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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드라마’의 막후깨어라!—1978 | 6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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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시간 전에 불리운다. 첫 단계는 기초 화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부분을 강조하는 화장을 한다. 더러는 얼굴 모습을 바꾸지 않고 단지 멀리 눈에 띄게 하는 “직접” 화장만 하였다. 어떤 경우엔 특별한 분장을 받았다. 대부분 맡은 역에 어울릴 만큼 나이들어 보여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40세나 더 먹어 보이게 꾸미기도 했다. ‘산헤드린’ 성원들은 나쁜 인상을 더하기 위해 어두운 눈화장을 했다. ‘희랍’ 여인들은 짙은 ‘아이 새도우’와 ‘루우즈’를 사용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수염을 달았다. 이 수염들은 연극용 ‘크레프’ 모발로 만들어진 것인데, 진짜 수염처럼 보였다. 고무풀로 그것을 붙인 후에, 연기자의 머리색과 맞추기 위해서 ‘스프레이’를 사용하였다. 그 후 연기자들이 대회장 무대에 익숙해지도록 그곳 무대 위에서 간단한 연습이 있게 된다.
첫 공연일인 6월 21일은 찌는 듯이 무더운 날이었다. 그 다음 주 그곳에는 폭우가 내렸다. 그러나 공연은 두번 모두 성공리에 끝났다. 각 장면이 펼쳐질 때마다 열중하고 있는 청중의 호흡을 실제로 느낄 수 있었다. 몇번이고 청중은 박수 갈채로 응답했다. 그들은 ‘스데반’이 ‘산헤드린’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의분을 느꼈다. 그들은 ‘바울’이 돌에 맞았을 때 그가 나타낸 강인한 힘을 느꼈다. ‘바울’이 소녀에게서 악귀를 쫓아내고 절름발이를 걷게 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위력을 실감하였다. 지진이 일어나 ‘바울’과 ‘실라’가 결박에서 풀렸을 때의 장면은 그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바울’이 그의 훌륭한 벗인 ‘누가’와 ‘디모데’와 ‘마가’에게 작별 인사를 했을 때에는 그들도 슬픔을 금치 못했다.
연기자들 역시, 동일한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그들은 많은 시간과 온갖 정력을 소모하였지만, 일이 성공리에 완수됨으로써 오는 만족감을 누릴 수 있었다. 하나의 커다란 가족처럼 함께 일함으로써 그들은 협동, 인내, 겸손과 같은 그리스도인 성품을 배웠으며, 또한 그 ‘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참으로 격려가 되었다.
이러한 성서 ‘드라마’를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이용해 보라.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러한 ‘드라마’들은 해마다 ‘여호와의 증인’의 각 대회의 특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석해 보도록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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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믿음의 시험은 유익한가?깨어라!—1978 | 6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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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
왜 믿음의 시험은 유익한가?
하나님의 종들은 시험을 피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기록하였다. (디모데 후 3:12) 그러한 박해는 친구, 친척, 이웃, 단체 혹은 정부 당국 등으로부터 올 수 있다. 그러한 박해에는 생계 유지를 방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말이나 육체적인 학대도 포함될 수 있다. 그에 더하여 참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인류의 공통적인 문제들 즉 질병, 실망, 불공평, 비극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한 모든 시련을 통하여 사람의 믿음이 시험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시련을 통한 믿음의 시험에도 적극적인 부면들이 있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점을 지적하였다. “너희가 이제 여러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 전 1:6, 7) 그러므로 개인의 믿음이 시험받는 것은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과 같다. 연단 과정을 통하여 순수한 금이 분리되고 불순물이 제거된다. 시험이 있을 때 믿음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시험은 우리의 믿음이 진정한 것이며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를 계속 지탱해 주고 위안을 줄 만큼 강한 것인지를 밝혀준다. 예를 들어 홍수, 지진, 혹은 폭풍과 같은 사고나 천재지변 때문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과도하게 염려하여 영적인 것을 소홀히 하기 시작할지 모른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처럼 그들은 염려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할지 모른다. (마태 6:31) 반면에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과도하게 염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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