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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역사에 불과한가? 아니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가?파수대—1984 |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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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러한 말씀은 이 “세상 끝”을 특징 짓는 복합적 표징의 일부이다. 이 잡지에서 자주 밝혀온 바와 같이, 1914년 이래 이 예언은 거대한 규모로 성취되어 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1914년의 세대에 관해 매우 의미 심장한 점을 부가하셨다.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마태 24:3; 누가 21:29-32.
어떻게 이러한 말씀이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는 1914년 세대에게 적용되는가? 무슨 사건들을 고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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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지나가지 않을 세대파수대—1984 |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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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지나가지 않을 세대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마태 24:34) 그러면 “세대”라는 단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역사 교수 ‘로버트 오울’은 그의 저서 「1914년 세대」(The Generation of 1914)에서, 특이한 정의를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역사에서 세대란 역사의 연대적 한계나 경계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기간의 연대가 아니다. ··· 그것은 한 가지 경험이나 일련의 경험을 구심점으로 하는 자장 범위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 ··· 세대 의식의 형성에 있어 필수적인 것은 과거는 끝장났다는 기분을 주는 상당히 공통적인 준거 기준이다. ··· 이러한 준거 기준은 언제나 전쟁, 혁명, 전염병, 기근 및 경제 공황과 같은 중대한 역사적 사건들에서 비롯하게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1914-18년의 대전과 그 여파는 확실히 하나의 세대를 특징짓는 “준거 기준”을 형성하였다. ‘오울’ 교수가 논평한 바와 같이 제1차 세계 대전은 “과거는 끝장났다는 압도적인 기분”을 초래하였다. “그 전쟁을 살아서 통과한 사람들은 1914년 8월에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신념을 결코 지워버릴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여러 차례 “세대”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 그러면 그분이 말씀하신 ‘지나가지 않을 세대’란 무엇을 의미하였는가? 어떤 사람들은 “세대”가 30, 40, 70 혹은 심지어 120년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세대는 실제로는 정해진 햇수가 아니라 사람들 및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
성서에서 “세대”라고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왔다. “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 ··· 이와 관련하여 동 시대, 같은 연령의 사람들의 무리라는 의미가 있음”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전체 총수, 확대되어 특정한 시기의 세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 즉 동 시대 사람들을 포함함” (‘월터 바우어’편 「신약 희영 사전」[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제5판, 1958년) 이러한 정의들은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즈음하여 태어난 사람들과 그 시기에 살아 있는 사람들 전부를 포괄한다.
만일 예수께서 “세대”를 그런 의미로 사용하셨고 그것을 1914년에 적용시킨다면, 그 세대의 갓난 아기들은 현재 70세이거나 그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1914년에 살아 있던 다른 사람들은 현재 80대나 90대이며, 100세에 달한 사람들도 소수 있다. 아직도 수백만명의 그 세대 사람들이 살아 있다. 그들이 모두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룰 것이다.—누가 21:32.
1914년 이래 우리는 이미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및 다른 여러 가지 주요 분쟁들과 함께 기근, 지진, 온역 및 그와 비슷한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누가 21:10, 11)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24:34) 그러므로, 당신은 이러한 질문을 할지 모른다. 1914년의 세대가 목격해야 할 다른 어떤 주요 사건들이 남아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이 그 세대를 위해 남아 있는 기간 내에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가?
다음에 일어날 일은 무엇인가?
특히 1919년 이래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계적인 반대에 직면해서도 괄목할 만한 규모로 다음과 같은 예수의 예언을 성취시켜 왔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 24:14) 그렇다. 그 일은 끝이 오기 전에 여호와께서 만족하실 정도로 완수되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다른 어떤 사건들이 1914년 세대를 위해 남아 있는 기간 내에 일어나게 되어 있는가? 성서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인 ‘아마겟돈’에서 절정을 이룰 “큰 환난”으로 인도하며 그 환난의 일부를 이룰 특정한 주요 사태 진전들을 명백히 알려 준다. (마태 24:21; 계시 16:14, 16) 이러한 사태 진전이 무엇인지를 알고 너무 늦기 전에 필요한 보호책을 취하는 것은 긴급한 일이다.—스바냐 2:3.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태 진전 중의 하나를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 멸망이 홀연히[즉각, 신세] 저희에게 이르리[라.]” 이 예언은, 현 사물의 제도의 끝이 오기 바로 전에 국제 연합에 의해서이든 독단적으로 정치 및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이든 간에 어떤 이례적인 방법으로 “평안하다, 안전다는”는 선언이 있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 준다. 그 선언에 뒤이어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 ‘바울’은 ‘그때에 멸망이 즉각 저희에게 이를 것’이라고 하였다.—데살로니가 전 5:2, 3, 신세 참조.
종교가 문제가 되는가?
그러한 멸망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당신은 세상의 많은 종교들 가운데 하나에 속해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종교들을 어떻게 보시는지 아는가? 그러한 종교들의 장래는 어떠한가?
영감받은 사도 ‘요한’은 “큰 ‘바벨론’”이라는 이름을 지닌 “큰 음녀”라는 상징적 표현 아래, 정치 권력을 휘두르는 “땅의 임금들”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여러 세기 동안 유익을 받아온 한 제도를 묘사하였다. 이 “음녀”는 또한 “상고들” 즉 세상의 상업적인 요소와의 관계로부터도 유익을 얻어 왔다. 또한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도 지배해 온 이 제도는 무엇인가? 바로 거짓 종교이다!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의 관점에서 거짓된 종교는 모두 사실상 세계 제국인 이 “큰 음녀”를 구성한다. 그러면 그 음녀의 가까운 장래에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계시 17:1-8, 15; 18:15-17.
계시록 17:16은 국제 연합(“붉은 빛 짐승”) 내의 급진적인 정치 요소들이 종교적인 음녀를 미워하여 황폐시킬 것임을 알려 준다. 이미, UN 내의 강력한 무신적 및 반종교적 요소들이 그들의 영역 내의 종교를 말살시킬 조치들을 취해 왔다. 그러나 가까운 장래에 이러한 정치 요소들은 그리스도교국뿐 아니라 다른 큰 종교 제도들도 황폐시키는 더욱 격렬한 조처를 취하게 되어 있다. 논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또한 하나님의 왕국을 충실하게 선포하는 ‘여호와의 증인’들도 공격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을 공격하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며, 보복 곧 하나님의 ‘아마겟돈’ 전쟁을 유발할 것이다!—계시 17:3, 12-16; 16:14-16; 에스겔 38:10-12, 18-23; 스가랴 2:8.
충분한 시간이 있는가?
순수한 인간의 견지에서는, 이러한 사태 진전이 1914년 세대가 무대에서 사라지기 전에 일어나기가 어려울 것같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1914년 세대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예언된 사건들의 성취는 비교적 더딘 인간의 조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이[1914년]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는 것이다. (누가 21:32) 그리고 영감받은 틀림없는 예언의 근원이신 여호와께서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자기 아들의 말을 성취시키실 것이다.—이사야 46:9, 10; 55:10, 11.
인간의 불신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성서 예언이 성취된 예들이 과거 있었는가? 있었다. 우리는 그러한 예들 중 하나를 간단히 살펴볼 수 있다. 기원 33년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그 성전에 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셨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누가 21:6, 20.
33년 후에, ‘세스티우스 갈루스’ 휘하의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승리를 눈 앞에 두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게도 ‘갈루스’ 장군은 그의 군대에게 퇴각을 명하였다. 그 결과, 일부 ‘유대’인들은 분명히 그들의 거룩한 도시는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4년 후에, ‘티투스’ 휘하의 ‘로마’군이 다시 와서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멸망시켰다.
그리하여 예수의 예언은 아주 세부점에 이르기까지 적중하였다. ‘G. A. 윌리엄슨’이 ‘요세퍼스’의 「‘유대’인의 전쟁」(The Jewish War)에 대한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다. “만일 우리에게 복음서 외에 다른 자료의 근원이 전혀 없다면 우리는 예수의 경고가 과장된 [지나친] 말로 표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도록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 그 튼튼한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지는 것이 가능하였겠는가? 그것은 과연 가능하였으며,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 멸망은 철저하고 완벽하였다. ··· 비극적인 이야기 전체가 이미 놀라우리 만큼 정확하게 예언되어 있었다.”
‘예루살렘’에 관한 예수의 예언이 기원 33년 세대의 생존 기간 내에 성취된 것처럼, “마지막 때”에 관한 그분의 예언들도 1914년 세대의 생존 기간 내에 성취될 것이다. (다니엘 12:4) 이것은 그 세대뿐만 아니라 오늘날 살아 있는 사람들 모두 앞에 놀라운 전망이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또한 그 세대에게 영향을 미칠 의미 심장한 사건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왕국, 신세]가 가까운 줄을 알라.”—누가 21:28, 31.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왔다는 것은 현재의 분열되어 있는 정치, 종교 및 상업 제도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순종하는 인류를 위한 의로운 새 정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이러한 마련 아래서의 영원한 생명을 택할 수 있다. (베드로 후 3:13; 요한 17:3) 그렇다. 당신은 지나가지 않을 세대인 1914년 세대의 생존자들과 함께 살아서 이 약속된 새 질서를 볼 수 있다.
[5면 삽화]
“1914년 8월에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되었다”
[6면 삽화]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를 것이다’
[7면 삽화]
당신은, 1914년 세대의 생존자들과 함께 살아서 새 질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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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을 유지하라—어떻게?파수대—1984 |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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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을 유지하라—어떻게?
큰 건축 회사에서 다년간 중역으로 일하던, ‘케니드’는 갑자기 실직하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회사를 시작해 보려고 하고 있어 때때로 장시간 일을 하고 있다. “상당히 긴장이 됩니다”라고 그는 시인한다. 가정 생활 및 사업상의 일들과 회중적 책임들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데이빗’은 새로운 생활 방식과 새로 태어난 아기로 말미암은 상황에 대처하려고 애쓰고 있다. ‘뉴우요오크’ 시에서 여러 해 사무직 일을 하던 그는 자신의 작은 가족과 함께 시골로 이사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인 장로 겸 ‘파이오니아’ 봉사자(전 시간 왕국 선포자)로 섬기면서 장사를 배우느라 고투하고 있다.
‘빌’은 이미 그의 두 자녀가 하고 있는 것처럼, ‘파이오니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출을 줄이기 위해 여러 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는 여러 달 동안 그 지방 회중의 새 왕국회관의 일을 돌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가 지불해야 할 청구서는 다시 늘어났다. “내가 ‘파이오니아’를 한다는 게 자꾸 요원해지는 것만 같습니다”라고 그는 서운한 듯이 말한다. “좌절감을 느낍니다.”
도처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이들과 그들의 가족은 “처신하기 어려운 위험한 때”인 이 “마지막 날”에 영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디모데 후 3:1, 신세) 이들 그리스도인의 문제들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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