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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눈”이 필요하다파수대—1974 |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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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걱정’을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예수의 충고의 지혜를 인식한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 6:25, 26.
이것은 하나님의 종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거나 역경과 원수의 반대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잠언 24:16은 이렇게 말한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지느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러한 역경에 처하였을 때에 아무런 도움이 없이 버려지거나 완전히 버림을 받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잠언」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의인은] 다시 일어나[느니라.]” 문제를 극복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따라서 항상 여호와를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굳굳한 확신을 잃지 않을 것이다. (히브리 13:5) 그는 자기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정직한 수단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다른 헌신한 종들과 같이 용기를 가지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호와]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브리 13:6.
참으로 “순전한” 눈이 필요하다. 그것은 진정한 보호가 된다. “순전한” 눈은 재산을 획득하고자하는 욕망에서 그리고 생계에 대한 부당한 염려에서 시선을 돌리므로 몸의 기능은 더욱 가치있는 영적 재산을 얻는 데 계속 사용된다. 또한 하나님의 견지에서 모든 사물을 보는 사람은 타락한 육체의 일—‘더러움, 방종, 우상 숭배, 영매술, 적의, 투쟁, 질투, 분노, 다툼, 분열, 분파, 시기, 주정, 방탕함 등’—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갈라디아 5:19-21) 그것은 갈라디아서 5:16에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당신은 “순전한” 눈,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주시하는 눈, 사물을 순결한 방법으로 보는 눈을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 당신의 복지와 생명이 그것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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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하게 보낸 시간파수대—1974 |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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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하게 보낸 시간
●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참 숭배가 매우 귀중함을 인식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진정한 기쁨과 삶의 목적을 부여해 주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성서에 근거한 그들의 신앙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미네소타’ 주(미국)의 한 여호와의 증인의 예를 고려하여 보자. 어느날 밤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동력삽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날 밤에 일기가 매우 험악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트럭’ 안에서 몸을 덥히고 옷을 말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날 저녁 일하는 동안 대화는 종교에 대한 것으로 진행되었다. 자선 행위와 관련한 여호와의 증인의 일에 대한 동료의 질문에 대답하고 나서 증인은 가정 성서 연구 마련을 언급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자네도 그러한 혜택을 받아 보게. 전혀 돈이 들지 않고 또 자네 집에서 자네에게 편리한 시간에 연구할 수 있지.” 동료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생각을 해왔네. 언제 자네가 올 수 있겠나?”
성서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로 유익하게 시간을 보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그 동료와 그의 아내가 발전하여 마침내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증인으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얻도록 도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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