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교국이 생존할 수 없는 이유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예레미야 8:9, 10.
1. ‘예루살렘’이 평화 요소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세계의 3대 종교가 매우 중요시하는 도시, 오늘날의 ‘예루살렘’은 또 다시 세계적인 역할을 할 모양입니다. 이 도시가 과연 “평화의 왕”의 도시가 될 것입니까? 이 도시가 세계 평화를 이룩하는 데 필수 요소가 될 것입니까? 이러한 면에 있어서 이 도시는 종교적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고대 ‘예루살렘’도 그 도시의 유명한 여러 언덕 중의 하나인 ‘모리아’ 산 위에 세워진 영광스러운 성전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을 실망시켰기 때문입니다.
2. (ㄱ) 우리가 그리스도교국의 대변자들의 말을 듣는다면 무엇을 상실할 수 있읍니까? (ㄴ) 여호와께서 그리스도교국을 경고하기 위하여 누구를 일으키셨읍니까?
2 오늘날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실망으로 인도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끼지 않도록 합시다. 현대 ‘예루살렘’에 큰 희망을 걸고 있는 그리스도교국은 오랫동안 종교와 정치 문제에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해 왔읍니다. 그러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이 시기에 그 대변자들의 말을 듣는다면 우리가 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이 숭배한다고 주장하는 하나님의 틀림없는 말씀에 의하면 명목상의 그 그리스도교 제도는 멸망될 운명에 있읍니다. 예언자 ‘예레미야’ 당시 ‘예루살렘’이 그러했던 바와 같습니다. (예레미야 6:1-8) ‘예레미야’와 같이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에 의하여 그리스도교국 앞에 놓여져 있는 확실한 멸망이 충분히 경고되어 왔읍니다. 그렇습니다. ‘예레미야’ 당시의 ‘예루살렘’의 말기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름부음받은 증인들을 일으켜 현대 ‘예레미야’ 반열이 되게 하셨읍니다. (역대 하 36:15, 16)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회원들에게 이들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정기적으로 보내셨읍니다. 마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게 하신 것처럼 하셨읍니다. (예레미야 7:25, 13)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읍니다!
3. 그리스도교국의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은 이러한 경고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의 본을 따랐읍니까?
3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예언자들”과 “제사장들”은 청종(聽從)하기를 거절하였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양떼”가 교란되는 것을 원치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을 어기고 거짓 보증을 했읍니다. ‘예레미야’ 시대와 같았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시대와도 같았읍니다. (예레미야 5:20, 21; 마태 13:13-15; 사도 28:25-27) 우리도 그릇 인도받아 청종하기를 거절한 사람들과 같이 되기를 원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종교적 부적을 의뢰한 잘못
4, 5. (ㄱ)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어떠한 건물을 의뢰합니까? (ㄴ) ‘예레미야’는 자기 시대에 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운명하에 있는 종교 건물을 의뢰하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교회 성원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권유합니다. ‘예레미야’ 당시에도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저질렀읍니다. 우리는 그들의 본을 따르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 성전 문에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치라고 명령하셨읍니다.
5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예레미야 7:4-11.
6.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 때 ‘예루살렘’ 성전에 관한 ‘예레미야’의 표현을 사용하셨읍니까?
6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숭배를 이교 우상 숭배와 혼합시킨 자들이 가져다 둔 모든 더러운 것들을 성전에서 깨끗케 하는 권위를 받지 않았읍니다. (예레미야 7:30, 31) 그러나 그 성전이 멸망된지 630여년 후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번에 걸쳐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을 깨끗케 하신 일이 있읍니다. 그렇게 하실 때 예수께서는 ‘예레미야’의 표현을 사용하셨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태 21:12, 13; 또한 요한 2:15, 16 참조) 그 더럽혀진 성전은 기원 70년에 멸망되었읍니다.
7. (ㄱ) 그리스도교국의 종교가들은 그들의 숭배를 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종교 건물을 무엇이 되게 하고 있읍니까? (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엇이라고 부르며,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무엇이라고 부르실 것입니까?
7 특히 기원 1919년 이래 현대 ‘예레미야’ 반열은 그리스도교국의 더럽혀진 상태에 세상의 주의를 이끌어 왔읍니다. 교회 성원들은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는 이 제도에서 숭배하면서 동시에 그들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신들(‘바알’, 주들)에게 종교적 희생을 바칩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종교 건물을 “도적의 굴혈”로 만듭니다. (예레미야 7:9-11) 여호와께 가증한 이러한 모든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국의 종교가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술로만 봉사하면서 그분을 “주”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기 때문에 만사가 잘 되며 그들의 숭배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수락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부르심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마태 7:21-23.
8. 그리스도교국의 종교가들은 왜 그들의 종교 건물에 부적의 보호받는 생명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8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소식을 전해 준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리스도교국의 종교가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르는 그들의 “전”이 마치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재난을 당하는 것을 막아 주는 부적처럼 생각합니다. 그들은 명목상의 그리스도교 건물들을 가르키면서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7:4)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의 열 두 사도들에게로 소급하는 사도 계승의 계보를 만들어 놓고 사도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대영제국의 성공회는 “주교들”(성공회의 교직자들)과 관련하여 비슷한 주장을 합니다. 동방 정교회 총 대주교들은 열 두 사도들에게로 소급하는, 사도적 계승자들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의 총대주교의 끊어지지 않은 상상적 계승에 의존하고 있읍니다. ‘로마’의 교황권은 “이 반석”인 사도 ‘베드로’ 위에 세워져 있으므로 “지옥의 문들”이 이기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마태 16:18, 19, 듀웨이) 그리스도의 시대부터 계속되었다고 그와 같이 주장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이 멸절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해 주는 부적의 보호받는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9, 10. (ㄱ) 그리스도교국의 ‘부적의 보호받는 생명’을 의뢰하는 숭배자들에 관하여 어떠한 의문이 생깁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전을 의뢰하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라고 하셨읍니까?
9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교국의 ‘부적의 보호받는 생명’에 의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교국의 재난과 그것과 함께 멸망당하는 것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것입니까? 사도 ‘바울’은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임을 경고하고 나서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시오” 하고 부언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3:1-5, 새번역) 그러면 외형상으로 하나님께 바쳐졌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동시에 거짓 숭배와 세상적인 것으로 더럽혀져 있는 집이나 기관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종교에 대한 불쾌감을 나타내실 때 보호받을 보증이 되어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전”을 의뢰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라고 하셨읍니까? 들어 보십시오.
10 “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예루살렘’ 북쪽으로 약 32‘킬로미터’]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실로’에 행함 같이 너희가 의뢰하는바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 곧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내가 너희 모든 형제 곧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 같이 내 앞에서 너희를 쫓아내리라 하셨다 할찌니라.”—예레미야 7:12-15.
11.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감정에 충격을 준 어떤 일이 ‘실로’에서 일어났읍니까?
11 어린 예언자 ‘사무엘’ 시대에 ‘실로’에서 일어났던 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종교적 감정에 큰 충격을 주었읍니다. 그들은 ‘불레셋’에게 패배하는 것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거룩한 언약궤에 의뢰하였읍니다. 그래서 ‘실로’에 있는 성막 지성소에서 그 궤를 꺼내서 대제사장 ‘엘리’의 아들들인 법을 어기는 제사장들이 그것을 전쟁 마당으로 가지고 갔읍니다. 그러나 그 언약궤는 그들이 여호와의 법을 범한 결과를 당하는 것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았읍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그 궤는 이교 ‘불레셋’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고 ‘엘리’의 제사장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고 이 슬픈 소식을 들은 비둔한 대제사장 ‘엘리’는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 ‘블레셋’ 사람들의 압제하에 있게 되었고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는 재앙을 당한 우상 숭배자들인 ‘불레셋’이 나중에 돌려 보내기는 하였지만 결코 ‘실로’에 있는 성막으로 돌아오지는 못했읍니다.—사무엘 상 3:1부터 7:2.
12. 여호와께서는 한 때 은혜받은 ‘실로’를 대하신 것처럼 ‘예루살렘’과 ‘유다’ 땅을 어떻게 대하셨읍니까?
12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한 때 은혜받은 위치에 있던 ‘실로’에게 행한 것처럼 ‘예루살렘’에게도 행할 것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경고하셨읍니다. 그리하여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게 하셨읍니다. ‘솔로몬’ 왕이 지어 언약궤를 두게 한 전까지도 파괴되었읍니다. 그 언약궤는 모든 기록에서 사라졌고 오늘날 그것이 어디 있는지 조차 전혀 알 수 없읍니다. ‘실로’에 재난이 있은 후에도 ‘불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게 하였읍니다. 그러나 ‘바벨론’이 ‘예루살렘’과 그 전을 멸망시킨 후에는 그들은 생존한 ‘유대’인의 대부분을 멀리 떨어져 있는 ‘바벨론’으로 유배시켰읍니다. 뒤에 남은 소수의 ‘유대’인들은 공포에 질려 마침내 그 땅을 버리고 ‘애굽’으로 도망하였읍니다. 이렇게 해서 ‘유다’ 온 땅에는 거민이 없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는 언약을 깨뜨린 ‘유대’인들을 자기 면전에서 쫓아내셨읍니다!
13. 잘못 의뢰한 경우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13 오늘날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그리스도교국의 소멸로부터 구해 줄 종교적 부적의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에 의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국에게 멀지 않아 닥칠 “큰 환난”은 예수께서 “도적의 굴혈”이 된 ‘예루살렘’의 더렵혀진 전을 깨끗이 하신지 37년 후에 ‘예루살렘’과 그 전에 일어난 일보다 훨씬 더 심할 것입니다.—마태 24:1, 2, 21, 22.
신성한 종교의 오염
14. 우리는 왜 그리스도교국의 보존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해서는 안됩니까?
14 성서의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그러한 이상한 일이 그리스도교국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예루살렘’과 신성모독적인 전이 자기의 의로운 진노의 집행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셨읍니다. ‘예루살렘’의 현대적 실체인 그리스도교국은 개선될 수 없음이 증명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보내서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게 하셨는데도 그리스도교국은 용서받을 수 없는 악을 그대로 계속하고 있읍니다.—예레미야 7:18-26; 5:7-9.
15, 16. (ㄱ) 그리스도교국의 어떤 행실을 생각할 때 불쌍히 여겨서는 안됩니까? (ㄴ) 이에 대한 예로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 7:30, 31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5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의 멸망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관련된다고 해서 그리스도교국을 불쌍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께 큰 모독을 가져 왔읍니다.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하나님이 모든 인류보다 더 중요합니다. 수억에 달하는 교회 성원들과 함께 그리스도교국이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에 수치를 가져 왔으며 하나님의 경고와 생명을 구하는 그분의 충고를 선포하는 충실한 증인들을 박해해 왔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존하신 하나님의 이름보다도, 청종치 않고, 순종치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 더 동정심을 나타내야 하겠읍니까? 그들이 그리스도교국과 함께 멸망되는 것이 슬픈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현재 그들이 걷고 있는 수치스러운 종교적 행실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이러한 실례로서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1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힌놈’의 아들 골짜기[‘예루살렘’ 남쪽 성벽 밖]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어떻게?]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니라.”—예레미야 7:30, 31; 또한 레위 18:21; 20:2-5 참조.
17. (ㄱ) 인간 희생물과 그들을 바친 부모들, 어느 쪽을 불쌍히 여기는 것인지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ㄴ) 그러한 인간 희생에 대한 생각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입니까?
17 그러므로 이제 불쌍히 여기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누구를 더 불쌍히 여겨야 하겠읍니까? 여호와께 국문을 받을 우상 숭배적인 부모들에 대해서 입니까? 혹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세운 ‘도벳’ 사당에서 거짓 신 ‘몰렉’(왕)에게 인간 희생으로 바쳐질 때 울며 부르짖는 아들 딸들에 대해서 입니까? (예레미야 32:35) 어떻게 극악한 우상 신인 ‘몰렉’에 대한 이들 무정한 부모들의 이러한 숭배를 그 골짜기 바로 북쪽에 있는 성전에서의 숭배와 연관시킬 수 있겠읍니까? 그들이 그러한 산 인간을 거짓 신에게 희생으로 바치는 행위는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한 인간 희생의 생각은 그 당시 종교적으로 배도한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서 나온 것이며 결코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숭배를 여호와의 숭배와 혼합시키려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합당하겠읍니까?
18. 수적으로 볼 때, 옛날의 그러한 희생은 현재 한 세기도 안되는 기간에 그리스도교국에 의하여 바쳐진 희생과 어떻게 비교됩니까?
18 그 옛날에 배도한 ‘유다’ 자손들이 아들 딸들을 희생으로 바친 것은 그리스도교국이 여러 세기 동안 비그리스도교 신들에게 바친 인간 희생물에 비하면 무색할 정도입니다. ‘평화의 왕’의 보이는 왕국이라고 자처하면서도 그리스도교국은 수많은 아들 딸들을 ‘몰렉’ 즉 “왕”인 전쟁의 신에게 바쳤읍니다. 이제 일세기도 안되는 기간에 그리스도교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두개의 전쟁과 많은 소규모 전쟁에서 수천만명의 훌륭한 젊은 교회 성원들을 희생시켰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이것을 불경스럽게도 그리스도교라고 불렀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이러한 희생을 “최고의 희생”이라고 간주하며, 희생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계신 하늘로 들어가는 직행 여권을 얻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
19.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자기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9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게 권고하시는 희생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영감을 주시어 로마서 12:1, 2에 이렇게 기록케 하셨읍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러분의 이지력을 가진 거룩한 봉사, 신세]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리스도인이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사” 즉 희생으로 바친다는 것은 그가 자살을 해야 하거나 종교적 사제에게 가서 자기를 죽여 제단에 바쳐달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지력을 가진 거룩한 봉사”가 될 수 없읍니다. 그것은 전시(展示)의 목적으로 일부러 순교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봉사를 위하여 자기 희생적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생활함으로써 산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어떠한 희생을 바칠 수 있읍니까?
20 참 그리스도인은 계속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생활함으로써 하나님께 히브리서 13:15, 16에 언급된 희생을 바칠 수 있읍니다. “우리가 예수[하나님의 대제사장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21.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선민에게 동물 희생을 바치는 일보다도 먼저 무엇을 요구하셨으며, 그러므로 인간 희생에 대하여는 어떠하였읍니까?
21 그러므로 이러한 희생은 우리가 여호와께 대한 숭배를, 이 세상 거짓 신들에게 바치는 인간이나 동물 희생과 혼합시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2:8)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원하시는 기본적인 것은 순종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선민(選民)을 고대 ‘애굽’의 잔인한 압제에서 구출하셨을 때에 동물 희생이 가장 중요한 것인 것처럼 그것을 바치라고 하시지 않았읍니다.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예레미야 7:22, 23; 사무엘 상 15:22) 그러므로 만일 여호와께서 자기 선민에게 동물 희생을 명하지 않으셨다면 더우기 인간 희생을 원하시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바알’이나 ‘몰렉’에게 바치는 인간 희생은 “[그분의] 마음에 생각지도 아니한 일”이었읍니다.—예레미야 7:31.
22, 23. (ㄱ) 그리스도교국은 인간의 피를 흘린 그 놀라운 기록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을 들이지 못했읍니까? (ㄴ) 그리스도교국이 형벌을 받을 것인지의 여부를 알리는 어떠한 일이 고대 모형에 일어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22 그리스도교국은 인간이 피를 흘린 그 붉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은 그분께 바치지 못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성서의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부족하였읍니다. (미가 6:6-8)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교국은 하나님께 올바른 희생을 바치기 위하여 자기의 불순종의 길을 회개치 않았읍니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그리스도교국은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됩니까? 형벌을 받지 않을 것입니까? 그리스도교국의 고대 모형인 ‘예루살렘’은 합당한 형벌을 받았읍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23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날이 이르면 이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칭하지 아니하고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매장할 자리가 없도록 ‘도벳’에 장사함을 인함이니라.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기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겨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예레미야 7:32-34; 19:6-9.
24. 그 엄숙한 예언의 모형적 성취는 언제 일어났읍니까?
24 이 엄숙한 예언은 ‘요시야’ 왕 통치 기간에 성취되지 않았읍니다. ‘요시야’ 왕은 우상을 파괴하고 ‘몰렉’과 기타 악신들의 숭배에 바쳐진 곳들을 제거하였읍니다. (열왕 하 23:3-20) 기원전 607년에 ‘도벳’과 ‘힌놈’의 골짜기가 ‘유대’인들의 시체로 덮이고, 살을 먹는 새와 짐승들이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매장하는 무덤도 없는 죽음의 골짜기로 변하는 일이 일어났읍니다. 그 때 오랫 동안 포위되었던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함락되고 비참한 생존자들은 유배되고 그 도시는 황폐한 곳이 되었었읍니다. 70년간 ‘예루살렘’과 ‘유다’ 땅은 황폐되었던 것입니다.—역대 하 36:17-21.
25. 이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국은 ‘예레미야’의 어떠한 예언 성취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까?
25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유혈죄와 그가 가지고 있는 이교 습관, 인간이 만든 전통, 이교 철학과 성서의 가르침을 혼합시킨 것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국의 고대 모형이 당한 일보다 조금도 낫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예언 성취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풍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그 날에 나 여호와에게 살륙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슬퍼함을 받지 못하며 염습함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 (예레미야 25:32, 33) 그리스도교국은 결코 박두한 “큰 환난”을 생존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태 24:1, 2, 21, 22) 더우기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나머지 모든 부분도 뒤이어 멸망될 것입니다!
[13면 네모]
성서 ‘예레미야’ 예언서는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줍니다. 이 예언서는 또한 거짓 종교에 대한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대항하는 열국에 대한 그분의 심판 집행에 관하여 설명해 줍니다. 그 때는 가까왔읍니다! 그러므로 본 「파수대」지와 계속되는 본지에서 ‘예레미야’ 예언의 현대 성취에 관하여 논하는 것은 매우 시기에 적절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