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가 변하여 낙원이 되다
1. 지구가 낙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태가 없어져야 합니까?
오늘날 오염과 위험이 전연없는 낙원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은 지구상에 하나도 없읍니다. 대기와 하천은 놀라운 속도로 오염되어 가고 있읍니다. 광대한 지역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되어 갑니다. 극심한 경쟁, 적대감 및 증오감이 인류의 행복과 복지를 위협하고 있읍니다. 불의의 사고, 질병 및 사망이, 오랫 동안 인류가 당해 온 고통과 슬픔을 가중시키고 있읍니다.
2. 성서는 낙원을 이룩하리라는 무슨 확신을 주고 있읍니까?
2 그러한 상태가 바꿔질 가능성이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성서는 이 지구가 질병, 슬픔, 고통 및 사망이 전연없는 낙원으로 될 것이라는 기쁨에 넘치는 확신을 주고 있읍니다. (누가 23:43; 계시 21:3-5) 낙원을 약속하신 분 곧 여호와 하나님은 낙원을 이룩할 만한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계십니다. 인자하시게도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약속을 지키신 기록을 남겨 두셨읍니다. 성서에 있는 이러한 기록은 아무 것도 여호와의 목적이 실현되지 못하도록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적극적인 보증이 됩니다.
3. 낙원을 만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에게 새로운 일입니까?
3 여호와 하나님께서 낙원을 만든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인간 ‘아담’과 ‘하와’를 지구상의 “에덴”이라고 하는 지역의 낙원에 두셨읍니다. 여러 세기 후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람들의 정복으로 황폐된 광야로 변한 ‘유다’ 땅을 “‘에덴’ 동산” 곧 낙원으로 변하도록 하셨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금세기에도 하나님께 헌신한 백성들을 영적 낙원이 되도록 축복하셨읍니다.
‘유다’ 땅이 변하다
4, 5. 약속하신대로 황폐된 ‘유다’ 땅을 낙원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왜 용이한 일이 아니었읍니까?
4 ‘유다’ 땅이 사람도 가축도 없는 폐허가 된 것은 25세기도 더 되는 옛날 일입니다. 그 땅이 낙원으로 변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주위 나라들은 이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5 “너는 ‘이스라엘’ 산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에 대적이 네게 대하여 말하기를 하하 옛적 높은 곳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도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이 너희를 황무케 하고 너희 사방을 삼켜서 너희로 남은 이방인의 기업이 되게 하여 사람의 말거리와 백성의 비방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산들아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 [주권자인] 주 여호와께서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과 황무한 사막들과 사면에 남아 있는 이방인의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된 버린 성읍들에게 말씀하셨느니라.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진실로 내 맹렬한 투기로 남아 있는 이방인과 ‘에돔’ 온 땅을 쳐서 말하였노니 이는 그들이 심히 즐거워하는 마음과 멸시하는 심령으로 내 땅을 빼앗아 노략하여 자기 소유를 삼았음이니라.”—에스겔 36:1-5.
6, 7. 주위 나라들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황폐된 ‘유다’ 땅이 틀림없이 어떻게 될 것이었읍니까? 왜 그렇습니까?
6 황폐된 그 ‘유다’ 땅 주위의 원수 나라들은 그 공허한 땅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는 다른 목적이 있으셨으며,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될 예정이었읍니다. 주변의 탐욕스런 나라들이 그 땅을 찾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 자신이 재난을 당할 것이므로 그 탐욕스런 음모는 좌절될 것입니다. 어떠한 ‘에돔’ 사람들이나 다른 이방인들도 그 황폐된 ‘유다’ 도시들을 약탈하거나 그 땅을 차지하도록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윽고 여호와께서는 그 땅 “‘이스라엘’ 땅”이 황폐한 상태에서 변하여 되돌아 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가축으로 낙원처럼 번창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7 “너는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예언하되 그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투기와 내 분노로 말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이방의 수욕을 당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맹세하였은즉 너희 사면에 있는 이방인이 자기 수욕을 정녕 당하리라. 그러나 너희 ‘이스라엘’ 산들아 너희는 가지를 내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과실을 맺으리니 그들의 올 때가 가까이 이르렀음이니라. 내가 돌이켜 너희와 함께하리니 사람이 너희를 갈고 심을 것이며 내가 또 사람을 너희 위에 많게 하리니 이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로 성읍들에 거하게 하며 빈땅에 건축하게 하리라. 내가 너희 위에 사람과 짐승으로 많게 하되 생육이 중다하고 번성하게 할 것이라. 너희 전 지위대로 사람이 거하게 하여 너희를 처음보다 낫게 대접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내가 사람으로 너희 위에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 ‘이스라엘’이라. 그들은 너를 얻고 너는 그 기업이 되어 다시는 그들로 자식들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리라.”—에스겔 36:6-12.
8, 9. 왜 ‘에스겔’ 시대에는 ‘유다’ 땅의 회복에 관한 여호와의 약속의 성취가 구하여야 할 일이었읍니까?
8 예언자 ‘에스겔’ 시대에는 여호와의 맹세한 서약의 성취를 아직도 구해야 하였으며, 추구해야 하였읍니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이 수십년 동안 남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9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찌라. 내가 그들의 인수로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드릴 양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떼 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에스겔 36:37, 38.
10. ‘유다’ 땅의 회복에 관한 약속이 언제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다른 나라들은 무엇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읍니까?
10 사로잡힌 가운데서 회개한 ‘유대’인들 곧 여호와의 자비로운 약속이 성취되기를 염원하는 ‘유대’인들은 황폐된 ‘유다’ 땅의 여러 도시에 사람들이 다시 살게 될 때를 여호와로부터 구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사로잡혀간 ‘유대’인들 가운데, 생존하여 고토에 되돌아가 그 여호와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었읍니다.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을 정복한 ‘고레스’는 조서를 발표하여 사로잡힌 ‘유대’인들이 고향에 되돌아가서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할 것을 허락하였읍니다. (에스라 3:1, 2, 12)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도시에 되돌아 오고 밭갈이를 할 때에 이방 여러 나라들은 여호와께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셨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것은 마치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통하여 이렇게 선언하신 바와 같았읍니다.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라.]” (에스겔 36:33-36) 그러나 ‘에돔’ 사람들은 종국에 가서 흩어지게 되었고,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두번째 멸망된 다음에는 민족으로서의 존재가 끊어져 버렸읍니다.
영적 낙원이 이룩되다
11.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언제 포로 상태에 들어갔으며, 왜 그러하였읍니까?
11 현 시대에 와서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 곧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에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험하였던 일에 비할 만한 경험을 하였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종교적 박해와 압박을 당하여 포로 상태에 들어갔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잘못 때문에 그러한 일을 허락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토지가 황폐된 채로 남아 있고 그리스도교국이 전쟁 후에도 전체적인 종교 분야를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었읍니다.
12. 어떻게 하여 기원 1919년에 그리스도교국은 치욕을 당하였읍니까?
12 고대 ‘이스라엘’을 두르고 있던 ‘에돔’과 다른 나라들처럼 기원 1919년에 그리스도교국은 커다란 치욕을 당하였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국이 박해 받은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해 예측하였고 또 바랐던 치욕적인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읍니다. 그 해에 이 영적 토지는 영적 ‘이스라엘’과 함께 살아나기 시작하였읍니다.
13. 그리스도교국 내의 사정과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에게 전개되고 있는 사실과를 대조 설명하십시오.
13 교회의 교인 수와 신학교 신입생 수는 근년에 주목할만큼 감소되고 있지만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1919년 이래 오늘날까지 놀랍게 증가하고 있읍니다. 그들의 영적 토지의 “산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많은 숭배자들로 생기에 차 있읍니다. 1935년부터는 선한 목자의 “다른 양”의 “큰 무리”가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연합하기 시작하여 상징적 “‘이스라엘’의 산들”에서 활동하게 되었읍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세계적인 박해가 있었어도 상징적인 “‘이스라엘’의 산들”에서 그의 성원 수를 죽게하지 못하였읍니다. 즉 감소시키지 못하였읍니다. 1928년에는 44,080명만이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지만 1972년에는 그러한 선포자의 수가, 208개 나라에 있는 28,407개 회중에서 최고 1,658,990명에 달하였읍니다.
14. 현대에는, 고대 ‘이스라엘’ 도시들과 그 도시들이 강화된 것이 무엇에 비교됩니까?
14 기원 1919년 이래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된 남은 자의 회중은 고대 ‘이스라엘’ 도시들과 같았읍니다. 그들은 설립된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 전파에 관한 예수의 예언을 수행하는 활동을 위해 더 나은 조직을 가짐으로써 그들은 “강화”되었읍니다. (마태 24:14) 1938년에, 지방 회중적 다스림이 아니라 중앙 집중적인 신권적 다스림이 전세계 모든 회중에 적용되었을 때에 그들은 보다 더 온전히 강화되었읍니다.
15.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어떻게 “사람들의 떼”로 모이는 일이 있읍니까?
15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영적 토지를 광대한 “사람의 떼”로 가득차게 하셨읍니다. (에스겔 36:11, 37, 38) ‘이스라엘’ 열두 지파 사람들이 세번의 “절기”(유월절, 오순절 및 초막절)에 ‘예루살렘’과 그의 성전에 모인 것 같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지방 왕국회관에서만이 아니라, 놀라운 방법으로, 정기적인 순회, 지역, 전국 및 국제 대회에서 함께 즐겨 모였읍니다.
16, 17. 오늘날의 압력은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들의 영적 토지에서 어떻게 하지 못하였읍니까?
16 현재의 무정부적이고 폭력적인 시대의 압력도, 회복된 영적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공격자들에게 먹힌 것처럼 또는 그 땅의 흉년에 의해 삼키운 것처럼 새로 점령한 영적 토지에서, 사라지게 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의 경험은 에스겔 36:13-15에 기술된 것과 같았읍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땅에 대해 계속 말씀하셨읍니다.
17 “나 [주권자인]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는 사람을 삼키는 자요 네 나라 백성을 제한 자라 하거니와 네가 다시는 사람을 삼키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나라 백성을 제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너로 열국의 수욕을 듣지 않게 하며 만민의 비방을 다시 받지 않게 하며 네 나라 백성을 다시 넘어뜨리지 않게 하리라. 나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8, 19. (ㄱ) ‘가나안’ 땅은 어떻게 그리고 언제 그의 거민을 삼켰읍니까? (ㄴ) 기원전 537년과 그 이후에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한 입장은 어떤 면에서 기원 1919년 이후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입장과 비슷하였읍니까?
18 ‘가나안’ 땅은 자기 백성을 멸한다는 점에 있어서 평판이 나빴읍니다. 땅이 그들을 삼키는 것 같이 한다는 것이었읍니다. (민수 13:32) 기원전 1473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나안’ 땅으로 데려오셨을 때에 그들은 일곱 나라를 멸하였읍니다. 그것은 마치 그 땅이 거민을 먹어버린 것, 삼켜버린 것 같았읍니다.
19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 왕은 ‘유다’ 땅을 정복하였으며 살아남은 ‘유대’인을 많이 사로잡아 갔읍니다. 그리하여 그 땅은 사람과 가축이 없이 황폐하게 되었읍니다. 또 다시 그 땅이 거민을 삼키고 ‘유다’ 왕국에게서 그 자녀를 제거한 것 같이 보였읍니다. 그 이전 기원전 740년에도 ‘이스라엘’ 왕국에게서 그의 자녀들을 제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특별한 축복과 보호에 의해서 과거에 황폐되었던 그 땅이 기원전 537년과 그 이후에 ‘바벨론’으로부터 회복된 충실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전쟁후, 기원 1919년 후에 회복된 남은 자들의 영적 토지의 경우에도 그러하였읍니다. 그들은 지금도 거기에 존재하고 있으며, 살아 있으며, 번성하고, 늘어가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고 있는 영적 낙원이 오늘날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관련되다
20, 21. 왜 여호와께서는 기원전 537년에 모형적인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셨으며, 기원 1919년에 실체적인 남은 자들을 회복시키셨읍니까?
20 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웅대한 일들을 행하셨읍니까? 그것은 기원전 537년과 그 이후에, 모형적인 남은 자들이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거나 그들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니었으며, 기원 1919년과 그 이후에도 실체적인 남은 자들이 자격이 있거나 그들의 공로가 커서 그런 것이 아니었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관련되어 있었읍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2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그 고토에 거할 때에 그 행위로 그 땅을 더럽혔나니 나 보기에 그 소위가 월경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느니라. 그들이 땅 위에 피를 쏟았으며 그 우상들로 더럽혔으므로 내가 분노를 그들의 위에 쏟아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에스겔 36:16-21.
22. 고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잡혀 있는 일이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큰 ‘바벨론’에 속박된 것이 왜 하나님의 이름에 모독이 되었읍니까?
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로잡혀 여호와의 땅에서 나갔기 때문에 그들이 섬긴다고 하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원수 앞에서 보호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였읍니다. 이 일은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모독을 초래하였읍니다. 이로 인해 이방 민족이 그의 이름을 모독하게 되었읍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큰 ‘바벨론’과 그의 정치적 및 군사적 연합자에게 속박되었을 때에 ‘만국 성경 연구회’ 회원들이 마치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같이 보였읍니다. 참 하나님이 그들 편이 아니어서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 것 같이 보였읍니다. 이 일은 그들의 헌신한 하나님의 이름에 수치를 돌렸읍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아낌으로써 자신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 이름은 거룩한 이름으로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하나님께는 그의 이름과 관련된 남은 자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아껴서 일을 하실려면 그 남은 자들을 아껴야 하였읍니다.
23.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이방 중에서 그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셨읍니까?
23 현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신 일은 ‘에스겔’의 예언의 성취였읍니다. (에스겔 36:22-24)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이는 헌신한 백성을 일으키심으로써 이방 중에서 자기 이름을 거룩하게 하셨읍니다. (에스겔 36:38) 그들은 그 이름에 영예를 돌리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며, 자기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그 이름에 모독을 돌리지 않도록 합니다.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만든 법 사이에 충돌이 생길 경우에는 그들은 통치자로서 하나님께 순종합니다.—사도 5:29.
24. 여호와께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을 정결케 하시고 그들에게 ‘고기의 마음’을 주시고 “새 영”을 주신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24 여호와께서는 회복된 남은 자들 위에 맑은 물을 뿌린 것 같이, 정결케 하는 것으로 그들에게서 종교적 더러움을 씻어주셨읍니다. 더러운 “우상”으로부터 깨끗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 군사적 및 종교적 고관들을 우상화하거나, 형상, 동상, 또는 표상물에 우상 숭배적인 몸짓을 하는 일을 거절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서 ‘돌과 같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고기의 마음’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사랑과 애정으로 감동된 마음을 주셨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안에 넣어주신 “새 영”은 그분의 성령입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영의 열매—‘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자제’—를 맺도록 하였읍니다.—에스겔 36:25-28; 갈라디아 5:22, 23, 신세.
25, 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심으로 인해 이방 민족이 여호와께 대해 갖게 된 그릇된 인상을 어떤 일로 시정하셨읍니까?
25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징계하심으로 인해서 이방 민족이 갖게 된 그릇된 인상을 시정하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1919년 이래 그들을 풍부히 축복하셨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에스겔’을 통해 약속하신 그대로였읍니다.
26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나 [주권자인]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닌줄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 행위를 인하여 부끄러워하고 한탄할찌어다.”—에스겔 36:29-32.
27.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 성원들은 큰 ‘바벨론’의 포로로서의 과거의 신분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이것은 그들에게 어떤 건전한 영향을 줍니까?
27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처럼 선하게 해주셨기 때문에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성원들은 자기들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생각만 해도 그들은 수치를 느끼고, 부끄러워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영적 및 도덕적 부정한 행동을 다시 저지르고자하는 의향을 그들에게서 제거해 버립니다. 회복된 토지에 있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과분하신 친절이 미쳤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부정한 것으로부터 구출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상징적으로 말해서, 생명을 지탱하는 곡식을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또 풍부히 생산되게 하심으로써 영적 양식에 기근을 당하고 있다고 세상 나라들이 그들을 욕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과거 그들의 착한 행동으로 인한 것이 아니요 그들을 위한 것도 아님을 그들은 깊이 인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그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그들에게 해주셨음을 알려주신데 대해 그들은 감사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매우 겸손한 태도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있읍니다.
28. 왜 우리는 이 땅이 낙원으로 될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까?
28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관련된 여호와의 약속들이 성취될 것을 설명해줍니다. 이 땅을 낙원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만큼 우리는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성서 예언에서 이 세대를 땅을 망하게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끝날 것을 볼 세대라고 지적한 것이 오늘날을 위한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 말로 정직한 사람들이 영적 낙원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연합해서 참 숭배의 편에 서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