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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식품 포장법—좋은가, 나쁜가?깨어라!—1973 |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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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있다. 그들은 보통 쓰레기 속에 현재 들어있는 양은 해를 주기에는 충분치 않으며, 사실상, 산화 과정에 도움을 주며, 특히 젖은 쓰레기가 다량 포함되어 있을 때에 그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되는 ‘프라스틱’의 양은 증가 일로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것과 다른 현대의 포장물로 말미암아 제기되는 처리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
포장물 공해 문제를 해결함
이 문제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크게 완화시킬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만일 우리 모두가 “현실을 떠나서”, 또다시 농업 사회에 살게 된다면, 사람들은 대도시에 집중되지 않을 것이다. 각 가족은 자기네가 스스로 재배한 것을 먹을 것이다. 신선한 사과, 배, 복숭아, 당근 및 기타 모든 것은 ‘자연의 포장’ 속에 담겨져 있다. 이러한 것은 종종 포장한 채 먹을 수도 있다. 어떤 것들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야자수 열매는 그 과즙과 속살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열매의 겉껍질은 밧줄, 깔개 및 기타 비슷한 것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오랜지’와 ‘레몬’의 껍질은 ‘마말레이드’를 만드는 데 사용되며, 수박 껍질은 맛있는 사탕조림의 재료가 된다. 껍질이나 다른 천연 포장물 “폐기물”은 일정한 시간이 흐르는 사이에 부식되어 천연 비료로서 흙속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수백만의 사람들이 농업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포장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그러한 수단으로서 그들은 식품을 공급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장이라는 과정에 따라오게 마련인, 쓰레기의 처리와 같은 문제들은 이러한 식품을 공급하는 과업을 달성하기 위한 댓가의 일부로서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상태가 사람들이 또다시 땅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는 삶을 살게 될 때까지는 변함없이 계속되리라는 데는 아무런 의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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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이 성취되었는가?깨어라!—1973 |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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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이 성취되었는가?
영감받은 (일반적으로 “구약”이라고 불리우는) ‘히브리’어 성경은 언젠가는 전체 인류 가족이 창조주로부터의 끝없는 축복을 즐기게 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러한 축복들은 ‘다윗’ 왕을 통한 ‘아브라함’의 후손인,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을 가지고 있는 “메시야”라고 불리우는 한 개인을 통하여 가능케 될 것이다.—창세 12:1-3; 22:18; 사무엘 하 7:12-16; 다니엘 9:25, 26.
다니엘 7:13, 14에서 ‘메시야’는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분이며,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섬길 영광스러운 왕으로 묘사되어 있다. ‘메시야’의 다스림 하에서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연합될 것임을 보여주는 이러한 예언은 성취될 것인가?
“메시야”란 제목 하에, 「유대교 사전」(「A Dictionary of Judaism」)에서 ‘루우벤 에스. 브룩스’는 “‘유대’교는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아무 것도 확정적으로 말해주지 않는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성서의 견해는 어떠한가? ‘메시야’에 관한 어떤 예언들이 성취되어 왔는가?
이 문제에 관한 성서의 견해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대인 지식의 책」(「The Book of Jewish Knowledge」)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심원하고 신비스런 새로운 사상들이 ··· ‘바빌로니아’에서의 포로 생활이 시작된 이래 ‘유대’인 종교 사상 속으로 서서히 침투하였다.” 「유대인 백과사전」은 이렇게 부언하였다. “게다가, 이 당시에 수 많은 외래적 요인들이 스며들어 ‘메시야’와 관련된 일반적 상상의 혼합물의 일부가 되었다.” 그 결과 이제 ‘메시야’에 관한 ‘유대’인의 개념은 “일관성이 있는 그림으로서 도저히 합치시키거나 짜넣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상한 망상을 구체화시킨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에 관한 올바른 개념을 얻고자 한다면,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메시야’의 사명에 관한 성서의 견해
성경은 ‘메시야’는 모든 인류가 자기의 다스림의 축복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어떤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을 알려준다. 그 필요한 준비할 일은 어떠한 형태의 것인가? 사람들이 그의 다스림으로부터 진정한 유익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지상의 여러 가지 고난의 기본적인 원인—인간의 불완전성을 제거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성서는 이러한 불완전성을 “죄”라고 부르며, 잉태됨으로 그것을 유전받게 됨을 알려 준다. 그러므로 ‘다윗’ 왕은 이렇게 한탄하였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이러한 부면의 ‘메시야’의 사명과 관련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이사야 53:5, 12.
이 귀절은 참으로 고통과 죽음을 당하실 ‘메시야’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가? ‘유대’인 ‘랍비’ ‘아이삭 아브라바넬’(1437-1508)은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인정하였다. “‘요나단 벤 웃시엘’은 이것을 ‘탈굼’ 속에서 미래의 ‘메시야’에 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것은 또한 그들의 ‘미드라심’(‘유대’인의 성서 주석의 한 형태) 속에 나타난 바 우리의 학자들 대다수의 견해이기도 하다.”
또한, 다니엘 9:24-27은 ‘메시야’가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게 하기 위하여 오실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24절) 스가랴 9:9과 12:10은 ‘메시야’가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고 오실 것과 사람들이 그를 “찌”를 것과 그 다음에 “그들이 ··· 그를 위하여 애통하[며] ··· 그를 위하여 통곡하[리라]”고 부언하였다.
제 일세기에 관하여는 어떠한가?
‘메시야’의 사명의 이 부분은 언제 성취되는가? 다니엘 9:25은 이렇게 못밖았다.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바꾸어 말하자면 도합 69주가 지난다는 것이다. ‘유대’의 권위자들은 연대학 서적 「세데르 올람 라바」와 일치하게 여기에 나오는 이레 즉 주일(週日)들은, 각각 7년의 길이로서, 해(年)의 주일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69이레(7 + 62)는 483년의 길이가 되는 것이다.
느헤미야 2:1-6에 의하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성전 뿐만이 아님)이 난 것은 ‘페르샤’ 왕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의 재위 제 20년이었다. 그 때는 언제였는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권위자들은 그 해가 기원전 455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 시점에서부터 483년을 계산해 내려오면 우리는 기원 29년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희랍어 성경」(즉 “신약”)은 사람들이 그 기간 중에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지적해 준다. (누가 2:25, 38; 3:15) ‘유대’인 권위자들도 이에 동의하고 있다. 기원 제1세기에 몇몇 사람들이 자기들이 ‘메시야’라고 주장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단지 한분만이 기원 29년에 출현하셨다.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누가 복음은 예수의 선구자 침례자 ‘요한’이 기원 29년에 해당하는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에 그의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누가 3:1) 그리고 성서는 예수께서 약 6개월 후, 기원 29년 가을에 침례를 받으셨음을 알려준다. 그 때에 그는 이사야 61:1의 성취로서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을 부[음]” 받으셨으며, ‘메시야’ 즉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의 그의 생애를 시작하셨다.—누가 3:21-23; 4:16-21.
다니엘 9:26, 27은 ‘메시야’가 3년 반 후, 즉 70번째의 해(年)의 “이레의 절반에” 희생적인 죽음으로 “끊어져 없어질 것”을 알려준다. 이것은 기원 33년 봄인 유월절 날에 예수께서 죽으셨을 때 정확하게 이루어졌다. (마태 26:2; 요한 13:1-3) 그 예언은 계속하여 그 뒤에 “한 왕의 백성[‘티투스’ 장군 휘하의 ‘로마’ 군대]이 와서 그 성읍[‘예루살렘’]과 성소를 훼파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메시야’는 기원 70년 ‘로마’인들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멸망되기 전에 “끊어져 없어”지셔야만 하였다.
받아들여졌는가 혹은 배척당하였는가?
‘메시야’가 비천하게 나타날 때에 어떠한 대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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