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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통치권의 “열쇠들”이 사용되다파수대—1980 |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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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이것은 이 경우에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주된 대표자로서 인도하는 입장을 취했음을 시사합니다. 그는 왕국 열쇠들을 위탁받은 자의 입장에서 말하였습니다.
28. 그 후에 왕국의 기회는 누구에게도 또한 열렸으며, 영으로 출생한 사마리아인들이 어디에서 숭배하기 시작하였습니까?
28 그 후에는 같은 기회가 사마리아 지방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 행전 8:25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두 사도[베드로와 요한]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이제 침례받고 영으로 출생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도 아니요,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크신 영적 전에서 그들의 하늘의 아버지 여호와를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요한 4:21.b
29. 사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의 영으로 출생한 회중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으며, 빌립은 어디로 이주하였습니까?
29 빌립과 얼마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다소의 바리새인 사울에 의해 충동된 박해로 인하여 사마리아로 피해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자신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음에 팔레스타인 회중의 상태는 달라졌습니다. 사도 행전 9:31에 의하면 이러합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하지만 빌립은 마침내 항구 도시 가이사랴에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유대 도의 로마 총독이 그 본부를 두고 있었고 이달리야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사도 8:40; 21:8; 10:1; 23: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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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열쇠들”과 “큰 무리”파수대—1980 |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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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의 열쇠들”과 “큰 무리”
1. 마침내 빌립이 가이사랴에 이주한 것에 비추어 그를 기원 36년과 관련시켜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기원 36년에 그리스도교 역사에 획기적인 사건이 지중해 동쪽 연안, 가이사랴에서 일어났습니다. 복음 전도자 빌립이 그해에 이미 그 곳에 이주해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만일 그가 그 곳에 이주해 있었다면, 그 당시 그 곳에 주둔해 있던 이달리야 부대의 한 장교와 관련하여 그가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사도 베드로보다 먼저 그리스도인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기원 36년에 가이사랴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영감받은 성경은 우리에게 대답해 줍니다.
2. 모세의 율법 언약이 언제 도말되었으며, 그러나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 얼마 동안이나 더 계속 우선적 대우가 베풀어졌었습니까?
2 모세가 아라비아 시내 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중보가 되어 맺은 율법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다윗 왕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의 못박힘을 기초로 도말되었습니다. 그 일은 기원 29년에 예수께서 물침례를 받으시고 영으로 기름부음받으신 때로부터 3년 반이 지난 때에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다니엘 9:24-27ㄱ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그 후에도 3년 반의 기간에 걸쳐 육적 유대인과 또한 사마리아인에게 계속 우선적 대우를 하셨습니다. 이 “이레” 즉 7년간의 기간은 기원 36년의 음력으로 일곱째 달, (티쉬리)에 끝났습니다. 그 후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비유대 민족 즉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영적으로 동일한 입장에 서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더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의해서 우선적 대우가 베풀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원 36년에 이 점이 어떻게 실현되었습니까?
3. (ㄱ) 이 무렵에 사도 베드로는 어디에 있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ㄴ) 예루살렘의 할례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를 그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비난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3 이 무렵 욥바 항구 도시의 그리스도인 회중으로부터 긴급한 요청이 있어서 베드로는 이곳에 와서 인정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도르가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켰습니다. 거기에서 그는 피장 시몬의 집에서 수일간 머물렀습니다. (사도 9:36-43) 그 당시 유대인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함께 교제하는 것은 마치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에서 제명된 사람과의 교제만큼이나 비난받는 일이었습니다. (마태 18:17) 그러므로 이 때까지 유대인 그리스도인 베드로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의 집에 자진적으로 들어가는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이것은 의문의 여지 없이 복음 전도자 빌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므로 후에 예루살렘의 할례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베드로가 마침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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