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청지기, 사려깊은 자는 과연 누구인가?’
“주인이 ··· [자기의 일단의 수종자들] 위에 임명하실 충실한 청지기, 사려깊은 자는 과연 누구이겠읍니까?”—누가 12:42, 신세.
1. 우리 앞에 얼마나 오래 된 질문이 있으며, 그 대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무엇을 얻지 못하고 있읍니까?
위의 질문은 1,900년 이상이나 되었읍니다. 오늘날 수십만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 대답을 발견하였다고 믿습니다. 그 대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영원한 미래에 영향을 끼칠 유익을 얻지 못하고 있읍니다. 그 질문은 이러합니다. “주인이 적절한 때에 자기의 일단의 수종자들에게 일정한 양식을 계속 공급하기 위하여 그들 위에 임명하실 충실한 청지기, 사려깊은 자는 과연 누구이겠읍니까?”—누가 12:42, 신세.
2. (ㄱ) 그 질문은 언제 처음으로, 누구에 의하여 제기되었읍니까? (ㄴ) 그 질문은 누구에게 제기되어야 하며,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 질문은 중동의 ‘이스라엘’ 땅에서 처음 제기되었읍니다. 때는 통용 기원 32년, ‘이스라엘’인의 가을 장막절과 초겨울 ‘예루살렘’의 재건된 전의 수전절 사이였읍니다. 그 질문을 제기하신 분은 세계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질문은 그리스도교국에게 특별히 제기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국은 그분을 “주”라고 부르며 그분의 제자들로 온전히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3, 4. (ㄱ) 예수의 청중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에게 무엇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그들이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에 관하여 어떤 두 가지 예를 드셨읍니까?
3 성서 기록에 따르면, 이 탐구적인 질문은 다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제기되었으며, 땅 위에 언젠가 세워질 가장 위대한 정부, 천지의 창조주의 왕국, 즉 “하나님의 왕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제시되었읍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전에 자기의 ‘이스라엘’인 청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왕국, 신세]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4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너희도 아는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누가 12:32-40.
5. (ㄱ) ‘베드로’는 예수의 권고의 말씀을 무엇이라고 불렀으며, 그러므로 예수의 대답을 무엇으로 보아야 합니까? (ㄴ) 예수의 말씀의 적용에 대한 ‘베드로’의 질문은 그 대답으로 하신 예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어떤 질문을 일으킵니까?
5 그곳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사도 ‘베드로’는 “비유”라고 불렀읍니다. ‘누가’의 기록이 계속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말했읍니다. ‘주여. 이 예(‘파라볼레’)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한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누가 12:41, 신세) 그러므로 예수께서 대답으로 하신 말씀을 비유로 보는 것은 논리적이며 그것은 미래에 있을 어떤 실체를 묘사 또는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누가 복음 12:42-44의 예수의 대답은 “충실하고 지혜있는 청지기”(개역 표준역) 비유의 일부입니다. 이제 그 비유를 검토하면서, 우리는 ‘베드로’의 질문, 즉 그 적용이 계속되는 비유로 옮겨지는 질문, “주여, 이 예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한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는 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누가 12:41, 신세)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 “청지기” 비유는 한 반열에게, 즉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인 “우리” 반열에게 적용됩니까, 아니면 당시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모든 사람에게 그리고 오늘날 그리스도교국 안팎의 종교와는 상관없이 예수의 비유를 읽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까? 그 비유는 한 반열의 일입니까, 아니면 한 개인의 일입니까?
“주인”
6.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어떤 비유로 대답하셨읍니까?
6 예수께서는 앞의 비유에 관한 ‘베드로’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그 대답으로 다른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주인이 적절한 때에 자기의 일단의 수종자들에게 일정한 양식을 계속 공급하기 위하여 그들 위에 임명하실 충실한 청지기, 사려깊은 자는 과연 누구이겠읍니까? 주인이 도착하여 그 종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은 행복합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가 그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맡길 것입니다.”—누가 12:42-44, 신세계역.
7. 청지기의 “주인”은 누구를 상징하며, 그러므로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 동안 “주인”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합니까?
7 아무도 충실한 청지기의 “주인”이 비유를 말씀하신 분인,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한다는 점에 의심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질문을 야기시킨 비유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신랑으로 비유하였는데, 그는 결혼 잔치로 인해 밤중 확실치 않은 시간에 또는 새벽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누가 12:35-40) 확실히 그렇다면 예수의 비유의 성취에 관련된 사람들은 깨어 있어야 하며, 특히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 동안 그렇게 해야 합니다.—마태 24:3, 신세.
8. 예수께서는 “주인”으로서 언제부터 “일단의 수종자들”을 맡아 오셨으며, 계시록 7:1-8은 그들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8 청지기의 비유에서, 주인에게는 “일단의 수종자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는 청지기 자신도 포함되어 있읍니다. 이것은 비유를 말씀하신 분,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적인 의미로 집이 있다는 사실과 일치합니다. 그러한 의미로 히브리서 3:4-6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느니라.]” 예언자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초창기에 12지파의 ‘이스라엘’ 집을 맡았으며, 더 큰 ‘모세’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33년 오순절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적 ‘이스라엘’ 집을 맡아 오셨읍니다. 계시록 7:1-8은 그 집이 144,000의 영적 ‘이스라엘’인들로 구성되며, 각각 12,000명으로 된 12지파로 나뉘어져 있음을 밝혀 줍니다. 이것은 그들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로 구성되는 “집”입니다. 이들이 집합적으로 “적은 무리”를 구성하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늘 왕국을 주실 것을 승인하셨읍니다.—신명 18:15-18; 누가 12:32; 사도 3:19-23.
9. 기원 제 일세기에 “청지기”가 한 그리스도인 개인이 임명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면, 주인이 도착하는 명확한 시간을 정하는 데 있어서 어떤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까?
9 그러므로 144,000의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로 “일단의 수종자들”이 구성되며, 그들 위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유에서 말씀하신 “청지기”를 임명하십니다. 그 비유의 “청지기”(‘오이코노모스’, 희랍어; ‘소오켄’, 히브리어—‘딜리치’역)의 정체는 아직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읍니다. 만일 그 “청지기”가 한 그리스도인 개인을 상징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헤어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 비유에서 청지기의 주인은 어떤 여행차 멀리 떠나가며 미확정적인 부재 기간이 경과한 후, 미정의 시간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기원 제 일세기에는 명확한 시간을 정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 때 사람들은 현대의 이기들, 즉 ‘텔레비젼’, 무선 통신 및 일정한 시간표에 의해 운행되는 고속 여행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0. ‘주인’이 도착할 때에 한 그리스도인 개인의 수명에 대하여 어떤 난문제가 생깁니까?
10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청지기”는 주인이 여행차 떠나기 전에 “일단의 수종자들”을 맡도록 임명되었읍니다. 따라서, 청지기의 주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으므로, 그분의 “청지기”는 기원 33년 ‘유대’인의 오순절 축제가 있기 열흘 전, 그분이 승천하기 위해 떠나기 전에 임명되었읍니다. 그 “청지기”는 주인이 다시 돌아오실 때에도 살아 있어 임명된 책임에 충실할 것이 요구되었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천적 아버지의 집으로 떠나신 지도 이제 19세기가 지났읍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비유의 “청지기”가 참 그리스도인 회중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 개인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면, 기원 제 일세기의 33년에 예수 그리스도께 임명된 이래 어떻게 오늘날까지 살아 있을 수 있겠읍니까? 아무도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였으며 그 유명한 ‘므두셀라’도 그렇게 살지 못하였읍니다.—창세 5:27.
11. 그러므로 “청지기”는 한 그리스도인 개인이 아니라, 무엇을 상징하며, 어떤 성서적인 예가 이 견해를 지지해 줍니까?
11 비슷한 성서의 예들이 지지해 주는 추리는 그 “청지기”(‘오이코노모스’)가 한 반열, 법인에 상응하는 한 집합적인 단체, 즉 나라의 법으로 인정된 사단 법인과 같은 법인임을 명백히 해 줍니다. 예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내가 선택한 나의 종”이라고 부르셨읍니다. (이사야 43:10, 신세) 마찬가지로, “청지기”는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제자들의 온전한 집단, 영적 ‘이스라엘’인들의 “적은 무리”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주인”이신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와 함께 천적 상속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영으로 출생하였읍니다. 이 복합적인 “청지기”는 살아 있어서 떠나는 주인에 의해 임명을 받을 수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 “청지기” 반열의 남은 자들이 오늘날 지상에 있으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실함을 입증하고 있읍니다. 각 성원이 충실하고 사려깊기 때문에, 전체 반열도 그러합니다.
12. “일단의 수종자들” 위에 “청지기”를 임명한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사실들은 “청지기” 반열이 이 목적을 달성하였는지의 여부를 알려 줍니까?
12 비유에서 “청지기”는 그의 주인의 “일단의 수종자들”을 맡아 ‘적절한 때에 일정한 양식을 계속 공급’하도록 임명되었읍니다. (누가 12:42, 신세) 그 복합적인 “청지기” 반열을 통하여 지금까지 이 목적이 달성되어 왔읍니다. 제 일세기, 즉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의 시대로부터 마지막 생존자인 사도 ‘요한’이 기원 98년경 성경 기록에 마지막으로 공헌하고 사망하기까지 그러하였읍니다. (요한 21:20-23) 이제, 획기적인 해인 1914년에 시작된 이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은 “일단의 수종자들”에게 “일정한 양식”을 나누어 주기에 특히 “적절한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들은 그러함을 입증해 주었읍니다. “청지기” 반열의 남은 자들은 그러한 면에서 충실함을 입증해 왔읍니다.—마태 24:3-14.
13.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청지기” 반열에 대하여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돌아오셨으며, 그 때까지 이 반열은 어떤 일을 해왔읍니까?
13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 그분의 천적 아버지와 함께 왕국의 권능을 쥐었으며 이렇게 하여 마침내 그분이 멀리 떠난 목적을 달성하였다는 사실과 일치합니다. (누가 19:12) 이렇게 하여 그분은 자기 “청지기”와 회계할 목적으로 영의 형태로 보이지 않게 돌아오실 수 있었읍니다. 이 회계를 하기까지 ‘적절한 때에 일정한 양식’을 나누어 주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청지기” 반열의 성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왕국 후사, 즉 “적은 무리”의 성원이 되도록 부르심에 따라 점진적으로 영적 “양식”을 서로 나누어 주는 일에서 함께 일해 왔읍니다.
“모든 소유물을” 맡음
14. 주인이 돌아와 “청지기”가 종으로서의 임무를 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는 왜 그에게 행복한 때가 될 것이었읍니까?
14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충실하고 사려깊은 “청지기” 비유에서 “청지기”를 “종”이라고 부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주인이 도착하여 그 종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은 행복합니다.”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가 그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맡길 것입니다.”—누가 12:43, 44, 신세.
15. “청지기”가 그의 주인의 모든 “소유물”을 맡도록 임명된 것은 왜 그에게 행복한 경험일 것입니까?
15 이것은 “종”이 충실하고 사려깊으며, 그의 주인이 돌아오실 것에 대비하여 계속 깨어 있었음에 대한 상으로 그 “종”이 “청지기”로서 더 큰 책임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가능한 일이었읍니다. 왜 그러하였읍니까? 이유는 주인이 그의 여행으로 무엇인가를 성공적으로 얻었으며 그가 떠날 때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유물”은 불어났으며, 이렇게 하여 그의 충실한 “청지기”에게 맡길 더 많은 것이 있게 되었읍니다. 그가 “청지기” 직무에 계속 고착한 것은 더 큰 능력으로 섬길 수 있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의 주인 자신도 특정한 임무를 띠고 멀리 떠나셨을 때 자신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고 돌아오셨읍니다. 이 비유의 현대 성취에 있어서 “청지기” 반열의 남은 자들과 그들의 주인이신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이것은 참되었읍니다.
16. 비유를 드신 직후에 하신 예수의 어떤 말씀이 그가 불같은 때에 “청지기” 비유를 말하였음을 알려 줍니까?
16 그러나 우리는 이 때가 “청지기” 반열의 남은 자들에게 주인의 확장된 “소유물” 또는 관심사를 맡기는 것이 합당한 때였음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읍니까? 예수께서는 비유를 말씀하시고 몇 귀절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누가 12:49) 이 상징적인 언어는 침례자 ‘요한’이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시기 수개월 전에 예수에 관하여 예언한 것과 일치하였읍니다. ‘요한’의 예언 가운데 이러한 말이 있었읍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알곡을 쭉정이에서 갈라 내기 위하여]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태 3:11, 12.
17. 예수 시대에 누가 불같은 경험을 하게 되어 있었으며, 어떤 격변이 절정이 될 것이었읍니까?
17 그러한 예언적인 말씀은 ‘유대’인 사물의 제도에 불 같은 종말이 정해져 있음을 알려 주었읍니다. 비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은 쭉정이 같이 불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멸망되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전세계로 흩어지는 일로 끝날 것이었읍니다. ‘로마’ 군단은 기원 70년에 이 일을 목격하였읍니다.
18, 19. (ㄱ)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징조”에 대한 예수의 예언에서, 그분은 “청지기” 비유에 상응하는 어떤 비유를 드셨읍니까? (ㄴ) 그 반열의 성원들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사물의 제도의 종결 동안 충실하고 사려깊음을 증명하였으며, 그 반열의 남은 자들은 이 “사물의 제도의 종결” 동안 어떻게 해 오고 있읍니까?
18 기원 70년에 끌 수 없는 “불”이 상징적인 “쭉정이”를 태워버리기 37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영으로 보이지 않게 “임재”하시는 징조와 전세계 “사물의 제도의 [불 같은] 종결”의 “징조”를 자세히 설명하는 예언을 하셨읍니다. 그 예언의 주요 부분에서 그분은 “충성되고 사려깊은 종”을 언급하셨으며, 그 종이 전세계 사물의 제도의 끝이 가까울 때 지상에서 활동하게 될 것임을 지적하셨읍니다. 이 “종”에 관한 예수의 말씀은 “충실한 청지기, 사려깊은 자”에 관한 말씀과 매우 비슷합니다. 명백히 그것들은 같은 반열에게 적용되지만, “청지기”란 단어는 그 “종”이 수행하는 일의 형태에 있어서 특별한 것입니다.
19 예수의 이러한 묘사에 유의해 보십시오. “주인이 적절한 때에 자기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주기 위하여 그들 위에 임명하실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은 과연 누구이겠읍니까? 주인이 도착하여 그 종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은 행복합니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그가 그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맡길 것입니다.” (마태 24:45-47, 신세)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 반열, 즉 “청지기” 반열의 성원들은 기원 70년에 ‘유대’인 사물의 제도가 끝날 때까지 부지런히 섬겼읍니다. “종” 반열, 즉 “청지기” 반열의 남아있는 성원들은 1914년 이래 현대 “사물의 제도의 종결” 동안 충실하고 사려깊음을 증명해 왔읍니다.
20. 오늘날 “청지기” 반열의 남은 자들을 형성하는 자들은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어떠한 말씀과 일치하기 때문에 식별할 수 있읍니까?
20 오늘날 “청지기” 반열의 남은 자들을 식별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인이신 예수께서 초기 “청지기” 반열을 형성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 1:8) 그 ‘유대’인 제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됨에 있어서 그분의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이신 여호와의 증인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되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았읍니다!
21. 출생에 의하여 이 ‘유대’인 제자들은 누구의 증인이었으며, 언제 그들은 복합적인 “청지기”의 초기 성원들이 되었읍니까?
21 ‘유대’인 제자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출생시부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그의 조상들의 민족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사야 43:10-12) 그러므로 이들 여호와의 ‘유대’인 증인들은 이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또한 되었읍니다. 그분이 승천하신지 열흘 후인 오순절 날 그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으며,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일단의 수종자들”을 맡아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격을 그들의 영광스럽게 되신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읍니다. 이처럼하여 그들은 복합적인 “청지기”의 최초의 즉 초기 성원들이 되었읍니다. 그들은 이 반열의 훌륭한 시작이 되었읍니다.
22. 그 “청지기” 반열은 특별히 누구의 이름을 위한 백성이며, 이 사실이 기원 36년 얼마 후 ‘예루살렘’의 특별 모임에서 어떻게 강조되었읍니까?
22 이 “청지기” 반열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백성입니다. 이 사실이 기원 36년 얼마 후 사도들과 ‘예루살렘’ 회중의 장로들과의 특별 모임에서 강조되었읍니다. 그곳에서 예수의 이부 동생인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즉, 사도 ‘시몬 베드로’]이 고하였[느니라.]”—사도 15:1-14.
23. 이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청지기” 반열의 남은 자들은 누구의 증인이 되는 일과 누구의 이름을 대표하는 일을 피할 수 없읍니까?
23 이러한 비‘유대’인들이 제 일세기 “청지기” 반열의 일원이 되었읍니다. 그 결과, 이 반열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름부음받은 백성이 되었읍니다. 그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대표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그분의 증인이 되는 일을 피할 수 없었읍니다. 이 사실은 1914년 이후 보이는 “징조”로 보아 “청지기” 반열의 돌아오신 주인이 임재해 계시며, “사물의 제도의 종결”이 ‘할마겟돈’에서 그 절정에 달하려고 하는 오늘날 “청지기” 반열의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에게도 참됨이 틀림없읍니다.—마태 24:3, 신세.
“충실한 청지기”에 관한 본 기사의 복습에 있어서, 당신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 예수의 “충실한 청지기” 비유에서 “주인”은 누구인가?
◼ “충실한 청지기”는 누구인가?
◼ “일단의 수종자들”은 누구인가?
◼ 히브리서 3:6에서, 그리스도께 맡겨진 “집”은 무엇인가?
◼ 왜 “충실한 청지기”는 한 개인일 수 없는가?
◼ “충실한 청지기”는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과 같은가?
◼ “충실한 청지기” 반열이 앞장서고 있는 어떤 활동으로 오늘날 이 반열을 식별할 수 있는가?
[10면 삽화]
“그 때 ‘베드로’가 말했읍니다. ‘주여, 이 예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한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주께서 말씀하셨읍니다. ‘··· 충실한 청지기, 사려깊은 자는 과연 누구이겠읍니까?’”—누가 12:41, 42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