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의 하나님이 행동하실 것이다
1, 2.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은 왜 탄식하게 되며, 그러나 무엇이 그들에게 희망의 근거가 됩니까?
당신이 부정과 압제에 관하여 보거나 들을 때에 당신은 괴로움을 느낍니까? 불법한 사람들이 뇌물을 주고 형벌을 피하는 것을 보고 슬퍼합니까? 다분히 현 세계의 경제 제도의 잘못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당신은 마음 아파합니까? 부정한 성병이 증가하고, 성적 범죄, 낙태 및 사생아가 증가하는 것을 볼 때에 당신은 성서의 표준을 옹호하지 않고 성적 부도덕을 용납하는 교직자들에 대해 분노를 느낍니까?
2 전세계적으로 마음이 정직한 사람들은 오늘날 발생하고 있는 현상을 보고 탄식할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읍니다. 만일 그들이 개선시킬 수 있는 지혜와 능력만 있다면 그들은 틀림 없이 그러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와 능력을 다 갖추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옳은 것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치를 취하시는 것이 이치적이 아니겠읍니까? 우리는 과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여 슬픔과 고통과 울부짖음의 원인을 모두 제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계시 21:4, 5)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신뢰할 만합니다. 그것은 충실하게 약속을 지키신 과거 역사가 뒷받침 해 주기 때문입니다.
3, 4.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의 상태는 어떠하였었읍니까?
3 고대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일어났던 상태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루신 방법을 생각해 보십시다.
4 ‘이스라엘’ 사람들의 부패상은 현 세계의 정치, 상업 및 종교 제도, 특히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제도의 상태와 아주 비슷하였읍니다. 통치자들은 압제적이었읍니다. 폭력과 유혈은 증가하였읍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공의로운 대우를 받지 못하였읍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의를 위한 힘이 되지 못하였으며, 우상 숭배는 만연되었읍니다.—열왕 하 21:11-16; 예레미야 18:18; 22:13-16; 하박국 1:4.
5, 6.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의 불충실을 무한정 참지 않으실 것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5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언약 백성의 불충실성을 얼마 동안은 참으셨지만, 때가 되면 그분의 인내가 끝날 것임을 그들에게 경고하기 위하여 예언자들을 보내셨읍니다. 기원전 617년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그러한 예언자 중 한 사람이 나왔읍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표현으로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가 2년 반도 채 못남았을 때에 ‘에스겔’은 이러한 명령을 받았읍니다.
6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 내어 ‘이스라엘’ 땅을 쳐서 예언하라.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찌라.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터이므로 내 칼을 집에서 빼어 무릇 혈기 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라.]”—에스겔 21:2-4.
7. (ㄱ) ‘예루살렘’을 치게 될 상징적 “칼”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것은 어떻게 하여 “무릇 혈기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쳤읍니까?
7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신을 “악인”과 “의인”을 칠 용사로 묘사하셨읍니다. “의인”이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이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사용하실 “칼”은 심판을 집행할 지상의 도구였읍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능한 영물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하늘 조직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지상의 도구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군대였읍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상징적 “칼”로서 ‘유다’ 왕국을 공격하였읍니다. 그 나라는 ‘바벨론’의 서남방, 과거에 ‘이스라엘’ 열 지파 왕국이 자리 잡았던 지역의 남쪽에 위치하였읍니다. 그러나 상징적 “칼”의 형 집행 활동은 “남”쪽에만 국한하지 않았읍니다. “칼”은 “남에서 북까지” “혈기있는 자” 모두에게, 즉 그 주변에 있는 비‘이스라엘’ 나라들에게도 미쳤읍니다. 왜 그랬읍니까?
8. 상징적 “칼”은 왜 공격을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에만 국한하지 않았읍니까?
8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을 통하여 대답해 주셨읍니다. “무릇 혈기있는 자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집에서 빼어낸 줄을 알찌라. 칼이 다시 꽂혀지지 아니하리라.” (에스겔 21:5) “‘이스라엘’ 땅”과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만 하나님께 범죄한 것은 아닙니다. 주위의 백성, “혈기 있는 자” 모두도 하나님께 범죄하였으며,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니까 여호와의 눈을 피하였다고 생각할 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이스라엘’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할 수 없었읍니다. 여호와의 백성들에게 악의를 품었던 나라들은 모두 상징적 “칼”로 멸망당해야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이 사실을 미리 선언하셨기 때문에 모든 육체가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항해서 싸우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오늘날을 위한 교훈
9. 오늘날 세상의 어느 요소가 여호와의 상징적 “칼”의 침을 먼저 당할 것이며, 왜 그렇습니까?
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악행을 고집하는 사람들에 대한 견해를 바꾸지 않으셨읍니다. 성서 예언은 하나님의 “칼”이 이 세대 내에 하나님을 반대하는 나라들과 백성들을 칠 것을 확증하고 있읍니다. (마태 24:34) ‘예루살렘’과 ‘유다’ 땅의 거민들이 주변의 나라들보다 먼저 재난을 당한 것 같이 그리스도교국이 제일 먼저 그 “칼”로부터 고통스런 결과를 당할 것입니다. 왜 그럴 것입니까? 그리스도교국은 고대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의 집”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새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신분과 특별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전서 4:17, 18에 기록되어 있는 원칙과 같이 그리스도교국에서부터 심판이 시작될 것입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10. 상징적 “칼”은 실체적인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활동을 중지할 것입니까?
10 그러나 여호와의 “칼”은 ‘바벨론’의 남쪽에 위치하였던 고대 ‘예루살렘’의 실체인 그리스도교국만 멸망시키고 활동을 끝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현대에도 그 “칼”은 마찬가지로 “무릇 혈기있는 자를 남에서 북까지” 칠 것입니다. 그 나머지 모든 위선적 거짓 종교 제도도 멸망당할 것입니다.
11. 왜 ‘예루살렘’의 많은 거민들은 자기들이 재앙을 면할 것으로 상상하고 “즐거워”하였읍니까?
11 아무도 그리스도교국이 요행으로 여호와의 형벌의 “칼”을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루살렘’에 살던 많은 사람들도 그들이 하나님의 은총받은 지위에 있기 때문에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점은 상징적 “칼”의 활동을 말할 때에 ‘에스겔’이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하고 말한 점으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 (에스겔 21:10) ‘예루살렘’의 불충실한 거민들은 분명히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고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에 즐거워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왕은 또한 ‘다윗’의 자손이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영원한 왕국을 위한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아 그 직위에 올랐으므로 그 왕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였읍니다. 그리고 ‘다윗’의 자손이었으므로 왕은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다고 하였읍니다. (사무엘 하 7:4-16; 역대 상 29:23; 애가 4:20) 그러나 그러한 모든 유리한 입장에 대한 즐거움은 헛것이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분명히 말씀하셨읍니다.
12, 13. ‘이스라엘’ 사람들이 “즐거워”할 근거가 없음을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12 “여호와의 말씀에 칼이여 칼이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살륙을 위함이요 마광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 내 아들의 홀이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 [그것이 모든 나무를 배척한 것 같이 내 아들의 홀을 배척하느냐?, 신세] 그 칼이 손에 잡아 쓸만하도록 마광되되 살륙하는 자의 손에 붙이기 위하여 날카롭고도 마광되었도다. ··· 이것이 내 백성에게 임하며 ‘이스라엘’ 모든 방백에게 임함이로다. 그들과 내 백성이 함께 칼에 붙인바 되었으니 ··· 이것이 시험이라. 만일 업신여기는 홀이 없어지면 어찌할꼬? [멸절되었다. 그것이 홀도 배척하면 어떨까? 이것은 계속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신세] 나 [주권자]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 21:9-13.
13 여호와의 “칼”은 다른 나라의 홀 곧 “나무”를 배척한 것같이 ‘유다’ 왕국의 홀도 배척할 것이었읍니다. 완고하게 계속 반역하는 자는 ‘예루살렘’의 왕좌에 앉아 여호와의 “아들” 같은 입장에 있다고 해도 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불충실한 모든 자들을 대적하실 것이며, 그러므로 그 “칼”을 “살륙하는 자” 곧 심판 집행을 대리자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 때에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 방백의 두령인 ‘시드기야’ 왕은 형벌을 면치 못하였읍니다. ‘다윗’ 집의 통치는 끊어졌읍니다. 이렇게 하여 왕권의 상징인 홀은 “계속 존재하지” 못하였읍니다.
14, 15. 상징적 “칼”의 놀라운 활동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읍니까?
14 상징적 “칼”이 놀랍게 움직일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울부짖고 소리를 지르기에 충분하였읍니다. 그들은 여인들 같이 가슴을 친 것이 아니라 오른편 넙적다리를 쳤읍니다. 두려움과 공포로 손벽을 칠만큼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렇게 지시하셨읍니다.
15 “인자야 너는 부르짖어 슬피 울찌어다 ··· 너는 네 넓적다리를 칠찌어다 ··· 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예언하며 손뼉을 쳐서 칼로 세번 거듭 씌우게 하라. 이 칼은 중상케 하는 칼이라. 밀실에 들어가서 대인을 중상케 하는 칼이로다. 내가 그들로 낙담하여 많이 엎드러지게 하려고 그 모든 성문을 향하여 번쩍 번쩍하는 칼을 베풀었도다. 오호라. 그 칼이 번개 같고 살륙을 위하여 날카로왔도다. 칼아 모이라, 우향하라. 항오를 차리라. 좌향하라. 향한대로 가라.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을 다 하리로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 21:12-17.
16. 우리 시대에 누가 여호와의 형벌의 “칼”을 면치 못할 것입니까?
16 이 고대의 모형적 활동에 따라, 변역치 아니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이 시대에도 승인받은 하나님의 종이 아닌 사람은 누구든지 두루 치는 형벌의 칼을 피하지 못하게 하실 것입니다. 일단 그것이 활동을 시작하면, 그 상징적 “칼”은 스스로 의롭다고 뽑내는 자들을 포함하여 모든 악인들을 멸절하기까지 쉬지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교국의 왕들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종교 교직자들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통치하도록 왕들을 기름부었다는 사실도 지존하신 주권자께는 무의미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형벌의 “칼”로 사용하실 대리자들은 형벌을 면하리라는 그러한 통치자들의 주장을 일축해 버릴 것입니다. 처형 대리자들은 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강력한 영물인 천사들의 군대로 구성될 것입니다. (계시 19:11-21)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따라 생활함으로써만 보호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충고를 따르는 것이 됩니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스바냐 2:3.
경고를 발함
17. 왜 다가오는 파괴에 대해 경고를 선포할 필요가 있읍니까?
17 그리스도교국과 그 나머지 사물의 제도가 틀림 없이 멸망될 것이기 때문에 경고를 발하는 일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 곧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와 선의를 가진 그들의 동료들은 전력을 다하여 이 경고를 선포합니다. 상징적 “칼”이 파괴적인 분노를 나타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은 예언자 ‘에스겔’이 나타내라고 지시받은 상태와 동일합니다.
18, 19. (ㄱ) ‘에스겔’은 그 “소문”이 자기 자신에게 대단히 무서운 것임을 어떻게 나타내야 하였읍니까? (ㄴ) 그 “소문”의 성취는 이전에 믿지 않던 ‘유대’인 포로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이었읍니까?
18 “인자야 너는 탄식하되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소문을 인함이라. 재앙이 오나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하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정녕 이루리라. 나 [주권자]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에스겔 21:6, 7.
19 ‘예루살렘’에 닥칠 가공할 멸망에 관한 예언적 소문은 ‘에스겔’이 탄식하며 떨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었읍니다. 그 보고가 성취되어 ‘예루살렘’이 멸망되었다는 소식이 ‘바벨론’에 이르렀을 때에 아직까지 그것을 믿지 않던 ‘유대’인 포로들은 틀림 없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들의 무릎은 단지 땀만 나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마 그들의 영이 대단히 쇠약해져서 방광의 괄약근이 늘어져 무릎에 소변이 흘러 내렸을 것입니다.
20. 그리스도교국의 임박한 멸망 때문에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현재 무엇을 하며, 왜 그렇습니까?
20 조만간 그리스도교국에게 임할 멸망은 그보다 더욱 무서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그 재앙의 예언적 “소문”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내적 감정을 깊이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므로 동료 인간의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멸망을 피할 단계를 취하도록 이 “소문”을 부지런히 선포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 “소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행동을 취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의를 찾기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