스겔’에게 한 환상을 보여 주셨는데 그 환상 가운데서 ‘에스겔’은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보았다. 여호와께서는 이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사명을 주셨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승인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멸망의 날에 살아 남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멸망되었다.—에스겔 9:2-11.
그리스도교국에서 볼 수 있는 위선과 부패와 유혈죄로 인하여 슬퍼하며,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지고 기꺼이 참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옷입으려고 하는 자들을 식별하는 이와 비슷한 표하는 일이 오늘날에도 행해지고 있다. 이 표하는 일은 ‘베옷을 입은 사람’으로 묘사된 반열의 지도하에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해서 그리고 집집으로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열렬한 운동에 의해서 그리스도교국 전역에서 수행되고 있다. (마태 24:14; 사도 20:20) 이러한 증거 운동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왔는가?
‘에스겔’ 당시와 같이 일부 사람들은 참 그리스도교의 표를 기꺼이 받아들여 왔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소식을 몹시 반대해 왔다. 그래도 증인들과 그들의 전파 방법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가톨릭’ 사제인 ‘존 A. 오브리엔’은 ‘뉴우요오크’에 있는 성 ‘요셉’ 신학교에서 약 200명의 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개종자들을 모아들이고 나쁜 길에 빠진 사람들을 교화하는 일에 개인적인 접촉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이 방법이 재치있고 예의바르고 잘 훈련된 호별 방문 사도에 의해서 실현되고 있다. 성 ‘바오로’의 엄청난 성공의 비결은 그가 개종자들을 모아들이는 호별 방문 방법을 꾸준히 사용한 것이었다. 그 사도 시대의 방법이 오늘날 비 ‘가톨릭’ 종파 특히 숱한 개종자들이 우리들 ‘가톨릭’교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의해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로니컬’한 일이다.”—「The Monitor」지 1961년 7월 7일자.
‘가톨릭’ 사제 ‘J. S. 케네디’ 씨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관하여 이와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개종자들을 찾는 그들의 호별 방문 운동은 열렬해서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 그들의 열심과 자기 희생은 우리로 하여금 좀 생각해 보게 만든다.”—「Our Sunday Visitor」지 1962년 6월 3일자.
또 좀더 최근에 와서 ‘스페인’에서 열린 종교 지도자들의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아마 [교회들은] 바로 ‘증인’들의 가장 큰 첫째 임무로 되어 있는 원시 교회의 사도 시대 방법에 속하는 가정 방문에 관하여 상당히 태만한 것같다. 교회들이 자주 그들의 전(殿)을 건축하는 일과 사람들이 모이도록 종을 치는 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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