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흘린 죄 지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1. 피흘린 죄 지은 자들을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보시며,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은 무엇을 기대해야 합니까?
기원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돌발한 이래 인류 역사상 전에 없던 큰 규모로 많은 사람들이 대량 살륙을 당하였읍니다. 세상 나라들은 피흘린 죄를 막대하게 범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교국 내의 나라들에게 있어서는 이 점이 더욱 그러합니다. 그들이 금 세기의 유혈 전쟁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주장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흘린 죄를 지은 자들을 미워하시고 가증히 여기십니다.—시 5:6; 잠언 6:16, 17.
2. 피흘린 죄를 지은 사람들과 나라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이 확실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나 나라들이 얼마 동안은 흥왕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집행되는 것을 영원히 피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고대 역사의 사실이 이 점을 확인해 줍니다. 예로서 기원전 7세기 말엽에 고대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였는가를 고려해 봅시다.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다는 주장도 보호가 되지 못한다
3. 왜 ‘예루살렘’ 거민들은 안전하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간과하였읍니까?
3 ‘예루살렘’ 거민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안전을 느꼈읍니다. 그들은 또한 그 도시에 튼튼한 성벽이 있고 또 군사력이 강한 애굽과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기원전 609년 12월 말경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그들은 자기네 도시가 완전히 황폐될까 두려워 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버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흘린 거민들에게 벌을 내리실 목적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4.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기 시작하였을 때를 ‘에스겔’은 어떻게 알게 되었읍니까?
4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공격을 개시한 바로 그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활동력 곧 영을 통하여 그 당시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던 예언자 ‘에스겔’에게 이 사실을 알리셨읍니다. (에스겔 24:1, 2) 하나님께서는 또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에 일어날 일을 묘사하라고 지시하셨읍니다. ‘에스겔’의 이름을 가진 성서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읍니다.
5, 6. (ㄱ) 여호와께서는 무슨 비유를 사용하여 ‘바벨론’인들의 포위가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미칠 영향을 나타내셨읍니까? (ㄴ) 상징적 가마 안에 넣은 “좋은 덩이”와 “고른 뼈”는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5 “너는 이 패역한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에 한 가마를 걸라. 건후에 물을 붓고 양떼에서 고른 것을 가지고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 모아 넣으며 고른 뼈를 가득히 담고 그 뼈를 위하여 가마 밑에 나무를 쌓아 넣고 잘 삶되 가마 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 찌어다.”—에스겔 24:3-5.
6 이처럼 ‘예루살렘’은 가마로 비유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밑에 나무를 쌓아 놓고 불을 붙이는 것은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 포위는 마치 물이 끓듯이 그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점차 뜨겁게 할 것입니다. 가마 속에 넣은 고기 덩이들은, 진군해 오는 ‘바벨론’ 군대 앞에서 그 안으로 피신해 들어간 사람들을 포함하여 ‘예루살렘’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가마에 넣은 좋은 고기덩이는 그 도시 안의 좋은 사회 계급 사람들 특히 왕과 방백들을 의미합니다. 뼈는 육체를 지지하는 틀을 형성하기 때문에 고른 뼈는 국가 기구의 근간이 되는 사람들, 즉 군대 사령관들과 참모들을 상징합니다. 포위 동안에 모든 자들이 “삶”아질 것입니다.
7-9.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의 피흘린 기록에 대하여 어떻게 하실 계획이었읍니까?
7 ‘예루살렘’ 거민들의 피흘린 죄는 그러한 재난을 당해도 합당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이렇게 선언하셨읍니다.
8 “피 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 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 찐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일일이 꺼낼찌어다. 그 피가 그 가운데 있음이여 피를 땅에 쏟아서 티끌이 덮이게 하지 않고 말간 반석 위에 두었도다. 내가 그 피를 말간 반석 위에 두고 덮이지 않게 함은 분노를 발하여 보응하려 함이로라.”—에스겔 24:6-8.
9 상징적 가마, 곧 피흘린 죄를 지은 ‘예루살렘’ 내의 도덕적 찌꺼기와 때는 가마에 두껍게 끼어 있었으며, 녹슬게 하였읍니다. 그 찌꺼기와 때는 간단히 씻거나 긁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인간의 피를 어찌나 천시하였던지 희생자의 피를 땅에 쏟아 흙으로 덮지도 않았읍니다. 그들은 인간 희생자들의 피를 사냥하여 잡은 피에 대해 하나님의 율법에서 명한 정도만큼도 취급하지 않았읍니다. (레위 17:13, 14) ‘예루살렘’ 사람들은 폭력으로 흘린 피를 수치감도 없이 말간 바위 위에 쏟아서 자기네 범죄에 대한 증거로서 공공연하게 나타내 보였읍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피를 멸시하는 태도는 여호와의 분노를 폭발시켰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에 물든 기록을 가리지 않고, 먼지가 없이 말간 바위 표면에 있는 피처럼 일반 대중이 볼 수 있도록 폭로하기로 결심하셨읍니다. ‘예루살렘’의 범죄인들은 차별없이 “일일이”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서 선택하기 위한 제비를 뽑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10-12. 에스겔 24:9-12에 따르면 ‘바벨론’ 사람들의 포위 공격은 ‘예루살렘’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었읍니까?
10 ‘에스겔’을 통한 여호와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계속 그 포위에 대해 자세한 점을 알려 줍니다.
11 “화 있을 찐저 피를 흘린 성읍이여 내가 또 나무 무더기를 크게 하리라. 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피어 그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 그 뼈를 태우고 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하게 하라. 이 성읍이 수고하므로 스스로 곤비하나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어지지 아니하며 불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도다.”—에스겔 24:9-12.
12 여호와께서는 피가 많고 찌끼가 낀 그 도시가 어떤 일을 당해야 마땅한가를 보셨읍니다. 그 도시는 커다란 장작더미에서 나오는 것 같은 불길에 싸일 것이었읍니다. 계속하여 오랫 동안 뜨겁게 불을 때기 때문에 군대 사령관들과 장교들은 ‘바벨론’인들의 포위 공격이 점차 강해지고 견딜 수 없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다른 거민들은 지나치게 삶은 고기처럼 연한 국물같이 될 것이었읍니다. 그 도시는 공격해 들어온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함락되어 텅비게 될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마치 빈 가마솟을 그 안에 찌꺼기와 녹이 붙어 있기 때문에 녹이는 불 위에 놓아 둔 것같이 될 것이었읍니다. 상징적 가마 전체(‘예루살렘’)는 녹아서 찌꺼기가 분리될 것이었읍니다.
13-15. ‘예루살렘’의 부정한 상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그 도시에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였읍니까?
13 ‘예루살렘’이 멸망을 피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읍니다. 그의 피흘린 죄와 부정한 기록이 그들에 대해 불리한 증거를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통해 선언하신 바와 같습니다.
14 “너의 더러운 중에 음란이 하나이라. 내가 너를 정하게 하나 네가 정하여 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가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정하여 지지 아니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룰찌라.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며 아끼지도 아니하며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행하리니 그들이 네 모든 행위대로 너를 심문하리라.”—에스겔 24:13, 14.
15 ‘바벨론’ 사람들의 공격은 ‘유다’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영적으로 음란한 행동으로부터 깨끗하게 되기를 거부하였음을 입증하였읍니다. 사실상, 그 도시의 부정한 상태는 여호와께서 그 피흘린 도시를 멸망시킴으로써 자기의 분노를 쉬실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신데 대하여 후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고 크게 놀라다
16. ‘에스겔’의 동료 포로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었으며, 왜 그렇습니까?
16 ‘예루살렘’의 멸망은 예언자 ‘에스겔’의 동료 포로들을 심히 놀라게 할 것이었읍니다. 그 멸망은 ‘솔로몬’이 지은 웅대한 성전의 파괴를 의미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건물을 재난을 당하지않는 마력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였읍니다. (예레미야 7:1-11) 그것은 또한 ‘델아빕’에 살고 있는 나이 많은 ‘유대’인들이 사로잡혀오던 때에 어쩔 수 없이 ‘예루살렘’에 남겨두고 온 자녀들을 잃게 됨을 의미하였읍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그들에게 미칠 영향을 희곡화하라는 지시를 받았읍니다. 그는 이렇게 지시받았읍니다.
17.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자기의 동료 포로들에게 미칠 영향을 어떻게 희곡화할 것이었읍니까?
17 “내[여호와]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지 말며 죽은 자들을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종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우지 말고 사람의 부의하는 식물을 먹지 말라.”—에스겔 24:15-17.
18.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로 ‘에스겔’은 무슨 고통스런 일을 당하였으며, 그와 관련하여 ‘에스겔’은 어떻게 행동하였읍니까?
18 ‘에스겔’의 눈에 기뻐하는 것은 바로 그의 아내였음이 증명되었읍니다. 그의 아내가 24시간 죽었던 것입니다. 34세된 ‘에스겔’은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연적인 인간 감정을 억제하였읍니다. 그는 자기 아내의 죽음에 대해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게 슬픔을 나타내지 않았읍니다. 그는 머리에 쓰는 것을 단정히 하고, 그 머리덥개의 자락이 자기 얼굴로 내려 입술을 가리도록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슬프다고 맨발을 벗지도 않았고, 동정하는 사람들로 자기를 위해 위로의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지도 않았읍니다. 이러한 태도는 자기의 동료 포로들에게 의아심을 일으켰읍니다. 그들은 “네가 행하는 이 일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되는지 너는 우리에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물었읍니다. (에스겔 24:18, 19) ‘에스겔’은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19. ‘에스겔’은 자기 아내가 죽은 후에 취한 행동의 의미를 동료 포로들에게 어떻게 설명했읍니까?
19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둔 자녀를 칼에 엎드러지게 할찌라. 너희가 ‘에스겔’의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우지 아니하며 사람의 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쇠패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이와 같이 ‘에스겔’이 너희에게 표징이 되리니 그가 행한 대로 너희가 다 행할찌라. 이 일이 이루면 너희가 나를 [주권자인] 주 여호와 인줄 알리라 하라.”—에스겔 24:20-24.
20. ‘에스겔’의 동료 포로들은 어떻게 여호와를 알게 되었읍니까?
20 ‘예루살렘’ 거민들과 ‘바벨론’ 포로들의 불충실한 행동이 어찌나 심하였든지 그들이 여호와께서 피흘린 죄와 도덕적 타락을 용납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그 거룩한 도시와 성전과 자녀들이 멸망되는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상 숭배하는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420년 동안이나 존속하였던 ‘솔로몬’의 성전을 함락시키고 약탈당하게 하고 파괴되게 하심으로써 성소를 더럽힐 것을 믿을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포로들에게 ‘너희 세력의 영광, 너희 눈의 기쁨,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는 것’(그것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소이든지 그곳에 있는 자기 자녀들이든지)이라고 묘사하신 것을 보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의 말씀이 그처럼 심히 놀라운 방법으로 성취될 때에 그들 포로들은 그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하신 분과 실제 그 일을 행하신 분이 동일한 분 곧 여호와이심을 알게 될 것이었읍니다.
피흘린 죄 지은 그리스도교국은 피할 수 없다
21. ‘예루살렘’에 발생된 일을 볼 때에 그리스도교국에 어떤 일이 닥칠 것입니까?
2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피흘린 죄 지은 ‘예루살렘’을 무한정 용납치 않으신 바와 같이 피를 많이 흘린 그리스도교국도 계속 용인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은 하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의 회중도 아니요 하나님이 영으로 거하시는 성전도 아닙니다. (고린도 전 3:16) ‘예루살렘’에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사실이 도움이 되지 못 한바와 같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그들의 주장도 그들을 구원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완전히 멸망될 때에 그들의 주장은 거짓됨이 드러날 것입니다.
22.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그리스도교국에 관해 선포한 것이 어떻게 참됨이 확증될 것입니까?
2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피흘린 죄와 도덕적 타락에 대한 견해를 변경시키지 않으셨으므로 이러한 멸망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말라기 3:5, 6) 장차 일어날 사건들과 ‘뉴스’ 보도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그리스도교국의 종말에 관해 선포한 사실이 참됨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국에 “큰 환난”이 시작될 때에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그것을 알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때 쯤에 가서는 그 환난의 결과에 관해 그들이 선포한 내용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에 대해 희망의 소식이 없을 것입니다.
23-25. 어떤 의미로 ‘에스겔’은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이 시작된 이후에 잠잠하였으며, 그 잠잠함은 언제까지 계속하였읍니까?
23 그때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입장은 ‘에스겔’의 입장과 같을 것입니다. 그는 이런 지시를 받았읍니다.
24 “인자야 내가 그 힘과 그 즐거워하는 영광과 그 눈의 기뻐하는 것과 그 마음의 간절히 생각하는 자녀를 제하는 날 곧 그날에 도피한 자가 네게 나아와서 네 귀에 그 일을 들리지 아니하겠느냐? 그 날에 네 입이 열려서 도피한 자에게 말하고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리라. 이와 같이 너는 그들에게 표징이 되고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에스겔 24:25-27.
25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이 시작 될 때까지 ‘에스겔’은 자기 백성들에게 충분히 말했읍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더욱 확실하게 들리도록 더 많이 부가할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확증해주는 확실한 보고가 올 때까지 ‘에스겔’은 잠잠하였읍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과 ‘유다’ 왕국에 임할 재난에 관해 그 이상 예언을 하지 않았읍니다. 도망해온 자들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보고를 가지고 도착할 때까지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은 ‘에스겔’이 그들에게 예언한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읍니다. 자기들이 원한다면 믿지 않을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신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확실한 목격자가 도착할 때에 사라질 것입니다.
26. ‘에스겔’은 무엇에 대한 “징조” 사람 혹은 “표징”이었읍니까?
26 그렇게 되면 ‘에스겔’은 더 나은 사건 배경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새로운, 새 맛이 나는 소식을 줄 것이었읍니다. 여호와의 영감받은 참 예언자로서의 그의 권위는 확립될 것입니다. 급히 다가 오는 일에 대한 “징조” 사람 혹은 “표징”으로서 그는 거짓되지 않음이 증명될 것이었읍니다.
27. 오늘날 사람들은 현대적 ‘에스겔’ 반열이 시기에 적절한 “표징”이었음을 어떻게 알 것입니까?
27 피흘린 죄를 지은 ‘예루살렘’이 멸망을 당한바와 같이 피흘린 죄를 지은 그리스도교국도 반드시 멸망될 것입니다. 전세계 각처로부터 쏟아져 들어올 보도는 현대적인 ‘에스겔’ 반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우주의 주권자로부터 나온, 시기에 적절한 “징조”였음을 증명할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여호와가 폭력과 유혈을 반드시 처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스도교국이 횡포한 종말을 당할 때에 재난을 피하는 것이 지혜롭지 않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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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묘사하신 ‘예루살렘’의 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