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봉사자들
1. ‘틴들’의 로마서 13:1-6의 번역에서 정부 관리들이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과 관련하여 무엇이라고 불리웁니까?
‘윌리엄 틴들’은 기원 1526년에 원 희랍어로부터 당시의 통속 영어로 번역할 때, 이 세상의 “높은 권세들” 즉 “위에 있는 권세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그가 당신의 복리를 위한 하나님의 봉사자(minister)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시오. 그가 목적없이 칼을 차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봉사자[‘미니스터’]이고 악행을 범한 자들을 복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수를 두려워서 뿐아니라 또한 양심 때문에 당신은 복종해야 합니다. 당신이 공물을 바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은 같은 목적으로 봉사하는 하나님의 봉사자(‘미니스터’)이기 때문입니다.”—로마 13:1-6, ‘다브네이’.
2. (ㄱ) 세상 정부 관리들이 ‘미니스터’라고 불리우는 것은 1526년의 ‘틴들’의 번역에 근거한 것입니까? (ㄴ) 그들의 이 용어 사용은 이 세상에 속해있지 않은 ‘바울’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을 ‘미니스터’들이라고 부르는 권리를 부정합니까?
2 여러 형태의 정부 국가 관리들이 ‘푸라임 미니스터’(prime minister; 국무 총리) 혹은 ‘미니스터’(minister; 장관)라는 칭호로 불리우는 것이 사도 ‘바울’의 전술한 단어들에 근거한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없읍니다. 심지어 그 당시에도 그러한 정치인들이 ‘하나님의 봉사자’(‘미니스터’)라고 불리우는 세속적인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와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사도 ‘바울’과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봉사의 직무” ‘미니스트리’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읍니다. 시행 영역에 있어서도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릅니다. 세상 정치인들이 정부 영역에서 ‘미니스터’(minister, 봉사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해서 ‘바울’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그 낱말이 관련된 언어에 따르는 종교적 의미에서 ‘미니스터’(minister)라고 불리울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3. 오늘날 ‘두기고’와 ‘디모데’처럼 집집으로 전파하는 모든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미니스터’(들)”입니까?
3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6:21에서 ‘두기고’를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미니스터’, 봉사자, 신세)”이라고 불렀을 때 그는 ‘두기고’를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와 같이 생각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또한 골로새 1:7; 4:7) ‘바울’은 또한 ‘디모데’를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미니스터’, 봉사자, 신세)”이라고 불렀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3:2) 분명히 오늘날 집집으로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들은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미니스터’(봉사자)들”입니다.—마태 24:14, 신세; 마가 13:10.
4. 그리스도인 회중이 전체로서 그리고 그 한 성원으로서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가지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성경은 어떻게 알려 줍니까?
4 그러나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의 회중은 전체로서 어떠합니까? 소 ‘아시아’의 ‘두아디라’ 회중에게 하나님의 영광스럽게 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미니스트리’, 봉사의 직무, 신세) ··· [을] 아[노라].” (계시 2:18, 19) ‘바울’은 희랍 ‘아가야’의 ‘고린도’ 회중에게, “직임(‘미니스트리’, 봉사의 직무, 신세)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다고 편지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2:5) 이 사실과 일치하게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33년 오순절로부터 지상의 자기 회중에게 사도, 예언자, 복음 전도자, 목자, 가르치는 자와 같은, 사람으로 된 선물을 주셨읍니다. 그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거룩한 자들을 바로잡아 봉사의 일[문자적으로 봉사의 직무와 관련된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 4:7-12, 신세)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 그리스도인 회중의 모든 성원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거룩한 자들에게 봉사의 직무를 수행한 것, 신세]과 이제도 섬기는 것[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 신세]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 6:10) 이와 같이 하여, 모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수행하고 있었읍니다.
세속 일에 관하여
5. (ㄱ) 그리스도교국의 직업적 ‘미니스터’(봉사자)들의 마련과는 대조적으로 성서의 법칙에 따르면 ‘미니스터’(봉사자)들이 시간제 세속 일꾼일 수 있읍니까? (ㄴ) 언제 “미니스테르”(봉사자)란 단어가 성서 번역판에 나타나 있었읍니까?
5 ‘여호와의 증인’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회중의 일부로서 성경적으로 한 ‘미니스터’ 즉 봉사자가 된다는 것은 그가 사치스럽고 안락한 생활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제도의 직업적인 ‘미니스터’들을 위한 생계 마련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읍니다. 그러나 영감받은 성서에 따르면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낱말의 성서적 의미에 따라 ‘미니스터’(봉사자)가 된 사람들이 시간의 일부를 바쳐 세속 직장에서 일하는 일꾼일 수 있읍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30세까지는 ‘나사렛’의 목수였읍니다. 30세가 되어, 그분은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에 전 시간을 바치셨읍니다. 그분이 ‘라틴’어를 말씀하시고 “미니스테르”(봉사자)란 단어를 사용하셨는가 하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히브리’-희랍어 성경」이 ‘로마’ 제국의 ‘라틴’어로 번역되었을 때 그 번역판에 ‘미니스테르’(minister)란 말이 나타나 있었읍니다.
6. (ㄱ) ‘미니스테르’(봉사자)라는 단어는 ‘라틴’어나 희랍어의 이에 해당하는 낱말의 어원에 따르면,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까? (ㄴ) 그런데, 어떻게 그 일이 ‘바울’에 의하여 “영광스럽게” 될 수 있었읍니까?
6 ‘미니스테르’(minister)란 단어가 봉사자가 되는 데 “더 적은, 더 낮은”을 의미하는 ‘라틴’어 형용사 ‘미누스’(minus)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부족한 것처럼 되거나 행동”하는 것(quod minus est, ‘라틴’어)을 의미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희랍어 ‘디아코노스’ 역시 낮은 어원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것은 (“통하여”를 의미하는) ‘디아’(di. a΄)와 (“먼지”를 의미하는) ‘코니스’(konis)에서 유래했다고 이해되고 있읍니다. 이 단어가 희랍인에게 제시한 사상은 어떤 사람이 유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혹은 어떤 봉사를 하기 위하여 먼지를 통하여 가는 것이었읍니다. 하지만 이 희랍어가 낮은 어원을 가지고 있지만 사도 ‘바울’은 “나는 나의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하고 말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읍니다. (로마 11:13, 신세) 그는 끝까지 그 일에 고착함으로써 이 사실을 증명하였읍니다.
7. (ㄱ) 왕국 소식에 대한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는 ‘미니스터’(봉사자)들이 보수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값싸게 만들고 있읍니까? (ㄴ) 왕국 ‘미니스터’(봉사자)들은 필요한 세속 직업을 어떻게 봅니까?
7 ‘바울’이 자기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열심히 수행한 것은 자기 영광 때문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자기가 전파한 “좋은 소식”을 잘듣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비용을 요구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는 이로 인하여 자기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값싸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좋은 소식”에 대하여 비용을 지불하지 않지만 자기 자신들에게 유익한 것이 되게 하려면 ‘비용을 계산’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바울’은 그러한 영광스러운 “좋은 소식”을 위탁받은 것을 가장 영예롭게 여겼으며 이 세상의 수입이 많은 어떤 직업과도 비교할 수 없는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로 여겼읍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사도 ‘바울’의 본을 따릅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물질적인 혹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개인 이득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왕국 봉사에 종사하지 않음으로써 입니다. 그들은 왕국 소식을 상업상의 무엇인가처럼 다루거나, 단순히 안락한 생활을 위한 방편으로 다루는 것을 그릇된 견해로 봅니다. 그들이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는 어떤 세속 직업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부업으로서 다음가는 자리에 둡니다. 왕국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야말로 희생적으로 수행할 만한 가치있는 일입니다.
8. ‘바울’은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후에, 어떻게 그곳에서 ‘자기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영광스럽게 여’겼읍니까?
8 마침내 사도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회중과 접촉했을 때, 그는 그들에게 수년 전에 써보낸 자기 편지에서 말한 일을 계속 수행하였으며, ‘자기 봉사의 직무를 영광스럽게 여’겼읍니다. 하지만 갇힌 자로서 쇠사슬에 매여 있는데 어떻게 그 일을 수행하였읍니까? 그의 충실한 반려자인 의사 ‘누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바울’이 그들에게 말하더라.] ···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사도 28:16-31; 에베소 6:20.
9. ‘로마’에서 ‘바울’이 투옥당한 일과 그 이유는 어느 정도로 공개적으로 알려졌으며, 그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 일에 대하여 어떻게 느꼈읍니까?
9 부당하게 갇힌 자로 있으면서, ‘바울’이 수행한 이 활동의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말하게 되었느니라.”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빌립보 1:12-14; 4:22.
지금은 봉사의 직무를 위엄있게 해야 할 때
10.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충실한 백성의 남은 자들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서 나오라는 부름에 언제 응하였읍니까?
10 ‘여호와의 증인’들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였읍니다.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 대전중, 큰 ‘바벨론’은 전쟁중인 정치적 권세들과 협동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백성에게 압제를 가했읍니다. 이 일은 그들의 조직의 본부 임원들을 투옥하는 데까지 이르렀읍니다. 그러나 전후(戰後)인 1919년에 구출되어 석방되었읍니다. 그 때에 그들은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세계에 전파하는 예언된 일을 위해 재조직할 필요성을 인정하게 되었읍니다.—마태 24:14, 신세.
11. (ㄱ) 1919년 대회에서 남은 자들은 큰 ‘바벨론’을 어떻게 폭로하였읍니까? (ㄴ) 그들은 기다리던 어느 시기를 환영하였으며, 그와 일치하게 무슨 잡지가 발행되기 시작했읍니까?
11 남은 자들의 재조직에 이어서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과거에 없이 전세계적으로 전파되었읍니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그들은 1919년 9월에 미국 ‘오하이오’ 주 ‘시다포인트’에서 대회를 열었읍니다. 그들은 그 때에 큰 ‘바벨론’을 당시 제안된 국제 연맹의 후원자임을 폭로하였읍니다. ‘프로테스탄트’교의 교직자들은 국제 연맹을 “하나님의 왕국의 지상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불렀읍니다. 대회 참석자들은 그리스도께서 통치하는 하나님의 하늘 왕국에 의해 인도되는 “황금 시대”(golden age)를 환영하였읍니다. 대회에서 광고된 바와 같이, 1919년 10월에 이 새로운 잡지는 「파수대」지의 자매지로서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황금 시대”(The Golden Age)라는 제호를 갖게 되었읍니다. 그후 온 인류 가족에게 위안을 베풀 필요성이 커진 까닭에, 이 잡지의 이름은 “위안”(Consolation)으로 변경되었읍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그 이름은 “깨어라!”(Awake!)로 변경되었읍니다.
12. (ㄱ) 남은 자들은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의 용모를 더욱 개선하여 새로운 어떠한 신분을 취했읍니까? (ㄴ) 이 모든 일로써 그들은 왕국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어떻게 하였읍니까?
12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설립된 왕국의 전파자들에게 새로운 ‘미니스트리’ 곧 봉사의 직무의 용모를 갖추게 하였읍니다. 그들은 1931년에 큰 ‘바벨론’이 끊임없이 그들을 부르던 모욕적인 모든 명칭들을 털어 버렸읍니다. 그 때 그들이 성서 예언에 근거한 명칭 즉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을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10-12)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큰 ‘바벨론’과 그의 명목상의 정치적 보호자 앞에서 새로운 신분을 갖게 하였읍니다. 이와 같이 큰 ‘바벨론’과의 접촉으로 얼룩지고 더럽혀진 종교적 의복을 벗어버린 것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쁨이 되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새로운 모습을 갖추었읍니다. 비유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이 자기들의 제사직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에 합당한 “아름다운 옷”을 입은 것과 같았읍니다. (스가랴 3:4, 5)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들의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위엄있게 하고 영예롭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였읍니다.
13. (ㄱ) 1935년부터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였다는 또 다른 어떠한 증거가 있었읍니까? (ㄴ) 남은 자들과 함께한 “큰 무리”는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에 관하여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참여하였읍니까?
13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였다는 어떠한 보이는 증거가 있었읍니까? 있었읍니다. 살아 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진실하게 찾는 “큰 무리”가 “왕같은 제사장들”인 비교적 소수의 남은 자들과 함께 연합하기 시작한 것을 볼 때 그러합니다. (베드로 전 2:9) 이 일이 1935년 봄 이후에 확실히 발생해 왔읍니다. 그 때(미국) ‘워싱톤 디. 시’에서 대회가 열렸읍니다. 그곳에서 5월 31일에 ‘왙취 타워’ 협회장이 “큰 무리”라는 제목으로 특별 강연을 하였읍니다. 이 연설은 「흠정역」 계시록 7:9-15에 근거해 있었읍니다. 다음 날 840명이 물 침례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상징하였읍니다. 그들 대부분의 침례 지망자들은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하의 지상 낙원을 바라는 “큰 무리”의 희망을 품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봉사자(미니스터)들로서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과 함께 호별 활동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함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그들 역시 ‘그들의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영광스럽게’ 하기 시작하였읍니다.
14. 대부분의 경우, 왕국 전파에 전 시간을 바칠 수 없지만 “큰 무리”는 자기들의 헌신과 상징적 침례로 인하여 어떠한 책임을 지게 됩니까?
14 지금까지 양과 같은 수십만의 사람들이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 편에 모여 왕국 봉사 직무(미니스트리)에 참여하였읍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다 전 시간 전도인이나 ‘펜실베이니아’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의 여행하는 대표자나 또는 동 협회의 지부 사무실의 직원의 자격으로 그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에 전 시간을 바칠 수 없읍니다. 세속적인 책임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 혹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세속적인 직장에서 일하는 데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을 물침례로 상징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봉사자(미니스터)가 되어 그분의 왕국 권익을 섬기는 것이 요구됩니다.
15. 그들은 자신들이 ‘고린도’에서의 사도 ‘바울’의 어떠한 입장과 같음을 알게 됩니까?
15 그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일년 반 동안 ‘고린도’에서 ‘유대’인 신자인 ‘아굴라’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였읍니다. (사도 18:1-11) 오늘날 일부 사람들은 ‘바울’을 당시의 “보통 봉사자(‘미니스터’)”로 구별할지 모릅니다.
16.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밀레도’에 머물렀을 때 ‘바울’은 자기 자신의 세속적인 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16 우리는 또한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소 ‘아시아’의 ‘밀레도’ 항구에 머물렀을 때 그가 한 말을 상기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을 보내어 ‘에베소’ 회중의 장로들 즉 감독자들을 불렀읍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사도 20:31-35.
17. (ㄱ) ‘바울’은 때때로 세속 직장에서 일함으로써 자기의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격하시켰읍니까? 아니면 그것에 대한 견해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성전에서 일하던 자들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바울’ 당시의 다른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일꾼-봉사자들이었는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17 ‘바울’은 임시 세속 직장에서 급료를 받는 일을 함으로써 왕국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격하시킨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듣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보수를 지불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마련을 하였읍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는 돈버는 직업이라는 비난을 전혀 받지 않고 실제로 자기 교육 사업을 수행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 9:13-18) 이 경우에 그는 “나는 나의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말한 바를 실제로 행하고 있었읍니다. (로마 11:13, 신세) 그가 자급(自給)하는 일꾼-봉사자(미니스터)였다는 사실은 그가 왕국 봉사에 순결한 비이기적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의 헌신한 그리스도인 동료들 대부분은 일꾼-봉사자(미니스터)들이었으며 그들 중 몇 사람은 비그리스도인 주인을 섬기는 종들로서 일하기까지 하였읍니다. (사도 18:1-4; 로마 16:3-5) 필요한 세속 직업은 왕국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격하시키지 않습니다. 그 이유로서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이스라엘’의 ‘모세’의 율법 언약 아래에서 ‘레위’인들이 ‘예루살렘’ 전에서 ‘예루살렘’의 연례 축제들 외에 반년마다 단지 일주일만 봉사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때는 나라 전체에 걸쳐 있는 ‘레위’인 성읍들에서 그들이 살았으며, 그곳에서 자기들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일하였읍니다. 이처럼하여 그들 역시 일꾼-봉사자들이었읍니다.
18. (ㄱ) ‘여호와의 증인’들 사이의 그러한 일꾼-봉사자들은 큰 ‘바벨론’의 봉사자(미니스터)들에게 부여되는 배려를 받기에 합당합니까? (ㄴ) 일꾼-봉사자들은 세속 고용인으로서 일하면서 어떻게 ‘자기들의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영광스럽게’ 합니까?
18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시간 대부분을 바쳐 세속 일을 할 필요가 있거나 책임이 있다고 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참된 봉사자(미니스터)들이 아니라거나 정부에서 큰 ‘바벨론’의 종교적 봉사자(미니스터)들에게 주는 모든 배려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꾼-봉사자들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권익을 다른 무엇보다도 앞세우고 있읍니다. 심지어 집집으로까지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기 때문에 그들은 실로 왕국 봉사자(미니스터)들이며 이 세상 정부들의 정치적 공직자들보다 낮은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들 일꾼-봉사자들은 세속 고용주들에게 직장에서 칭찬받을 특성을 나타냄으로 간접적으로 ‘자기들의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하나님께 영예를 돌립니다.
19. (ㄱ) 만일 환경이 변경되어 가능하게 된다면 일꾼-봉사자들은 자기의 능력을 다하여 어떻게 할 것입니까? (ㄴ) 왕국을 위하여 직접적으로 바치는 시간이 어떠하든 간에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 각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19 만일 일꾼-봉사자들에게 왕국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에 전 시간을 바쳐 참여할 수 있도록 환경이 변경된다면 그들은 두말할 나위없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기들의 능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수행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가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이미 설립된 왕국의 권익을 위하여 직접 전 시간을 바칠 수 있든지 아니면 그 일에 단지 일부의 시간만을 바칠 수 있든지 우리는 부단히 ‘우리의 봉사의 직무(미니스트리)를 영광스럽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