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거짓 예언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통합
1. 흩어진 사람들을 본토로 다시 모아 그 영토가 초만원이 되게 하는 것은 인구가 폭발하고 있고 세계 기근이 임박한 오늘날 어떠한 문제들을 연상시킵니까?
오늘날, 지구는 만원이라는, 아니, 인구가 폭발한다는 그리고 세계 기근이 기원 1975년으로 임박했다는 불길한 경고가 보도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청년들과 처녀들이 밭의 곡식과 포도원의 고급 포도주를 즐기며 풍요한 생을 누리는 것에 관하여 예언하는 것은 사람이 미심쩍게 들립니다. 더 이상 들어설 공간이 없을 정도로 인구를 더 많게 한다고 예언하는 것은 더욱 이상하게 들립니다. 일부 나라들은 인구의 급증 때문에 이웃나라에서 취한 국경밖의 지역에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식량 생산을 증가시켜야 하고 농지를 더 개간해야 합니다. 그런데 흩어진 국민을 국경내로 다시 모으고 영토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구가 있게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읍니까?
2. 시편 104:13-16에 의하면 인간 정부와는 달리, 누구에게는 식량 문제가 없읍니까?
2 식량 문제 말입니까? 인간 정부로서는 사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낙원의 창설자께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오늘날도 그 분께는 그러한 문제가 없읍니다. 현 세상 사태로부터 소급하여 이십 삼여세기 전에 영감받아 기록된 것에 그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읍니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시 104:13-16.
3. 스가랴 10:1, 2은 어느 방향에서 구제책을 구하라고 알려줍니까?
3 자기를 의존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온갖 노력으로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아무리 예언할지라도, 단 한가지 방향에서만 구제책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인간과 마귀들보다 더 높은 근원으로부터 온 선언, 스가랴 10:1, 2에 기록된 선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방향을 지적합니다. “봄 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대저 ‘데라빔’들은 허탈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느니라.]”
4. 특정한 때에 비를 내리실 수 있는 창조주의 능력은 ‘노아’ 시대와 ‘엘리야’ 시대에 어떻게 입증되었읍니까?
4 전세계에 비를 내리실 수 있는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능력은 기원전 2370년에 입증되었읍니다. 그 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일주일 동안에 대표적인 동물과 새들을 거대한 방주(상자)에 넣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그 일주일이 끝나자 사십일간 온 땅에 비가 내려 일년간 땅의 온 지면이 홍수에 덮였었읍니다. (창세기 6-8장) 또한 특별한 때에,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비를 내리신 또 다른 경우는 ‘이스라엘’ 열지파 왕국의 영토에 삼년 반 동안 가뭄이 있은 후 예언자 ‘엘리야’가 기도한 때였읍니다. 의로운 사람의 기도에 대한 이 응답의 시초로 “바다[지중해]에서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더니” 그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었읍니다.—열왕 상 18:43-45; 야고보 5:16-18; 누가 4:25-26.
5. 회복된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소홀히 여긴 동안에 경험한 무슨 일로써 그들은 “복된 장마비”(에스겔 34:26)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됨을 알았읍니까?
5 ‘유다’ 땅에 회복된 충실한 남은 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훌륭한 환경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그의 말씀은 이러하였읍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에스겔 34:26) 그러나 남은 자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하였읍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던 그 여러 해 동안 그들의 토지에는 뙤약볕이 내리쬐었고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여호와]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읍니다. (학개 1:10, 11; 2:16, 17; 스가랴 8:10-12) 그러므로 그들은 ‘먹구름을 내며 낙비를 내리시는’ 분께 기도할 필요를 느꼈읍니다.—스가랴 10:1, 신세 참조.
6. 미신적인 이교인들의 거짓 신들이 비를 내립니까? 비를 내리시는 데 대한 어떠한 말이 참됨을 생태학자들은 멀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까?
6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분께 기도를 드린 충실한 남은 자들에게 그 분은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었읍니다. 충실한 개개인의 토지는 축복을 받아 필요한 채소를 내었읍니다. 미신적인 이교인들의 거짓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기도를 드려서는 안됩니다. 더 이전 예언자인 ‘예레미야’는 하늘의 비를 내리시는 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읍니다.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예레미야 14:22) 여호와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오늘날의 모든 생태학자들 즉 환경 전문가들은 멀지 않아, 여호와께서 비를 내리시는 분이라는 성서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7.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왜 실제로 비가 내려서 세계 기근이 닥치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지 않으며, 그들이 생존하는 데는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읍니까?
7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의 순결한 숭배를 재수립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읍니다. 그들은 세계 기근을 방지하려는 희망에서 실제 비가 땅에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기근” 즉 “식량 부족”으로 말미암아 세상 나라와 백성들의 고통이 배가될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마태 24:7, 신세 참조) 그들은 다가오는 세계적인 대 “환난”을 생존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생명을 얻는데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축복들 즉 성서와 예언에 대한 이해의 증가, 하나님과의 은총받을 만한 관계, 더 많은 그의 성령 즉 활동력, 그의 헌신한 백성들과의 정기적인 모임, 그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의 전파에 참여하는 일, 그의 뜻을 행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은 자들은 바로 그러한 축복의 소낙비를 내려 주실 것을 기도하여 왔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적 토지는 많은 “채소”를 내었읍니다. 그 토지는 영적 낙원이 되었읍니다.—고린도 후 12:4.
8. 그리스도교국은 무슨 신들에게 축복을 구하였으며, 어떠한 결과에 이를 것이 예언되었읍니까?
8 그리스도교국은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의 거짓 신들, 상업주의, 군국주의, 진화론적 교육, 현대 과학 기술 및 국제 연합에 축복을 구합니다. 그리스도교국 내의 정치 지도자들도 점성가들과 영매술자들에게 찾아가 의견을 묻습니다. 관찰에 의하면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스가랴 10:2에 예언된 그대로 입니다. “대저 ‘데라빔’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느니라.]”
9.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데라빔’과 ‘복술’을 사용하는 죄를 범하였읍니까?
9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성서를 떠나서 그들의 ‘데라빔’ 즉 그들의 가정의 수호신, 집 지키는 신에게 도움을 구하였읍니다. 이것은 미신적인 고대 ‘로마’인의 행동과 같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의견을 존중하고 각자 자기 특유의 종교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들은 군사, 경제 및 정치 분야 전문가들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며, 그러한 세상적 지도자들과 대변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하는 사제들과 교직자들을 의뢰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그들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제넘게도 거역하고 완고하게도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합니다. 예언자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반항적인 ‘사울’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이 바로 그들에게 적용됩니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복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사무엘 상 15:23.
10. 그리스도교국의 예언자들은 참을 예언하였읍니까? 구제책은 마련되었으며 양떼는 한 목자 아래 보호를 받아 왔읍니까?
10 여호와의 관점에서 보면, 소위 이방 세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리스도교국도 ‘데라빔’ 우상 숭배 및 악귀적인 복술과 관련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사견은 그릇됨이 증명되었읍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사용해 온 모든 수단에 의하여 세상 상태가 개선된다는 저명인사들의 예언은 단지 일장 춘몽에 불과하며 거짓임이 드러났읍니다. 이것은 속임을 당하고 그릇 인도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읍니까? 그들은 확실히 양떼처럼 분산되며 각자 향방을 모르는 양처럼 자기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그들은 길을 잃었으며 인간 사회의 악한 요소에 희생이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큰 곤고를 당하여 왔으며 인간으로부터 아무런 구제책을 얻지 못하고 있읍니다. 어떠한 정치적 통치자도 어떠한 정치 조직도 그들에게 목자가 되어 그들을 보호해 주고 평화로운 초장이나 고요한 물가로 인도할 수 없읍니다.
11, 12. (ㄱ) 그리스도교국의 통치자들은 필자 ‘다윗’의 본을 어떻게 따르지 않았읍니까? (ㄴ) 스가랴 10:3-7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종교 교직자들의 인도를 받는 정치적 “목자들”을 기뻐하십니까?
11 정치적 통치자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그리스도교국의 통치자들도 ‘다윗’ 왕의 본을 따르기를 거절해 왔읍니다. ‘다윗’은 기원전 1077-1037년에 ‘이스라엘’ 양떼의 목자였읍니다. 목동 출신인 ‘다윗’은 시편 23:1, 2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가장 높으신 목자 여호와께서, 백성의 목자로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교직자들의 인도와 지지를 받는 정치적 통치자들의 행동을 보고 기뻐하실 수 있겠읍니까? 다음과 같은 스가랴 10:3-7에 의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12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수염소들[염소같은 지도자들, 신세]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주의를 돌려, 신세]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모퉁이 돌이 그[유다]에게로서, 말뚝이 그에게로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로서, 권세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로서 나와서 싸울 때에 용사같이 거리의 진흙중에 대적을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와 말 탄 자들로 부끄러워하게 하리라.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찌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 하리라.”
13. 교직자들은 정치적 “목자들”과 “염소 같은 지도자들”에게 그들에 대한 누구의 태도를 알리지 않았으며, 어떻게 그렇게 하였읍니까?
13 심지어 그리스도교국에서도 정치적 “목자들”은 여호와의 그들에 대한 분노가 뜨거워졌음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종교 교직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있을 것을 구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국의 “수염소” 즉 “염소같은 지도자들”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벌하실 것을 믿지도 두려워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에 가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사제들과 설교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중보 역할을 하며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지 않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예언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하나님의 격렬한 분노의 열기를 느낄 것으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전쟁”의 격전장인 ‘아마겟돈’에서 그 분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 교직자들이 이들 정치적 “목자”들과 “염소 같은 지도자”들을 무식과 자기 만족에 빠지게 하였을지라도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음이 분명합니다. 그 분은 그들에게 통고하여 오셨으며, 그것도 미리 반복적으로 통고하셨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읍니까?
14. 여호와께서는 누구를 통하여 충분히 일찍 그러한 통고를 하셨으며, 그 분은 어떻게 이들을 양과 같은 상태에서 당당한 군마와 같은 상태로 변화시키셨읍니까?
14 그의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인 증인들인 “‘유다’ 족속”의 실체를 통하여 그렇게 하셨읍니다. 이들은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그리스도교국의 정치적 “목자들”과 “염소 같은 지도자들”을 따르지 않았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목자이시며 기원 1919년 이래로 그 분은 그의 양 “무리”인 그들에게 따뜻한 주의를 돌리셨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그리스도교국과 보조를 맞추어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종교 교직자들의 승인과 지지를 받은 짐승같은 인류의 정치적 군사적 착취자들에게 순종하는 양들과 꼭 같았읍니다. 그러나 그 첫 세계 전쟁 이후로 위대하신 천적 목자께서는 그의 “무리” 곧 영적 “‘유다’ 족속”을 다시 모으셨읍니다. 그 분은 양 같은 상태에 있던 그들을 변화시켜 “전쟁의 준마” 같게 하셨읍니다. 그 분은 그들에게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용기를 주심으로 당당한 군마와 같은 용기를 갖게 하셨읍니다.—스가랴 10:3.
15. 기원 1914년 이후로 영적 “‘유다’ 족속”에게 왜 당연히 이러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까?
15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의 사자”를 하늘에 즉위시키시고 “가서 네 원수들 중에서 정복하라”고 그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계시 5:5; 창세 49:9, 10; 시 110:1, 2, 신세) 영적 “‘유다’ 족속”의 지도자가 그러한 것처럼 그 “족속”의 다른 성원들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이 “‘유다’ 족속”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계속 말씀하셨읍니다. “모퉁이 돌[중심 인물, 신세]이 그에게로서, 말뚝[지지하는 통치자, 신세]이 그에게로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로서, 권세 잡은 자[공사 감독, 신세]가 다 일제히 그에게로서 나아[오느니라.]”—스가랴 10:4.
16. (ㄱ) ‘스가랴’ 시대에는 누가 “중심 인물”이었으며, 오늘날은 누구입니까? (ㄴ) 그는 어떻게 “지지하는 통치자”이시며, 전쟁의 “활”이며, “공사 감독”이십니까?
16 ‘스가랴’ 시대에는 ‘유다’ 지파인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총독이 “모퉁이 돌”이었읍니다. 현대에는 기원 1914년에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이 탄생한 이후로 ‘유다’ 족속의 ‘다윗’의 후손인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 즉 “중심 인물”이십니다. 그 분이 만물의 중심이 되시며 왕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이 그에게 집중적으로 지워져 있읍니다. 왕의 권익이 걸려 있고 지지해 주는 “말뚝”처럼 메시야 왕은 “지지하는 통치자”이십니다. 그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의 전능한 손에서 그는, 멀리서 적을 해치고 쓰러뜨릴 수 있는 “싸우는 활”이십니다. 그는 “‘유다’ 족속”의 모든 성원들에게 왕가의 일을 할당하는 최고 공사 감독이십니다. 그는 그들 중 일부를 보조 공사 감독으로 임명하십니다. 그들 모두는 그들의 우두머리이며 인도자이신 그 분과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분이 그들의 선두에 계시므로 “‘유다’ 족속” 전체는 마땅히 용기있어야 합니다.
17. 왜 현대에는 영적 “‘유다’ 족속”에게 전시와 같이 용기가 필요합니까?
17 현대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태에 압도되어 두려움으로 마비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시대가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에 대한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미리 경고받아 왔읍니다.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 천사들이 메시야 왕국에 의하여 하늘에서 쫓겨 났으며 이 용같은 적대자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우리가 오늘날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이 여자[하나님의 천적 조직]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시 12: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영적 “‘유다’ 족속”의 남은 자들은 그들 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켰읍니다.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대적을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와 말탄 자들로 부끄러워 하게 하리라.”—스가랴 10:5.
18. (ㄱ) 영적 “‘유다’ 족속”은 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 편에 누가 계십니까? (ㄴ) “말 탄 자들”은 무엇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18 여기에는 적의 요새를 침공한 승리의 용사가 묘사되어 있읍니다. 적의 요새의 거리는 방어를 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피에 붉게 젖었읍니다. 그러므로 침공자들은 먼지에 섞인 피로 된 진흙에 대적을 짓밟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영적 “‘유다’ 족속”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의 전쟁은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을 무기로 삼는 영적 전쟁입니다. (고린도 후 10:4; 에베소 6:14-18) 용인 ‘사단’ 마귀와 악귀들이 이 땅으로 내어 쫓긴 현 “악한 날”에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전쟁을 피할 수 없읍니다. 그들은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과감하게 전쟁을 하여 왔읍니다. 그들이 “마지막 때”의 끝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영적으로 승리를 거둘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말”에 의지하는 자들 즉 세상적인 방법으로 여호와의 숭배자들과 맞서 싸우는 적들은 참으로 수치와 실망을 경험하였읍니다. 이들 “말 탄 자들”은 갖은 반대와 간섭과 박해를 가하였지만 영적 “‘유다’ 족속”의 남은 자들을 막지는 못하였읍니다.
통합된 민족
19. (ㄱ) ‘이스라엘’ 열지파 나라는 기원전 997년에 어떻게 분리되었읍니까? (ㄴ) 그 결과 생긴 두 왕국의 생존자들은 어떻게 ‘바벨론’에서 함께 포로가 되었읍니까?
19 통용 기원전 육세기인 예언자 ‘스가랴’ 시대에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에서 충실한 남은 자들이 해방되고 그들이 ‘유다’ 땅으로 복귀하였을 때에 통합되었읍니다. 기원전 997년에 그 나라는 분리되었었읍니다. 열지파는 ‘다윗’ 왕가가 통치권을 계승하는 것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읍니다. 단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만 ‘다윗’ 왕실에 충실히 고착하였읍니다. ‘이스라엘’ 열지파 왕국은 가장 인구가 많은 지파인 족장 ‘요셉’의 작은아들 ‘에브라임’ 지파의 인도를 받았읍니다.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 지파는 형제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와 행동을 같이 하였읍니다. 북쪽의 열지파 왕국은 단지 기원전 740년까지만 존속하였읍니다. 그 해에 당시 수도였던 ‘사마리아’가 ‘앗수르’인들에게 멸망되고 생존자들은 ‘앗수르’ 영토로 추방되었읍니다. 그러나 기원전 632년에 ‘바벨론’은 ‘앗수르’를 전복시키고 영토와 ‘이스라엘’ 포로들을 인수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생존자들을 ‘바벨론’으로 추방시켰을 때 모든 지파가 포로가 되었읍니다.
20. (ㄱ) 왜 열지파 왕국의 포로들은 “‘에브라임’ 족속”과 “‘요셉’ 족속”이라고 불리웠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두 족속이 재통합을 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리셨읍니까?
20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 지파가 열지파 왕국을 지배한 이래 그 왕국의 포로들은 “‘에브라임’ 족속” 혹은 “‘요셉’ 족속”이라고 불리웠으며 그 족속의 수석 대표자는 ‘에브라임’이었읍니다. 충실한 포로들의 남은 자가 ‘유다’ 땅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전부가 재통합하리라는 것을 지적하여 여호와께서는 두 족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또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찌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에브라임’이 용사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스가랴 10:6, 7.
21. (ㄱ) 여호와께서는 “‘유다’ 족속”을 누구보다 견고하게 하셨으며, 어떠한 면으로 그 분은 “‘요셉’ 족속”을 구원하셨읍니까? (ㄴ) 그들은 어떻게 이전에 여호와께서 버리신 적이 없는 백성 같이 되었읍니까?
21 주권자이신 주 하나님께서는 “‘유다’ 족속”을 원수들 보다 “견고”하게 만드신 분이었읍니다. 그 족속이 특히 ‘다윗’의 메시야 왕국을 대표하였읍니다. “‘요셉’ 족속”의 포로들도 구원을 받았읍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들에 대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바사’의 ‘유다’ 도에서 그들의 동료 지파 사람들과 함께 살 거처를 주셨읍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 그 분은 ‘앗수르’의 포로 상태에서 그들을 구출하셨읍니다. ‘유다’ 족속과 같이 이들도 여호와의 봉사에서 “용사같”이 되었읍니다. 그들에게 그 분은 다른 포로들에게와 마찬가지로 긍휼을 보이셨고 회복된 포로들은 모두 그 분이 이전에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버리신 적이 전혀 없는 백성같이 되었읍니다. 이 사실은 송환된 ‘유대’인들이 마침내 ‘예루살렘’에 두번째 성전을 완공하고 온 국민의 하나님이신 그 분께 그곳에서 연합된 숭배를 드렸을 때 특히 모두가 보기에 분명하였읍니다. 그 분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입증하셨읍니다.
22. (ㄱ) 그들이 기뻐해야 할 마음의 자극은 왜 포도주를 마실 때 받는 자극보다 강합니까? (ㄴ) 어떠한 면으로 그들의 아들들도 기쁨을 함께 누릴 것입니까?
22 그들이 기뻐해야 할 마음의 자극은 포도주를 마실 때보다 더 강하였읍니다.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었읍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기쁨에 넘쳤읍니다. 왜냐 하면 그 분은 그들을 선대하였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되찾은 고토에서 출생한 그들의 아들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와 선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들도 그것을 보고 그것을 경험하고 그로 인하여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 기뻐할 것이었읍니다.
23. 최종 성취에서 무엇이 “‘유다’ 족속”과 “‘요셉’ 족속”(‘에브라임’ 족속)에 해당하며, 어디에서 언제부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통합하셨읍니까?
23 “유다 족속”과 “‘요셉’ 족속”(‘에브라임’ 족속)에 관한 예언이 현 이십 세기에 어떻게 최종적으로 성취되는지를 알기 위하여는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을 둘로 나눌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어려움을 겪고 기원 1919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되고 해방된 원래의 남은 자들이 있읍니다. 그리고 기원 1919년 이후로 큰 ‘바벨론’에서 구출되고 원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과 연합한 새로운 남은 자들이 있읍니다. 여호와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로 통합되는 일은 기원 1919년 이후로 그들이 그 분의 인도로 들어오게 된 영적 토지에서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연합하여 살아 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숭배를 그의 영적 성전에서 재수립하고 확장하는 일을 할 수 있었읍니다. 정복할 수 없는 그의 영으로 그 분은 그의 메시야의 이들 양 같은 제자들의 “무리”를, 두려움 없이 전쟁터로 돌진하는 당당한 군마 같이 되게 하셨읍니다.
24. 통합된 남은 자들은 왕국을 선포하는 일에 있어서 어떻게 전쟁터로 돌진하는 말과 같은 용기를 보였읍니까?
24 그리하여 그들은 어느 때 보다 용감하게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후 하늘에서 통치하는 왕국을 선포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가정에 무료 성서 책자를 배부하여 왔으며 그 수는 수억부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수백명의 전 시간 “서적 배부자들”에게만 이 사업을 계속 떠맡기지 않았읍니다. 현재 그들 모두가 사람들의 가정을 찾아가서 집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소책자와 대책의 형태로 된 성서 연구 보조물을 사업에 대한 소액의 헌금으로 전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수백개의 방송국과 계약하여 온 땅에 왕국 소식을 방송하였으며 심지어는 최대의 방송망을 조직하기도 하여 가능한한 많은 청취자의 가정과 귀에 소식이 전해지게 하였읍니다. 종교적 정치적 사법적 반대가 증가하여 왕국 소식을 무료로 방송하기가 어렵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스피커’를 위에 단 차를 몰고 다니며 일선에서 소식을 전하였읍니다. 휴대용 축음기를 집집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음반에 녹음된 소식을 틀었읍니다.
25. 심판의 소식은 1922-1928년에 어떻게 용감하게 선포되었읍니까?
25 기원 1922-1928년의 칠년 동안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일곱개의 대회 즉 일련의 국제 대회를 개최하였읍니다. 연속적으로 열린 이 대회에서 매년 하나님의 성서로부터의 두려움 없는 심판의 소식이 선포되었으며, 이것은 또한 보이는 청중과 ‘라디오’에 의한 보이지 않는 청중에게 행한 적절한 공개 강연으로 지지를 받았읍니다. 이러한 심판의 소식의 선포와 그것을 지지하는 연설들은 많은 언어로 무료 ‘팜플렛’의 형태로 무료 배부되었으며 수억부의 이러한 ‘팜플렛’이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읍니다. 연설과 지면을 통하여 매년 전달된 이러한 소식은 전세계가 듣도록 연속적으로 일곱번 나팔을 불어 여호와의 현대 심판을 울려 퍼지게 하는 것과 같았읍니다. 이러한 일이 묵시의 책인 「계시록」 팔장과 구장과 십일장에 묘사되어 있읍니다.
26. 「계시록」의 다섯째 나팔 소리의 설명은 어떻게 큰 ‘바벨론’에서 해방된 후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이 군사 같음을 묘사합니까?
26 천사의 인도하에 그러한 다섯번째 나팔의 소식을 크게 외칠 것에 관하여 계시록 9:7-11은 큰 ‘바벨론’에서 해방된 남은 자들을 황충으로 상징하여 이렇게 묘사합니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이것은 남은 자들을 군사처럼 묘사합니다.
27. 여섯째 나팔에 대한 「계시록」의 설명은 남은 자들을 군사와 같고 “용사”와 같다고 말하는 점에서 어떻게 스가랴 10:3-7과 일치합니까?
27 여섯째 나팔 소리(기원 1927년에 시작한)의 효과에 관한 묵시적 묘사로 보면 남은 자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선언하기 위하여 수억의 선전 수단을 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묘사된 바를 보십시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요한’]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 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계시 9:16-19) 그러므로 이러한 상징적 환상들은 회복된 남은 자들을 여호와의 전쟁의 준마와 “용사”로 비유하는 스가랴 10:3-7과 일치합니다.
강력한 방해물들이 극복됨
28. 스가랴 10:8-12에서 여호와께서는 ‘애굽’과 ‘앗수르’에서 그의 백성들을 다시 모으실 때에 장애물을 극복하시는 일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읍니까?
28 우리가 현재 명백히 보듯이 만군의 여호와께는 자신이 말씀하신 목적을 실현하는 데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었읍니다. 그 분이 장애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를 스가랴 10:8-12에서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 불어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내가 그들을 열방에 뿌리려니와 그들이 원방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존하여 돌아올찌라.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돌아오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내가 그들로 고해를 지나게 하며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홀이 없어지리라.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스가랴 10:8-12.
29. (ㄱ) 여호와께서는 예언된 바와 같이 언제 ‘앗수르’의 교만을 낮추셨읍니까? (ㄴ) 그는 언제 씨처럼 흩어진 그의 백성들을 휘파람으로 부르셨으며, 이에 대한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29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앗수르’라는 말은 ‘앗수르’인들이 기원전 740년에 ‘이스라엘’ 열지파 왕국의 생존자들을 추방하여 보낸 지역들을 포함할 것입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교만”은 ‘느부갓네살’ 왕 시절의 ‘바벨론’에 의하여 낮아졌읍니다. 한편 ‘앗수르’를 강탈한 이 정복자의 “교만”은 여호와의 지적 도구였던 ‘바사’의 ‘고레스’ 대왕에 의하여 기원전 539년에 낮아졌읍니다. 그 후로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제국의 북부 지역에서 그의 백성의 흩어진 포로들에게 “휘파람”을 불 수 있었읍니다. 그 분이 그들을 흩으신 곳에서 그들은 뿌려진 씨와 같이 번성하였읍니다. 그들이 포로 생활을 하는 곳이 아무리 멀지라도 그들은 “휘파람”을 듣고 그를 기억할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그들을 소생시키는 힘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포로 생활 중에 낳은 그들의 아들들도 같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휘파람”에 의한 그 분의 초대에 생기를 얻고 반응을 나타내는 그들은 황폐된 고토로 돌아올 것이었읍니다.
30. 그의 포로된 백성들을 ‘애굽’에서 모아오는 데 어떠한 방해가 있을 수 있으며,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방해물들을 어떻게 하실 수 있읍니까?
30 남쪽의 ‘애굽’으로 잡혀 가거나 도피한 포로들도 많았읍니다. (열왕 하 23:31-34; 25:22-2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 방향으로도 “휘파람”을 부셨읍니다. 그 곳에서 그 분은 남은 자 양 모아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성전에서 그 분을 숭배하게 하셨읍니다. ‘애굽’의 통치자가 휘두르던 홀은 이것을 막지 못하였읍니다. ‘애굽’의 왕권의 홀은 없어지고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여호와의 뜻이 성취되었읍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의 “휘파람”은 애굽의 홀보다도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애굽’의 신격화된 ‘나일’ 강물이 그의 백성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 물이 마른 것 처럼 그 물을 다루실 수 있읍니다. 홍해가 방해가 된다면 그 분은 그 물에 “고해” 즉 고통을 주며 그 바다를 지나실 수 있읍니다. 그는 파도를 치실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의 돌아오는 포로들이 그 바다를 통과하여 ‘예루살렘’의 숭배의 장소로 오게 하실 수 있읍니다. 그는 이전에 기원전 1513년에 하신 일을 다시 하실 수 있읍니다.
31. (ㄱ) 여호와께서는 그 땅에 인구가 너무 많지 않도록 어떻게 돌보실 것이며, 계속 성장하게 하실 것입니까? (ㄴ) 그들은 어떠한 의미로 그의 이름으로 행할 것입니까?
31 그 땅에는 인구가 너무 많아질 우려가 없었읍니다. 온 땅의 소유자께서 그의 회복된 포로들을 위하여 땅의 경계를 확장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들의 경계는 ‘길르앗’ 땅에서 ‘요단’ 강 동편까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중해를 따라 서쪽으로 ‘레바논’ 땅도 포함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확장된 지역을 점령하여 그들은 “전에 번성하였던 것 같이 번성”할 것입니다. 그들의 인구 증가율은 인구가 조밀한 어떠한 다른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많을 것입니다. 지존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억압하고 압제하고 그들을 감소시키려는 모든 이방인들의 노력에 비하여 그들을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혹은 그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백성으로 그들은 행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든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것을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을 낮추는 일을 전혀 하지 않을 것입니다.
32. 여호와께서는 언제 포로들에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셨으며, 어떻게 부셨읍니까?
32 기원전 537년에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의 정복자인 ‘바사’의 ‘고레스’ 대왕에 의하여 포고된 해방령으로 그의 포로된 백성들에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였읍니다. (에스라 1:1에서 3:2) 그 칙령이 ‘애굽’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후에 ‘애굽’에 있는 포로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렸읍니다.
33. 여호와께서는 언제 영적 ‘이스라엘’인의 포로들에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셨으며, 어떠한 수단을 통하여 그렇게 하셨읍니까?
33 마찬가지로 기원 1919년에 큰 ‘바벨론’은 더 큰 ‘고레스’ 즉 승리적으로 즉위한 왕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의하여 크게 무너졌읍니다. 여호와께서는 포로된 남은 자들에게 그때에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셨읍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어떻게? 월 2회 발행되는 잡지 즉 오늘날 전세계에 「파수대 여호와의 천국 선포」로 알려진 잡지를 통해서였읍니다. 그 잡지의 앞 표지에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라는 말이 인쇄되어 있읍니다. (이사야 43:12) 동 잡지는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지지하는 편으로 통합시키고 모으는 부름을 온 땅에 있는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에게 전달하였읍니다. 그 방향으로 일보 전진하여 동지는 1919년 9월 1-8일에 미국 ‘오하이오’ 주 ‘시더포인트’ 시에서 열릴 대회를 발표하고 모든 독자들을 초대하였읍니다.
34. (ㄱ) 기원 1919년에 그 대회에 참석한 수는 얼마나 되었으며, 그들은 왕국 전파 사업의 확장에 대하여 무엇을 알았읍니까? (ㄴ) 오늘날 왕국 선포 사업의 확장은 어떠한 결과에 이르렀읍니까?
34 약 육천명이 이 의미 깊은 재소집과 영적 잔치에 참여하였읍니다. 그들은 지상의 올바른 영적 토지로 회복된 것을 기뻐하였읍니다. 그들은 당시 「황금 시대」라 불렀고 현재 「깨어라!」라고 부르는 자매지의 창간으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광고하는 수단을 확장할 마련을 알게 되었읍니다. 이 잡지의 창간호는 1919년 10월 1일호였읍니다. 그 후로 그것은 메시야 왕국과, 이 왕국이 곧 가져다 줄 생명과 평화와 행복과 번영의 시대를 선포하는 강력한 도구의 역할을 해 왔읍니다. 이 잡지가 일반 대중에게 거리에서 제공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 1940년이었읍니다. 오늘날 월 2회 발행되는 이 잡지는 매호 29개 언어로 칠백 오십여만부가 인쇄되고 있으며 계속 독자가 늘고 있읍니다.
35. (ㄱ) 여호와의 “휘파람”은 어떻게 더욱 더 널리 울려 퍼졌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휘파람”에 응하는 데 대한 방해물들은 어떻게 극복되었읍니까?
35 기원 1919년 그 해방의 해로부터 시작하여 남은 자들은 계속 다시 모아졌읍니다. 충실한 남은 자들이 큰 기쁨과 열정을 가지고 왕국 소식을 용감하게 멀리 멀리 전파하였으므로 여호와의 “휘파람”은 더욱 널리 퍼졌읍니다. 그리스도교국 안팎의 참 하나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그의 영적 성전에서 숭배하라고 초대하는 그 “휘파람” 소리를 들었읍니다. 그들은 최대한의 노력으로 응하였읍니다. 그들 앞에 방해물, 이를 테면 ‘나일’ 강이나 홍해나 혹은 ‘애굽’과 ‘앗수르’와 같은 정치적인 압제국이 있었읍니까? 참 영적 성전에서 그들이 섬기려고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기록된 말씀을 열어주시고 그러한 위압적인 방해물들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방법을 지적하여 주셨읍니다. 하나님의 “휘파람”에 대한 순종을 앞세워야 합니다!
36. 개개인의 경우에 “‘앗수르’의 교만”은 어떻게 낮아져야 하며, 어떻게 “애굽의 홀”은 “없”어져야 합니까?
36 그들은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그리스도교국 뿐 아니라 이교국도 포함하는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서 나오라는 하늘로부터의 부름에 청종해야 합니다. (계시 18:1-4) 그들은 ‘앗수르’와 같은 군국주의적 국가주의적 정부들의 교만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모든 정부보다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들 개개인의 경우에 모든 높고 강력한 통치권의 권익은 여호와의 우주 주권과 그의 메시야적 도구의 권익 앞에서 낮아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정치 강국이 휘두르는 상징적 “‘애굽’의 홀”의 능력과 권력이 가장 우월하다고 간주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이 휘두르는 홀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기원 1914년에 그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 [천적]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시 110:1, 2) 이 메시야 홀과 “애굽의 홀”을 비교하면 이 후자 곧 인간의 홀은 “없”어집니다.
37, 38. (ㄱ) 국가 숭배 대신에 여호와를 어떠한 분으로 인정해야 하며, 이러한 요구 조건을 이해하도록 어떠한 도움이 있었읍니까? (ㄴ) 「정부」라는 책은 “신권 통치”와 “여호와 왕”이라는 제목하의 일부에서 어떠한 설명을 하였읍니까?
37 그들은 정치 국가를 최고로 인정하고 인간이 만든 국가를 숭배할 것이 아니라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를 신성 통치자 혹은 신권 통치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정부」라는 책은 이러한 요구 조건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었읍니다. 그 책은 1928년에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서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열린 만국 성경 연구회의 대회에서 대중에게 발표되었는 데, 그 대회에서 상징적 일곱째 나팔 소리가 퍼지기 시작하였읍니다. (계시 11:15-18) 이 책은 247-250면에서 “신권 통치”와 “여호와 왕”을 논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38 “그러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어떠한 형태의 정부가 지배할 것입니까? 그 정부는 순수한 신권 정부가 될 것입니다. 여러 세기 동안 모든 창조물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괴로워하여 왔으며, 그러한 정부의 출현을 기다려 왔읍니다. (로마 8:19) 이제 그러한 정부가 설립될 때가 도래하였으며, 통치자들과 지상의 피지배자들이 모두 진리를 배우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 신권 정부는 여호와 하나님이 최고 통치자로 일하시는 정부입니다. 그 분은 합당하게 설치한 대행 기관을 통하여 법을 만드시고 집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최고의 능력이 항상 그분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폐위된 후로 그 분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허락하셨고 ‘권리를 가진’ 자를 즉위시킬 때가 되기까지는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허락하셨고 간섭을 하지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밑에서 자기와 일치하게 다스리도록 그를 임명하고 기름부으셨읍니다. ··· 사람들이 그 위대한 신권 통치를 식별하고 인식할 때 그 신권 통치는 온 땅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39. (ㄱ) 어떠한 형태의 정부에 의하여 인류에게 낙원이 회복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그의 남은 자들의 영적 낙원에 어떠한 조직을 설립하셨읍니까? (ㄴ) 신권적인 영적 토지에서 남은 자들과 연합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해물들을 헤치고 나가야 합니까?
39 낙원은 바로 다가오는 이 신권 통치를 통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것입니다. 현재 영적 낙원은 회복된 남은 자들 사이에 존재하며, 위대하신 신권 통치자께서는 그들 사이에 신권 조직을 설립하셨읍니다. 이처럼 조직된 이 영적 남은 자들은 독재적인 통치자이든 민주적인 통치자이든 모든 인간 통치자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사야 33:22에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사도들과 같이 신권적 입장을 취합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최고 법원에 섰을 때 이렇게 그들의 입장을 밝혔읍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사도 5:29-32) 그러므로 신권적인 영적 토지에서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과 연합하는 사람들은 상징적 ‘나일’ 강의 민주적 흐름과 상징적 홍해인 인류의 변하는 조류를 헤치고 지나가서 여호와의 신권적 마련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진적이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분께서 그 물같은 방해물들을 없는 것 같이 만들어 주실 수 있읍니다.
40. (ㄱ) 하나님께서는 무엇과 관련하여 남은 자들을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셨으며, 어떻게 그렇게 하셨읍니까? (ㄴ)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라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그들은 메시야 왕국과 함께 무슨 일에 참여할 것입니까?
40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을 다시 모으고 재연합시키셨으며 참으로 그들을 모든 방해물들과 적대자들에 비하여 ‘견고하게’ 만드셨읍니다. 그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군대의 힘이나 [인간]의 세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그의 영 즉 보이지 않는 활동력으로 되었읍니다. 그 분이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대로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거룩한 이름에 영예를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와 일치하게,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기도와 일치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들은 그 이름에 존엄성을 더하며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다고 선포합니다. (시 148:13) 그러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는 모든 나라에서 스가랴 10:12의 이러한 예언이 성취되고 있읍니다.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이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시까지 이 일을 계속 한다면 그들은 메시야 왕국과 함께 온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을 입증하는 데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