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 안에서의 왕의 결혼 잔치
“하늘 나라는 마치 이와 같다. 한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결혼 잔치를 베풀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청한 손님들을 오라 했으나 그들이 오지 않았다.”—마태 22:2, 3, 새번역.
1. 지금까지 육십년 동안 나라들에게 무엇이 선포되었으며, 이에 대한 그들의 태도가 자기들에게 유익이 될 것인지의 여부를 무슨 역사적 실례가 보여 줍니까?
온 세상은 곤경에 처해 있읍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세상 사물의 제도는 예언된 “마지막 때”를 당하고 있읍니다. 지난 육십년 동안 “천국” 곧 “하나님의 왕국”이 고난받는 인류를 위한 “유일한 희망”으로 땅의 방방곡곡에 선포되어 왔읍니다. 그러나 인류 대다수는 이 하나님의 구제책을 믿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천구백년 전에 “천국”이 제시되었을 때 그것을 원하지 않았던 한 민족과 같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건전한 것을 받기를 거절하였기 때문에 그 민족에게는 유익한 결과가 오지 않았읍니다. 그 민족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오늘날 “천국”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은 곤경에 처한 세상을 위한 이 “유일한 희망”보다 인간의 계획과 인간의 체제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을 것입니다.—다니엘 12:4; 마태 3:1, 2; 4:17; 마가 1:14, 15; 누가 6:20.
2.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구에게 “천국”이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그것은 어느 민족에게 주어지게 되어 있었읍니까?
2 오래 전에, ‘로마’ 제국이 중동을 다스리기 시작한 첫 세기에 “천국” 곧 “하나님의 왕국”이 그곳에서 선포되기 시작하였읍니다. 통용 기원 33년은 그 왕국 선포의 네째해였읍니다. 이 왕국은 ‘유대’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열띤 토론의 제목이 되었읍니다. 왕국에 관한 토론은 그 거룩한 도시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전에서도 있었읍니다. 왕국의 좋은 소식의 지도적 선포자는 토론 중에 고위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포함하여 그의 말을 듣던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의 나라[왕국]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마태 21:43-46) 그 말씀에 의하면, 당시 그 민족은 멀지 않아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기고, 하나님의 왕국의 다스림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열매를 맺는 신생 민족에게 주어질 것이었읍니다. 그분의 말씀은 참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한 때 은총을 받았던 그 민족은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왕국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3. 그것을 말씀하신 분은 그 예언적 말씀에 관계된 비유를 어떤 말로 시작하셨읍니까?
3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 예언적 말씀을 하신 분은 의미 심장한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그것을 설명하셨읍니다. 그 비유를 들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기록을 남겼는데 그는 이러한 말로 이 특별한 이야기를 시작하였읍니다. “예수께서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늘 나라는 마치 이와 같다. 한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결혼 잔치를 베풀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청한 손님들을 오라 했으나 그들이 오지 않았다.’”—마태 22:1-3, 새번역.
4.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한 임금”이 누구를 상징하는지 어떤 사실이 알려줍니까?
4 이 비유의 주인공은 “한 임금”이었읍니다. 그러면 그는 누구를 비유하였읍니까? 그는 하나님 자신을 비유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전체 비유는 ‘하늘 나라는 ··· 한 임금과 같’다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즉 어떤 반응이 따르는 어떤 행동을 취하는 데 있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 즉 “천국”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왕국”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계신 최고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바벨론’의 고대 통치자는 다음과 같이 언명된 목적을 위하여 굴욕적인 경험을 한 일이 있읍니다.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 하나님이 [하늘이, 난외주]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으리이다].” (다니엘 4:25, 26)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하나님을 가리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맹세하지 말찌니, ···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니라].” 바로 이 하늘에 계신 임금께, 이렇게 기도하라고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읍니다. “나라[왕국]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5:34, 35; 6:9, 10.
5. 천적 왕이 “결혼 잔치”를 마련하게 되는 그 “아들”은 누구이며, 이에 대한 증거는 무엇입니까?
5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임금 곧 왕은 하나의 아들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읍니다. 그러나 천적 왕 하나님께서는 수억의 영적 아들들을 가지고 계시는 데, 이들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리웁니다. (욥 38:7; 다니엘 7:9, 10)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아들은 이 많은 아들들 가운데 어느 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천적 가족 중 첫째가는 아들입니다. 천적 왕께서 “결혼 잔치”를 베푸는 것은 바로 이 가장 뛰어난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아들이 그 비유를 말씀하신 분인 예수 그리스도 자신임을 알려 줍니다. 예수에게 침례를 베푼 침례자 ‘요한’은 침례받은 예수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요한 3:28, 29) 또 다른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라].”—마태 25:1; 9:15.
6, 7. (ㄱ) 천적 왕의 이 아들이 맞을 “신부”는 누구입니까? (ㄴ) 에베소서 5:23-32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회중과의 관계를 무엇에 비하고 있읍니까?
6 신랑이 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예수께서도 왕이신 그의 천적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실 이 “신부”에 대하여 생각하고 말할 때 크게 기뻤을 것입니다. 물론 “신부”는 한 사람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와 반대로 “신부”는 복합적인 혹은 집합적인 사람, 충실하고 기름부음받은 그의 제자들의 전체 집단 혹은 회중입니다. 이것은 이상할 것이 없읍니다. 성서 예언에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내로 비유되어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 민족은 예언자 ‘모세’가 ‘아라비아’의 ‘시내’ 산에서 중재한 율법 언약을 받아들임으로 마치 그와 결혼 관계에 들어간 것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4:5; 예레미야 3:14; 31:31, 32)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과 그의 기름부음받은 회중과의 관계는 부부 관계에 비유됩니다. 이러한 기록과 같습니다.
7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에베소 5:23, 25, 32.
8.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천적 왕의 아들과 그의 “신부”와의 결혼은 이루어질 것입니까?
8 왕의 아들과 그의 상징적 “신부” 사이의 결혼은 “천국”과 관련하여 영의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충실한 회중이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의 기름부음받은 회중의 성원들은 약혼한 처녀와 같이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해야 합니다. 그들이 지상 행로를 마칠 때까지 처녀같은 충실성을 유지한 데 대한 상으로 그들은 부활되어 그의 천적 “신부”, 곧 신부같은 회중이 될 것이며, 영원히 천적 아버지이신 왕의 집에 거할 것입니다.—고린도 후 11:2, 3.
“잔치에 청한 손님들”
9. 예수의 비유에서 “결혼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왕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초대에 대해 호의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은 무엇을 나타낼 것입니까?
9 왕의 아들의 결혼 잔치에 초대한 것은 왕이 베푼 큰 은총이었읍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왕이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들은 그의 신민이었읍니다. 그는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는 그의 영토 내에서 그들이 사는 곳을 알고 있었으며, 그러므로 그는 잔치가 준비된 시간에 그의 종들을 그들의 주소에 보내서 그들에게 통지할 수 있었읍니다. 그들은 이미 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었읍니다. 잔치가 준비되었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이들 초대받은 사람들이 호의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왕에 대한 합당한 존경의 표시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비유 가운데서 “잔치에 청한 손님들”은 누구를 상징하였읍니까?
10. 비유를 말씀하시던 때에 여호와 하나님은 어느 민족의 왕이셨으며, 무슨 마련에 의하여 왕이 되셨읍니까?
10 왕 곧 임금은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므로, 그분이 왕으로서 그 때 다스린 사람들은 누구였읍니까? 예수께서는 바로 누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유대’ 민족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기원전 1513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모세’를 중보로 해서 ‘시내’ 산에서 그들을 그와의 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읍니다. 그들은 자진하여 이 언약 안에 들어와 율법을 지키기로 하였는 데, 그 율법의 기초는 유명한 십계명이었읍니다. (출애굽 19:1에서 24:8) 특히 이 언약의 마련에 의하여 여호와께서는 이 민족의 천적 왕이 되셨으며, 이것은 그들이 이제 그에게 복종하는 “백성”이 되었음을 의미하였읍니다. (신명 33:5) ‘이스라엘’인들은 이미 그들의 왕이신 그분께 찬양의 노래를 불렀었읍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홍해에서 죽지 않도록 구출하신 후,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고 노래하였던 것입니다.—출애굽 15:18.
11, 12. (ㄱ) ‘이스라엘’ 민족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지닌 백성이 되었읍니까? (ㄴ)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 민족의 이름으로 초대장을 보낼 수 있었읍니까?
11 이 천적 왕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신 분이며,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하나님이신 그분과의 율법 언약 안으로 들어옴으로써 그분의 이름을 지닌 백성이 되었읍니다. 그의 이름으로 그들이 일컬어졌읍니다. 중보 ‘모세’는 ‘이스라엘’ 언약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신명 28:9, 10) 여호와께서는 이 선민에게 예언자 ‘아모스’의 입을 통하여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노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아모스 3:2) 그 민족은 그분의 이름으로 식별되었을 뿐 아니라 그분은 그 민족을 이름으로 알고 계셨읍니다.
12 그 민족에게 그분은 예언자 ‘이사야’의 입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이사야 43:1) 그러므로, 만일 그분이 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거나 오랫동안 유효한 초대장을 주기로 하셨다면 그분은 그 민족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읍니다.
13. 어떻게 하여 천적 왕께서는 “잔치에 청한 손님들”의 주소를 알고 계셨으며, 이 사실은 누구의 탄생시에도 분명하였읍니까?
13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왕은 자기가 결혼 잔치에 초대한 사람들의 주소를 알고 있었읍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선민, 그의 초대를 받은 백성의 “주소”를 알고 계셨읍니다.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그분은 아셨읍니다. 그곳은 그분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이었으며, 그분은 충실하게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한 후에도 그들을 그 동일한 땅으로 복귀시키셨읍니다. 왕 여호와께서 아들 예수를 그 땅으로 보내신 것은 실책이 아니었읍니다. ‘아브라함’과 ‘다윗’ 왕의 자손인 예수께서 기원전 2년 가을에 ‘유대’ 도 ‘베들레헴’ 시에서 탄생한 것은 실수도 우연도 아니었읍니다. 여러 세기 전에 예언자 ‘미가’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이 기적의 출생이 있을 주소를 예언하셨읍니다.—미가 5:2.
14. ‘초대받은 자들’에게 초대를 행한 것은 통지하는 사자들이 그들을 찾아갔을 때가 처음이었읍니까? 통지는 초대와 어떤 관계가 있었읍니까?
14 예수의 비유의 성취에서 왕 여호와께서는 “잔치에 청한 손님들”의 주소 곧 주거지를 아셨읍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분은 결혼 잔치가 준비되었을 때, 이전에 초대했던 사람들에게, 준비가 완료되었으니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오라고 통지할 사자들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아셨읍니다. 잔치 초대는 통지하는 사자들이 그들의 집에 찾아가서 지금 잔치가 준비되었으니 즉시 와야 한다고 말하였을 때 처음으로 그들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한 초청은 단순히 보충적인 것이었지 최초의 초대가 아니었읍니다. 그러면 그들은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이미 ‘청함’ 즉 최초의 초청을 받았읍니까?
15. (ㄱ) 어느 해에 “결혼 잔치”에 대한 초대를 하였으며, 누구에게 하셨읍니까? (ㄴ) 그 경우에, 초대는 어디에, 어떤 조건에 포함되어 있었읍니까?
15 사실 이것은 기원전 1513년이었으며, 왕이신 하나님의 행동으로써, 즉 그분이 중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율법 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하심으로써 초대가 이루어졌읍니다. 최초의 초청 혹은 ‘초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한 것이지 개개인에게 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왜냐 하면, 개인이 아니라 그 민족이 왕의 “혼인 잔치”가 준비되고 장만될 때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최초의 초청 혹은 ‘초대’는 여호와 하나님과의 율법 언약 안으로 들어와 그것을 지킬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는 유익을 제시한 하나님의 언약 조건에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언약을 제의하실 때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지시하셨읍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 19:1-6.
16. (ㄱ) 무엇을 기초로 ‘이스라엘’ 민족과 언약이 맺어졌으며, 어떻게 맺어졌읍니까? (ㄴ) 그 언약에 내포된 의무와 초대는 누구에게 미쳤으며, 언제까지 그러하였읍니까?
16 이렇게 하여 왕국 전망, “제사장 나라”가 될 기회, 아니 초대가 ‘이스라엘’ 민족 앞에 제시되었읍니다. 그러한 제사장 왕국은 나머지 온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의 종 역할을 할 것이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천적 왕의 초대를 받아 들였읍니다. 따라서,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중보 ‘모세’가 행한 희생으로 ‘이스라엘’ 민족과 율법 언약을 맺으셨읍니다. (출애굽 19:7, 8; 24:1-12) 그 ‘모세’의 율법 언약의 의무와 “제사장 나라”가 되라는 초대는 통용 기원 1세기에 살던 ‘이스라엘’인들의 육적 후손에게까지 미쳤읍니다. (로마 9:4, 5; 사도 3:25, 26) 기원 제1세기의 그 육적 후손들은 “청함을 받은” 민족이었으므로,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침례자 ‘요한’을 일으켜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고 전파하도록 보내심으로써 그의 언약 조건과 일치하게 행동하셨읍니다.—마태 3:1, 2.
17. (ㄱ) 왕의 아들의 “결혼 잔치”는 어떻게 하여 한 왕국과 관련이 있읍니까? (ㄴ) 영원하신 아버지의 “신부”를 구성하는 자들은 또 어떤 기능으로 봉사할 것입니까?
17 그러나 “제사장 나라”는 아들을 위한 왕의 결혼 잔치와 무슨 관계가 있읍니까? 그 두 가지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유의 서두에서 이렇게 암시하셨읍니다. “하늘 나라는 마치 이와 같다. 한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결혼 잔치를 베풀었다.” (마태 22:1, 2, 새번역) 물론 왕의 아들과 결혼한 “신부”는 왕자비가 될 것이며 보통은 후에 왕비가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케 하시는 “신부”는 충실한 제자들로 된 그의 기름부음받은 회중입니다. 하늘에서 이들 충실한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은 구원받은 인류에게 “영원하신 아버지”가 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신부” 이상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또한 왕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온 인류를 다스리도록 임명하시는 왕국에서 천적 신랑과 함께 공동 후사가 될 것입니다.
18.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그리고 마지막 유월절 밤에 어떻게 제자들 앞에 왕국 희망을 제시하셨읍니까?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참 제자들 앞에 계속 이 왕국 희망을 두셨읍니다. 그는 산상 수훈에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 5:3, 10; 6:32, 33)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의 충실한 사도들과 지낸 마지막 유월절 밤에 주의 만찬을 제정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누가 22:23-30.
19. 왜 왕자는 왕국이 없이 계속 왕자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며, 신부 회중은 어떻게 하여 그분과 함께 참여합니까?
1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회중은 그와 함께 할 것이며, 그들은 천적 왕국에서 그의 공동 후사들이 되고 그분은 그들의 신랑이며 머리가 되실 것입니다. 그는 ‘살렘’ 왕이며 지존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던, 따라서 왕겸 제사장이었던 고대 ‘멜기세덱’과 같은 통치자가 될 것입니다. (창세 14:18-20; 시 110:1-4; 히브리 5:5, 6; 6:20에서 7:28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대제사장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신부 회중은 제사장보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참 그리스도인 회중은 “제사장 나라”가 됩니다. 이 회중에게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 전 2:9)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왕국없이 왕자로 머물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에게 인류를 다스릴 특별한 왕국을 주시며 그의 신부 반열은 그와 함께 이 메시야 왕국에 참여합니다.—로마 8:16, 17.
“잔치에 청한 손님들”의 태도
20. (ㄱ) 결혼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세대임을 알리는 통지를 받았을 때 그 세대는 어떠한 질문을 받게 되었읍니까? (ㄴ)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응할 것인가에 대해 어떤 질문이 생깁니까?
20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율법 언약 안으로 인도되어 놀라운 특권과 ‘초대’를 받았읍니다. 그들의 하나님, 왕 여호와께서 마련하신 “결혼 잔치”에 대하여 그들은 ‘초대받은’ 민족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는 데는 조건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이 생깁니다. 왕의 초대에 따라 행동하고 결혼 축연에 들어갈 기회를 가진 세대가 바로 그 세대라는 것을 통지하였을 때 그 민족의 태도는 어떠할 것인가? 결혼 연회장 내에 있는 자리 혹은 좌석 수만큼 그 민족의 많은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응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비유에 의하면 왕은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였고 초대받은 사람들이 잔치상에 기대앉을 수 있는 많은 좌석이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21. 언제 천적 왕은 “종들”을 보내어 ‘초대받은’ 자들에게 잔치가 준비되었음을 통고하기 시작하였읍니까?
21 비유의 성취에서, 왕이신 하나님께서 “종들”을 보내어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결혼 잔치”의 때가 되었으니 즉시 와야 한다고 통지하신 것은 언제였읍니까? 이것은 예수께서 물 침례를 받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어 메시야 왕이 되신 후였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 광야에서 사십일을 보내고 돌아오셨을 때, 침례자 ‘요한’은 그를 지적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요한’은 예수를 죄의 형벌로부터 인류 세상을 구하기 위하여 희생될 상징적 어린 양이라고 밝혔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였읍니다. 그 직후 기름부음받은 예수께서는 메시야이신 자기를 따르는 몇명의 사람들과 함께 전파 사업을 시작하셨읍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인 ‘안드레’는 자기 형제 ‘시몬’을 만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하고 말하였읍니다. (요한 1:26에서 2:2까지)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연합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셨읍니다.
22. 첫째 통지 기간은 얼마나 계속되었으며, 그 때에 통지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읍니까?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가르치고 전파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그의 ‘유대’인 제자들을 보내어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자기와 함께 전파하도록 하셨읍니다. (마태 10:1-7; 누가 9:1-6; 10:1-9) 이러한 방법으로 천적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율법 언약 하에 있는 그의 “종들”을 보내어 첫째 통지를 하게 하셨읍니다. 이 일은 기원 29년 가을에서부터 기원 33년 봄까지 약 3년 반 동안 계속하였읍니다. 이들 “종들”은 단지 ‘초대 받은 사람들’에게만 보내어졌읍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 나라”가 될 기회를 받은 ‘모세’의 율법 언약 하의 ‘유대’ 민족에게만 보내어졌읍니다. 예수께서는 ‘초대받은 사람들’을 인정하여, 때가 되었다고 선포하도록 보내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그리고 자신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태 10:5, 6; 15:24.
23. 예수께서는 그때가 첫째 부름을 위한 적절한 때였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그러나 그의 비유는 초대받은 사람들의 태도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23 그 때는 이 처음 통지 사업에 합당한 때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집”에게, 하나님의 이러한 시간 지정을 상기시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 1:15) 그러나 천적 왕의 “종들”이 전국적으로 전파한 결과 그 민족 전체는 회개하고 전환하여 왕의 아들을 왕가의 메시야로 받아들였읍니까? 예수께서 이 첫째 부름에 대한 반응이 어떠하였는지를 설명하신 때는 이 첫째 부름의 통지가 거의 끝날 때였읍니다. 그분은 비유 가운데서 “그들이 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24.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고집은 어떠하였으며, 무슨 사건을 계기로 첫째 부름은 끝났읍니까?
24 그렇습니다. 민족적인 전환 즉 민족 전체가 왕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왕가의 “결혼 잔치”의 주인공인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일은 없었읍니다. 그들은 매우 고집 세게 싫어하였으며 ‘로마’ 총독 ‘빌라도’를 설득시켜 기원 33년 유월절에 그를 처형케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죽으셨읍니다. (요한 1:29, 36) 그분이 완전한 인간 희생으로 죽으신 결과로 왕의 진정한 “결혼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영속적인 유익이 오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 희생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개인적으로 통지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은 끝났읍니다. 이렇게 해서 “청함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첫째 부름은 끝났읍니다.
25. (ㄱ) 결혼 잔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그때에 실패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왜 하나님께서는 율법 언약에 따라 본래 “청함을 받은” 자들을 계속 인정하셨읍니까?
25 다음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왕의 ‘아들을 위한 결혼 잔치’ 준비는 완전히 헛 것으로 돌아갔읍니까? 그것은 이제 실패의 운명에 처하여 있었읍니까? 왕이신 하나님의 목적에 의하면 그렇지 않았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충실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시고 하늘의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왕자로 높이셨읍니다. (사도 2:32-36; 시 110:1, 2; 마태 22:41-45)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어전에서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의 인간 희생의 가치를 바치셨으며, 이로써 인간 이하의 동물 희생으로 맺은 ‘모세’의 율법 언약이 끝났읍니다. 이와 같이 율법 언약을 말소하고 중보 예수 그리스도와 새 언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율법 언약에 따라 ‘결혼 잔치에 청한 손님들’을 자비롭게 인정하셨읍니다. 그분이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이 육적으로 타고난 “‘이스라엘’ 집”이며, 하나님의 벗이자 충실한 족장이었던 ‘아브라함’의 선천적이고 육적인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다니엘 9:24, 27.
“청함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두번째 통지
26.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초대받은 자들에게 모든 좌석을 독점할 수 있도록 두번째 통지가 있을 것을 어떻게 시사하셨읍니까?
26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들의 민족에 대하여 격노하실 이유가 있었지만 그분은 의도된 그 ‘아들을 위한 결혼 잔치’에서 그 민족이 모든 좌석을 독점할 기회를 더 주셨읍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두번째이자 마지막 통지를 보내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초대받은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그 넓은 자비를 지적하여 승천하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그후 처음으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 1:8.
27. 두번째 통지에 대한 초대받은 자들의 반응이 어떠할 것인지를 예수께서는 어떻게 설명하셨읍니까?
27 이 두번째 통지에 대한 그 민족 전반의 반응이 어떠할 것인지를 예수께서는 그의 비유 가운데서 이러한 말로 예언하셨읍니다. “그래서 다시 [왕이]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청함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치가 준비되었고 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시요 하고 말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그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자기 밭에 가고 한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폭행하고 죽였다.”—마태 22:4-6, 새번역.
28. 두번째 통지는 언제 시작되었으며, 초대받은 민족이 통지를 받고 있음을 ‘유대’ 최고 법원은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28 예수의 비유의 이 부분은 기원 33년 오순절에 시작되었읍니다. 그 때에 기다리고 있던 예수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졌으며,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과 할례받은 ‘유대’교 개종자들에게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지상 도처에서 몇 십만명의 축하객들이 ‘예루살렘’에 왔는지를 영감받은 기록은 알려 주지 않습니다. 수천명의 축하객들이 부활되신 예수 메시야에 관한 좋은 소식을 듣기 시작하였읍니다. 오래지 않아 ‘유대’ 최고 법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사도 5:27, 28) 의심할 여지 없이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민족은 통지를 받고 있었으며 이번이 두번째였읍니다.
29. 왕의 두번째 부름에 대하여 초대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응하였으며, 이에 대한 예수의 비유가 옳았음을 무슨 기록이 알려줍니까?
29 이제 준비된 “결혼 잔치”에의 초대를 천적 왕께서 두번째로 상기시켰을 때 그 민족의 대부분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읍니까? 그들은 왕을 모욕하였고 그의 결혼하는 아들을 경멸하였읍니다. 즉 그들은 왕의 아들을 위한 결혼 잔치에 참석함으로써 왕에게 영예를 돌리지 않고 물질적인 이익에 더욱 개인적인 관심을 보였읍니다! 그들은 심지어 왕의 순종적인 “종들” 곧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의 그리스도인 전파자들을 공공연히 살해하기까지 하였읍니다. 사도 행전 3장에서 9장까지 읽어 보면 이 점에 관한 예수의 비유가 참으로 옳았음을 알리는 역사 기록에 접하게 됩니다.
30, 31. (ㄱ) 두번째 통지는 언제 끝났읍니까? (ㄴ) 비유에서, 두번째 통지를 배척하자 왕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30 그러므로 분명코,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두번째로 통지하는 일은 끝났으며, 예언에 의하면 끝나야 되었읍니다. 그 일은 기원 36년, 즉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순교하신 지 3년 반 후에 끝났읍니다. 어떻게 끝났읍니까? 예수의 비유가 설명해 줍니다. 천적 왕의 초대를 불충분하게 거절하기 때문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민족에게 임할 형벌을 지적하여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31 “그래서 임금은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종들에게 말했다: ‘결혼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마땅하지 않으니 너희는 큰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라.’ 그래서 종들이 큰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잔치 자리는 손님으로 가득찼다.”—마태 22:7-10, 새번역.
32. 예수께서 비유를 설명하신 말의 순서는, 그가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도시를 멸하기까지는 그 이상의 결혼 잔치 마련을 하지 않고 연기하셨다는 뜻입니까?
32 예수께서 비유를 자세히 설명하신 말의 순서를 보고, 왕의 결혼 잔치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전에 인식이 없는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 그의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살라 버렸다”고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천적 왕 여호와 하나님께서 통용기원 70년말까지는 결혼 잔치에 아무나 모아 오도록 그의 종들을 보내시지 않았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바로 기원 70년 여름에 ‘예루살렘’은 ‘로마’ 황제 ‘베스파시안’의 아들 ‘티투스’ 장군 휘하의 ‘로마’ 군대에 의하여 철저히 멸망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과연 그 “살인자들”은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플라비우스 요세퍼스’의 보고에 의하면 1,100,000명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이 당한 포위 공격과 멸망에서 죽었으며 97,000명이 포로로 잡혀가 노예 신세가 되었읍니다.—누가 21:20-24; 19:41-44.
[152면 삽화]
예수께서는, 결혼 잔치를 배설한 한 왕에 관한 비유에서, 하늘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얼마는 그곳에 가지 못할 것임을 설명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