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왕이 통치하신다!
1, 2. (ㄱ) 1914년은 어떠한 더 큰 의미가 있는 해입니까? (ㄴ) 「파수대」지는 어떻게 여러 해 전부터 1914년을 정확히 지적하였읍니까?
1914년이 나라들과 인류의 일에 큰 전환점을 가져온 해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인정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읍니다. 그 해는 하나님의 왕국의 “임”함과 관련된 흥분케 하는 사건들이 일어난 때입니다. 주의깊은 성서 연구생들은 여러 해 전부터 벌써 예리한 기대를 가지고 그 해를 기다렸읍니다. 어떠한 근거로 그렇게 하였읍니까?
2 1914년이 오기 34년 전에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지는 1879년 12월호와 1880년 3월호에서 1914년이 성서 예언상 획기적인 해임을 지적하였읍니다. 1880년 6월호의 한 기사는 “‘이방인의 때’[누가 21:24]”의 다가오는 끝에 주의를 이끌었읍니다. 그 당시 필자는 그 때 일어날 일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성서 연대를 통하여 고대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황폐시킨 때로부터 시작하여 불경건한 나라들의 정부가 지배하는 “일곱 때” 즉 2,520년 기간이 “주후 1914년”에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2520년이라는 긴 기간과 ··· 짐승[인간 정부, 다니엘 7장]의 지배아래 [하나님의 백성의] 쓰라린 경험이 다니엘 4장에 ‘느부갓네살’의 ‘일곱 때’와 그가 짐승들 가운데서 쓰라린 경험을 하는 것으로 명백히 상징되어 있다.” 그러면 그 “일곱 때”란 무엇입니까?
한 꿈의 해석
3. 다니엘 4:25에는 어떠한 기본적 진리가 언급되어 있읍니까?
3 성서 다니엘 제 4장에는 매우 놀라운 예언적인 한 꿈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 꿈은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왕국]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는 것을 잘 예시합니다. (다니엘 4:25)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이 꿈을 꾸고 예언자 ‘다니엘’에게 이 꿈을 해석해 달라고 말하였읍니다.
4-6. (ㄱ) ‘느부갓네살’은 어떠한 꿈을 꾸었읍니까? (ㄴ) ‘다니엘’은 그 꿈을 어떻게 해석하였읍니까? (ㄷ) 그것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ㄹ) ‘느부갓네살’은 다시 회복되자, 어떠한 사실을 인정하였읍니까?
4 ‘느부갓네살’은 환상 가운데서 땅 끝에서도 볼 수 있는 거대한 나무를 보았읍니다. 그 나무는 모든 생물에게 식품과 피할 곳을 제공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한 “거룩한 자”가 그 나무를 베고 그루터기를 그 당시 가장 강한 두 가지 금속인 철과 놋줄로 동이라고 명령합니다. 이 나무는 이렇게 묶인 상태에서 “일곱 때”를 지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5 ‘다니엘’은 이 예언적인 환상을 해석하면서, 그 웅장한 나무는 ‘느부갓네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그는 ‘베어’져야 즉 낮아져야 하였읍니다. “일곱 때” 동안 ‘느부갓네살’은 들 짐승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가 온전히 뿌리채 뽑히지 않은 것처럼, “일곱 때”가 지난 후에 그 왕은 회복될 것입니다.—다니엘 4:19-27.
6 이 일이 바로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났읍니다. 그는 타락되어, 사람의 주거지에서 옮기워 풀을 먹으며 동물처럼 되었읍니다. 이 “일곱 때”는 ‘느부갓네살’이 실제 ‘짐승 가운데서 함께 쓰라린 경험을 한’ 7년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의 머리털이 독수리 털처럼 길게 자랐고, 그의 손톱은 새 발톱처럼 자랐읍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다시 정신을 찾게 되었고 자기의 왕권을 회복하였읍니다. 그 일이 일어나자, 그는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그분은 실제로 왕권을 행사하는 분이시며 그분의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라는 것을 인정하였읍니다.—다니엘 4:28-37.
7-9. (ㄱ) 예수께서는 무슨 예언 가운데서 ‘이방인의 때’의 끝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까? (ㄴ) 그러므로 어떠한 질문들이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까?
7 그러면 이 모든 일들이 기원 1914년과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이방인의 때”
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이러한 말씀을 하셨읍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누가 21:24)
많은 사람들은 ‘‘이방인의 때’가 무엇인가? 예수께서 생각하신 그 기간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가? 그 기간은 언제 시작하였으며, 언제 끝날 것인가?’를 궁금하게 생각해 왔읍니다.
9 우리는 “징조”에 관한 예수의 대예언이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이미 살펴 보았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도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0-12. (ㄱ) 한 학자에 의하면 기원 29-70년에 일어난 일들은 무엇의 모형이었읍니까? (ㄴ) 그러나 누가 복음 21:24에 나오는 “예루살렘”은 어떠한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읍니까? (ㄷ) 그러한 견해에 대하여 한 유명한 백과사전은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ㄹ)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무엇을 대표합니까?
10 예수의 예언에 대하여 해설하면서, ‘A. T. 로버트슨’a 교수는 예수께서 “그 세대인 기원 70년에 일어난 ‘예루살렘’과 그 성전의 멸망을 또한 자기의 재림과 세상 끝 혹은 시대의 완결의 상징”으로 사용하셨음을 지적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에 일어난 일 외에, 예수께서는 누가 복음 21:24에서 “예루살렘”에 어떠한 더 크고 장기적인 의미를 부여하셨는가?
11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다윗’의 계통에서 여호와께 기름부음받은 왕들이 “여호와의 보좌”에 앉아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한 왕들로 다스린 ‘이스라엘’의 수도로 간주하셨읍니다. 또한 그 안에 있던 성전은 온 땅에 대한 참 숭배의 중심지였읍니다. (역대 상 28:5; 29:23, 신세; 역대 하 9:8) ‘맥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 왕의 거처가 되어 왔으며, 흔히 ‘여호와의 집’이라고 불리운 성전은 동시에 신권 국가의 최고 수장이신 만왕의 왕의 거처였다. ··· ‘예루살렘’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그곳은 다른 국가들의 정사를 지휘한 강력한 제국의 수도가 아니라, ‘다윗’이 메시야의 임함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선언했을 때 그가 예언한 밝은 전망으로 높이 서 있었다. (시 2:6; 110:2)”—제 4권 838면.
12 ‘다윗’의 계통의 왕들이 “여호와의 왕권의 보좌”(신세)에 앉았었다는 사실은 왕국이 참으로 하나님의 것이라는 진리를 뒷받침하는 것이었읍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왕국은 모형적인 하나님의 왕국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였읍니다.
13, 14. 언제 그리고 어떻게 누가 복음 21:24의 ‘밟히’는 일이 시작되었읍니까?
13 이제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는 예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누가 21:24) 이 “밟히”는 일이 시작하였읍니까? 그 일은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시기 오래 전에 시작하였음이 분명합니다. ‘다윗’ 계통의 인간 왕들이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는 일이 그친지 이미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 왕조가 끝난 것은 ‘시드기야’ 왕이 ‘느부갓네살’의 지휘 아래 ‘바벨론’ 군대의 침공으로 폐위된 때였읍니다.
14 성서의 정확한 역사는 백성과 ‘시드기아’ 왕의 악으로 인하여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바벨론’]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느부갓네살’]가 와서 ··· 칼로 청년을 죽이며 ···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참]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으니라.]” (역대 하 36:11, 12, 16-20) 이 때 “밟히”는 일이 시작되었읍니다.
얼마 동안 “밟”힐 것인가?
15-17. (ㄱ) ‘다윗’ 왕국에 대한 “합법적 권리”를 누가 상실하였으며, 어떻게 상실하였읍니까? (ㄴ) 누가 그 권리를 다시 얻게 될 것이며, 얼마 동안이나 그렇게 할 것입니까? (ㄷ) 그러므로 마땅히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ㄹ) ‘다니엘’이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왜 적절합니까?
15 예언자 ‘에스겔’은 지상의 ‘예루살렘’에서 다스리던 ‘다윗’ 왕계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폐위 당할 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예언하였읍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찌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합법적 권리를 가진 자, 신세]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에스겔 21:26, 27.
16 그 때 ‘시드기야’ 왕은 ‘다윗’ 왕국에 대한 “합법적 권리”를 상실하였지만, 약속된 메시야는 그 “권리”를 다시 얻어서 하나님의 왕국을 “영원히” 다스릴 것입니다. (누가 1:32, 33) 그러나 ‘예루살렘’에 수도를 둔 ‘이스라엘’의 지상 왕국으로 전영되었던 메시야 왕국이 통치를 시작할 때까지 얼마만한 기간이 있어야 합니까?
17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며, 그분은 다른 많은 미래사를 예언하셨던 것처럼 이 기간도 그분의 말씀 가운데 기록해 놓으실 수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여러 번 ‘다니엘’의 예언을 참조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다니엘」서에 장차 하늘과 땅에서 일어날 많은 일들을 정확하게 예언해 놓으셨읍니다. (비교 마태 24:3, 15, 21, 30과 다니엘 9:27; 11:31; 12:1; 7:13.) 또한 다니엘 9:24-27에 있는 “칠십 이레”의 예언은 메시야의 초림 시기를 정확하게 알려 주고 있지 않았읍니까? 그렇다면 같은 예언자가 메시야의 재림 시기를 알려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읍니까? 우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이 예언적인 지식을 우리는 다니엘 4장에서 발견할 수 있읍니다.
주된 성취
18. (ㄱ) 세속 역사에 ‘느부갓네살’이 미친 일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 것입니까? (ㄴ) 우리는 왜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까?
18 우리는 이미 “일곱 때”에 대한 ‘다니엘’의 예언의 일차적이고 모형적인 적용을 검토하고, 그것이 ‘느부갓네살’이 미친 문자적 칠년에 적용되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느부갓네살’의 칠년간의 궐위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세속 역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집트’(‘애굽’), ‘앗시리아’ 및 ‘바벨론’의 고대 기록들은 통치자들에게 수치가 될만한 일들은 무엇이든지 생략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것이 그들의 기록을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만큼 신뢰할 수 없는 한가지 이유입니다. 그 꿈 환상이 성취되었음을 우리에게 확증시켜 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한 그 예언의 어투는 더욱 더 광범위한 성취가 있을 것을 시사하며, 그것 역시 실제로 일어났읍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19. 논리적으로 볼 때 이 환상은 왜 우리에게 ‘이방인의 때’의 길이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19 이 꿈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모형적 왕국을 전복시켜 이방 통치에 의한 세계 지배를 시작하도록 사용된 도구였던 세계 통치자인 바로 ‘바벨론’ 왕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유의할 만한 일입니다. 또한 그 환상은 여호와께서 주권을 행사하시는 데 사용하신 모형적 왕국의 끝을 가져오신 잊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지 몇해 안되어서 주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더우기 다니엘 제 4장에서는 거듭 거듭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왕국]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는 주제를 강조합니다. (다니엘 4:17, 26, 34, 35) 그러므로 우리가 땅에 대한 이방인의 지배 기간에 대하여 알기 위하여 이 환상을 살펴보는 것은 타당한 일입니다.
20.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게 되며, 어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읍니까?
20 하나님의 모형적 왕국이 ‘다윗’ 계통의 왕과 함께 전복된 때로부터 계산해서, 하나님께서 다시 메시야를 통치하는 왕으로하여 ‘다윗’ 왕계가 관련된 한 왕국을 통하여 자기의 주권을 나타내실 때까지 얼마의 기간이 있을 것입니까? 다니엘 제 4장은 ‘이방인의 때’ 즉 이방 나라들이 “예루살렘” 혹은 하나님의 왕국을 짓밟을 기간을 결정하는 기초를 알려줍니다.—누가 21:24.
21. ‘시드기야’가 폐위된 후의 상황에 관하여 다니엘 4:15-17과 욥기 14:7은 무엇을 알려 줍니까?
21 이 밟히는 기간은 ‘느부갓네살’이 ‘시드기야’ 왕을 ‘예루살렘’의 보좌로부터 폐위시킨 해부터 시작합니다. 그 때부터 ‘유대’ 왕계로 대표된 여호와의 주권 행사는 ‘베어’졌읍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의 꿈에 나오는 동인 나무 그루터기처럼 속박되어 있었읍니다. 짐승같은 이방 세력들이 온 땅을 뒤덮었읍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다시 움이” 날 희망이 있었읍니다. 그러면 그 때 사는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왕국]를 다스”린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다니엘 4:15-17; 욥 14:7; 비교 이사야 11:1, 2; 53:2.
22. 언제 그리고 어떻게 왕국 “나무”는 다시 번성해 집니까?
22 이 회복된 왕국에서 지극히 높으신 자는 자기의 메시야를 통하여 다스리십니다. 그 때는 완전한 인간으로 지상에 처음으로 나타나셨을 때 즉 ‘유대’인들이 그분을 멸시하고 그분이 왕이심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은 때와 전혀 다릅니다. 그때는 나무 그루터기에 동인 것이 풀어지고, 왕국 “나무”가 다시 번성해지고, 이 “지극히 천한 자”가 모든 민족의 하늘 왕으로 영광 가운데 도착하실 때입니다. 그 때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세계 왕국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됩니다.—계시 11:15; 다니엘 4:17, 25.
“일곱 때”—그 길이?
23. ‘이방인의 때’는 왜 우리 시대에까지 미쳐야 합니까?
23 그렇다면 ‘이방인의 때’에 적용되는 “일곱 때”는 문자적 칠년보다 훨씬 더 긴 기간임이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이방인의 때’가 ‘차’는 것 혹은 끝나는 것을 “사물의 제도의 종결”과 관련시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누가 21:7, 24; 마태 24:3) 그러므로 그 기간은 우리 시대에까지 미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길이는 정확히 말해 얼마나 됩니까?
24. 우리는 “일곱 때”의 길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읍니까?
24 계시록 12장을 열어 보면, 우리는 6절과 14절에서 1,260일 기간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즉 1 + 2 + 1/2로서 합하여 3과 1/2 때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때”는 360일 혹은 태음력으로 각각 30일로 된 열두 달에 해당합니다. “일곱 때”는 2,520일이 되며, 성서 예언은 “일일이 일년”이라고 하였으므로 이 기간은 실제로 2,520년간이 됩니다. (민수 14:34; 에스겔 4:6) 그러므로 이 기간이 “일곱 때” 즉 ‘이방인의 때’입니다.
25. 예레미야 25:11의 “칠십년”은 ‘이방인의 때’의 시작을 결정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2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 봄으로써 ‘이방인의 때’의 시작이 어느 날인가를 확정하는 데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군대로 하여금 자기 백성을 정복하고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멸망시키고 ‘시드기야’를 “여호와의 왕권의 보좌”로부터 폐위시키고 ‘유대’인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도록 허락하셨읍니다. (역대 상 28:5, 신세) 그후 “칠월”에 일어난 일은 그 땅에 남은 소수의 ‘유대’인들을 ‘애굽’으로 도망하게 하여 ‘유다’는 완전히 황폐되었읍니다. (열왕 하 25:1-26; 예레미야 39:1-10; 41:1-43:7) 여호와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70년간 계속될 그 황폐를 예언하였읍니다. (예레미야 25:8-11) 그 다음에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왕”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시고 ‘자기 백성을 이곳’ 즉 고토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예레미야 25:12; 29:10.
26. (ㄱ) ‘다니엘’은 무엇을 목격하였으며, 그는 무엇을 깨달았읍니까? (ㄴ) ‘다니엘’의 회복 예언이 성취된 달과 해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ㄷ) 정확히 그 때는 언제입니까?
26 ‘다니엘’ 자신이 여러 해 동안 ‘바벨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읍니다. ‘바벨론’이 ‘메데-바사’에게 함락되던 날 밤에, ‘다니엘’은 자기 자신의 예언과 그 성에 대한 다른 예언들이 성취되는 것을 목격하였읍니다. (다니엘 5:17, 25-30; 이사야 45:1, 2) 역사가들은 ‘바벨론’이 함락된 것은 기원전 539년 10월 초였다고 계산합니다. 바로 그 후에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예언으로부터 70년 포로 기간과 ‘예루살렘’의 황폐 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깨달았읍니다. (다니엘 9:2) 그의 판단은 옳았읍니다!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기원전 538년 봄부터 계산하는 ‘바사’의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는 ‘유대’인들이 그들의 고토로 돌아가 그곳에 다시 사람이 거주하고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하는 영을 내렸읍니다. (역대 하 36:20-23; 에스라 1:1-5) 영감받은 역사 기록은 ‘유대’인들이 즉시 ‘고레스’의 영에 응하여, “칠월에 이르러”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에스라 3:1, 신세 참조)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달력으로는 기원전 537년 10월이 됨으로, 그 때는 예언된 70년간의 황폐 기간이 끝나는 때였읍니다.
27. (ㄱ) 그러면 70년 기간은 언제 시작하였음이 분명하며, 어떠한 일로 시작되었읍니까? (ㄴ) “일곱 때”의 길이는 얼마나 되며, 그러므로 그 기간은 언제 끝났읍니까? (ㄷ) 바로 그 날에 다른 어느 큰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까? (ㄹ) 「파수대」지는 100여년간이나 무슨 지식을 지지해 왔읍니까?
27 “이방인의 때”가 언제 시작했는가를 결정하는 데 이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70년 황폐 기간이 기원전 537년에 끝났음으로, 그 기간은 기원전 607년에 시작되었읍니다. 이 해가 ‘시드기야’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왕권의 보좌”에 앉는 일이 끝난 해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해는 또한 ‘이방인의 때’가 시작한 해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607년 10월부터 계산하면, 2,520년간의 “일곱 때”는 기원 1914년 10월 초까지 계속되며,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그 때에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관한 예수의 대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이러한 믿음직한 지식이 이러한 결론의 기초이며, 「파수대」지는 이제 100여년간이나 그 결론을 지지해 왔읍니다.
28, 29. (ㄱ) 세속 역사 기록이 어떠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보존되어 있는 세부점들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까? (ㄴ) ‘이방인의 때’의 끝이 다른 때가 아니라 1914년 10월이라는 것을 택하는 어떠한 강력한 이유가 있읍니까?
28 우리는 여호와께서 기원전 제 6세기의 ‘유대’인과 ‘바벨론’인 및 ‘메데-바사’인들이 관련된 필요한 세부점들의 정확한 실상을 자신의 영감받은 말씀 가운데 보존해 두신 것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할 수 있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당시 일어났던 일들의 정확한 때를 함께 맞추기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기간에 대한 세속 역사 기록은 매우 부정확하기 때문입니다.
29 하지만 그러한 세속 역사 기록을 주로 근거로 하여,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기원전 587/6년에 멸망되었다고 계산하며, ‘유대’인들이 ‘느부갓네살’ 원년에 ‘바벨론’의 지배하에 들어 왔으며, 그해는 기원전 605년이라고 계산합니다.b 그리하여 그들은 예레미야 25:11의 “온 땅이 황폐될 것이며, 그들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칠십년간 섬기리라”는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한 해는 기원전 605년이라고 주장합니다. (‘박스터’판 「희랍어·칠십인역」)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방인의 때’는 그 때부터 계산하게 되고, 그러면 예언적인 “일곱 때”의 끝은 세계 대전 중인 1916년에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 가운데 들어 있는 지식을 받아들일 만한 훨씬 더 강력한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그것은 ‘이방인의 때’가 기원전 607년 10월에 시작하여 기원 1914년 10월에 끝났음을 알려 줍니다.
30. 어떤 사건들이 합하여 1914년에 시작한 기간이 “마지막 날”임을 알려 줍니까?
30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자신의 말씀 가운데 기원 29년에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오실 것과 또한 기원 1914년부터 그분이 영광스러운 하늘 왕으로 “임재”하신 것을 아주 명백히 알리는 예언들을 기록케 하신 것을 기뻐할 수 있읍니다. “사물의 제도의 종결”이 계속 지나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깨어 살피라고 말씀하신 상태들이 우리 주위에서 더욱 심해 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읍니다. 세계 대전들, 기근, 전염병, 지진, 불법, 사랑이 없고, 미움 그리고 성서 원칙에 고착하는 사람들에 대한 박해, 이 모든 것들이 합하여 “마지막 날”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디모데 후 3:1; 마태 24:3-12; 마가 13:7-13.
천년기—언제?
31. (ㄱ) 예수께서는 우리 시대에 대하여 어떠한 교훈을 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어떠한 질문을 하는 경향이 있을지 모르며, 여호와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31 이 무서운 상태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입니까? 지금 그리스도 예수께서 용사이신 왕으로 즉위해 계심으로, 그분이 하나님의 적들에게 심판을 집행할 때가 매우 가까왔다고 믿을 만한 좋은 이유가 있읍니다.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므로, 그 때를 억측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깨어 있으라”는 예수의 교훈을 청종해야 합니다. (마가 13:32; 마태 24:42, 신세 참조) 악화 일로에 있는 지상 상태와 왕국의 좋은 소식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무반응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예언자가 한 바와 같이 우리의 전파하는 일에 관하여 “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하고 묻고 싶은 경향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될] ··· 때 까지니라.” (이사야 6:10-12)
여호와께서는 정하신 때에 심판을 집행하실 것이며, 먼저 그리스도교국에게 그리고 ‘사단’의 세계의 다른 모든 요소들에게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로운 1,000년 통치가 바로 그 뒤를 이을 것입니다,—계시 20:1-3, 6.
“이 세대”—어느 세대?
32. 마태 복음 24:34의 내용을 볼 때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32 예수께서는 “징조”에 대한 대 예언 가운데서 우리에게 이렇게 확약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태 24:34) 그분은 한 세대를 특정한 길이의 기간에 적용시키지 않으셨음으로, 우리는 “이 세대”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33. (ㄱ) 예수 당시의 “세대”는 어떤 사람들이었읍니까? (ㄴ) 그와 일치하게, 1914-1918년의 “세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33 예수 당시에 그분의 말씀을 들은 얼마의 제자들과 그 당시에 살던 다른 사람들은 ‘유대’인 사물의 제도에 임한 마지막 “환난”을 통과하여 살아 남았읍니다. 그들이 예수 시대의 “세대”였읍니다. 이 책을 쓸 당시 미국에만도 1914-1918년의 “재난의 시작”을 관찰할 만한 연령의 사람들로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10,000,000명 이상이 있읍니다. 이들 중 얼마는 아직도 여러 해 동안 더 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그분이 “인자”로서 ‘사단’의 사물의 제도에 심판을 집행하기 위하여 오실 것을 우리에게 확약하십니다. (마태 24:8, 21, 37-39) 우리는 그 ‘왕국의 임’할 것을 기대하며 계속 깨어 있어야 합니다.—누가 21:31-36.
[각주]
a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제 1권 188면.
b 부록 154면 참조.
[112면 네모]
“일곱 때”의 계산
“일곱 때” = 7 x 360 = 2,520년
(성서의 “때” 혹은 연(年)은 태음력의 354일과 태양력의 365 1/4의 평균치)
기원전 607년부터 기원전 1년 = 606년
기원전 1년부터 기원 1년 = 1년
기원 1년부터 기원 1914년 = 1,913년
기원전 607년부터 기원 1914년 = 2,520년
[116면 네모]
“1914년의 세대”
위와 같은 제목의 한 책에서, ‘로버트 월’은 이렇게 말하였다. “세대는 수학적으로 꼭 몇해라고 정의할 수 없지만, 역사적으로 주된 위기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며, 가장 좋은 예로 제 1차 세계 대전을 들 수 있다.”—「이코노 미스트」지 1980년 3월 15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