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살아서 “징조”를 본 “종”
1. 하늘의 빛의 창조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떠한 면에서 자기와 같기를 원하셨읍니까?
인간의 창조주는 시간 엄수자이십니다. 그분은 인간도 시간을 지키도록 의도하셨읍니다. 그분의 영감받은 말씀 제1장에 나오는 창조 기사에서 이러한 기록을 볼 수 있읍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니라].” (창세 1:14-16) 그러므로 성서는 인간의 존속 기간에 대해 시간을 재며 계절과 날과 해로 그렇게 합니다.
2, 3. (ㄱ) 성서는 기원 1914년까지 이르는 시간을 어떻게 계산하게 해 주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자기의 ‘파로우시아’중에 발생할 “큰 환난”에 그분이 오시는 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 시간에 대한 성서 기록은 ‘에덴’에서 인간이 창조된 이래 성서 연대가 세속 역사의 믿을 수 있는 연대와 연결된 때까지 이어져 있읍니다. 연대적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 성서 예언은 더 나아가 미래에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간섭없이 이방인이 인류를 지배하는 “일곱 때”의 끝 즉 기원 1914년까지의 때를 계산하게 해 줍니다. (다니엘 4:16, 23, 25, 32; 누가 21:24) 그 해는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가 시작된 때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파로우시아’중에 일어날 유례없는 “큰 환난”에 대하여 예언하셨지만 그 전례없는 고난의 때가 전체 인류 세상에 임할 특정한 날과 시각을 정확히 지적하지는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3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희랍어: ‘에르케타이]’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태 24:36-42; 마가 13:32, 33.
4. 그러므로 예수의 ‘파로우시아’중의 인류 사회 상태는 누구의 시대와 같을 것이며, 특히 어느 때와 같을 것이 예언되었읍니까?
4 이 예언에 의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중 지상의 남녀의 사회 상태는 세계적인 대홍수가 있기 전 ‘노아’ 시대와 같을 것입니다. 분명히 “‘노아’의 때”라는 예수의 말씀은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방주를 준비하고 있던 “홍수 전”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대홍수 전 사람들이 홍수가 그들 세대에 임할 것이라는 것을 알리는 아무런 특별한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방주를 준비하는 이 특정한 “‘노아’의 때”는 대홍수 전 100년 중 곧 ‘노아’의 나이 500년대의 어느 기간에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대홍수가 ‘노아’의 나이 육백세 되었을 때에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록은 이러합니다. “‘노아’가 오백세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창세 5:32; 7:11.
5. (ㄱ) 또한 방주를 건축하는 데 소요된 “‘노아’의 때”는 어떠한 사실로 볼 때 한계가 있는 기간입니까? (ㄴ) “‘노아’의 때”와 비교해 보면 ‘파로우시아’에는 어떠한 의미가 있음이 분명합니까?
5 그 때에 관해 한계선을 긋는 또 다른 것은 ‘노아’가 자기의 아내와 세 아들과 “자부들”과 함께 방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점입니다. (창세 6:18) 이것은 방주를 만드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노아’의 세 아들이 결혼하였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 특이한 일의 진행을 주시할 수 있었던 홍수 전 기간은 세계적 대격변이 있기 전 약 오십년으로 줄어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하튼, 심각한 태도로 주시하도록 사람들에게 허락된 “때”는 상당한 기간이었읍니다. “인자의 임함도 그러”할 것이므로,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가 긴 기간이며 단순히 특정한 날 어떤 시각에 “큰 환난”이 시작되는 때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파로우시아’에 관한 그러한 견해와 일치하게, 누가복음 17:26에 나오는 예수의 이와 유사한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그러나 ‘노아’가 방주를 건축한 시대는 서서히 진행되어 마침내 ‘노아’와 그의 직계 가족이 그 거대한 건조물에 들어간 것과도 같이, 보이지 않는 ‘피로우시아’는 한동안 계속되고 세계적인 “큰 환난”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6. (ㄱ)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노아’ 시대는 어떠한 면으로 그분의 ‘파로우시아’의 때와 유사할 것입니까? (ㄴ) 그러면 사람들의 잘못은 무엇이었읍니까?
6 ‘노아’ 시대에 땅은 폭력으로 가득차 있었고 파멸에 이르고 있었읍니다. (창세 6:11, 12) 물론 그것은 참으로 악하고 그릇된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노아’의 때와 자기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시의 유사점을 설명하실 때에 그것을 지적하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느니라].” (누가 17:27) 언급된 그러한 일 자체는 올바르고 적절한 것이었읍니다. 그러면 당시 사람들에게 무엇이 잘못이었읍니까? 그들이 그러한 평범한 일상사에 몰두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노아’의 소식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노아’가 믿음의 증거로 방주를 건축함으로써 자기의 소식을 절대로 참된 것으로 지지하는 데 대해 진지하게 생각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읍니다. (히브리 11:7) 사람들의 잘못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지적하여 예수께서는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읍니다.—마태 24:39.
7. (ㄱ) 홍수에서 멸망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단죄되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1914년 이래 사람들이 어떻게 동일한 특징을 나타내 왔읍니까?
7 세계적인 홍수에서 멸망된 사람들은 불의하게도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단죄를 받았읍니다. 그들은 불경건하였읍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읍니다. (베드로 후 2:5)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는 예수의 예언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파로우시아’ 즉 보이지 않는 “임재”중에 오늘날 사람들의 행하는 일과 태도를 조사하여 보도록 자극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동일하게 믿음이 없음을 보십니까?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평범한 일상사에 동일하게 몰두하고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에 비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하여 동일하게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십니까? 기원 1914년에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육십여년 동안 여호와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과 근년에 나온 양같은 다른 사람들의 “큰 무리”가 하나님의 설립된 왕국과 다가오는 “큰 환난”에 대하여 전세계적으로 선포하여 왔지만, 일반 사람들은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읍니다.
8. (ㄱ) ‘노아’와 그의 가족은 마지막 주간 중 어느 날에 방주로 들어갔으며, 다음에 무슨 일로 일이 매듭졌읍니까? (ㄴ)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는 일이 없도록 경고가 됩니까?
8 ‘노아’ 시대에, 보존되어야 했던 동물과 새들의 표본이 홍수 전 마지막 주간에, 방주 안에 들여 보내졌읍니다. 그 중대한 주간의 마지막 날 즉 기원전 2370년 둘째 달(‘노아’의 달력) 17일에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도 방주에 들어갔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창세 7:1-16) 이렇게 문을 닫은 조치는 방주 안에 있는 ‘노아’와 그의 가족에게는 구원을 의미하였고 세상 일에 몰두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멸망을 의미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오늘날 자기의 ‘파로우시아’ 혹은 “임재”의 때에 살고 있는 자기의 모든 제자들에게 경고의 본으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불경건한 오늘날의 세상 사람들의 이기적인 방심과 믿음없는 냉담을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예수의 예언의 성취에 따라 주위를 기울이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세상과 함께 멸망될 수 밖에 없읍니다. 파멸적인 “큰 환난”은 부주의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알 수 없는 날과 때에 느닷없이 닥칠 것입니다.
개인에 따라 생명 아니면 멸망에 이름
9. (ㄱ) 예수께서는 구원과 멸망이 선택적일 것임을 어떻게 지적하셨읍니까? (ㄴ) 독수리와 같이 예리한 눈을 가지는 것이 어떠한 면으로 중요합니까?
9 그때에 구원과 멸망은 선택적일 것입니다. 심지어, 들에서 농사를 짓거나 집에서 맷돌을 가는 것과 같은 세속일을 함께 하는 가까운 동료 가운데서도 선택적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태 24:40, 41) 이 예언을 하시기 몇주일 전에 예수께서 비슷한 말씀을 하셨을 때에 그분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주여 어디오니이까?” 하고 질문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누가 17:34-37) 그러므로 구원을 위하여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들은 독수리와 같이 영적으로 예리한 눈을 가지고 여호와께서 그분의 안전 장소에 마련하시는 영적 연회에 모이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멸망으로 버려지는 사람들은 예수의 예언의 성취에서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고 냉담한 태도로 이기적인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적인 수단으로 자기들의 인간 영혼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다가 돌연한 “큰 환난”에서 그들의 영혼을 상실할 것입니다.
10.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자기 일에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떻게 강조하셨읍니까?
10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을 포함하여 자기의 일에 몰두한 ‘노아’ 시대의 사람들과 비슷한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비유의 교훈을 강조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희랍어: ‘에르케타이’]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 24:42) 만일 우리가 기원 1914년 이래의 주의 ‘파로우시아’를 믿는다면, 그릇된 일에 열중하다가 불시에 “큰 환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깨어 있고 경계해야 합니다.
11, 12. (ㄱ) 예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큰 환난”시에 여호와의 집행관으로 오시는 정확한 때를 알리지 않으셨읍니까? (ㄴ) 밤에 도적의 침입을 당하듯이 불시에 “큰 환난”을 당하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수의 비유는 지적합니까?
11 주 예수께서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후에도 없을 큰 환난’에 여호와의 집행관으로 오실[희랍어: ‘에르케타이’] 특정한 해, 특정한 달의 정확한 날과 시간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정확한 때를 알려주심으로 제자들 중 아무도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적인 일을 추구하는 데 몰두하다가, 이미 알고 있는 정확한 시간 직전에 경건의 모양을 보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봉사에 분주해지는 일이 있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정확한 날짜를 알려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계속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줍니다. 도적과 같이 “큰 환난”이 불시에 닥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순결한 숭배에 활동적이 아니라면 영원한 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12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밤의]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희랍어: ‘에르케타이’]”—마태 24:43, 44.
13. (ㄱ) 주께서 여호와의 복수를 집행하기 위하여 오시는 정확한 때를 제자들에게 알리지 않으신 데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읍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이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13 이처럼 여호와의 복수를 집행하기 위하여 즉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사물의 현 제도를 처벌하기 위하여 주께서 오시는 정확한 때를 적자들에게 확실히 알리지 않으신 데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읍니까?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항상 언제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며 계속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바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에 항상 열심인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기회주의자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그들이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고 마침내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일을 마치도 언제나 전적으로 수행해 오기나 한 것처럼 분주해야 한다고 생각될 때까지 기다립니까? “인자가 오”시는 것은 “생각지 않은 때”이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우리 주께서 승인하시는 숭배와 봉사에 활동적이어야 합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14. 예수께서는 어떠한 질문을 제기하심으로써, 자기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를 결심할 수 있게 하셨읍니까?
14 여기에서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주의 깊음과 준비태세에 관하여 언급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제, 여호와의 메시야께 대한 개인적인 전념에 있어서, 그리고 메시야를 섬기는 데 주의깊은 분별, 선견지명, 통찰력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면에서 제자들 각자에게 도전이 되는 질문을 제기하셨읍니다. 제자들은 각기, 다음과 같은 주인의 질문을 듣고 자기가 어떠한 종류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지를 결심할 수 있었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뇨?”—마태 24:45.
15. (ㄱ) 예수께서는 충실성을 보일 종에 대하여 왜 질문을 제기하셨읍니까? (ㄴ) 그 종이 누구인가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기며, 「마태복음」에 관한 ‘메이어’의 저서는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5 예수께서는 자기의 아버지의 말씀에 있는 영감받은 예언 통하여, 참다운 그리스도인 믿음과 봉사에서 반역적으로 배도하는 일이 있을 것을 분명히 아셨으므로, 그분이 제자들 각자에게 영향을 주는 이 예리한 질문을 제기하신 것은 매우 적합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분은 이 질문 형태로, 특정한 사람, 즉 어떤 제자 개인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그 분은 제자들로 구성된 한 반열을 언급하신 것입니까? 신학박사 ‘에이치. 에이. 더블류. 메이어’ 저 「마태복음의 비평 및 해석 편람」(1884년판)의 한가지 설명은 이러합니다. 즉, 그 책 429면에서 “누구뇨”라는 표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기에 암시된 준비 태세의 필요성을 고려함. 그 추리 자체는 비유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다. 즉 ‘도울로스’[종]는 주께서 자기의 교회의 인도자들로 임명하신 제자들을 대표한다. 그분의 교회에서 그들은 충실(고린도 전 4:1)과 주의깊은 분별을 나타내야 한다. ···” 그러나, 이처럼 “종”을 열 두 사도로 제한하는 것은 사도승전 즉 감독 직분의 계승, 성직 수임(授任)의 종교적 의식에 의한 주교(감독) 직분 계승의 교리를 인정하는 견해일 수 있읍니다.
16. “종” 반열이 제자들의 전체 집합체인지 아니면 감독자들만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마가복음 13:34-36은 어떻게 말합니까?
16 그러나,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영적 감독자들을 포함한) 제자들의 전체 집합체라는 견해를 받아들일 때에, 역사가 알려주듯이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엄청난 해악과 압제를 초래한 “감독 직분 계승”과 같은 교리는 배제됩니다. 제자 ‘마가’가 이 문제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묘사한 방식은, 제자들의 전 집합체가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마가복음 13:34-36을 보면 이러합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희랍이: 에르케타이]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17.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종”에 비기신 것은 왜 불쾌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들의 노예의 신분은 무엇을 의무화합니까?
17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을 “종”에 비기신 것이 다소 불쾌하게 들릴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그와 같이 분류하는 데는 합당한 근거가 있었읍니다. 예를 들면, 고린도 전서 6:20과 7:23에 이러한 말이 있읍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사도 ‘바울’의 그러한 말 외에도,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썼읍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베드로 전 1:18, 19) 이와 일치하게, 그리스도의 이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는 소개의 말로 두번째 편지를 시작하였읍니다.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라고 자기 소개를 하면서 겸연쩍어 하지 않았읍니다. (빕립보 1:1) 그리고 주의 이부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는 말로 자기의 편지를 소개하였읍니다. (유다 1) 그러한 기초를 가진 종 혹은 노예의 신분은 그리스도인의 충실성을 더욱 더 의무화합니다.
18. 고대 ‘이스라엘’은 왜 여호와의 종들로 구성된 민족이었으며, 어떻게 그 분은 그 모든 종들을 일 개인에 비기셨읍니까?
18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학대에 대하여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하고 이의를 제기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어떠한 학대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노예 상태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읍니다. (예레미야 2:14)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충실한 종으로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스라엘’ 나라는 이방인들에게 “포로”가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고대 ‘애굽’에서 구출하셨으므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는 여호와의 종들로 구성된 민족이었읍니다. 그 분은 ‘애굽’의 ‘바로’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특별한 권리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실 때 이 선민을 일 개인에 비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출애급 4:22, 23.
19.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민족을 자기의 일개 종으로 비겨 말씀하셨읍니까?
19 칠세기 이상이 지난 후에,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마치 일 개인으로서의 자기의 종인 것처럼 그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이사야 41:8, 9) 이 복합적인 “종”이 많은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창조주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증인들, 신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 여호와가 말하노라 ··· 내가 예로부터 너희에게 들리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나의 증인[증인들, 신세]이라.”—이사야 43:10; 44:1-8; 또한 42:19; 44:21; 48:20; 49:3; 예레미야 30:10.
20. 육적 ‘이스라엘’은 언제 배척되었으며, 누가 영적 ‘이스라엘’이 되었으며, 이사야 43:10의 말씀은 왜 그 ‘이스라엘’에게 적용됩니까?
20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신 지 오십일 후인 기원 33년 오순절에, 할례받은 육적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약 50-52년에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로마’령 ‘갈라디아’ 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 (갈라디아 6:15, 16) 참 그리스도인 회중은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에 관한 그 법칙에 따라 질서있게 행한 조직이었으며, 이제, 육적 ‘이스라엘’은 배척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주총자들의 회중이 “하나님의 ‘이스라엘’”이었읍니다. 그것은 영적 ‘이스라엘’이었읍니다. 연합된 회중이었던 그 회중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종”이었읍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들],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라는 이사야 43:10의 말씀은 영적으로 그들에게 적용될 수 있었읍니다.
21. (ㄱ) 예수께서는 그에 관한 질문을 제기하셨지만, 그 복합적인 “종”이 누구인지 아셨읍니까? (ㄴ) 그 “종” 반열이 언제 출현하였는지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1 예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하셨지만 이 “종”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셨읍니다. 분명히 예수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 “종”, 그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염두에 두셨읍니다. 그 복합적인 “종”을 택하는 데 실수가 없을 것이었읍니다. 그 분은 자기 피의 가치로 하나님의 그 ‘이스라엘’을 자기의 종으로 사셨으며, 예언 중에 말씀하신 비유에서 그 분은 그 ‘이스라엘’을 복합적인 “종”으로, 즉 “충성되고 지혜있”음을 증명할 “종”으로 언급하실 수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종”을 자기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관한 예언에서 말씀하셨으므로 그 복합적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1914년 이래 그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 기간 중에 처음으로 존재하게 되었읍니까?
22. (ㄱ)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왜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기간 중에 처음으로 존재할 수 없었읍니까? (ㄴ) “종”이 양식을 공급해야 하는 “집 사람들”은 누구였읍니까?
22 아닙니다. 왜냐 하면 예수의 비유는 “종”의 주인이 여행길에 오르는 것 즉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는 사람으로 묘사하기 때문입니다. (마가 13:34) 그러므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주인에게 그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사람입니다. (마태 24:45) 그 복합적인 “종”의 “주인”이,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라는 교훈을 “종”에게 남기고 여행길에 오른 것은 천 구백여년 전, 그 분이 승천하실 때였읍니다. (마태 28:16-20) “집 사람들”은 주인의 가족이 아니라 그의 “가정의 하인들”(‘에이치. 에이. 더불류. 메이어’) 혹은 그의 “집의 하솔”(신 영어 성서)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진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과 마찬가지로, 종들이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종들의 한 집합체였으며 동일한 “주인”에게 모두 순복하였읍니다. 모두는 “충성되고 지혜있”어야 하였읍니다.
23. (ㄱ) 그러므로 그 복합적인 “종”은 언제부터 존재하였읍니까? (ㄴ) 그러한 “종”이 그의 주인의 ‘파로우시아’의 “징조”를 살아서 보았음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23 예수의 비유는 기원 33년 그 분이 떠나실 때에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복합적인 “종”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 마침내 144,000명에 이르게 될 영적으로 출생하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의 회중은 그때부터 존재하였읍니다. (계시 7:4-8; 14:1-3)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1914년 이방인의 때의 끝에 “주인”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기간이 시작되었을 때에 지상에는 아직도 이 “종” 반열의 남은 자가 있었읍니다. 따라서, 그 복합적인 “종”은 주인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의 “징조”를 살아서 보았읍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라
24. 그 “종”은 무엇을 하도록 임명되었으며, 그 일에 왜 “집 사람들”이 사용될 수 있을 것입니까?
24 이 비유에서 “종”은 장사 기금으로 쓸 은 “달란트”를 받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 “달란트”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명된 “종”은 때를 따라 그의 동료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나눠줄 특별한 책임이 있었읍니다. 임명된 “종”에게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주인의 집에서 일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하여, 양식이 정기적으로 필요하였읍니다. 만일 주인의 집 사람들의 수가 많다면, 임명된 “종”은 그들 모두에게 개인적으로 가서 각자에게 직접 식사를 제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 현명한 수단으로, 그 “종”은 양식을 충분히 장만하고 모든 “집 사람들” 혹은 “집의 하솔”에게 양식이 제공되게 조처할 것입니다. “집 사람들”의 일부는 그들의 동료 집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 사람들이 서로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읍니다.
25. ‘때에 알맞게’ 언제 누구에게 “종” 반열이 “양식”을 나눠주기 시작하였으며, 그 날 어떠한 결과가 있었읍니까?
25 기원 33년 오순절에 ‘때에 알맞는’ 영적 “양식”이 마련되자마자, 임명된 “종” 반열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영의 감동을 받아 그 “양식”을 나눠줌으로써 “충성되고 지혜 있”음을 입증하였읍니다. 약 120명의 제자들로 된 회중이 “하나님의 큰 일”에 대하여 각기 말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작은 원래의 회중은 그 “일”을 자기들 속에만 간직하지 않았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는, 영적으로 굶주린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 “일”을 듣기 위하여 모였읍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 영적으로 굶주린 ‘유대’인들에게, 그리고 이제 시효가 지난 오순절을 축하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온 개종자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을 솔선하였읍니다. 마음으로 그들은 메시야 “주인”의 “집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였으며, “집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양식을 공급받을 필요가 있었읍니다. 바로 이 ‘알맞는 때’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였읍니다. 그 결과 그들 중 약 삼천명이 신자가 되었고 침례를 받았으며, 성령의 선물을 받았읍니다. 이제 그들은 참으로 주인의 “집 사람들”이었지만 아직도 더 많은 양식을 필요로 하였읍니다.—사도 2:1-42.
26, 27. (ㄱ) 양식을 공급하는 일이 확대되었을 때, “집 사람들”이 될 가망성 있는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누가 사용되었읍니까? (ㄴ) 이것은 주인께서 떠나시기 전에 주신 어떠한 명령과 일치하였읍니까?
26 그 후 삼년 반 이내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양식을 공급하는 노력은 “집 사람들”이 될 다른 사람들에게로 확장되었읍니다. 이들은 “모든 족속” 즉 비‘유대’인 곧 이방인 가운데서 나오게 되어 있었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일에 솔선하도록 사용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에 의하여 지중해 동쪽 해안에 있는 ‘가이사랴’에 파견되어 그 곳에서 이태리 백부장 ‘고넬료’와 그가 자기 집에 불러 모은 관심가진 사람들을 개종시켰읍니다. (사도 10:1에서 11:18) 그리하여 이방인들이 메시야이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집 사람들”이 되는 문이 활짝 열렸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집 사람들”이 될 가망성이 있는 이들에게 그들이 영적 ‘이스라엘’인들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영적 양식을 가지고 가서 그들을 먹여야 하였읍니다. 이들이 영적 “집 사람들”이 된 후에 그들도 또한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가담해야 하였읍니다. 이것이 주인께서 떠나기 얼마 전에 주신 다음과 같은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읍니다.
27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 28:19, 20.
28. (ㄱ) 오늘날도 먹을 수 있는 영적 양식의 어느 영속적인 부분이 기원 제 1세기에 마련되었읍니까? (ㄴ) 오늘날 우리에게는 “종” 반열이 처음에 먹은 영적 양식이 필요합니까?
28 영적 급식 사업에 영속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마태복음」에서 「계시록」에 이르는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신뢰할 수 있는 스물 일곱권의 책을 썼읍니다. 제 1세기의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그리스도인 “집 사람들”에게 제공한 영적 양식의 이 달콤한 부분은 현 이십세기의 그리스도인 “집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용합니다. 이 부분까지 포함하여, 완전한 성서 즉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된 설흔 아홉권과 제 1세기 일반 희랍어로 된 스물 일곱권으로 이루어진 66권의 영감받은 책이 있게 되었읍니다.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성경 뿐만 아니라, 전체 성서가 필요합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제 1세기에 출현하였을 때, 그 반열에게는 양분이 될 기록으로 된 영적 양식으로서 영감받은 히브리어-아람어 성경만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인 “집 사람들”이 당시 최초로 양분을 취한 동일한 원천에서 오늘날 우리도 양분을 취할 필요가 있읍니다. ‘예루살렘’의 원래 회중은 ‘히브리’어를 사용하였고 읽었읍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히브리’어 성경의 번역판이 필요합니다.
29. (ㄱ) 기원 제 1세기 후, “종” 반열의 급식 사업은 어떻게 계속되었읍니까? (ㄴ) 십구세기 후반에는 급식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었읍니까?
29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어떻게 존속하였으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에 어떻게 여러 세기 동안 일해 왔는지에 대하여는, 뚜렷한 역사적 기록이 없읍니다. 분명히 한 세대의 “종” 반열이 다음 세대에게 양식을 공급하였을 것입니다. (디모데 후 2:2) 그러나 19세기 후반기에 성서의 영적 양식을 사랑하고, 단지 거룩한 서적으로 간주하고 읽음으로써 즐거움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양분을 섭취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주일 학교와 교회들과 관계없는 성경 연구반들이 여러 곳에 조직되어 성경의 기본 진리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진보를 보았읍니다. 이들 성경 연구생들 가운데 성실하고 비이기적인 사람들은 영적 양식의 이 중요한 부분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를 열망하였읍니다. 그들은 “때를 따라” 필요한 영적 “양식”을 “집 사람들”에게 주도록 임명된 “종”의 충실한 정신을 나타냈읍니다. 그들은 당시가 올바르고 알맞는 때라는 것과 양식을 공급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데 “지혜”로왔읍니다. 그들은 양식을 공급하고자 노력하였읍니다.
30. (ㄱ) 그 때에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의 교리와 관련하여 어떠한 위험이 존재하였으며, 그것의 어떠한 옹호자가 ‘알맞는 때’에 일어났읍니까? (ㄴ) 「파수대」지의 편집자는 1881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대하여 무엇을 발표하였읍니까?
30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은 성서의 기본 교리 중 하나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영적 식탁에 제공된 이 중요한 음식물이 고등 비평과 진화론의 신봉자들에 의하여 제거될 위험이 증대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제 알맞는 때’라고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때에, 그리스도의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의 비타협적인 옹호자가 나타났읍니다. 그것은 성서 애호자들을 위한 아주 새로운 잡지인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의 형태로 출현하였읍니다. 이 잡지의 창간호는 1879년 7월호였는데, 6,000부가 발행되었읍니다. 편집겸 발행인은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어그’의 성경 연구 모임의 일원인 ‘차알즈 테이즈 러셀’이었읍니다. 이 학구적인 그리스도인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관한 예수의 비유에 유의하고 1881념 11월호 「파수대」(영문) 5면에서 그것에 관한 자기의 이해를 발표하였읍니다. “포도원에서”라는 기사의 마지막 4항과 5항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몸의 모든 성원이 직접 간접으로 믿음의 식구에게 때에 맞게 식사를 제공하는 축복받은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집 사람들을 맡아” 때에 맞게 식사를 제공하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누구입니까? 성별의 서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성별된 종들의 그 “적은 무리”—그리스도의 몸—믿음의 식구에게 때에 맞게 식사를 개인적으로 또한 집단적으로 제공하는 집합체 전체—신자들 단체가 아닙니까?
주께서 오실(희랍어, 엘톤) 때에 그 일을 하는 종(그리스도의 몸 전체)은 복이 있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그가 모든 것을 상속하리라.”
31. (ㄱ) ‘시이. 티이. 러셀’이 자신을 가리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라고 주장하였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ㄴ) 그가 그 “종” 반열의 충실한 일원으로 봉사하였음을 어떠한 기록이 증명해 줍니까?
31 이로 보건대 「시온의 파수대」지의 편집겸 발행인은 자기 자신이 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라는 일체의 주장을 부정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는 결코 그러한 주장을 한 일이 없읍니다.a 그러나, 그는 1916년 10일 31일에 사망하기까지 「파수대」지를 계속 편집하였읍니다. 그는 1881년에 ‘시온의 왙취 타워 협회’를 조직하고 1884년 12월에 ‘펜실베이니아’ 주 법에 따라 그 협회를 법인체로 만들었읍니다. 그는 또한 1886-1904년에 「성경 연구」 전 6권을 저술하였고, 성서의 여러 가지 제목에 관한 많은 소책자를 발행하였으며, 또한 1914년 1월에 상영되기 시작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창조의 사진극’을 제작하였읍니다. 그 후에 그것은 전세계에서 상영되었읍니다. 그는 세계 각처에서 수없이 여러 번 공개 강연을 행하였읍니다. 그는 미합중국을 횡단하는 마지막 공개 강연 여행중에 사망하였읍니다. 그가 1916년에 사망하기까지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데 있어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일원으로 사랑을 가지고 일하였음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읍니다.
32. ‘러셀’의 사후에, 어떻게 그에 대한 종파적인 경향이 자랐으며, 그러나 이 경향은 언제 어떻게 정지되었읍니까?
32 예수의 비유의 “종”이 단순한 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름부음받은 회중이므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시이. 티이. 러셀’의 사후에도 계속 일하였읍니다. 그러나, ‘러셀’에 대한 인식과 감사의 관념에 젖은 그의 동료 중 많은 사람들은 그를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의 성취라고 보았읍니다. 이러한 견해가 ‘뉴우요오크 브루클린’의 ‘만인의 설교단 회’가 1917년 7월에 발행한 책에 현저히 나타났읍니다. 이 책은 「종말을 고한 비밀」이라는 책으로서 「계시록」과 「에스겔」과 ‘솔로몬’의 「아가」에 관하여 해설하였읍니다. 발행자의 ‘페이지’에서 그 책은 ‘패스터 러셀’의 유작이라고 불리웠읍니다. 그러한 책과 종교적 태도는 한 사람을 중심으로 한 종파를 일으키려는 경향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1927년 초에 2월 1일자 2월 15일호 「파수대」(영문)에 “아들과 종” 및 “착한 종과 악한 종”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발행되면서 그러한 종파적인 경향이 정지되었읍니라. 이러한 기사들은 마태 24:45의 “종”이 복합적인 종임을 지적하였읍니다.—이사야 43:10-12.
33. ‘러셀’의 저서와 「종말을 고한 비밀」의 재고가 처분되자 그리스도의 “집 사람들”에게 “양식”이 없었읍니까?
33 그 후 1929년에 ‘러셀’ 저 「성경 연구」 6권 및 「종말을 고한 비밀」의 재고가 일반 사람들 가운데 모조리 배부되었읍니다. 그러면 이 때문에 주의 “집 사람들” 즉 “집의 하솔”에게 ‘때에 알맞는’ 영적 양식이 없었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렇지 않았음을 이제 살펴보겠읍니다.
“복이 있”는 종
34.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대하여 누가 질문을 제기하셨으며, 누가 어떻게 질문에 대답하셨읍니까?
34 마태복음 24:45에서 예수께서는 주인의 “집 사람들”을 맡아 양식을 나눠주도록 임명된 “종”에 대하여 그리고 이 “종”이 어떻게 충성과 지혜로움을 증명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을 제기하시지 않았읍니까? 바로 다음 귀절(마태 24:46)에서 예수께서는 또한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주인이 올[희랍어: ‘엘톤’]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그 “종”은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하라고 주인에게 임명받은 일 즉 집 사람들에게 ‘때에 알맞게 양식을 나눠주’는 일을 계속함으로써 그의 주인에 대한 충성과 지혜를 증명하였읍니다. 이 결과 그의 주인이 돌아올 때에 그 “종”은 커다란 행복을 얻게 되어 있었읍니다.
35. (ㄱ) 일찌기 제 1세기에, “종” 반열은 예수께서 예언하신 어떠한 소란한 기간을 생존하였으며, ‘요한’은 일세기 말에 무엇을 썼읍니까? (ㄴ) 이와 상응하여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 “종” 반열에 관한 어떠한 질문이 생겼읍니까?
35 십구세기 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처음 형성되었을 때에 그 반열은 마태복음 24:4-22과 마가복음 13:5-20과 누가복음 21:8-24에서 예수께서 예언적으로 설명하신 소란한 기간을 생존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이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에 의하여 멸망된지 25년 이상이 지난 후에 사도 ‘요한’은 「계시록」과 「복음서」와 세 편지를 썼는데, 이것들은 모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을 위하여 그리고 천적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읍니다. 기원 1914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남은 자들은 “[그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관한 예수의 예언의 완전한 혹은 최종적인 성취의 때에 들어갔읍니다. 기원 33년부터 기원 70년까지의 모형적 기간의 특징이 될 것이라고 예수께서 예언하신 사건들이 기원 1914년에도 발생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기원 33년과 기원 70년 사이에 “종” 반열에게 임한 일과 상응하여 발생할 어려운 일을 생존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생겼읍니다.
36.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종” 반열이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기가 어떻게 어려워졌으며, 「파수대」지는 어떠하였읍니까?
36 1914년 10월 4/5일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 제 1차 세계 대전은 이미 2개월 이상 경과되었었읍니다. 이 전쟁은 인류 세상에 뿐 아니라 주인의 “종” 반열에게도 새로운 것이었읍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은 기원 33년에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 여러 해 동안의 특징이었던 예언된 “난리와 난리 소문” 및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난’ 일보다 훨씬 큰 폭력과 파괴력을 수반하였읍니다. (마태 24:6, 7) 세계 대전의 상태와 제약 때문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때에 알맞게 양식’을 천적 주인의 “집 사람들”에게 계속 나눠주기가 매우 어려워졌읍니다. 그들에게 사태는 더욱 악화하여 마침내 집 사람들 중 다수가 형무소 혹은 영창에 갇혔고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역원들과 「파수대」의 편집부원들이 1918년 여름에 중형을 선고받고 ‘애틀란타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지는 ‘브루클린’에서가 아니라 원래의 발행지였던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어그’에서 계속 발행되었읍니다.
37.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에 “종” 반열에게 어떠한 고통스러운 상태가 있었으며, 그에 관해 어떠한 질문이 일어났읍니까?
37 1918년 11월 11일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에 그와 같은 고통스러운 상태가 있었읍니다. ‘왙취 타워 협회’ 본부와 국외 지부와의 국제적 통신이 두절 혹은 방해받고 있었읍니다. 성서 서적은 정부 당국의 금지령 하에 들어갔거나 사람들에게서 회수되었읍니다. 성서 책자를 발행하는 데 사용되던 인쇄소의 금속판은 어떠한 이유에선가 파괴되었거나 분실되었읍니다. 이제 주인의 “종” 반열 앞에는 어떠한 전망이 놓여 있었읍니까? 이 “종” 반열은 당시 열려진 전후 기간에 어떻게 하기로 결의하였읍니까?
종의 주인이 검열할 때
38. 당시 상황에 합당했던 검열의 때에 적절하게,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교파에 대하여 그리고 국제적으로 미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겼읍니까?
38 의심할 여지 없이, 그 때는 주인의 “종” 반열을 검열할 때였읍니다.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그 때에 주인이 검열하기 위하여 오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을 말라기 3:1-5에서 예언하였읍니다. 물론, 그리스도교국의 종파적인 여러 교회는 스스로 전시의 기록,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종들이라는 그들의 주장과 중대한 관계가 있는 공개적인 기록을 만들었읍니다. 그들은 당시 1919년까지의 그들의 최신 기록으로도, 그들 자신이 하늘에 계신 주이며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합적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임을 증명할 수 있었읍니까? 재판관으로서 그 분은 그 이후 그 분이 그리스도교국의 수백가지 종파를 다루신 방식으로 자신의 판결을 나타내실 것이었읍니다. 이제,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리스도께 순종한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은 성실하고 성서를 연구하는 그리스인들에게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들도 또한 하나님의 검열을 받게 되었으므로 주인께서는 그들에 대한 그 분의 결정이 어떠함을 보이셨읍니까?
39. 예수의 비유에 의하면, 주인은 어떠한 정신으로 귀가하셨으며, 어떠한 목적을 염두에 두셨읍니까?
39 예수의 비유에 의하면, 종을 임명한 주인은 어떻게 자기 집으로 돌아왔읍니까? 집을 파괴하기 위하여 크게 노기를 띠고 돌아왔읍니까? 아니면 즐거이 귀가하여 그 분의 부재 중에 어떠한 일이 진행되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셨읍니까? 그 분은 집으로 평화롭게 돌아오셨읍니다. 그 분은 ‘아마겟돈’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돌아오시지 않았읍니다. (계시 16:13-16) 오히려 그 분은 자기의 집안 일이 올바른 상태에 있음을 확인하기를 원하셨읍니다. 자기의 임명을 받은 종은 임명한 일 즉 “집 사람들”에게 ‘때에 알맞게 양식을 나눠주’라는 일을 해왔읍니까? 주인은 검열을 행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40. 정기적으로 올바른 종류의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 결정의 근거였으므로, 돌아온 주인은 박해받고 미움받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무엇을 발견하였읍니까?
40 양식 곧, 올바른 종류의 양식을, 때에 알맞게 제공하는 것이 문제였읍니다. 돌아온 주인은 바로 이것에 따라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면 국제적으로 미움을 받고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 단체는 어떠하였읍니까? (마태 24:9) 기원 1919년까지 그들은 천적 주인의 “믿음의 식구” 즉 “집 사람들”에게 ‘때에 알맞게 양식’을 나눠주고자 노력하였읍니다. 그들은 박해자들과 전쟁에 몰두하는 국가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행하였읍니다. 영적 양식을 정기적으로 공급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그 양식 자체의 질도 고려되어야 하였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미움받고 박해받은 그리스도인들 즉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들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의 단체가 적격자임을 나타냈읍니다.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정부가 제시하는 전쟁 선전을 전달하는 점에서 그리스도교국이나 이교국에 가담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꾸준히 그 시대를 위한 성서 소식을 전파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 성서 원칙에 그리스도인이 고착해야 함을 역설하였읍니다.
41.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검열하실 때에 주인은 무엇에 영향을 받지 않으셨으며, 그 분의 결정은 그 이후 어떻게 명백히 나타났읍니까?
41 그러면 천적 주인은 이들 순종하는 그의 종들에 대하여 어떠한 결정을 내렸읍니까? 그 분은 전쟁에 미친 세상에서의 그들의 천대받고 박해받는 입장을 보고 영향을 받으시지 않았읍니다. 사실 그 분은 자기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즉 “임재” 중에 그들이 그러한 어려운 일을 겪을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 종들의 그 단체가 세상의 천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의 부재 중에 행하도록 임명받은 일을 행함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고자 노력하는 것을 발견하셨읍니까? 1919년에 시작된 검열에 따라 그 이후 그 분이 결정한 바에 의하면, 그 분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발견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주인의 행동, 그분이 그리스도인 종들을 다루신 방법을 볼 때 너무나 명백합니다.
42, 43. (ㄱ)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시던 밤에 어떠한 예언을 자기의 사도들에게 적용시키셨으며, 그것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ㄴ) 예수께서 1914년에 즉위하신지 삼년 반 후에 같은 스가랴 13:7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었읍니까?
42 예수의 사도들의 경우를 잠깐 생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은지 삼년 반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배반당하셨읍니다. 그분은 스가랴 13:7의 예언을 인용하여 자기의 사도들에게 발생할 일을 이렇게 예언하셨읍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마태 26:31, 32) 예수께서 ‘스가랴’의 예언을 그분의 사도들에게 적용시키신 것이 타당했음이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그 날 밤에 증명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마태복음 26:56에 있는 기록이 알려주듯이, 예수께서 배반당하신 후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양”들은 과연 흩어졌던 것입니다.
43 이와 평행하게,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즉위하신지 삼년 반 후, 1918년 3월 26일 화요일에 주의 만찬의 연례 기념식이 있었읍니다. 천적 목자의 “양”들이 흩어지는 일이 그 때에 절정에 달하였으며 1918년 3월 1일호 「파수대」지(영문)는 “우리 왕을 기억함”이라는 주요 기사의 첫 항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다가오는 이번 기념식이 지상에서 마지막 기념 행사가 될 것인지는 물론 우리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희망의 완전한 성취의 때가 일년 더 가까와진다는 것은 우리가 확실히 압니다. 만일 우리가 이 기념식을 여러 해 더 기념하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신다면 우리는 기쁘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목자의 “양”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과 관계가 있었던 ‘왙취 타워 협회’의 탁월한 역원이 체포되어 부당한 재판을 받고 장기 징역형을 선고 받아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에 전망은 어두웠읍니다. 당시에는 스가랴 13:7이 성취되고 있다고 인식되지 않았읍니다.
44. (ㄱ) ‘스가랴’의 예언의 밝은 면은 무엇이라고 말하며,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그 예언의 이 부분은 예수의 사도들에게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44 그러나, 이 예언에는 밝은 면이 있었읍니다. 그 예언은 목자를 치고 양들이 흩어질 것을 예언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이러한 약속을 부가하였읍니다.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그것은 여호와께서 흩어진 양들에게 은총을 가지고 손을 드리우시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양이 흩어지는 데 대한 예언을 인용하신 후에 사도들에게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하고 부언하심으로 힘을 북돋아 주셨읍니다. (마태 26:32) 이것은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신 후에 그들을 다시 모을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이 일이 실제로 있었읍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마태 28:16-20.
45. 이 동일한 예언은 1919년에 충실한 “종” 반열에게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이 “종” 반열은 무엇 때문에 ‘행복’하게 되었읍니까?
45 이와 유사하게, 1919년에 여호와께서는 “작은 자들 위에 ··· 손을 드리우”셨읍니다. (스가랴 13:7) 여호와의 목자이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흩어진 “양”들을 실제로 다시 모으기 시작하셨읍니다. 비유에 나오는 종의 주인과 같이, 주인이신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의 집에 돌아오셨고 그 집 안에 상태를 검열하셨읍니다. 그 분은 그 곳에서, 세상 상태에도 불구하고 명령에 순종하여 때에 알맞게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에서 나온 영적 양식을 주의 “집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노력하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을 참으로 발견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자기의 집의 잘 조직된 “집 사람들”의 단체 안으로 그들을 다시 모으심으로 자기의 은총을 나타내셨읍니다. 1919년 9월 1-8일에 ‘오하이오’ 주 ‘시다 포인트’에서 개최된 8일간의 대회는 보이지 않게 임재하여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충실한 “양”들을 다시 모으신다는 것을 전세계에 통고하는 역할을 하였읍니다. 그 대회는 돌아오신 주 예수께서 발견하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누구인가를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종” 반열은 행복하였읍니다. 그것은 그들이 그들의 천적 주인을 섬기는 봉사에 고용되고 있음을 의미하였읍니다.
46. 예수께서는 충실한 “종”이 어떠한 상을 받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설명하셨읍니까?
46 주 예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왜 행복한지를 설명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주인이 올[희랍어: ‘엘톤’]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마태 24:46, 47; 누가 12:42-44.
주인의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받음
47. 충실한 “종”의 승진은 그에게 무엇을 부과하며, 이것은 그의 주인의 새로운 자격과 어떻게 일치합니까?
47 주 예수께서는 주인이 임명한 일을 행한 데 대한 상으로서 기다리는 것이 있기 때문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읍니다. 그는 주인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주인에 대한 더 큰 책임을 받고 승진됩니다. 그것은 틀림없이, 그의 주인 역시 더 큰 책임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확실히 주인은 단순히 관광차 혹은 휴양차 자기의 집을 떠나 여정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그는 더욱 중요한 목적, 즉 그의 지위를 높이고 그의 권능과 권위를 증가시킬 목적을 염두에 두었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늘로 떠나 아버지의 우편에서 오랫 동안 기다린 후에 왕국을 받을 것에 적용되는 비유를 여기에서 말씀하고 계셨음을 고려할 때에, 주인의 책임의 증가가 비유 가운데 암시되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주인이 새롭고 더 큰 자격을 갖추고 귀가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히브리 10:12, 13) 그러므로 “그 모든 소유”는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승진된 “종”은 그의 주와 함께 영예를 나눕니다.
48. 돌아온 주인이 “종” 반열에게 맡긴 봉사는 그 이전의 봉사보다 왜 더 중요하고 영예로운 것이었읍니까?
48 예언적 비유의 성취에서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1914년에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났을 때에 천국을 획득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 분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즉 “임재”는 그 해에, 그 분이 천적 보좌에서 통치하는 왕으로서 면류관을 받으면서 시작되었읍니다. 그 분이 모든 “집 사람들”을 검열하시기 위하여 1919년에 “집의 하솔”에게 돌아오셨을 때에 그 분은 제 1세기에 이 지상에 계시던 때에 가지시지 못했던 왕의 자격으로 돌아오셨읍니다. 따라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그들이 그때까지 섬긴 분보다 더 큰 지위와 권위와 권능을 가지신 분을 섬기게 되었읍니다. 그 결과 그 분께 대한 봉사는 이제 더욱 중요하게 되었읍니다. 이제 그 분을 섬기는 것은 더 높은 영예가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분으로부터 승진의 영예를 얻고 따라서 더 큰 책임을 위탁받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상이었읍니다!
49. 돌아온 주인이 “종”에게 “그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하는 것은 종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으며, 그에게 어떠한 기회를 주었읍니까?
49 비유 가운데서, 주인은 떠나기 전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에게, 제한된 책임을 주었읍니다. 그는 이 종에게 단지 그의 집 사람들 즉 집의 하솔을 맡아 그들에게 때에 알맞게 합당한 양식을 나눠주도록 의무를 부과하였읍니다. 따라서, 주인이 돌아와서 승인받은 종에게 “그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할 때에 그것은 승진된 종에게 더 큰 책임을 의미하였읍니다. 이제 그는 더 큰 방법으로 충실함과 지혜있음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더 많은 것을 감독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상받을 만한 종이 됩니다.
50. “그 모든 소유”는 어디에 있는 것을 가리키며, 그것은 무엇입니까?
50 비유의 성취에서, 주인이 합당한 종에게 맡기는 “그 모든 소유”는 하늘에 있는 그의 모든 소유를 상징하지 않습니다. 영화롭게 되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분이므로, 그분의 거룩한 천사들이 그분을 섬기는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모든 “소유”를 돌보실 능력이 부족하시지 않습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맡겨지는 “그 모든 소유”는 그 분의 설립된 천국과 관련하여 지상에서 그분에게 속한 모든 영적인 사물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현재 인간이 세운 모든 정치적 체제를 운영하고 통제하는 분이 아니므로 그것은 이 세상 정부의 어떠한 부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체제는 모두 멸망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소유”는 기원 1914년에 하늘에 왕국이 건설된 이래 적용되는 예언의 성취로서 지상에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51. 충실한 “종” 반열의 대사로서의 지위는 어떻게 이전보다 지금 더 크며, 그들은 현재 예언에 대한 어떠한 특권과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까?
51 기원 1919년에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의 남은 자들을 검열하실 때 통치하시는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임명받은 “종”이 자기의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에 충성되고 지혜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분명히 발견하셨읍니다. 따라서 그 분은 이 “종” 반열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기셨읍니다. 그들의 확장된 책임있는 지위는 이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왕국 예언의 성취에 이바지하는 것이었읍니다. 지금까지 여러 세기 동안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은 “그리스도의 사절”들로 구성되었읍니다. 그 사절 즉 대사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권고합니다. (고린도 후 5:19, 20, 새번역) 그러나 1919년에 임명을 받은 이래 그들은 창건된 메시야 왕국의 대사들이며, 새로운 의미와 힘을 지닌 왕국 소식을 전하고 있읍니다. (마태 24:14; 마가 13:10) 기원 1914년 이래 최종적으로 성취되어 온 왕국 예언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요 책임입니다. 그들이 「계시록」의 놀라운 상징에 의한 예언과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에 관한 영광스러운 소식을 이루는 데 사용되는 것은 참으로 큰 영예입니다!
52. 어떻게 이것은 “종” 반열의 지위를 높여 주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계시록」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읍니까?
52 이 모든 특권과 책임과 영광과 영예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며 하늘에 계신 주인이며 통치하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수여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행복’하다는 선언을 들을 수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들이 이러한 귀중한 것을 위탁받는 것은 그들이 참으로 높여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원수에게 죽임을 당한 “두 증인”에 관한 계시록 11:11, 12의 묘사와 비슷합니다. 그들의 시체는 사흘 반 동안 ‘소돔’ 같은 “큰 성” 넓은 길에 눞여 있었읍니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53. (ㄱ) “종” 반열의 특권과 책임은 왜 이제 더 커졌읍니까? (ㄴ) 이전의 간행물이 처분되었지만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일은 어떻게 계속되었읍니까?
53 그들이 그러한 높여진 특권과 책임을 받는 것은 복합적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함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들은 더 많은 시간과 주의를 기울여야 하였으며, 또한 지상에서의 이 왕국 사업에 관한 성서 예언이 이루어지도록 더 큰 시설을 사용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또한 더 큰 밭, 즉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방방곡곡에서 일해야 하였읍니다. (계시 14:6, 7; 10:11) 물론, 주의 “집 사람들”에 대한 급식 계획은 계속 되어야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영적 식탁에서 참으로 훌륭한 성경적 식사를 즐겨왔읍니다! ‘시이. 티이. 러셀’이 저술한 「성경 연구」와 「종말을 고한 비밀」의 재고가 1929년에 처분되었지만 이들 “집 사람들”에게는 영적 양식이 부족하지 않았읍니다. 1921년에 「하나님의 거문고」라는 책이 나온 이래 새롭고 시기에 맞는 서적과 소책자와 책자가 계속 발행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1919년 10월에는 「파수대」의 자매지로 「황금 시대」(현재의 「깨어라!」)지가 발행되었읍니다.
54. “종” 반열에게 「계시록」에 묘사된 무엇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하는 특권이 부가되었으며, 이 결과 어떻게 더 큰 책임을 받지만 또한 도움이 있게 되었읍니까?
54 상을 받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부가된 특권과 책임은 사도 ‘요한’이 영감 아래 보고 그가 계시록 7:9-17에서 묘사한 아름다운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렇습니다. 1935년 이래 “종” 반열은 그 환상이 실현되는 것을 보아 왔읍니다. 그들의 축복받은 눈은, 지상 도처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그 분의 영적 성전에서 찬양하고 숭배하며 구원을 하나님과 그 분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리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영적 ‘이스라엘’인의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계속 증가하는 이 “큰 무리”를 돌보는 더 큰 책임을 의미하였지만, 그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이들 양같은 사람들이 지상에 있는 “그 모든 소유”의 귀중한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며, 따라서 그들은 이들 “다른 양”의 영적 필요를 기쁘게 돌보고 있읍니다. 한편, 이 “큰 무리”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주의 지상의 모든 “소유”를 돌보는 일을 돕고 있읍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55, 56. “종” 반열의 각 성원은 왜 자기의 충성과 지혜를 유지해야 하며, 예수의 어떠한 경고에 비추어 볼 때에 그러합니까?
55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그 행복한 봉사가 끝날 때까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을 계속 두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 반열의 영으로 출생하고 기름부음 받은 각 성원은 오늘날 자신이 그 높이 은총받은 반열에 계속 머물기에 합당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자신의 행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충성되고 지혜 있음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악한 종”이 된 사람과 같이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위험을 경고하여 비유로써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56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 친구들[문자적으로, 취하는(자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희랍어: ‘헥세이’] 엄히[문자적으로, 그는 그를 쪼갤 것이다]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 24:48-51; 누가 12:45, 46.
57. (ㄱ)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주인이 당초에 “악한 종”을 임명한다고 혹은 임명된 종이 악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 문제를 소개하신 방식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무엇을 나타내신 것입니까?
57 예수께서 여기에서 하신 말씀을 면밀히 살펴보면, 여기에서 여행을 떠나는 “주인”이 당초에 “악한 종”을 임명한다고 말하지 않았음에 유의하게 됩니다. 또한 그 분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악”하게 된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읍니다. 그분은 단지 의문을 제기하여 “만일”(누가 12:45과 「행간 번역」의 마태복음 24:48과 같이) 집 사람들을 맡은 종이 마음으로 “악”하게 된 후에, 주인이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부당한 행동을 시작한다면, 주인은 돌아와서 그를 이러한 식으로 다룰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종은 결단코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임명받은 종이 악하게 되어 충성과 지혜가 없는 행동을 한다면 주인이 갑자기 돌아올 때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 종은 예수께서 묘사하신 바와 같은 처분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원래의 임명받은 종이 확실히 혹은 거의 확실히 악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셨읍니다.
58. (ㄱ) 다른 현대 번역판들은 그 귀절을 어떻게 의역하였읍니까? (ㄴ) 예수께서 임명하신 “종” 반열이 악하게 된다면 그 결과 예수께서는 어떠한 상태에 있게 되실 것입니까?
58 예수의 말씀에 대한 몇가지 현대 번역판은 다소 의역을 함으로써 그러한 사상을 더욱 명백히 밝혀 줍니다. 「미국역」은 이러합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악한 종이고 ‘주인은 오래 뒤에 올 것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다른 종들을 때리며 술군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 (마태 24:48, 49) 「신 영어 성서」도 비슷합니다. 「신 미어 성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만일 종이 무익한 자이고 ···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 ‘알. 에프. 웨이마우드’역 「현대어 신약」은 이러합니다. “만일 그 사람이 악한 종이어서 ··· 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면.” “악한 종”이 존재하게 될 것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확정적으로 예언하지 않으셨읍니다. 그 분은 단지, 종이 불충실하고 지혜없으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인지와 그러한 사람은 주인이 갑자기 돌아올 때에 어떠한 벌을 받을 것인지를 설명하셨읍니다. 만일 주 예수께서 임명하신 “종”이 악하게 된다면 그 분께는 성실에 대한 상을 줄 “종”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두가지 종 반열을 임명하지 않으십니다.
59. (ㄱ) 예수께서는 어떠한 종류의 “종” 반열을 위하여 토대를 놓으셨읍니까? (ㄴ) 예언은 “종” 반열이 악하게 될 것으로 혹은 악한 일을 할 것으로 지적합니까? 아니면, 달리 지적합니까?
59 예수께서는 십구 세기 전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 자기의 “집 사람들”을 악하고 무익한 “종”에게 맡기지 않으셨읍니다.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기록은 임명받은 “종” 반열이 악하게 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며, 그 예언에 의하면 “종” 반열은 악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그분은 시험받고 자격이 증명된 사도들을 토대로 하여 충실한 종들의 집합체를 구축하셨읍니다. 계시록 7:3-8은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인 전원이 “우리 하나님의 종들”로 인침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읍니다. 계시록 12:17은 용인 ‘사단’ 마귀가 하늘에서 추방된 후에 그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하나님의 “여자의 씨”의 남은 자에 대하여 전쟁을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14:1-4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144,000명 전부가 ‘시온’ 산에 그와 함께 설 것을 예언합니다. 그들은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60. (ㄱ) “그 악한 종”과 같이 행동하는 개인들은 주인으로부터 그러한 임명을 받았읍니까? (ㄴ) 그러한 모든 개인들은 전체적으로 무엇을 형성합니까?
60 “그 악한 종”의 묘사에 따라 행동하는, 영으로 출생하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반열이 있다면, 그들을 임명하고 그의 집 사람들 혹은 “집의 하솔”을 그들에게 맡긴 분은 주 예수가 아닐 것입니다. 한 때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성원이었던 개인들은 개인적인 야망과 다른 사람을 누르는 권력과 자기 욕망의 과도한 추구와 같은 이기적인 이유로 떨어져 나올 수 있읍니다. 이들 이기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목표를 추구하는 여러 종류의 집단을 형성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과 분리되고 구별된 전체적인 하나의 반열을 형성할 것입니다.
61. 예수께서 “악한 종”에 관하여 말씀하신 바를 예시하는 사례가 있을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치적입니까?
61 행위와 그 결과에 관한 한, 주 예수께서는 자기가 의도한 바를 예증하는 어떤 경우 혹은 일반적인 사례가 뒷받침하지 않는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실 것으로 믿는 것이 이치적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 악한 종” 반열 혹은 그러한 형태의 그리스도인들을 임명하셨음을 예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설명하신 바와 같이, 그 분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 즉 임재 중에 신뢰할 수 없고 불충실하고 신용할 수 없고 지혜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실제로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예시할 것입니다.
62. 특히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이에 대한 어떠한 사례가 있었으며, 이것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62 「파수대」의 편집자 즉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창립자가 기원 1916년에 사망한 직후에 이것을 예시하는 사례가 ‘만국 성경 연구회’ 성원들 가운데 있었읍니다. 협회 정관의 규정과 반대로 세력과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일부 사람들의 시도가 있었읍니다. 주께서 승인하시는 조직을 구성할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가 있었읍니다. 세력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합법적인 정관과 성서의 원칙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는 성실한 노력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욕구불만에 빠졌읍니다. 그들은 인쇄물로, 구두로 그리고 법정에서 ‘동료 종들을 많이 때렸’읍니다. 특히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영적으로 말하여 이 세상의 “술 친구들”의 편에 섰읍니다. 이 모든 일은 당시 증대하는 종교적 박해를 받고 있던 조직의 안정성을 크게 시험하였읍니다. 그것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게 큰 시련을 가져다 주었읍니다.
63. (ㄱ) 예수께서는 그러한 “악한 종” 집단이 “집 사람들”의 집을 분열시키지 못할 것임을 어떻게 보증하셨읍니까? (ㄴ) 이 예언된 조치는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63 예수의 비유는, 그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 중에 “그 악한 종”의 특성을 가진 어떤 불충성스러운 자들이 그분의 “믿음의 식구들”을 분열시키거나 지배하거나 “때를 따라” 영적 양식을 나눠주는 임명에서 그들을 돌아서게 하는 일을 그분이 허락지 않으실 것을 보증하셨읍니다. 검열의 때에 그분은 그러한 악한 기질을 가진 반열을 매우 엄하게 벌하였읍니다. 마태복음 24:51에 사용된 희랍어 동사의 문자적인 의미에 의하면 “쪼개어 내고” 입니다. (난외주) 그분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로부터 나쁜 짓을 하는 자들의 반열을 “쪼개어 내”십니다. 이러한 조치는 독립을 요구하는 파업과 같은 그들의 행동과, 탈퇴하여 그들의 취향에 따라 머리 직권을 가진 독자적인 종교 집단을 형성하는 행동으로 나타났읍니다. 그들의 행위의 결과를 조사해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64. 주인은 “그 악한 종”같은 자들을 누구와 같이 처벌하며, 그러나 그는 그들이 누구와 같이 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64 “쪼개 내”어진 그러한 반열은 예수께서 묘사하신 “그 악한 종”의 특징을 나타내고 그 결과를 당하였으며, 적어도 제한된 의미에서는, “악한 종” 반열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비유 가운데서 주인이 그들을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4:51) 이와 상응하는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종”을 “청지기”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주인이 와서 ··· 신실하지 않은 자들이 받는 벌에 처할 것이다.” (누가 12:46, 새번역) 주 예수께서는 자기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 중에 자기의 “집의 하솔” 즉 “집 사람들” 안에 “그 악한 종” 혹은 “청지기”의 특성을 지닌 자칭 그리스도인들을 두기를 원하지 않으실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그리스도교는 위선적임이 판명되며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종교적 위선자들과 동류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그들에게 임명하신 일에 있어서 불충실하고 믿음이 없고 신뢰할 수 없고 신용이 없는 자들임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불충실한 자칭 그리스도인들과 동류입니다.
65. “그 악한 종”같은 사람들이 울며 이를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5 “악한 종”의 특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위선자들과 불충실한 자들 가운데서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 위선자들과 불충실한 종교가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 24:51)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회개하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때문이 아닙니다. (고린도 후 7:10) 그것은 그들의 괴로움과 쓰라린 실망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여전히 종교적으로 살아갈지 모르지만 주인의 “모든 소유”를 돌보는 승인받은 종의 임무를 수행하는 기쁨과 축복을 받고 있지는 못합니다.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
66.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징조”에 관한 자기의 예언 끝에서 제자들에게 어떠한 경고를 하셨읍니까?
66 예수께서는 자기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대한 예언에서 “악한 종”의 운명을 알리는 비유로 끝이지 않으시고 그 이상의 경고를 주셨읍니다. 그분은 자기의 사도들에게 그러한 “악한 종”의 행로를 따르지 말라는 직접적인 경고의 말씀을 하셨읍니다. 예수의 놀라운 예언의 끝에 관한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누가 21:34-36.
67. 돌아온 주인의 “모든 소유”가 충실한 “종” 반열에게 맡겨졌으므로, 그 주인의 경고에 유의하는 것은 그 “종” 반열의 성원들에게 왜 극히 중요합니까?
67 보이지 않게 임재하신 주 예수의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게 “그 모든 소유”가 맡겨졌으므로, 이제 각자는 그 말씀에 유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유례없는 “큰 환난”이 불충실한 ‘예루살렘’의 실체인 그리스도교국에 갑자기 임할 때는 매우 가까왔읍니다. 순간적으로 덮치는 덫과 같이, 전 지면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날이 닥칠 것이며 방심하는 모든 사람들은 지나치게 먹고 마시고 생활의 이기적인 일을 염려하다가 걸리게 될 것입니다. 덫과 같은 그 “날”에 그러한 사람들은 멸망될 것입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에 속한 성원들은 “그 악한 종”같은 자들과 함께 그러한 이기적이고 부주의한 사람들에게 동조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68. (ㄱ) “징조”에 의하면, 단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존재하는 것 뿐 아니라 무엇이, 우리가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지를 알리는 증거입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성공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까?
68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 대하여 모르고 있을 이유가 없읍니다. 우리는 “무화과 나무와 모든 나무”에 관한 예수의 비유에 따라 행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시점에 살고 있으며 무엇이 가까왔는지를 알고 있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의 비유는 성취의 절정에 이르렀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의 존재 뿐만 아니라 주의 모든 소유를 그 반열에게 맡기고 그 모든 소유를 돌보도록 임명한 일—이것은 우리가 즉위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즉 보이지 않는 임재 기간에 살고 있으며 동시에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징조”의 뚜렷한 특징입니다. (마태 24:3, 신세)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전체 “사물의 제도”의 멸망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할 때는 가까왔읍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는 것이 시급합니다.—누가 21:36.
[각주]
a 1897년 발행 「아마겟돈 전쟁」(영문) 613면 “집 사람들에게 양식을 분배함—마태 24:45-51; 누가 12:42-46.” 제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