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물, 사랑과 공의의 놀라운 표현
1, 2. (ㄱ) 문제가 제기되자 여호와께서는 무슨 약속을 하셨으며, 그 결과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ㄴ) 독생자가 하나님의 최고 입증자로 선택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우주 주권자답게, 불가능하게 보이는 문제를 감탄할 정도로 해결하십니다. 해결된 다음에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데, 그렇게 철저하게 의롭게 전적으로 선하게 해결되었구나.’ 하고 말하게 됩니다. (이사야 55:9) 그러므로 문제가 제기된 바로 시초에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확히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미리 아시고, “여자의 후손은 네[사단]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읍니다.—창세 3:15.
2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발꿈치의 상함을 받을 “후손”으로 지정하실 것입니까? 여호와의 독생자였읍니다! 그가 바로 여호와의 주권의 가치와 의로움에 대한 쟁점을 해결할 첫째 인물로 선택되었읍니다. 왜 여호와와 대단히 친근한 이 위대하신 분이 선택되었읍니까? ‘사단’이 도전하였을 때에 모든 피조물의 명성에는 그늘이 졌읍니다. 그것은 바로 이 아들에게까지도 미쳤을 것입니다.a 뿐만 아니라 그것은 다른 어느 피조물에게보다도 그분에게 더 집중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는 여호와의 첫째 가는 피조물이었으며, 우주에서 여호와 다음 가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항상 다른 천사들을 지휘하는 분이었읍니다. 그는 우주를 만들 때 하나님과 함께 일하였읍니다. (골로새 1:15-17) 하나님의 도전자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을 충실히 섬길 자가 있다면 그분이야말로 마땅히 충실하게 섬겨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도전은 하나님이 이 능한 아들을 촛점 안으로 끌어들였읍니다.
3. 그 아들이 인간으로 오시기 전에 가졌던 이름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읍니까?
3 또한 독생자가 인간으로 오시기 이전에 가졌던 이름 곧 ‘미가엘’이라는 이름도 이 문제와 관계가 있읍니다. (다니엘 12:1; 데살로니가 전 4:16; 계시 12:7) 그 이름은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냐?”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 자체가 의문형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자가 일어나서 하나님께 도전하거나 하나님께 대적하거나 하면, ‘내 아버지께 도전하는 자가 누구냐?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자가 없다는 것을 내가 증명하리라’ 하고 말하고 나설 책임이 맨 먼저 ‘미가엘’에게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그의 이름은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문제를 해결할 자, 입증할 자임을 나타낸 것입니다.b
4, 5. 독생자가 선택되기에 가장 적격자인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그는 억지로 이에 순응하였읍니까?
4 우리는 그가 선택된 이유를 다른 각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읍니다. 그는 이 일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 침례받으러 나오셨을 때에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라고 말씀하셨음을 성서는 밝혀줍니다. (시 40:8; 히브리 10:5-7) 또한 그에 대하여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히브리 1:9)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열렬히 갈망하고 즐거워하였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는 친히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8:29)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자격을 갖추고 있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잠언 8장에서 이분은 지혜로 변형하여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사람들의 아들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고 말하였읍니다. (31절, 신세) 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류를 깊이 사랑하셨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이 임무를 기꺼이 택하였읍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 때문이었으며, 다음은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었읍니다.
5 이제 하나님의 이 아들이 그 임무를 자진해서 받아들인 이상 어느 다른 천사가 “아니오, 내가 그 임무를 수행하겠읍니다.” 하고 감히 나서겠읍니까? 누가 감히 그를 앞지르겠읍니까? ‘미가엘’은 자신을 제공하고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과 협조할 첫째 위치에 있었읍니다. 그는 여호와의 독생자, 가장 친근한 자, 가장 친한 벗이었읍니다.—요한 1:18.
죄를 용납지 않음
6, 7. 왜 여호와께서는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간과하실 수 없었읍니까?
6 대속물은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련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은 사랑의 동기로 대속물을 마련하셨읍니다. (요한 3:16) 그것은 자비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대속물이 여호와의 공의와도 부합됩니까? 그 점을 살펴봅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주권에 반역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피조물을 만드실 때에 자기를 섬기는 자유 도덕 행위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반역이 가능하리라는 것을 아셨읍니다. 그들은 강제에 의하여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성품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인식하고 모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으로서 천체와 같은 물질적인 것들은 세밀한 점에까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꼭 그대로 섬깁니다. 동물들도 본능에 따라 좌우됩니다. 하지만 지성있는 피조물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길을 택할 수 있읍니다. 그렇지만, 우주 내에 죄가 들어온다면, 묵인하시면서, ‘못본채 해버리지’ 하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범죄자에게 ‘네게 자비를 나타내고 싶으니 네 죄를 용서하겠다’ 하고 말씀하실 수 있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공평과 의와 일치하게 행하시기 때문에 죄를 묵인하거나 죄를 문책하지 않으실 수가 없읍니다.
7 그러나 오늘날 세상 정부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불법을 묵인하며, 불법에 대하여 신속한 조처를 취하지 않고 태만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정부에 대하여 신망을 갖지 못하고 결국 만사가 파탄에 이르게 됩니다. 우주의 법률 수여자께서는 자기의 법이 그렇게 되도록 두시지 않습니다.
8. 죄와 범죄자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입장은 어떠합니까?
8 따라서 우주 주권자인 하나님께서는 우주 내에서 법과 질서를 옹호할 책임이 있으시기 때문에 죄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갈라디아 6:7, 새번역) 사실 하박국 1:13에서 그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나이까?]” 그러나 물론 얼마 동안은 커다란 쟁점 때문에 악을 허락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계신 곳에는 죄있는 것들이 존재할 수 없읍니다. ‘이사야’가 본 환상 가운데서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하고 말하는 것이 보였읍니다. (이사야 6:3; 계시 4:8) “거룩하다”는 말은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그 말을 세번 반복한 것은 최도고로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주 내에서 최고로 그렇게까지 깨끗한 자는 없읍니다. 따라서 죄있는 것은 하나님께 직접 접근할 수 없읍니다.
법적 문제
9.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통하여서만 죄인들과 관계하실 수 있으셨읍니까?
9 따라서 자기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할지라도 죄 가운데 출생한 자들과 관계하시기 위하여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관계할 수 있는 법적 기초가 있어야 합니다. (시 51:5; 로마 5:12) 어떤 자를 희생시켜 법적 기초를 마련하고 그를 통하여 관계를 맺을 어떤 자가 필요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의로움 때문에 죄있는 인간들과 직접 관계하실 수는 없었읍니다.
10. 인류와 관계하실 마련을 하시면서 여호와께서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기본법을 변경하셨읍니까?
10 그 동안에는 사람이 계속하여 자녀를 낳도록 허락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 대하여 친히 피력하신 목적에 고착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자녀를 낳을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창세 1:28) 이제 인간을 그 쟁점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실 계획을 세우셨다고 하여 자신의 법을 변경하시거나 부모들로부터 자녀 출생의 특권을 박탈하시거나 간섭하시지 않으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자기의 형상대로—이제는 불완전한 형상대로—자녀를 낳도록 허락하셨읍니다. (창세 5:3) 부모들은 자녀를 양육할 특권을 부여받았으며,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는 대로 자라가도록 되었읍니다. (잠언 22:6; 29:15) 그러한 원칙이 현 세상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자라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자신의 법을 존중히 여기시며 그것이 정당한 법임을 알고 계십니다. 어떤 자녀들은 그 쟁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읍니다.—욥 1:8; 2:3.
“영혼은 영혼으로”
11. 공의에 부합되기 위하여 무엇이 요구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관계하실 때에 이 점이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11 하나님의 법에 완전한 공의가 요청된다는 것은, “생명[영혼, 신세]은 생명[영혼]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하는 ‘이스라엘’의 법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읍니다. (신명 19:21)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정확하시다는 것은 성전 봉사를 위한 ‘이스라엘’의 한 지파를 선택하실 때에 그 백성에게 행하신 일에서도 볼 수 있읍니다. 장자는 이미 전부 여호와께 속하였었읍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째 재앙에서 멸망당하지 않도록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여호와께서는 장자들 대신에 ‘레위’ 지파가 성소에서 봉사하기를 원하셨읍니다. 그러나 인구 조사 결과 ‘이스라엘’ 장자의 수가 ‘레위’ 지파의 수보다도 273명이 더 많다는 것이 드러났읍니다. 그러므로 이들 273명을 속(贖)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 각자에 대하여 대속물을 지불해야 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엄격하셨읍니다. (민수 3:39-51) 또한 어떤 사람이 살인을 하면 그 사람에게서 어떤 돈이나 대속물을 받을 수 없고 그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하였읍니다. 그 사람은 영혼은 영혼으로 갚아야 하였읍니다. (민수 35:31-33) 그러므로 사람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속하기 위하여 완전한 인간 영혼의 대속물이 요구된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12. 구속하는 면에 있어서 인간의 입장은 어떠하였읍니까?
12 인간의 무력함이 시편 49편 6절부터 9절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읍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라].” 그 값은 너무나도 높고 너무나도 귀중하기 때문에 인류의 능력으로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였읍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구속할 가능성이 너무나 요원하기 때문에 영영히 바랄 수 없으며, 사실상 가망이 없었읍니다.
공평과 의를 지지하다
13. 여호와께서는 대속물의 문제에 있어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바와 같이 자신에게 엄격하셨읍니까? 설명하십시오.
13 그러므로 사람이 구제를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마련을 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하나님께는 ‘이스라엘’의 법에서 엄격히 하신 것처럼 자기의 일에도 엄격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그 법을 지지하고 공포한 원칙에 고착하실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하셨읍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자기의 첫 아들을 바쳐야 함에도 그렇게 하셨읍니다. (로마 5:6-8) 얼마나 훌륭한 성품입니까! 우리는 여호와를 완전히 신뢰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자기의 원칙에서 이탈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어떤 변덕에 의해서나 환경에 억눌려서 비합리적인 일, 우리에게 밝히신 원칙에 위배되는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말라기 3:6.
14. 대속의 마련은 어떻게 하여 공평과 의에 완전히 부합되었읍니까?
14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자기의 의를 완전히 유지할 수 있었고 동시에 죄가 극히 나쁘다는 사실을 나타내셨읍니다. 사도 ‘바울’은 그 점을 이렇게 표현하였읍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하려 하심이니라.” (로마 3:23-2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에 있어서 자기의 공평과 의에 부합되는 법적 기초가 있었읍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약 3,900년 전에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때에도, 자신이 장래에 대속물을 준비하실 것을 아셨기 때문에 정당하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읍니다. (로마 4:9) ‘아브라함’은 믿음을 실천하였지만 죄가 없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과 관계하실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법적 마련을 통하여 완전히 깨끗하고 의로우셨읍니다.
15. (ㄱ) 하나님의 아들은 왜 지상에 보냄을 받았으며, 그는 어떻게 완전한 인간으로 출생하셨읍니까? (ㄴ) 그가 충성을 지켰음과 마귀의 비방에 대하여 충분하고 완전한 대답을 하셨음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15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대속물을 준비하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지상에 보내셨읍니다. 지상에서 마귀는 충성을 져버리도록 그에게 압력을 가하였읍니다. 독생자는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기적으로 출생하여 하나님의 인간 아들이 되셨읍니다. 이 아들은 불완전한 여자에게서 나셨지만 완전하고 흠이 없으셨읍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누가 1:35) 성령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마리아’ 주위에 방벽을 쌓아 태아가 출생시까지 성장하는 동안 아무 것도 그 태아를 해하지 못하도록 하였읍니다. ‘사단’ 마귀는 가능하기만 하면 그 아들을 출생 전에 죽이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 생애 전체를 통하여 그 완전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셨읍니다. 그는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었읍니다. (히브리 7:26) 지상에서의 예수의 인생 행로는 그 문제를 의심의 여지 없이 해결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희생의 죽음을 당하시기 전에,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또한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4:30; 12:31) 이러한 말씀은 그가 ‘사단’을 완전히 거짓말장이로 증명하셨음을 보여 줍니다.
예수의 수난
16. 예수께서 겪으신 고난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읍니까?
16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예수께서 얼마나 위대하셨으며, 현재 위대하신가를 참으로 파악하기란 어렵다고 말할 만합니다. 쟁점을 완전히 해결하시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고난을 당하셨읍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사단’과 그의 앞잡이들로부터 심한 어려움을 당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어떠한 하나님의 종보다도 더 심한 고난을 겪으셨읍니다. 왜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이 질문의 대답을 살핀다면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수행하신 훌륭한 일을 더 잘 이해할 것입니다.
17. 예수께서는 붙잡히시기 직전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에 제자들과 함께 무엇을 하셨읍니까?
1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신 마지막 밤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가를 고려해 보십시오.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하실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세번을 기도하셨읍니다. 그런데 매번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면 제자들은 자고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들은 정신이 둔하였읍니다. 그들은 이날 밤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커다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깨어 있을 수 없었읍니다.—마태 26:36-44.
18. 예수께서 여호와께 기도하실 때에 죽음을 면케해 달라고 하셨읍니까?
18 예수께서 여호와께 “만일 하실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고 요청하셨을 때에 무슨 의도로 그렇게 하셨읍니까? 자기가 죽어서 대속물을 준비하시겠다는 결심을 철회 또는 후퇴하는 것이었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바로 그때에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을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서 죽임을 당할 것과 여호와의 도움으로 3일만에 다시 일어날 것을 설명하셨읍니다. (마가 8:31; 누가 9:22) 희생의 죽음을 회피한다는 생각만 해도 예수께서는 비위에 거슬렸읍니다. (마태 16:21-23) 「히브리서」에 보면 예수께서 침례받으시어 희생의 행로를 시작하시던 때에 “하나님이 ···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다시 말하면, 대속물로서 하나의 완전한 몸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계속하여 그는 그 희생의 행로를 가기로 결심하셨읍니다.—히브리 10:5.
19, 20. (ㄱ) 예수께서는 무슨 일을 당하실 것을 아셨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어떻게 될 것을 기도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 직면하신 일은 왜 그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었읍니까?
19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께 죽음을 면케 해달라고 호소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몇 시간이면 체포되어 ‘유대’ ‘산헤드린’ 앞에 설 것을 아셨읍니다. 그들이 예수께 가장 무거운 죄인 신성 모독죄를 선언할 것을 알고 계셨읍니다. (요한 10:33; 마태 26:65) 그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의 아버지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기본적인 신분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로부터 부인당하였읍니다. (요한 19:7) 이제 그들은 그를 최악의 범죄자 곧 신성 모독자이며 선동죄를 범한 자로서 나무에 달아 죽일 계획이었읍니다. (누가 23:2-4) 얼마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었읍니까! 그는 아버지의 정당함을 입증하고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기 위하여 내려왔는데, 이곳에서 저주받은 자, 신성 모독자로서 나무에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20 신성 모독자로서의 죄명을 지은 것과 그 비난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민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것,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는 실로 가슴아픈 일이었읍니다. 그는 과거에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아버지를 지지하고, 아버지에게 모독이 되는 일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을 피하는 데 우주에서 가장 열심을 품었던 분입니다. 신성 모독자! 오늘날도 어떤 사람이 여호와 종이었다가 배도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 앞에 가증한 존재입니다. 정신과 마음과 이해력이 완전하신 예수께서는 이에 대하여 우리보다 훨씬 더 민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여호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말씀하셨읍니다.—마태 26:39.
21. 그날 밤 예수에게는 어떠한 막중한 짐이 매달려 있었읍니까?
21 이 모든 일들 때문에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땀이 피방울 같이 되었읍니다. (누가 22:44) 그에게 커다란 부담이었으며, 그는 그 밤에 자기가 모든 짐을 지게 되었읍니다. 그는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호소하고 기도하셨읍니다. (히브리 5:7) 만일 그가 실패한다면 일이 어떻게 되겠읍니까? 그러므로 그가 충성을 지켜야 함을 알고 계셨읍니다. 만일 실패한다면 여호와께 얼마나 큰 모독이겠읍니까! 반면에 예수께서 충성을 지킨다면 자기 아버지의 정당함을 얼마나 잘 입증하는 것이 되며, 마귀에게는 얼마나 치욕이 됩니까! 여호와께서는 이 아들의 충성심을 굳게 확신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실 일들을 미리 그의 말씀 가운데 기록하셨읍니다. 예수께서도 그 점을 아셨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한 충성을 지키는 것이 자기에게 달렸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그는 실패할 수 있었으며, 범죄할 수도 있었읍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자신에게 달렸읍니다. 그의 영원한 생명과 전 인류의 생명이 양쪽에 균형을 이루고 매달려 있었읍니다. 그것은 엄청난 압박감이었읍니다.
22. 예수께서는 운명하시기 직전에 왜 그렇게 부르짖으셨읍니까?
22 예수께서는 운명하시기 직전 나무에 매달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셨읍니다. (마태 27:46; 시 22:1) 사도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 3:13) 그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저주받은 자가 되어야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베드로’는 말하였읍니다.—베드로 전 2:24.
23. 예수께서 우리에게 마련해 주신 것으로서, 자신은 누리지 못하였던 것은 무엇입니까?
23 이제는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회개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 제가 범죄한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기초로 하여 용서를 구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요한 1서 1:9)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없었읍니다. 만일 예수께서 약해지셔서 조금이라도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는 ‘(어떤 사람의) 희생을 기초로 하여’ 자비를 간구할 수 없었읍니다. 그가 그날 밤 진 짐은 막중한 것이었읍니다.
24. 로마서 5:18에서는 예수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4 예수께서 실패하지 않는 점에 대하여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실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는 도전에 대해 충분히 대답할 수 있도록 행하셨읍니다. 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로마 5:18) 이 “의의 한 행동”이란 예수의 충성의 행로와 그의 희생을 뜻합니다. 이로써 그는 의롭다고 증명되었읍니다. 물론 그는 항상 의로웠지만 이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더욱 더 ‘너는 완전히 의롭고 모든 면으로 올바르다’고 말하실 수 있게 되었읍니다.
25. 그리스도의 의로움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의로움을 비교하십시오.
25 사도 ‘바울’은 예수에 대하여,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었다고 선언하였읍니다. (히브리 5:8,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게 된 것은 그 자신의 공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의로운 신분을 선물로서 주실 필요는 없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의 희생은 다른 사람들을 의롭다고 정할 기초가 될 수 있읍니다. 다른 사람들은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주신 선물입니다.—로마 5:17.
여호와의 사랑에서 나온 친절
26, 27. 여호와께서는 사랑과 인식의 표현으로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하셨읍니까?
26 이 모든 점에 여호와의 사랑에서 나온 친절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그 외에도 더욱 나타났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늘에 올라가셔서 아버지와 함께 하실 것을 아셨읍니다. 극심한 시험 하에서도 그의 이름을 입증한 이분을 여호와께서 대단히 사랑하시고 인식하셨기 때문에 예수에게 과거보다도 훨씬 더 좋은 것들을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에게 불멸성과 과거보다 더 높은 지위, 천사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주셨읍니다. (빌립보 2:5-11; 히브리 7:26) 그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또 다른 것도 받으셨읍니다.
27 하나님의 지성적 피조물은 떼를 지어 삽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여호와를 제외하고는 자기 반열에 아무도 없읍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께서는 인식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웅대한 보상을 더 주셨으니 그것은 곧 “신부”입니다. (요한 3:28, 29; 계시 19:7; 21:9) 예수께서는 개인적으로는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르셨읍니다. (히브리 2:11) 그들은 예수께서 지상에서 겪으신 바와 동일한 경험을 당합니다. 예수께서 분명히 자기의 “신부”와 즐기시는 바와 같이, 우리도 영광스럽게도 우리와 동일한 고난을 당하고, 동일한 일을 수행하고, 동일한 경험을 한 이들과 함께 교제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훌륭한 아들에 대한 인식과 사랑이 무한히 깊다는 증거로 이 “신부”를 예수에게 주셨읍니다.
예수의 관대함
28, 29. 어떤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도 또한 사랑에서 나온 친절과 관대함을 나타내셨읍니까?
28 예수께서도 사랑에서 나온 친절과 관대함과 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문제에 있어서 사욕적으로 행하시지 않았읍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입증하는 일을 내가 했는데 다른 자들이 이 영광을 나와 함께 누릴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식의 태도를 나타내지 않으셨읍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입증하고 영화롭게 하는 일에 참여할 자들 곧 하늘에서 자기의 영광과 능력에 참여할 자들을 가지게 된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읍니다. (로마 6:4, 5) 그는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 곧 마귀의 박해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에 충성을 지키고, 자기가 행한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사랑하는 자들을 가지고 계신 것을 좋아하셨읍니다.
29 그리고 또한 “다른 양”의 “큰 무리”가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도 들어와서 역시 적으나마 하나님을 입증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셨읍니다. (계시 7:9, 10; 요한 10:16)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모든 “양”들이 마귀의 말대로 행하지 않고 여호와의 주권의 편에 굳게 서도록 도우십니다.
“마지막 ‘아담’”
3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여 “마지막 ‘아담’”이 되십니까?
30 예수께서는 충실한 행로와 희생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게 되었읍니다. 그는 지상에 계셨을 때에 인간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기의 가족을 가질 능력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자녀를 낳지 않으시고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그러한 가능성을 포기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마지막 ‘아담’”이 되셨읍니다. ‘아담’은 자녀를 낳았읍니다. 불완전하고 나쁜 특성을 가진 자녀들이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로운 자녀를 낳으십니다. 개개인들은 ‘아담’의 가족에서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다시 출생할 수 있읍니다. 출생에 대한 하나님의 법에 따라 그의 형상대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아담’”의 아들들로서 깨끗해질 수 있읍니다.—고린도 전 15:45.
31. 그리스도는 어떠한 방법으로 “씨”를 가지시게 됩니까?
31 ‘이사야’는 영감을 받아 그리스도의 수난을 일부분 묘사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리라고 말하였읍니다. (이사야 53:10) 만일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영혼 곧 예수의 완전한 인간 생명의 대속 희생을 자기의 죄에 대한 속건제물로 드린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씨”가 됩니다. 그리스도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녀를 가지시지는 않았지만, “영존하시는 아버지”로서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방법에 따라 의로운 성품을 가진 자녀를 낳으십니다.—이사야 9:6, 7.
대속의 은혜는 지금 흐른다
32, 33. 대속의 은혜를 지금까지 받은 사람이 있읍니까? 설명하십시오.
32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을 아마, ‘대속물을 지불한지 1,900년이 되는데, 대속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질문할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고 있읍니다. 대속물의 가치를 하늘에 바친 직후,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지 50일 후에 성령이 부어져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 시작하였읍니다. (사도 2:1, 33) 사도 ‘요한’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요한 1서 3:2, 새번역) 그러한 사람들은 대속의 은혜를 받아 영으로 출생하여 하늘의 희망을 받았읍니다. 그 이후 1,900년 동안 여호와께서는 144,000명의 집단을 형성할 사람들을 선택해 오셨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왕과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계시 14:1, 2; 5:9, 10; 20:6) 그들은 앞으로 영원토록 우주 전체의 여호와의 주권을 집행할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고 시험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읍니다.
33 오늘날 우리는 그 희생의 결과가 “큰 무리”에게도 오는 것을 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평화, 생활에서의 행복, 희망 및 목적, 완전히 변화된 생활, 여호와께 나아갈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 등 훌륭한 은혜를 경험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또한 여호와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행복하고 건전한 일을 하고 있읍니다. 대단히 임박한 새 질서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인간 완전성에 이를 것입니다.—로마 8:21.
대속물은 죄보다 강하다
34. 왜 대속물은 ‘아담’의 죄보다 더 강합니까?
34 이 문제를 총괄해서 말할 때에, 우리는 대속물이 ‘아담’의 죄보다 더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아담’의 죄는 모든 사람을 타락시켰읍니다. 물론 대속물이 인간 영혼을 전부 빠짐없이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들어 있는 죄보다는 강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와 불완전성으로부터 자유케 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것을 씻어버리고 깨끗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죽음에서 부활된 사람들까지도 대속의 유익을 입을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주권을 원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의를 사랑하지도 불법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를 단죄하며, 자기네 유전죄에다 자기들의 고의적인 죄를 부가하고 있읍니다.—요한 3:17-21.
35. ‘아담’과 ‘사단’이 한 모든 일은 어떻게 지워지고 없어질 것입니까?
35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대속이 그의 왕국 통치를 통해 적용되면 ‘아담’이 한 일을 완전히 말소할 것입니다. 마지막 원수인 사망(‘아담’의 죄로 인해 인류에게 오게 된 사망)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망이 일소되면, ‘아담’이 행한 모든 것—그가 인류에게 가져온 모든 것—은 완전히 없어질 것입니다. ‘아담’의 죄를 보여 주는 것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26, 56) 그리고 마귀의 죄를 나타내는 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요한 1서 3:8) ‘사단’의 노력은 완전히 허사가 될 것이며, 그는 생명을 잃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과 그의 창조물에게 지워진 모독은 완전히 지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영원무궁토록 완전히 입증될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원하는 자들은 영원히 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시 150.
36. 여호와의 대속의 마련을 고려한 다음 우리는 무엇이라고 외칠 수 있읍니까?
36 얼마나 훌륭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친절입니까!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큰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까! 한 사도처럼 우리도 이렇게 말할 수 있읍니다. “오, 하나님의 부요와 지혜와 지식의 깊음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의 길은 알아낼 수 없도다.” (로마 11:33, 새번역)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진정으로 인식함으로써 세상이 어떠한 의심을 품게 하든지, 우리의 믿음을 얼만큼 공격하든지 우리는 ‘이것은 우리의 생명을 바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외칠 수 있읍니다.—사도 20:24; 21:13.
[각주]
a 「신세계」(1942년 발행) 153면 1항부터 157면 “시험하다”라는 소제목까지 참조. 이미 절판되고 품절임.
b 「‘그때 하나님의 신비가 끝난다’」(영),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1969면), 305-308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