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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여호와께 애정을 느끼는가?
    파수대—1983 | 2월 1일
    • 모욕을 무시했었던 것이다. 만일 이 젊은이에게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와의 따뜻하고 개인적인 관계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것은 억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가 그의 주인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에게 애정을 느끼는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베드로’가 그렇다고 대답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21:15-17) 우리가 여호와에게 애정을 느끼는 일도 그와 비슷하다. 그러한 애정은 하나님의 명령들을 지킴으로써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도록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것은 우리로 그분을 불쾌하게 하고 그분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하게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상기시킨 바와 같이, 만일 우리가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 일에서 물러선다면 그분은 결코 우리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히브리 10:38, 39)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사랑 많으신 하나님에게 참다운 따뜻한 애정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훨씬 더 나은가!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배양하도록 하자. 그분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선하심을 묵상함으로써, 꾸준히 기도함으로써 그리고 우리의 행실과 그분의 이름 및 왕국을 선포하는 우리의 열정적인 전도 봉사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 독자로부터의 질문
    파수대—1983 | 2월 1일
    • 독자로부터의 질문

      ◼ 마태 복음 16:4(새번역)에 언급된 “‘요나’의 표징”은 무엇이었는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표징을 보여달라는 요구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징을 구하나 ‘요나’의 표징 밖에는 다른 아무 표징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마태 16:1-4, 새번역.

      이들 종교 지도자들은 다니엘 7:13, 14의 잘못된 이해에 따른 그들의 기대에 근거하여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이기 전에 하늘로부터의 보이는 표징을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행하고 가르치신 놀라운 일들은 무시하고 메시야가 그들의 이미 고정된 견해들을 충족시킬 것을 요구하였읍니다. (요한 4:25-29, 42; 7:31; 9:30-33)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그들에게 보여줄 부가적인 “표징”은 “‘요나’의 표징”뿐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보다 여러 달 앞서 예수께서는 “‘요나’의 표징”을 언급하신 적이 있었읍니다. 그때 그분이 부가하셨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우리가 그분이 말씀하신 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태 12:38-40.

      ‘요나’는 그를 삼킨 큰 물고기 뱃속에 있는 동안 어떤 의미에서 ‘스올’ 즉 무덤에 있었읍니다. (요나 2:1, 2) 그러다가 그는 ‘니느웨’에서 예언하는 임명을 수행하기 위해 마치 부활된 것처럼 나왔읍니다. 훨씬 더 기적적이긴 하지만 예수도 그와 유사할 것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죽어 사흘 만에 죽은 자로부터 일으켜질 것임을 예언하셨읍니다. (마태 16:21; 20:17-19; 요한 2:19-21) 예수께서 사흘 만에 실제로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해냈고 이것은 그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켰읍니다. (요한 2:22; 고린도 전 15:3-8) 심지어 “‘요나’의 표징”과 그리스도인의 소식을 깨닫게 된 일부 ‘유대’ 제사장들까지도 “이 믿음에 복종”하게 되었읍니다. (사도 6:7, 난외주 참조)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확실히 소수였읍니다.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다니실 때 그분의 놀라운 일들과 가르침에 감명받지 못했던 대부분의 ‘유대’ 지도자들은 계속 똑같은 생각을 가졌읍니다. 그들은 “‘요나’의 표징” 즉 예수의 죽은 자로부터의 사흘 만의 부활을 거부하였읍니다.

      ◼ 때때로 청중에게 그리스도인 집회와 대회에서 노래와 기도를 하기 위해 일어설 것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래와 기도는 오랫동안 참 숭배의 일부가 되어 왔읍니다. (역대 상 16:7-9; 마태 26:26-30; 야고보 5:13, 14)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 집회나 대회에서 숭배의 정상적이고 중요한 부분입니다.

      많은 노래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나 찬양의 형태로 되어 있읍니다. 큰 집단이 노래와 기도를 하기 위해 연합하여 일어설 때, 그것은 그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여호와 앞으로 나아가면서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열왕 상 8:14, 22, 23.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께 기도나 노래로 찬양하는 일을 어떤 자세로도 행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누가 22:39-41; 사도 16:24, 25 비교)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한 아무런 규칙이 없읍니다. 만일 어떤 사람의 건강이나 환경상 회중적인 노래와 기도 중에 그를 앉아 있게 하는 것이 더 낫다면, 그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흔히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작은 회중 서적 연구와 가정 성서 연구 및 식사 시간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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