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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시야—그는 무엇을 성취시키게 되어 있는가? 그리고 언제?
    깨어라!—1976 | 7월 22일
    • 개념들이 상존하고 있다. ···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개념들에 대한 권위있는 의견이란 없으며 ‘유대’교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확정적인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히브리’어 성경은 어떠한가? 당신은 그것이 약속된 ‘메시야’에 관하여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지를 조사해 본 일이 있는가? 그는 무엇을 성취시키게 되어 있는가? 그리고 언제?

      예비적 성취

      성경에는 ‘히브리’ 단어 ‘마쉬아’, 즉 ‘메시야’가 하나의 명사로 독립해서 (즉,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 “나의 기름부음받은 자”와 같은 아무런 수식어 없이) 나타나는 곳이 단지 한군데 있다. 그것은 다니엘 9:24-27로서 이 귀절은 ‘메시야’가 특별히 성취시킬 일, 즉 그의 통치의 축복이 전세계에 편만케 되기 전에 그가 성취시킬 일을 지적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들어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찌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메시야’ 지도자, 신세)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 난외주 참조)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 즉 “‘메시야’ 지도자”(‘마쉬아 나기드’, 히브리어)의 임함이 여기서 죄가 끝나는 것과 연관되었음을 유의하였는가? ‘메시야’는 이 점에 있어서 무슨 역할을 수행하는가? 함께 이사야 52:13-53:12에 나오는 예언의 몇가지 요점을 고려해 보자. 그 예언을 고대 ‘유대’ ‘아람’어 의역, 즉 ‘탈굼’은 “내 종, 기름부음을 받은 자[혹은, ‘메시야’]”에게 적용시켰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죄인들을 위한 중재]하였느니라.”—이사야 53:5, 10, 12, ‘유대인 출판 협회’ 1973년판 참조.

      “죄인들을 위한 중재”를 하는 것은 사람들로 미래의 ‘메시야’적 축복을 즐기게 하기 위한 기초를 놓는 예비적 단계이다. 어떻게 그러한가? 누구든 노령과 사망의 고통을 직면하고 있으면서 참으로 ‘메시야’ 통치의 축복을 즐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사망이라는 작용을 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인가?

      성경에 나타나는 사망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창세기 2:16, 17에 들어있는데, 그 귀절은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음을 기록하고 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은 사망의 과정이 즉시 ‘아담’에게 작용하여, 그의 영원한 죽음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원인이 되게 돼 있었다.

      성경은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창세 3:6) 이것은 그들에게 뿐만아니라, 오늘날 살아있는 우리들을 포함한 그들의 후손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쳤다. 족장 ‘욥’은 이렇게 한탄하였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욥 14:4) 「시편」 필자 ‘다윗’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성서에 따르면, 사람은 잉태되는 순간에 죄와 그것의 궁극적인 결과인 사망을 유전받는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죄를 유전받는다는 가르침에 이의를 나타낸다. 그들은 주장하기를, 모든 인간이 “악행”에 대한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확실히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유대’ ‘랍비’ 문학은 어떤 “완전히 의로운” 사람들에 관한 언급이 들어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본 일이 있는가? 가장 헌신적이며 또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연합된 노력들이 고조 일로에 있는 증오, 범죄, 폭력, 성적 부도덕 및 인류를 괴롭히는 다른 괴로움들의 물결을 저지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분명코 인간이 죄를 짓는 경향을 제거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인도를 필요로 한다.

      얼마나 비싼 “값”인가?

      그러나 속죄일에 바쳐진 제물들을 포함하여 ‘모세’의 율법 하에 바쳐진 동물들 및 다른 희생들이 죄를 덮어줄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은 유전된 죄를 속죄하는 데는 그러한 동물 희생물 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어떤 것이 필요함을 지적해 준다. 시편 49:6-9은 이렇게 알려 주고 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라].”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대속하기 위한 “값”은 얼마나 비싼 것인가?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는 ‘영혼은 영혼으로’라고 못박고 있다. (신명 19:21, 신세 참조) ‘아담’은 본래 완전하였고 죄가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완전한 인간만이 ‘아담’이 죄를 통하여 그의 후손들에게서 상실한 것을 회복시킬 수 있다. 위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성서 「다니엘」서는 그 역할이 “메시야, 지도자”에게 부여되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면 언제 ‘메시야’의 이 예비적 활동의 성취를 살펴보기 시작해야 하는가? 어떻게 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인간의 혈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죄가 없을 수 있는가?

      ‘메시야’까지의 ‘주(週)’들을 계산함

      “칠십 이레 즉 주들의 예언은 “‘메시야’ 지도자”가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69주(7 + 62)가 되어서 나타날 것임을 명시하고 있다. (다니엘 9:25) 그러면 그 “영”은 언제 있었는가?

      ‘히브리’어 성경은 느헤미야 2:1-6에서 ‘페르샤’ 왕 ‘아닥사스다 통기마누스’가 그의 통치 제 20년에 회복과 ‘예루살렘’에서의 재건에 관한 그러한 “영” 즉 조서를 반포하였음을 기술하고 있는데, 그 때는 기원전 455년이었다. 많은 ‘유대’ 및 다른 학자들은 여기서 언급된 이래 즉 ‘주’가 “해로 된 주”, 즉 한 주는 그 길이가 7년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기원전 455년으로부터 해로 된 69주, 즉 483년을 계산해 내려오면 기원 29년에 이르게 된다. 과연 그 해에 ‘메시야’라고 주장한 사람이 나타났는가?a

      ‘나사렛’의 예수는 어떠한가?

      아마 당신은 그 무렵에 살았던 ‘나사렛’의 예수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 예수는 약속된 ‘메시야’의 그러한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 정확한 역사성으로 정평이 있는 ‘누가’의 복음서 기록은 예수의 선구자인 침례자 ‘요한’이 그의 공개적 전파 활동을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다섯 해”에 시작하였다고 명시하였는데, 그 해는 기원 29년에 해당하였다. (누가 3:1, 2) 예수는 약 6개월 후인, 기원 29년 가을에 침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기름을 부”음받은 자로서 공개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시작하셨다.—누가 3:21-23; 4:16-21.

      본 지의 전 기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예수의

  • “그 때는 이미 지나갔다”
    깨어라!—1976 | 7월 22일
    • “그 때는 이미 지나갔다”

      1649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두 ‘유대’인 사이에 “칠십 이레”의 의미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다니엘 9:24-27) 그 중 하나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사람이었는데, 그 논쟁자들은 중재자로서 그 지역의 상급 ‘랍비’였던 ‘시모네 벤 이자크 심하 루자토’를 선택하였다. 그 토론에 ‘루자토’의 생도의 한 사람인 ‘사무엘 벤 다비드 나미아스’가 자기의 형제 ‘요셉’과 함께 참석해 있었다. ‘나미아스’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기술하였다.

      “두 적대자는 처음에는 용감하게 서로 토론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승리가 그리스도인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음이 분명해지자, 그 논쟁의 심판자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루자토’가 갑작스럽게 두 손으로 탁자를 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시다시피 논의되고 있는 그 귀절은 거의 최고의 지성을 가진 모든 ‘랍비’들을 당황케 하며 더 이상 자기들이 하늘에 있는지 땅에 있는지를 분간 못할 정도로 혼란케 만들고 있읍니다.’ 그리고 다른 비슷한 말을 몇마디 더 부언한 다음, 그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서 이렇게 말을 이었읍니다. ‘이제 서로 논쟁을 그치고 책을 덮도록 합시다. 만일 우리가 더 이상 ‘다니엘’의 이 예언에 대하여 추리를 계속한다면, 필연적으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결과가 뒤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메시야’가 이미 오셨으며, 그 때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이 명백히 표현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읍니다. 그분이 ‘나사렛’ 사람 예수였는지에 대하여는 나의 의견을 성급히 피력하기를 나는 원치 않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 모임은 끝이 났으며, 그와 함께 나 자신과 나의 형제가 마음 속으로 품고있던 그 유대 ‘교파’에 대하여 품고 있던 애착심도 살아졌고, 그리하여 우리들 둘은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읍니다.”—“「비아 델라 페데」”[믿음의 길], ‘지우리오 모로시니’(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받아들인 후에 ‘나미아스’가 채택한 이름) 저. 1683년 ‘로마’에서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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