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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에 관한 ‘유대’인들의 견해에 영향을 주는 장애물들
    깨어라!—1972 | 3월 22일
    • ‘유대’인들과 ‘로미’인들 시이의 전쟁이 그들에게 무슨 관심이 있었겠는가?”—「예수로부터 ‘바울’까지」, 598, 599면.

      물론, ‘클라우스너’와 같은 ‘유대’ 학자들은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난 것이 예수의 예언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학자들도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로마’에 대항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던 때에 ‘예루살렘’에 들이닥쳤던 극심한 환난을 당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예수의 예언의 말씀을 따른 결과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

      따라서 불필요한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가 메시야인가를 철저히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신명 18:18, 19) 또한 성실한 탐구자들은, 그리스도교가 그 종교인들의 생활에 건전한 영향을 미치는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예수의 가르침에 참으로 일치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싶어 할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는 모든 종교 조직을 철저히 조사해 볼 필요까지는 없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저지른 피흘린 죄는 그들이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국가주의적인 교만과 증오심을 전혀 갖지 않기로 유명한 하나의 그리스도인 집단이 있다. 사실, 이러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이라고 알려진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현 20세기에 극심한 박해를 당하였다. 그들은 박해를 받아도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을 범한 사람들의 비행을 폭로하는 일을 중지하지도 않았으며, 자신들의 도덕적인 입장을 변경시키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떤 나라의 피흘린 죄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와 그의 가르침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여호와의 증인들의 도움을 받아들이라.

  • 「다니엘」서에 나오는 ‘메시야’는 누구인가?
    깨어라!—1972 | 3월 22일
    • 「다니엘」서에 나오는 ‘메시야’는 누구인가?

      약 25세기 전에 ‘가브리엘’ 천사는 중요한 진리를 ‘다니엘’에게 밝혀 주었다. 그것은 지정된 수의 “이레”가 지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가 온다는 것이다. 거기서 말한 “이레” 곧 “주”(週)는 보통의 “주”(週)가 아니라 “해(年)로 된 주”였다. 천사가 이 소식을 전해 주었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이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오는 것이 대단히 중대한 사건이며,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칠 사건임을 암시하고 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미국 유대인 출판 협회’의 번역판(1917년 판권)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받으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장소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가 지날 것이며, 육십 이 이레 동안에, 곤난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라.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리라.”—다니엘 9:24-26.

      이 번역문을 보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곱 이레” 후에 올 것이고, 그러나 다른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62 “이레” 후에 ‘끊어질’ 것 같이 보인다. 문제를 이렇게 이해하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가?

      ‘유대’인들의 견해

      ‘유대’ 주석가들의 설명을 따르면,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그 도시가 ‘갈대아’인들에 의해 황폐된 다음에 재건되리라고 예언하였을 때에 나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예레미야 30:18에 말하기를 “그 성읍은 자기 산에 중건될 것이요”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곱 이레”가 그 도시가 황폐한 70년간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 70년간은 ‘유대’인 남은 자들이 ‘바벨론’에서 되돌아옴으로써 끝났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어떤 ‘유대’ 주석가들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유대’인 포로들을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갈 것을 허락한 칙령을 발표한 ‘고레스’ 왕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주석가들은 그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총독 ‘스룹바벨’ 혹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라고 주장한다. 이 두 사람은 ‘고레스’의 명령이 내린 후에 ‘바벨론’에서 되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러면, 62 “이레”는 어떠한가? ‘유대’ 주석가들은 이 기간이 434년간을 의미하며, 그 기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재건되었다고 한다. ‘끊어짐’을 당할(다니엘 9:26)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된 때에 살았던 ‘아그립바’(2세) 왕을 의미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기원전 175년에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폐위시킨 대제사장 ‘오니아스’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유대’ 주석가들은 ‘가브리엘’의 말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사실상, 그들의 설명에는 일관성이 없다. “일곱 이레”는 하루를 각각 10년으로 이해하여, 합계 70년(7 × 10)이라고 하면서, ‘62 이레’는 하루를 각각 7년으로 생각하여, 합계 434년(62 × 7)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유대’ 주석가들은 ‘가브리엘’의 말을 억지로 해석하려고 한 나머지 연대를 멋대로 조작하였다.

      구두점의 부가로 의미를 변경

      어떤 사람들은 놀랍게 생각하겠지만, ‘유대’인 성경 복사자들과 몇몇 ‘유대’ 번역자들은 다니엘 9:25절에 원문에 없는 것을 부가하였던 것이다. ‘마소라’ 학자들이라고 하는 서기관들은 다니엘 9:25의 ‘히브리’어 귀절에 ‘아드나’ 곧 “구두점”이라고 하는 것을 “일곱 이레” 다음에 부가하여, 그 말과 “육십 이 이레” 사이를 구분하였다. 뿐만 아니라, 몇몇 ‘유대’ 번역자들은 ‘62 이레’라는 말에 “동안”이라는 단어를 부가하여, ‘예루살렘’이 그 기간 동안에 완전히 재건될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그 귀절을 이렇게 변경시키지만 않았다면, 다니엘 9:25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메시야]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난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라].” 비‘유대’인 번역판에서는 이와 비슷한 번역문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번역문을 보면, “메시야” 곧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일곱 “이레”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곱 더하기 “육십 이 이레” 후에, 다시 말하면, 69 “이레” 끝에 온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육십 이 이레” 후 어느 때에 끊어지리라고 한 “메시야”는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의 끝에 오리라고 예언된 메시야와 동일한 분이 된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그 때에 나타났는가?

      메시야가 나타날 시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예루살렘’을 중건 곧 재건하라는 명령이 언제 나왔는가를 확실히 밝혀야 한다. 그러한 명령은, 그 도시가 멸망되기 전인 ‘예레미야’가 예언하던 당시가 아니라, 그 명령을 수행할 수 있었던 때에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록 ‘유대’인 남은 자들이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으로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오기는 하였지만, 그 성벽과 성문은 여러 해 후까지 재건 혹은 보수되지 않았었다. ‘유대’인 한 사람은 그 도시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페르샤’ ‘아닥사스다’[론지마누스] 왕의 술관원이었던 ‘유대’인 ‘느헤미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느헤미야 1:3) 이러한 보고를 받은지 몇 개월 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중건 곧 재건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이것은 ‘아닥사스다’ 통치 제 20년 ‘니산’월이었다. (느헤미야 2:1-6) 가장 정확한 역사적 증거에 의하면, 그 왕의 제 20년 ‘니산’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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