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참으심을 지나치게 시험하지 말라
1, 2.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면 기롱하는 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하며, 그들은 무엇을 부러 잊으려 합니까?
사도 ‘베드로’는 경건한 제한을 받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였읍니다. 이 세상의 행동에 대하여 벌을 내리시리라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그들은, “주의 강림하신다는[여호와의 “날”의]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사실상 “하나님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 ‘베드로’는 이 사람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바다 위로 솟아 있는 육지와 지구 대기 중의 두꺼운 수증기 층]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느니라].”
3.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더디게 행동하시는 것 같이 보이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였읍니까?
3 그 다음 그 사도는 역사적 사례를 현 사물의 제도가 장차 멸망당할 것에 결부시키고 나서 하나님께서 더디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여호와]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베드로 후 3:3-10.
하나님의 참으심이 끝나면
4.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한 참을성을 나타내셨으며, 그러나 무슨 원칙이 적용됩니까?
4 하나님께서 한 나라나 백성에게 심판을 집행하신 최근의 예는 언제였읍니까? 금년 1972년부터 1,902년 전이었읍니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고 나서 그만한 세월이 흘렀읍니다. 얼마나 큰 참을성입니까? 그러나 그 훌륭한 성품을 악이용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전 민족이 회개하지 않을 것이 모든 사람 앞에 분명히 나타나면 그 사람이나 그 민족은 반드시 화를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칙을 변경하시지 않습니다.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는 말은 언제나 적용됩니다.—잠언 29:1; 28:14.
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어떻게 하나님과 동일한 태도를 보이셨읍니까?
5 ‘예루살렘’이 멸망당하기 전 예수께서는 그 도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누가 13:34, 35.
6. 어떤 사실로 보아 그리스도교국에 대한 하나님의 참을성이 한계점에 도달하였음이 틀림없읍니까?
6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참을성은 인간의 참을성을 훨신 능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을성이 더 이상 계속 될 수 없을 정도로 세상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교를 신봉한다고 자칭하는 나라들 가운데서 이러한 상태가 더욱 심하지 않습니까? 나라들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만으로도 더할나위 없이 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전쟁에서 주동자 노릇을 하고, 최고의 범죄율을 나타내고 있고, 부도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지 않기 때문에 더디다고 말하고 있으니—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의 참을성을 극한점까지 시험한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
7, 8. ‘이스라엘’ 왕국은 언제 분열되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었읍니까?
7 그리스도교를 신봉한다고 주장하는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건들과 아주 흡사한 특출한 역사적 예를 하나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 실례도 ‘이스라엘’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전시대의 것입니다. 기원전 997년부터 시작되는 일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나라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통치 하에 한 나라로 통일되었을 때였읍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다윗’ 왕으로부터 선한 통치를 받았었으며, ‘솔로몬’도 처음에는 훌륭하게 다스렸었읍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의 통치 말기에 이르러 열 두 지파에게 종교적으로 나쁜 본 즉 우상 숭배를 행하였읍니다.—열왕 상 11:4-13.
8 자기 아버지를 이어 보좌에 오른 ‘르호보암’은 백성들을 대단히 가혹하게 다루었읍니다. 결국 ‘여로보암’의 지휘를 받은 열 지파는 분리되어 북쪽 왕국을 설립하였으며, 결국 ‘사마리아’가 그 나라의 수도가 되었읍니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다윗’ 계통의 왕들에게 충성을 나타냈으며 ‘레위’ 지파의 유능한 사람들은 계속하여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사하였읍니다.—열왕 상 12:1-21, 31.
9. 북쪽 왕국은 분리된 후에 어떻게 행하였읍니까?
9 이 이후 북쪽 왕국은 우상 숭배를 행하였읍니다. 여호와를 섬긴다고 주장하면서도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신 ‘예루살렘’ 성전으로 오지 않고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였읍니다. 그들의 행위는 더욱 더욱 악해졌으며, 대부분의 왕들도 대단히 악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기원전 740년 그 나라 사람들이 ‘아시리아’로 사로잡혀가도록 허락하셨읍니다.—열왕 상 12:28-30; 열왕 하 17:18-23.
10, 11. 왜 ‘유다’는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으며, 그러나 왜 북쪽 왕국이 멸망된 후에도 얼마 동안 존속하였읍니까?
10 그러나 “유다”라고 알려진 남쪽 왕국은 어떠하였읍니까? 북쪽 왕국의 종교적 죄악에 대하여 이 나라도 죄없다고 할 수 없었읍니다. 왜냐 하면 ‘솔로몬’ 통치 말엽과 ‘르호보암’ 통치 초기에 일어난 상태 때문에 열 지파가 반역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에 대하여 ‘유다’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읍니다. 그리고 ‘유다’ 자체 내에 있어서도, 의로운 왕이 있기는 하였지만 이 왕들은 언제나 백성들의 우상 숭배적인 경향과 싸워야만 하였읍니다. 악한 왕들이 세력을 잡을 때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해졌읍니다.
11 그러므로 ‘유다’도, 비록 여호와께서 세우신 ‘다윗’ 계통의 왕들로부터 이탈하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에 빠졌으며, 시정할 수 없는 정도까지 이르렀읍니다. 결국 ‘유다’도 기원전 997년에 국가가 분열될 때부터 죄악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 등 선한 왕들의 애쓴 보람으로 ‘사마리아’가 무너진 후 133년 동안, 곧 기원 전 607년까지 존속하도록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셨읍니다.
12, 13. ‘에스겔’은 어떻게 “‘이스라엘’ 족속”에 대하여 “징조”가 되어야 하였읍니까?
12 기원전 613년에 ‘바벨론’에 있던 ‘에스겔’은 ‘이스라엘’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집행에 대하여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라는 말씀을 들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 가운데 나타난 천적 병거 위에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13 “너 인자야 박석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 그 성읍을 에워싸되 운제를 세우고 토둔을 쌓고 진을 치고 공성퇴를 둘러 세우고 또 전철을 가져다가 너와 성읍 사이에 두어 철성을 삼고 성을 향하여 에워싸는 것처럼 에워싸라. 이것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리라.”—에스겔 4:1-3.
390일간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다
14. ‘유대’인들은 왕국이 언제 분리되었는가를 알 수 있읍니까? 그러므로 ‘예루살렘’이 멸망될 연대를 산출할 가능성이 있었읍니까?
14 이 묘사에 있어서 가장 흥미있는 점은 ‘예루살렘’이 멸망될 정확한 연대를 알려 주었다는 점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던 공공 기록을 통하여 왕국이 분열된 때는 정확히 알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벨론’에 있던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6년 전에 환상을 받을 때에, ‘예루살렘’에 재앙이 닥칠 연대를 산출할 만한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다음에 하신 말씀 가운데 연대에 관한 점이 밝혀져 있읍니다.
15.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시간적 요소가 ‘에스겔’에게 어떻게 알려졌읍니까?
15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되 네 눕는 날 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찌니라.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 수를 정하였나니 곧 삼백 구십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도록 하라].”—에스겔 4:4-6ㄱ.
16, 17. (ㄱ) 북쪽 왕국의 멸망으로 죄악에 대한 형벌의 문제가 해결되었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유다’ 족속”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셨읍니까?
16 하나님께서는 기원전 997년 이래 ‘이스라엘’의 반역과 우상 숭배 행위를 참아오셨읍니다. 반역적인 북쪽 왕국은 390년간 지속하지 않았읍니다. 그 왕국이 기원전 740년에 멸망되었을 때에 이것은 그 나라가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에서 이탈한 데 대한 직접적인 형벌이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와 관련해서는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읍니다. 아직도 근본적인 수도인 ‘예루살렘’에 대하여 책임을 물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셨읍니다.
17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메고 예언하라.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맟도록 몸을 이리저리 돌리지 못하리라.”—에스겔 4:6ㄴ-8.
18. ‘에스겔’이 ‘이스라엘’을 위하여는 왼편으로 눕고 ‘유다’를 위하여는 오른편으로 눕는 것이 왜 합당하였읍니까? 그리고 포위하는 일을 합계 얼마 동안 계속하여야 하였읍니까?
18 만일 ‘에스겔’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흉내를 내고 누웠을 때에 배를 깔고 머리를 동편으로 향하고 누웠었다면 그의 왼편은 북쪽, 곧 옛 북쪽 왕국, ‘이스라엘’쪽이었을 것이고, 오른편은 남쪽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남방 ‘유다’ 왕국의 “죄악”을 담당할 때에 오른편으로 눕는 것이 합당하였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기의 모든 무게를 자기 오른편에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에스겔’이 왼편으로 390일을 누운 다음에 오른편으로 40일을 누웠으므로, 포위하는 형식으로 누운 것은 합계 430일간이었읍니다.a
‘유다’의 죄악의 40일간
19. 성취에 있어서 그 기간은 얼마나 되는 기간이었으며, 상징적 390일과 40일은 어떻게 계산되었읍니까?
19 그러나 고대 ‘예루살렘’에 실제 성취되던 때에 “‘유다’ 족속”의 “죄악”에 대한 40일은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에 대한 390일간의 마지막 40일과 같은 기간에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주신 때의 길이에 대한 단위는 “일일이 일년”이었읍니다. 따라서 “‘유다’ 족속”의 “죄악”에 대한 40년간은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에 대한 390년간의 마지막 40년과 같은 기간에 적용되었읍니다. 그 기간의 마지막 40년은 기원전 647년에 시작되었읍니다. 긴 기간과 짧은 기간, 이 두 기간은 다 한 해에 끝나게 되었읍니다. 고대 ‘예루살렘’이 기원전 607년에 한번만 멸망되었기 때문입니다.
20. 무슨 일이 “‘유다’ 족속의 죄악”에 대한 40년간의 시작을 표시하였읍니까?
20 이제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유다’ 족속의 죄악”에 대한 40년 기간이 시작된 해는 종교적 “죄악”을 계산하기 시작할 해임을 표시하는 어떤 일이 있었읍니까? 있었읍니다. 그 기간의 첫해는 ‘예루살렘’의 선한 왕 ‘요시야’의 제13년이었으며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유다’ 땅의 예언자로 봉사하도록 임명하신 해입니다. (예레미야 1:1-3; 25:3) 그러나 그때에 선한 왕 ‘요시야’가 ‘유다’ 땅 전역에 걸쳐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를 회복하는 중이 아니었읍니까?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 해에 “‘유다’ 족속”의 “죄악”을 계산하기 시작하셨읍니까?
왜 형벌을 면할 수 없었는가?
21-24. 왜 ‘유다’는 죄악이 가득하였으며, 왜 ‘요시야’ 왕의 훌륭한 개혁 사업도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격노를 막지 못하였읍니까?
21 ‘유다’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이 가득하였읍니다. ‘요시야’ 왕의 조부인 ‘므낫세’ 왕은 ‘유다’의 죄를 대단히 많고 심하게 유발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형벌을 면제할 수가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피에 물들고 우상 숭배하는 도시로 간주하셨읍니다. 이렇게 기록되었읍니다.
22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로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함이며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열왕 하 24:3, 4; 21:16.
23 ‘요시야’ 왕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법을 시행하려는 숭고한 노력을 기울인 후에도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24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유다’를 향하여 진노하신 그 크게 타오르는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므낫세’가 여호와를 격노케한 그 모든 격노를 인함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스라엘’을 물리친 것 같이 ‘유다’도 내 앞에서 물리치며 내가 뺀 이 성 ‘예루살렘’과 내 이름을 거기 두리라 한 이 전을 버리리라.”—열왕 하 23:25-27.
2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참으심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2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두 나라에 대하여 그와 같이 참으신 것은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었읍니다. 390년 동안 참으신다는 것은 오랫 동안 참으신 것입니다. 미국 역사보다 더 긴 기간입니다. 이러한 실례는 하나님의 이 훌륭한 성품을 보다 더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보다 참을성을 나타내도록 하는 좋은 자극제가 됩니다.
2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하신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참으심을 아는 것 외에, 어떤 다른 점을 고려할 수 있읍니까?
26 그러나 하나님의 참으심이 결국에 가서는 끝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참으심이 끝나기 전에 유익을 받음
27-2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교국에 대하여 커다란 분노를 나타내시더라도 왜 정당할 것입니까?
27 우리는 이 원칙을 그리스도교도라고 자칭하는 나라들 곧 그리스도교국에 적용할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 시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콘스탄틴’ 대제가 제4세기에 배도한 그리스도교를 이교와 혼합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은 참 그리스도교를 실천하지 않았읍니다. 이 ‘로마’ 황제는 정치적인 이유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만들었읍니다. 그는 ‘니케야’ 종교 회의를 주재한 다음에 자기 장자를 죽였으며, 그 다음에 자기 아내 ‘파우스타’를 죽였읍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교국의 기초 자체가 피로 물들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죄악”은 처음부터 시작되었읍니다.—「브리타니카 백과사전」 11판 6권 989면 4항.
28 그 후 1,600년간에 걸쳐 그리스도교국은 옷자락에 피를 많이 묻혔읍니다. 십자군 전쟁, 종교 재판, 30년 전쟁, 마지막으로 금 세기에 들어와서 일어난 양차 세계 대전 등을 생각해보십시오.
2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교국에게 그의 본성을 나타낼 기회를 주지 않으셨다고 불평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으심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30.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에게 괄목할 만한 참을성을 나타내신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30 우리는 누구나 죽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살고 싶습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그처럼 놀랍게 참아 오셨읍니다. 죽어버려서, 하나님의 참으심을 올바로 인식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룩하실 훌륭한 것들을 맛보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손실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에스겔’ 시대에 공언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국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에스겔 18:31, 32.
31.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그리스도교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아직도 무슨 인자한 마련을 해 놓으셨읍니까?
31 하나님께서는 참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극하는 그리스도교국의 행로로부터 세상의 거짓 종교와 사상들로부터, 돌아서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도 베풀어 주십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당신이 생명을 얻는 문제를 자기들의 일처럼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무료로 베풀어 주는 그들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께서 아직 정직한 사람들에 대해 참으시는 이 기회에 유익을 받으십시오.—고린도 후 6:1, 2.
[각주]
a ‘에스겔’이 거리에 나가 낮에 한편으로 눕는 이러한 묘사 행위를, 문자적으로 실제 430일 동안 행하였는지 혹은 그것이 환상적으로만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주석가들도 어떤 사람들은 그 장면이 환상적이었으며, ‘에스겔’이 환상을 본 다음에 그것을 사람들에게 묘사 설명한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다른 학자들은 ‘에스겔’이 환상을 본 다음에 그 장면을 실행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떻든, 그 예언 성취에 대한 이해와 그 당시 ‘유다’와 ‘이스라엘’에게 적용된 점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이 예언의 어떤 점들이 그리스도교국에 최종적으로 적용되는 점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환상적인 명령이 ‘에스겔’의 경우에 어떻게 시행되었느냐가 아니다. 우리에게 관계되고 영향을 주는 것은 그 명령의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