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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되려고 하지 말라파수대—1981 |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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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전체에 흐르고 있는 영은 고립과 그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들—무활동, 의사 소통의 부족 및 사랑의 결핍—에 상반한다. 성서는 적극적인 행동을 가르치고 고무한다. 성서는 그렇게 하라는 많은 행동 단어들을 사용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 주라’, ‘가서 제자를 삼으라’,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라’, 응답을 위해 ‘계속 두드리라’, ‘너희 이웃을 사랑하라’,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모이라’, ‘후대의 행로를 따르라’는 격려를 받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무기력, 자기 연민, 환영을 받지 못한다거나 쓸모 없다는 느낌을 없애준다. 그리스도교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동정심을 나타내고,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환영받고 있고, 쓸모 없다는 느낌이 아니라,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도록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베풀 때 우리는 천적 아버지로부터 풍부하게 받을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마태 6:1-4) 베푸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하여 고독감을 내쫓아 준다.
물론, 우리는 때때로 사적인 시간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느라고 바쁘셨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만드셨다. 침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소식을 듣고 그분은 “혼자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마태 14:13, 새번역) 항상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립은 기분을 전환시켜 주는 변화가 될 수 있으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마가 6:31; 3:20) 그들만의 시간이 그 때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가 혼자만의 시간에 의미 깊은 묵상에 잠긴다면, 우리의 믿음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한 묵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더 가까와지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그로 인해 감동을 받아,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기도로 표현하게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우리의 관계는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들은 일시적이어야 한다. 결코 우리는 은둔 생활을 하게 될 정도로까지 자신을 고립시키고자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요한 17:15 비교.
참으로, 고립된 생활을 피해야 할 건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참으로 해롭다. 고립은 그리스도인 활동, 교제 및 의사소통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적인 마련들을 온전히 이용하도록 하라. 그분의 말씀을 매일 읽으라. 기도를 등한히 하지 말라. 정신을 항상 건전한 생각들로 채우라. 귀중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의 정기적인 교제를 유지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가치 있는 일에 항상 부지런하고, 다른 면으로도 동료 인간들의 필요에 응하라.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에 고착하고 그분의 영에 순복하는 것은 당신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해 줄 것이다. (베드로 후 1:5-8) 결코 고립되려고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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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디아’인파수대—1981 |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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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구디아’인
그리스도의 지체의 성원으로서 육체적 구분이 그리스도인 신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로새 3:11) ‘스구디아’인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들은 아주 사나운 유목민들로서 매우 심한 야만인들로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의 힘을 통하여 그들까지도 과거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골로새 3:9, 10) 하나님의 영은 참으로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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