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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의 깨어 살피는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파수대—1985 | 4월 1일
    • 그리스도인의 깨어 살피는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여러 세기에 걸쳐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씀이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희랍 정교회’, 혹은 ‘프로테스탄트’의 주류를 이루는 교회들에 속한 교인들 중에, 그 자극적인 경고가 여전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마가 13:37.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깨어 살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그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마가 13:35, 36)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그들의 주인이 오는 것, 즉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하였다.

      예수께서 오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깨어 살피라는 그분의 명령은, 제자들이 그분에게 한 다음과 같은 예리한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로 주어진 것이다. “무엇이 당신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세상 끝, 개역 한글판]의 표징이 될 것입니까?” (마태 24:3, 신세) 상응하는 기록에 의하면, 다각적인 표징을 알려 주신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구출, 신세]이 가까왔느니라. ·⁠·⁠·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누가 21:27-31.

      깨어 살펴야 할 이유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제자들이 계속 영적으로 깨어, “표징”의 성취를 살펴야 할 이유들을 알려 주셨다. 그분이 눈에 보이도록 육체로 임재하시게 되어 있었다면 “표징”이 필요 없었을 것이므로, 그 표징의 성취는 주인이 보이지 않게 “임재”해 계심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영적 임재는 또한 이 악한 세상 곧 “사물의 제도”가 “종결”, 즉 마지막 때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그들의 “구출이 가까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왔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 희망의 진수가 아닌가? 바로 그것을 위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도록,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왕국, 예루살렘 성서]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침받지 않았는가? (마태 6:9, 10) 논리적으로 말하여 천주경을 암송하는 ‘가톨릭’교인들 혹은 주기도문을 외우는 다른 교회 교인들은 마땅히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지는지 깨어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 교회들의 가르침들이 그 기도를 거의 무의미한 것이 되게 함으로 깨어 살필 만한 것이 거의 남지 않은 것일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더는 깨어 살피지 않는 이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임재(희랍어, ‘파로우시아’; 臨在; presence. 다수의 성서 번역판에서 “임하심”[coming]으로 번역됨)의 표징을 깨어 살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 그들 자신의 구출 및 “세상” 곧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끝이 가까왔음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교회들은 자기네 교인들이 계속 영적으로 깨어 있어 주인이 도착하였을 때 잠자는 상태로 발견되지 않게 도와 왔어야 했다. 교회들은 이 점에 있어서 그들의 사명을 완수하였는가?

      어느 학술 참조 문헌은 이렇게 말한다. “‘파로우시아’가 일어나지 않은 채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교회에 관한 한, 그것은 점점 더 장래로 밀려났고, 결국은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아예 신앙의 한 조항이 아닌 것으로 포기하기에 이르렀다.”—「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실제로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결코 소홀히 말라고 명령하신 일, 즉 그리스도인의 깨어 살피는 일을 포기한 것이다. 그들은 더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것에 대해 깨어 있지 않다. 그들은 “사물의 제도의 종결” 곧 “세상 끝”에 대한 기대를 단순한 이론상의 것이 되게 하고 만 것이다.

      한 권으로 된 ‘프랑스’ 백과사전 「뀌 1984」(QUID 1984)에는 세상 끝에 관한 종교 신앙의 최신 정의가 나온다. 그 사전은 “‘가톨릭’교의 특성”이라는 제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에 교회는 세상 끝을 각 사람이 임종시에 직면하는 개개의 시험을 가리키는 말로 정의하는 것 같다.” 그 문제를 확대하여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기성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종말론[“말세”에 관한 가르침]을 무의미한 것으로 혹은 무가치한 신화로 배척해 버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깨어 살피는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놀랍지만 피할 수 없는 대답은 무엇인가? 그 일은 “보다 인정받는 그리스도교 교회들”인 ‘로마 가톨릭’, ‘희랍 정교회’ 및 ‘프로테스탄트’의 주류를 이루는 교회들에 의해 사멸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한 교회들의 교인들이야 책임이 없겠지만, 그들 중 다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임재,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것,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끝 등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기대를 단순한 이론상의 것이 되게 하고 만 경위와 이유를 궁금해 할 것이다. 이러한 상태로 인도한 역사적 사실들을 다음 기사에서 검토해 본다.

  • 그리스도인의 기대가 희미해진 경위
    파수대—1985 | 4월 1일
    • 그리스도인의 기대가 희미해진 경위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자신의 임재와 왕국의 임함을 계속 “깨어” 살피라고 말씀하셨다. (마가 13:37)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는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그 말씀대로 하였다는 증거가 풍부히 들어 있다. 사실 매우 조급해 한 사람들도 있었다. (데살로니가 후 2:1, 2) 반면에, 그리스도인의 기대가 조금이라도 약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울’과 ‘야고보’와 ‘베드로’ 및 ‘요한’은 모두 형제들이 계속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임재”와 “여호와의 날”을 참을성있게 기다리도록 권면하는 편지들을 썼다.—히브리 10:25, 37; 야고보 5:7, 8, 신세 참조; 베드로 전 4:7; 베드로 후 3:1-15, 신세 참조; 요한 1서 2:18, 28.

      그리스도교국의 역사가 및 신학자들이 발행한 참조 문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한다. ‘프랑스’ ‘가톨릭’의 권위있는 「성서 사전」(Dictionnaire de la Bible)은 그 방대한 부록(Supplément)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대부분의 신약 본문에 명백히 나오는 종말에 대한 기대가 차지하는 역할을 부인하려드는 것은 헛된 일이다. ·⁠·⁠·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 ‘파로우시아’[임재]에 대한 기대는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신약에서 시종 일관 계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교국의 일부 신학자들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라도”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명백히 볼 수 있었던 “종말에 대한 기대가 차지하는 역할을 부인하려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문의 여지없이, 오늘날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 및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서 명백히 볼 수 있는 영적 혼수 상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있게 되었는가?

      기대가 흐려진 경위

      그리스도인의 기대가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 한 가지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죽기 전에 이미 드러나기 시작한 배교였다. 사도 ‘바울’이 경고하였듯이 그 당시에 배교가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 (데살로니가 후 2:3, 4, 7) 수년 후에 사도 ‘베드로’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거짓 선생들”과 다음과 같이 말할 “기롱하는 자들”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주의 강림[임재, 신세] 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베드로 후 2:1; 3:3, 4.

      흥미롭게도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기대는 예수의 약속된 “임재”가 땅에 대한 그분의 천년 통치가 가까왔음을 알려 줄 것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믿은 사람들에 의해 한 동안 유지되었다. ‘주스틴 마터’(기원 165년경 사망), ‘이레네우스’(기원 202년경 사망) 및 ‘터툴리안’(기원 220년 이후 사망)은 모두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를 믿고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종말을 열렬히 기대할 것을 권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배교가 일어남에 따라, 지구가 그리스도의 왕국 아래 세계적인 낙원으로 변모될 것이라는 천년기 희망은 점차, 희랍의 선천적 인간 불멸성에 대한 철학 개념에 기초한 가상적 기대로 대치되었다. 낙원에 대한 희망은 지상에서 실현되는 것에서 사망시에 하늘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곧 임재와 그분의 왕국이 임하는 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기대는 약해졌다. 그들은 이렇게 추리하였다. ‘사망시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희망을 가질 수 있는데, 예수의 임재의 표징을 열렬히 깨어 살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깨어 살피는 일이 그처럼 희미해 지는 것을 틈타 배교한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를 튼튼한 구조의 교회로 조직함으로, 더는 그리스도의 다가오는 ‘파로우시아’ 곧 임재가 아니라, 교인들 그리고 가능하다면, 세계까지 지배하는 것에 눈을 고정시키게 되었다.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파로우시아’가 늦추어지는 것[같아 보임]으로 말미암아 초기 교회에서 절실한 기대가 약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종말론 퇴화’[“말세”에 관한 가르침이 약해지는 것] 과정 중에, 제도화된 교회가 기대의 대상인 하나님의 왕국을 점차 대치하였다. 교직 계급 제도로서 ‘가톨릭 교회’가 형성된 것은 절실한 기대의 쇠퇴와 직결되어 있다.”

      치명타가 가해지다

      그리스도인의 깨어 살피는 일에 치명타를 가한 “교부”, 즉 “교회 박사”가 ‘히포우’의 ‘아우구스티누스’(기원 354-430년)였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 「신국론」(The City of God)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현재 지상에 있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국도 되고 하늘 왕국도 된다.”

      「신 성서 사전」(The New Bible Dictionary)은 이러한 견해가 ‘가톨릭’ 신학에 끼친 영향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독특한 점은 하나님의 왕국과 지적 체제의 교회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처럼 동일시하는 것은 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때문이다. 교회의 교직 계급 제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왕국의 왕으로 구현된다. 그 왕국 영역은 교회의 권세 및 권위의 범위와 동일하다. [같은 경계 안에 있다.] 하늘 왕국은 세상에 있는 교회의 포교 활동과 발전에 의해 확장된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왔음을 알려 줄 표징을 ‘계속 깨어 살필’ 필요가 없게 되었다. ‘E. W. 벤즈’ 교수는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기술하면서, 이 점을 확증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그[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왕국은 교회 제도를 통해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다고 단언함으로써 원래의 절실한 기대의 중요성을 깎아 내렸다. 교회가 하나님의 왕국의 지상의 역사적 대표자라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첫째 부활은 세례 성사의 형태로 교회 내에서 항상 일어난다고 한다. 그 성사를 통하여 충실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유입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 낙원을 회복시키실 기간인 그분의 천년 통치에 대한 성경적 희망을 그리스도교국이 내버리는 일을 마무리 지은 사람이기도 하다. (계시 20:1-3, 6; 21:1-5) 「가톨릭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시인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침내 천년기가 없을 것이라는 신념을 주장하였다. ·⁠·⁠· 육천년간의 역사 후에 일천년간의 안식일이란 영원한 생명 전체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일천이라는 수는 완전성을 표현하기 위해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브리태니커 매크로패디아」(1977년판)는 이렇게 부언한다. “그[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천년기란 오순절날 교회가 집단적으로 들어간 영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 되었다. ·⁠·⁠· 절박한 초자연적 역사 개입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인들에게는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가 무의미하게 되었다.

      중세의 암흑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은 “중세에 표준 교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기대는 최저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중세 그리스도교국에서 신약의 종말론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교리 체계의 기초는, 처음에는 ‘플라톤’주의[희랍 철학자 ‘플라톤’이 원조]를, 그 후에는 서방에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희랍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원조]를 중심으로 한 철학적인 것이었다. ‘파로우시아’, 부활 등등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영혼 및 영혼불멸에 관한 희랍 사상들과 병합되었다. ·⁠·⁠· 중세의 그리스도교는 ·⁠·⁠· 종말론의 열정을 위한 자리를 거의 [남겨] 놓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열정은 사멸되지 않았다. 그것은 얼마의 이단 운동들 속에 살아 있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970년판.

      ‘로마 가톨릭 교회’는 “천년기 파”라고 부름으로 그러한 “이단 운동”들을 경멸한다. 그 교회의 역사가들은 “기원 1000년 공포”에 대해 멸시하는 말을 한다. 그러나 많은 수의 보통 사람들이 기원 1000년에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두려워한 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이었는가? 그 “공포”는 ‘가톨릭’의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직접적인 산물이었다. 그는 ‘사단’이 그리스도의 초림시에 결박되었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계시록 20:3, 7, 8에서 ‘사단’은 1,000년간 결박되었다가 “만국을 미혹”하도록 “놓”일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10세기에 살던 일부 사람들이 기원 1000년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한 것도 당연하다.

      물론, 공식 ‘로마 가톨릭 교회’는 그러한 “공포”를 정죄하였고, 그 교회는 1260년에 그리스도인 시대가 끝날 것이라고 예언한 ‘플로라’의 ‘시토’ 수도회 수도사 ‘애봇 요아김’도 정죄하였다. 마침내 1516년에 제 5차 ‘라테란’ 회의에서 교황 ‘레오’ 10세는 여하한 ‘가톨릭’교인도 적그리스도와 최후의 심판이 오게 되어 있는 때를 예언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금하였다. 그러한 법을 범하면 파문의 벌을 받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가 단순한 이론상의 것으로 만들다

      이론적으로 말해서, 성서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16세기의 종교 개혁은 그리스도인의 기대를 소생시켰어야 한다. 그리고 한 동안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외의 여러 가지 점에서와 같이 이 점에 있어서도 종교 개혁은 그 약속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참다운 성서적 그리스도교로 복귀하는 계기가 되지 못하였다. 종교 개혁으로 생겨난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그리스도인의 깨어 살피는 일에서 신속히 벗어나 현 세상과 타협하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개혁 교회들은 곧 제도화된 지방 교회[국교]가 되었다. 이윽고 마지막 때에 대한 기대를 억압하였고, 그리하여 ‘말세’에 관한 교리는 교리 신학의 부속물이 되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교인들과 ‘유대’교인들 사이에서 종교의 자유주의가 출현함으로 말미암아, 18세기 말경과 19세기 내내, 종말론은 발붙일 곳이 없었다. 그것은 계몽의 시대에 더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전통 종교의, 유치하고 원시적이며 켸켸 묵은 장식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대부분의 경우에, 종말론 사상은 모조리 밀려나고, 단순한 사후의 영혼불멸이 인간의 끝으로 제시되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기대를 윤리적인, 신비에 가까운 혹은 사회적인 용어로 재해석하였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이처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임재와 하나님의 왕국의 임함을 ‘계속 깨어 살’피도록 돕지 못하고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기대를 단순한 이론상의 것이 되게 하고 말았다. 그들 중 다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왕국은 ·⁠·⁠· 점차 개개인의 지각 속에 느끼게 되는 것이 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행사되는 은총과 평화의 주권인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왕국이 임하는 것은 사회적 의와 자치제의 발달을 전진시키는 데 있다.”—「신 성서 사전」(‘프로테스탄트’계).

      ‘가톨릭’이 기대하는 것들

      ‘가톨릭’교인들은,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깨어 살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 ‘가톨릭’교인들에게서 왕국에 대한 기대와 천년기 희망을 앗아가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여전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티칸’ 신앙 신조 성성(聖省)은 전세계에 있는 ‘가톨릭’ 주교들에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재가를 받은 1979년 5월 17일자 편지를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성경과 일치하게,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린다.”

      ‘가톨릭’ 교회의 이론상의 가르침은 그러하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보통 ‘가톨릭’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하나님의 왕국의 임함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할 필요성에 관해 사제가 설교하는 것을 얼마나 자주 듣게 되는가? 흥미롭게도, 위에 인용된 ‘로마 교황청’ 발 서신의 목적은 바로 “의문시되어 온 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이 의문시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발췌한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 들어 있는 것일 수 있는가? “교회는 말세의 전체 분야에 관한 가르침들을 오랫 동안 소홀히 해왔다.” “종교 개혁 이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종말론 운동들에 사실상 면역이 되어 왔다.”

      그리스도인의 깨어 살피는 일은 사멸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인의 기대가 희미해진 이유는, 그들이 성서의 명확한 진리를 버리고 희랍 철학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따르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다음의 기사들을 통해 알게 되겠지만, 하나님의 참다운 종들은 항상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대하면서 살아 왔으며, 여러 해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깨어 살펴 왔고 독자의 희망이 될 수도 있는 놀라운 희망을 재발견한 백성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계속해서 읽어 보고, 그 다음에 그 성서 희망의 성취를 ‘계속 깨어 살’피도록 ‘여호와의 증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바란다.

      [12면 삽입]

      “대부분의 신약 본문에 명백히 나오는 종말에 대한 기대가 차지하는 역할을 부인 ·⁠·⁠·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12면 삽화]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의 교회가 곧 그리스도의 왕국이라고 주장하였다

      [13면 삽화]

      교황 ‘레오’ 10세는 여하한 ‘가톨릭’교인도 최후의 심판이 올 때를 예언하는 것을 금하였다

  • 깨어 살피는 자들은 행복하다!
    파수대—1985 | 4월 1일
    • 깨어 살피는 자들은 행복하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누가 12:37.

      1. 여호와의 종들이 항상 ‘그분을 계속 기대’해 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에 관하여 무슨 질문을 해볼 수 있읍니까?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계속 기대하는, 신세] 자는 복이 있도다.” (이사야 30:18) 여호와께서 뱀의 궁극적인 패배와 약속된 씨를 통한 구출을 선포하신 이래, 그분의 충실한 종들은 그 약속의 성취를 기대하며 살아 왔읍니다. (창세 3:15)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신학자들은 자기네 교인들이 ‘사단’과 그의 씨에게서 최종적으로 구출될 것을 계속 깨어 살피도록 돕고 있읍니까?

      2. “열방”이 “실로”를 기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야곱’은 그의 임종시 예언에서 약속의 씨가 ‘유다’ 지파를 통하여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였읍니다. 그 씨에게 ‘실로’라는 상징적 이름을 붙여 주면서 ‘야곱’은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라고 말하였읍니다. 희랍어 「칠십인역」에 의하면, ‘실로’는 “열방의 기대가 될” 것입니다. (창세 49:10) “열방”이 ‘실로’가 오시기를 더욱더 살펴야 했던 것은 여호와께서 ‘야곱’의 조부인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씨로 인하여 땅의 모든 민족들이 확실히 그들 스스로를 축복할 것이다.” (창세 22:18, 신세) 그러나 우선 그 씨인 ‘실로’ 곧 메시야는 땅에 와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유다’ 지파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읍니다.

      깨어 살핀 ‘유대’인 남은 자들

      3. ‘누가’는 기원 29년의 ‘유대’인들의 기대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역사는 그 점을 어떻게 증명해 줍니까?

      3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 다섯 해”[기원 29년] 되는 때에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침례자]을 혹 그리스도[‘히브리’어로 ‘마시야’, 메시야]신가 심중에 의논”하였다고 ‘유대’인 역사가 ‘누가’는 진술합니다. (누가 3:1, 15) 세속 역사는 ‘누가’의 이러한 진술을 증명해 줍니까? ‘에밀 슈레르’ 저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유대 민족의 역사」(History of the Jewish People in the Age of Jesus Christ) 신 영어판에는 이러한 질문이 나와 있읍니다. “이 희망[메시야에 대한 기대]은 사람들 가운데 끊임없이 살아 있었는가?” 그 대답으로, 그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마지막 수세기 동안, 그리고 특히 기원 제 1세기에, 그러한 기대는 한번 더 매우 활발해졌다. 위경[‘유대’교의 묵시적 문헌], ‘쿰란’[사해 마을의 기록물들], ‘요세퍼스’ 및 복음서들이 그 점을 매우 결정적으로 알려 준다. ·⁠·⁠· 「다니엘」의 환상들은 ·⁠·⁠· 메시야 개념의 형성에 심오한 영향을 끼쳤다.”

      4, 5. (ㄱ)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그 점이 어떻게 확증됩니까? (ㄴ) 많은 ‘유대’인들은 어떠한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읍니까?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누구에게 메시야가 오는 것을 밝혀 주셨읍니까?

      4 마태 복음 2:2에 관하여 해설하면서 한 학자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이 무렵, 어떤 주목할 만한 인물이 ‘유다’에 곧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기대가 만연해 있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올 것을 열렬히 기대하고 있었다. ‘다니엘’(9장 25-27절)이 언급한 때를 계산해 봄으로써, 그들은 메시야가 나타나야 할 시기가 가까왔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 및 ‘타키투스’, 그리고 ‘유대’인 역사가 ‘요세퍼스’와 ‘필로우’도 이처럼 기대하는 상태를 언급하였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바쿠에’와 ‘비구루’ 공저 ‘프랑스’어판 「성서 개론」(Manuel Biblique)(제3권, 191면)은 이 점을 확증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다니엘’이 고정시킨 해로 된 칠십 주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침례자 ‘요한’이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왔다고 공포하는 것을 듣고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5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메시야 곧 약속된 씨가 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기대는 그들이 때에 대한 예언a의 성취를 깨어 살피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역사적 증거가 있읍니다. (다니엘 9:24-27) 물론, ‘유대’교의 여러 분파에 속해 있던 대부분의 제 1세기 ‘유대’인들은, 「콘사이스 유대인 백과사전」(The Concise Jewish Encyclopedia)에서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의 적들을 멸망시키고 평화와 완전성이 편만한 완전한 시대를 구축할” 정치적 메시야가 오기를 바라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충실한 ‘유대’인 남은 자들은 참다운 메시야가 나타나는가를 주의 깊이 깨어 살피고 있었읍니다. 이들 중에는 침례자 ‘요한’의 부모인 ‘스가랴’와 ‘엘리사벳’, 그리고 ‘시므온’과 ‘안나’, ‘요셉’과 ‘마리아’ 등이 있었읍니다. (마태 1:18-21; 누가 1:5-17, 30, 31, 46, 54, 55; 2:25, 26, 36-38) 여호와께서는 “기한이 찼을 때”에, ‘유대’교 지도자들에게가 아니라 이들에게, ‘다니엘’의 때에 대한 예언 때문에 그들이 주의하여 살필 수 있었던 것, 즉 약속된 씨 곧 메시야가 오는 것을 확증해 주셨읍니다.—갈라디아 4:4, 새번역.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깨어 살피는 일

      6. ‘유대’인 청소년들은 어떻게 양육받았으며, 이것은 일부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읍니까?

      6 ‘요셉’과 ‘마리아’는 자기들이 키우는 아이 예수가 메시야가 되게 되어 있었음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의 가정 교육에 관하여 말하면서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는 십중 팔구 가정과 회당에서 촉진된 신앙심(성서 연구, 율법에 대한 순종, 기도, 그리고 메시야의 최종적 도래에 대한 기대) 속에서 성장하였을 것이다.” 충실한 ‘유대’인 남은 자들의 가정에서 양육받은 다른 청소년들도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주입받았으며, 그러한 합당한 기대 때문에 적어도 그들 중 얼마는 예수의 제자가 되라는 부름에 즉각 응할 수 있었읍니다.—마가 1:17-20; 요한 1:35-37, 43, 49.

      7. (ㄱ) 예수께서는 왕국이 그리스도인 개개인 내부에 있다고 가르치셨읍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하였읍니까?

      7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상 봉사의 직무가 끝날 무렵, 자기 제자들에게 장래에 있을 자신의 “임재”와 왕국의 임함을 계속 깨어 살피라고 가르치셨읍니다. 「브리태니커」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끝, 최후의 심판 및 하나님의 새로운 세상 등의 전통적인 주제들은 복음 전통에 보존된 예수의 말씀에서 빠져 있지 않다. 그러므로 예수는 결코 하늘 왕국을 개개인의 인간 영혼의 순전한 종교적 경험으로 바꾸어 놓은 것도 아니고, ‘유대’인들의 종말론적 기대를 세상에 내재해 있는 진화적 과정, 혹은 인간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로 풀이한 것도 아니다. ·⁠·⁠· 그는 또한 국가주의적 메시야에 대한 희망을 전하거나 고무하지도 않았다. ·⁠·⁠· 또한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임함을 가속화하기 위해서 열심 당원들의 노력을 지원하지도 않았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각적인 표징을 알려 주심으로 그들이 그것을 통해 처음에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까왔음을 알아 볼 수 있게, 그 다음에는 훨씬 후에 ‘그분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을 식별할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마태 24:3부터 25:46까지; 누가 21:20-22.

      8. 예수께서 자기가 왕국으로 속히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믿지 않으셨음을 무엇이 알려 주며, 따라서 그분은 자기 추종자들에게 무엇이라고 교훈하셨읍니까?

      8 자유 사상가 및 심지어 그리스도교국의 일부 신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가 자기들 시대에 일어나게 되어 있는 것으로 믿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 자신도 자기 왕국으로 속히 들어가게 될 것으로 믿었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그러나 ‘달란트’와 ‘므나’의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오랜 후에”야 비로소 자기가 왕국 권능을 잡고 돌아와서 자신의 소유물들을 맡겼던 종들과 회계할 것임을 알려 주셨읍니다. (마태 25:14, 19; 누가 19:11, 12, 15) 그리고 ‘자신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에 관한 예언에서 그분은 끝이 올 “그 날과 그 때”는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시인하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부언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태 24:3, 14, 36, 42, 43.

      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임재가 자기 시대에 절박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인상을 주었읍니까? 설명하십시오.

      9 그리스도의 임재가 절박하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관하여, 어느 학술적 참조 문헌b은 이렇게 말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바울’이 ‘파로우시아’가 속히 이루어질 것을 기대했다고 추정하는 진술은 결코 견실한 것이 못 된다. 일찌기 데살로니가 전서 5:10에서 ‘바울’은 자기가 죽을 가능성을 고려에 넣었다. 데살로니가 전서 4:15 및 17절에서 ‘우리’에 관해 말하면서 ‘바울’이 자신을 그 마지막 세대와 동일시하였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반드시 그 세대에 속한다는 견해를 밝힌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디모데’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에서 ‘바울’은 명백히 말하기를, 그분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때인 “그 날”, 곧 그리스도께서 자기 왕국 가운데 “나타나”시는 날이 되어야 비로소 자기가 상을 받게 될 것을 바라고 있다고 하였읍니다.—디모데 후 4:1, 8.

      10.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게 깨어 살피는 일이 어떻게 ‘유다’의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을 구해 주었읍니까?

      10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분의 왕국이 임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깨어 살피고 있어야 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게 깨어 있었기 때문에 ‘유다’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다가오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하여 알려 주신 표징을 알아 볼 수 있었읍니다. (누가 21:20-24) 기원 66년에 ‘세스티우스 갈루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을 때, 경계하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갑작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철수를 이용하여 그 도시와 ‘유다’의 인근 지역으로부터 도피하였읍니다. 초기 교회 역사가들인 ‘헤게십푸스’, ‘유세비우스’, ‘에피파니우스’에 의하면, ‘유다’의 그리스도인들은 ‘요단’ 강 건너 ‘펠라’라는 곳으로 도피하였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활짝 깨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기원 70년에 ‘티투스’ 휘하에 ‘로마’ 군대가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을 때 죽음 혹은 노예 생활을 면하였읍니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계속 깨어 살폈던 것을 얼마나 기뻐했겠읍니까!

      기원 70년 이후의 그리스도인의 기대

      11, 12. ‘예루살렘’이 기원 70년에 멸망된 이후에 그리스도인들의 합당한 태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어떻게 그들을 보호해 주었을 것입니까?

      11 예수의 임재는 “오랜 후에”야 비로소 있게 되어 있었으므로,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된 이후, 그리고 마지막 때가 오기까지 수세기에 걸쳐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는 어떠한 것이었읍니까? 그리스도인의 기대는 식어져서, 말하자면 “냉각되어”야 했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사도 ‘요한’의 세통의 편지와 「계시록」 즉 묵시록은 모두 기원 70년 이후에 기록된 것입니다. ‘요한’은 첫째 편지에서 “적그리스도”에 대해 경고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에 머물면서 그분의 “임재”(신세)와 나타나심을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요한 1서 2:18, 28, 3:2) ‘요한’은 세통의 편지 모두에서 배교자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계시록」은 시종 일관 그리스도께서 왕국 영광 가운데 오시는 일에 주의를 이끌며, 그래서 끄트머리에서 두번째 표현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입니다.—계시 22:20.

      12 그리스도인들은 ‘파로우시아’ 지향적이 되어야 하였읍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생활해야 하였읍니다. 교회 역사 교수 ‘언스트 벤즈’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초기 교회의 충성자들에게 있어서, ‘말세’는 긴급성의 면에서 첫째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믿음과 희망에 있어서 중심되는 내용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왕국이었다.” 그들의 생애 중에 왕국이 임하지 않게 되어 있을지라도, 그처럼 기대하는 합당한 태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졸거나 ‘사단’의 세상에 연루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해 주었을 것입니다.—요한 1서 2:15-17.

      13, 14. 기원 2세기와 3세기에 그리스도교의 배교자들 사이에는 어떤 두 가지 극단이 존재하였읍니까?

      13 사도들이 사망한 후에 배교가 일어남에 따라, 일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왕국 가운데 오시는 일이 가까왔다는 것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갖게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C. J. 카둑스’는 「초기 교회와 세상」(The Early Church and the World)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레네우스’[기원 2세기]와 ‘히폴리투스’[기원 2세기 말과 3세기 초] 두 사람은 모두 끝이 올 때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틀린 연대기 때문에, 인간 역사 6,000년이 거의 다 경과하였고 일곱번째 천년기가 도래할 때가 가까왔다고 생각하였읍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틀린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영적으로 계속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14 반면에, 대부분의 그리스도교의 배교자들은 긴급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왕국에 대한 기대를 상실하였읍니다. 「신약 신학 사전」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철학]과 ‘스토아’ 철학자들의 윤리학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교 변증론자들[2세기와 3세기 초의 “교부들”]은 하나님의 왕국 개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종말론을 가지고 있다고 해보아야,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완성이라는 생각에 지배를 받는 것이었다. ·⁠·⁠· 불멸성, 영원한 생명 및 지식에 대한 희랍의 개념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성서적 개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었다. ·⁠·⁠· 마찬가지로 ‘오리겐’[기원 약 185년-약 254년]에게 있어서도 ·⁠·⁠·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성서적 소식이 들어설 여지가 거의 전혀 없었다.”

      15. 배교가 일어남에 따라, 기성 교회들은 “말세”에 관한 가르침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읍니까?

      15 주로, 이러한 태도가 소위 그리스도교라는 교회들 사이에 수세기 동안 편만하였읍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렇게 밝혀 줍니다. “‘로마’ 황제 ‘콘스탄틴’(337년에 사망) 시대 이래로, 그리스도교가 정치적 인정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희망이 실현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미래파의 종말론은 압제받는 지하 분파들 가운데 계속 존재하였다.” “16세기의 종교 개혁 이전 기간에 이단 집단들은 ·⁠·⁠· ‘로마 교회’가 본디의 종말론적 절박한 기대를 배신하였다고 비난하였다.”

      ‘깨어 살피는 자들은 행복하다’

      16. 19세기에 어떤 집단들이 등장하였으며,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믿었읍니까?

      16 “기성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분의 왕국 권능을 받는 일을 더는 깨어 살피지 않았으므로, 이제는 그 교회들이 “이단 집단들”이라고 부른 자들이 그렇게 해야 하였읍니다. 19세기에, 평민이 성서와 그것을 연구할 수 있는 수단을 구할 수 있는 나라들에서 그러한 집단이 몇개 등장하였읍니다. “말세”에 관한 여하한 가르침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는, 주류를 이루는 교회들은 그러한 집단들에게 재림주의자들, 혹은 천년기파들이라는 멸시적인 명칭을 붙였읍니다. 왜냐하면 그런 집단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깨어 살피면서 그리스도께서 천년 동안 통치하게 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집단들 다수는 그리스도께서 땅으로 돌아오셔서 그분의 천년 왕국을 세우실 것으로 기대하였읍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1835년(영국 ‘어빙’파)에, 1836년(독일 ‘벵겔’의 추종자들)에, 1843년(미국 ‘밀러’의 추종자들)에 그리고 1889년(‘러시아’의 ‘메노’파 집단)에 있을 것이라고 계산하였읍니다.

      17, 18. 그리스도교국의 기성 교회들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으며,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가 ‘왔’을 때 무엇을 기대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7 물론 “기성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이런 예측들이 틀렸음이 증명됐을 때 기뻐했읍니다. 확실히 ‘가톨릭’, ‘희랍 정교회’, ‘프로테스탄트’의 주요 교회들은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에게 있어, “말세”에 관한 가르침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그들이 ‘계속 깨어 살피’는 일을 그만둔 지는 오래 되었던 것입니다.—마가 13:37.

      18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누가 12:37-43.

      19, 20. (ㄱ) 1870년대에 무슨 집단이 등장하였으며, 그들이 자신들을 다른 집단들과 분리시킨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무슨 잡지가 이 집단의 공식 기관지가 되었으며, 이 잡지는 증가하는 수의 참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도와 왔읍니까?

      19 19세기 후반부에 그리스도의 재림의 표징을 깨어 살피던 소위 이단이라는 집단들 가운데에는 미국 ‘피츠버어그’의 ‘차알스 러셀’이 주재하는 성서 연구반이 있었읍니다. ‘러셀’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1870년부터 1875년까지는 은총, 그리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지식 및 사랑이 끊임없이 증가한 시기였다. ·⁠·⁠· 그러나, 당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의 전반적인 윤곽을 깨닫고 오랫동안 소중히 여기던 여러 가지 과오들을 시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 우리는 재림론자들의 과오에 대해 큰 슬픔을 느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실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20 이윽고 ‘러셀’과 그의 동료들은 그리스도의 임재가 보이지 않을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다른 집단들과 분리시키고, 1879년에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지에 영적 양식을 발행하기 시작하였읍니다. 발행 첫해부터 그 잡지는 건전한 성경적 계산에 의해, 1914년이 성서 연대에서 획기적인 연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가 1914년에 시작되었을 때, 깨어 살피고 있던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행복하였읍니다! 현재는 「파수대—여호와의 천국 선포」라고 불리는 이 잡지는 백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증가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주의”하고 계속 “깨어 있”도록 도와 왔읍니다. (마가 13:33) 과연 그 일이 어떻게 행해져 왔는지는 다음 기사에서 고려하게 될 것입니다.

      [각주]

      a 이 때에 대한 예언의 온전한 토론을 위해,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48-56면을 참조하라.

      b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 제2권, 923면.

      몇 가지 복습 질문

      ◻ 제 1세기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기대했음을 무엇이 증명해 줍니까?

      ◻ 깨어 살피는 일이 ‘유다’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읍니까?

      ◻ 배교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와 옴에 따라 어떠한 종들을 기대하십니까?

      ◻ 어떠한 그리스도인 집단이 이러한 요구 조건에 달하고 있으며, 무슨 잡지의 도움으로 그렇게 하고 있읍니까?

      [17면 삽화]

      이 잡지의 발행인들은 항상 깨어 살폈다

  • 예비하고 있으라!
    파수대—1985 | 4월 1일
    • 예비하고 있으라!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누가 12:40.

      1. 그리스도께서는 계속 깨어 살펴야 할 필요성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깨어 살필 것을 강권하셨읍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마가 13:23-37.

      2. 모범적 기도문이 깨어 살피는 일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어떻게 왕국에 대한 기대가 맥빠진 것이 되게 하였읍니까?

      2 앞의 기사들은 중립적인 자료 출처들로부터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계속 깨어 살피’지 않았다는 풍부한 증거를 제시하였읍니다. 「가톨릭 백과사전」에 의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이란 ·⁠·⁠·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서 다스리시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그리하여 모범적 기도문 즉 주기도문의 의의를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왕국에 대한 기대가 맥빠진 것이 되게 하였읍니다. 그러나 「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기도문의 탄원들은 하나님의 이름과 뜻이 모욕을 받고 있는데 아직 그분의 왕국은 오지 않은 몹시 괴로운 상황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모범적 기도문은 깨어 살피는 일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것들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합니까?

      ‘깨어 살피라’—무엇을?

      3. 그리스도인들이 시간적인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말세”에 관한 성서 예언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깨어 살펴’야 할 세세한 것들을 알 수 있읍니다. 우선 그들은 시간적 요소를 망각해서는 안 되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아버지만 아시는 “지정된 때”에 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 13:32, 33, 신세) 그에 더하여,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열국의 지정된 때, 신세]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게 되어 있었읍니다. (누가 21:24) 분명히, 예수께서 자기 추종자들에게 그러한 지식을 알려 주신 것은 그들이 마지막 때를 식별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표징, 신세]가 있사오리이까?”—누가 21:7.

      4.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표징”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하였읍니까?

      4 시간적인 요소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더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주의하여 살펴야 할 것은 마태 복음 24:3과 마가 복음 13:4에도 언급되어 있는, 요청을 받고 제시된 “표징”입니다. 국제적 전쟁, 기근, 지진, 온역 및 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 등을 포함한, 이 다각적인 표징은 때에 대한 예언들의 성취와 병합하여, 마지막 때에 일어나게 되어 있는 모든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는 결코 “지나가”지 않을 “세대”를 식별시켜 주게 되어 있읍니다.—누가 21:10-12, 32.

      5.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참 추종자들과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되어 있었으며,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임재”의 표징을 알려 주신 의미의 전부였읍니까?

      5 이 표징은 “사물의 제도의 종결”과 관련된 무슨 중요한 사건들을 알려 주게 되어 있었읍니까?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께 이렇게 질문하였읍니다. “무엇이 당신의 임재[희랍어, ‘파로우시아’] ·⁠·⁠· 의 표징이 될 것입니까?” (마태 24:3, 신세) 그리스도의 “임재”는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자신의 참 추종자들이 함께 모이거나 제자를 삼는 사명을 수행할 때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 세기에 걸쳐 그런 식으로 자신의 추종자들을 지원하시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 18:20; 28:18-20) 심지어 그리스도교국의 신학자들도 “임재”라는 말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파로우시아’ 개념은 이제,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시대의 끝에 나타나실 것을 기대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은 시종일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대하면서 생활할 것을 권면하고 있읍니다.—마태 24:3, 27, 37, 39; 야고보 5:7, 8; 베드로 후 3:3, 4; 요한 1서 2:28; 계시 1:7; 22:7.

      6. (ㄱ) 그리스도의 임재는 현 악한 사물의 제도에게 무엇을 의미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ㄴ) 그리스도의 임재는 충실한 가운데 사망한 혹은 아직 지상에 살아 있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되어 있었읍니까?

      6 그리스도의 임재는 바로 “사물의 제도의 종결”을 의미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마태 24:3, 신세; 마가 13:4) 그것은 현 악한 사물의 제도가 그 “마지막 때”, 즉 “마지막 날”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다니엘 12:4, 9; 디모데 후 3:1-5, 신세)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아버지로부터 “원수 중에서” 땅에 대한 왕국 통치권을 행사하라는 지시를 받았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시 110:2; 2:6-9; 계시 11:15-18) 일반 세상을 심판하시기에 앞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회중을 검사하시고 충실한 가운데 사망했던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을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21, 23; 데살로니가 전 2:19; 3:13; 4:13-17; 데살로니가 후 2:1) 아직 지상에 살아 있으면서 계속 영적으로 깨어서 ‘때를 따른 영적 양식’을 공급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종”으로 충실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그 모든 소유” 곧 지상의 왕국 권익을 임명받을 것입니다. (마태 24:45-47; 누가 12:42-44) 이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은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전세계적인 일에 참여하고 그것을 감독하게 되어 있으며, ‘그러면 끝이 오’게 되어 있읍니다.—마태 24:14, 신세.

      7. 심지어 그리스도의 임재 중에도 그리스도인들은 그외의 무슨 표징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기를 계속 기도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셨고 “사물의 제도의 종결”이 이른 때에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이 모든 일들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하였읍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도 그들은 “인자의 표징”, 즉 그분이 ‘사단’의 악한 사물의 제도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을 계속 깨어 살펴야 하였읍니다. (마태 24:30, 44, 신세 참조; 마가 13:26, 35; 누가 12:40; 21:27; 데살로니가 후 1:7-10) 그러므로, 그분이 “임재”해 계시고 그분의 왕국이 이미 하늘에 설립되었을지라도, 그분과 그분의 왕국은 여전히 “임”하여 ‘사단’의 세상에 속하는 나라와 왕국들을 “쳐서 멸”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 2:44)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임재의 “표징”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알려 주시고 나서 이렇게 부언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왕국, 신세]가 가까운 줄을 알라.” (누가 21:31)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 중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기를 기도하고, 지정된 “끝” 날과 그들의 “구출”(신세)에 대해 계속 “주의”하고 계속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마가 13:7, 29, 32-37; 누가 21:9, 28.

      누가 ‘깨어 살펴’ 왔는가?

      8. 그리스도인들이 계속 깨어 살펴야 할 일들을 다시 요약해 보십시오.

      8 방금 살펴 보았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열국의 지정된 때”(신세)가 끝날 것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표징’을 깨어 살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충실한 가운데 사망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될 것과 그리스도의 왕국의 지상의 권익을 돌보도록 임명받을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반열이 명확히 밝혀질 것을 기대해야 하였읍니다. 마지막으로, 이 “종”은 영적 양식을 계속 공급하면서, “끝”이 오기 전에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였읍니다. “인자의 표징”은 그분이 ‘사단’의 악한 사물의 제도를 멸망시키시기 위해 “오”심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었읍니다.

      9. 누가 “열국의 지정된 때”의 끝을 깨어 살폈으며, 「시온의 파수대」지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계속 깨어 있도록 어떻게 도왔읍니까?

      9 누가 이 모든 일들을 ‘깨어 살펴’ 왔읍니까? 일찌기, 1876년에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어그’의 ‘차알스 T. 러셀’은 “열국의 지정된 때”(신세) 곧 “이방인의 때”를 주의 깊이 깨어 살피고 있었읍니다. 그 해에 그는 “이방인의 때: 그 때는 언제 끝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행하였읍니다. 그 기사에서 그는 “일곱 때는 기원 1914년에 끝날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1880년부터 그 같은 내용이 「시온의 파수대」 지면에 발행되었읍니다. 1880년 3월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방인의 때’는 1914년까지 이를 것이며, 하늘 왕국은 그때 가서야 비로소 온전한 지배권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 그 기사들을 쓴 성서 연구생들이 가지고 있던, “열국의 지정된 때”의 끝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에 대한 성서적 및 역사적 이해는 우리가 오늘날 그러한 일들을 이해하는 것 만큼 정밀한 것은 아니었읍니다.a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들이 ‘깨어 살폈’으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계속 깨어 있도록 도왔다는 점입니다.

      10. 그리스도의 “임재”의 참된 의미가 어떻게 명백해졌읍니까?

      10 ‘차알스 러셀’과 연합한 동일 성서 연구생 집단과 「시온의 파수대」지는 또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임재”는 보이지 않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과 그분이 육적인 왕으로서 다스리기 위해 땅에 돌아오시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도왔읍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주인의 “집 사람들”의 주의를 그리스도의 임재와 “마지막 때”의 “표징”과 관련된 세계 사건들로 이끌었읍니다.

      11. (ㄱ) 그 당시에는 지상 왕국들에 관하여, 그리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끌어 올려”지는 일에 관하여 무엇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읍니까? (ㄴ) 오늘날 다니엘 2:44과 데살로니가 전서 4:15-17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발전된 이해를 가지고 있읍니까?

      11 하늘에 왕국이 설립된다는 것은 지상 왕국들의 즉각적인 멸망을 의미할 것이며,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실 때 부활되게 되어 있는 사망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합류하도록 “끌어 올려”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데살로니가 후 2:1) 그러나, 그들이 그 당시에, 다니엘 2:44의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사이에 모아들이는 거대한 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또는 데살로니가 전서 4:15-17에 언급된 “끌어 올려”지는 일은 첫째 부활이 시작된 후에 사망하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의 즉각적인 부활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이겠읍니까?—고린도 전 15:36, 42-44; 로마 6:3.

      12. (ㄱ)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집안을 검사하시기 위해 도착하셨을 때 자신의 충실한 “종”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셨읍니까? 그리고 그분은 누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셨읍니까? (ㄴ) 그때 이래 충실한 “종” 반열은 계속 무슨 일을 해왔읍니까?

      12 우리가 오늘날 이러한 점들을 이해하게 된 것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 반열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증가하는 빛 때문입니다. (잠언 4:18) 그 “종”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마태 24:45-47) 즉위하신 주 예수께서 1919년에 자기 집안을 검사하실 때, 그분은 「파수대」지와 연합한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이 ‘때를 따른 영적 양식’의 도움으로 ‘계속 깨어 살피’고자 충성스럽게 노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셨읍니다. 바로 오늘날까지 그 “종” 반열은 주인의 “집 사람들”과 그들의 동료들이 ‘계속 주의하고 깨어 있’도록 영적 양식을 계속해서 충실하게 마련해 왔읍니다.—마가 13:33.

      깨어 있는 상태인가? 나태한 상태인가?

      13. ‘여호와의 증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자문해 보아야 합니까?

      13 그리스도교국의 기성 교회들 및 기타의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출판물들이 때때로 특정한 연대에 특정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였다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로는 ‘계속 깨어 살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과 일치한 것이 아닙니까? (마가 13:37, 신세) 반면에,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왕국이란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것”이라고 가르친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깨어 살피는 일을 고무하였읍니까? 오히려, 그들은 “끝”에 대한 기대를 “무의미한 것” 혹은 “무가치한 신화”로 간주함으로 영적 나태함을 조장해 오지 않았읍니까? “마지막 날”이 오순절 날에 시작되어 전체 그리스도교 시대를 망라한다고 주장하는 배교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깨어 있도록 촉구해 왔읍니까? 아니 오히려, 그들은 영적으로 졸도록 유도해 오지 않았읍니까?

      14.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를 지나치게 열망한 과거의 충실한 여호와의 종들 가운데에는 어떠한 예들이 있읍니까?

      14 성서 연대로 뒷받침되는 것 같이 보인 어떤 기대들이 기대한 시기에 실현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들이 성취되는 것을 보기를 지나치게 열망하다가 얼마의 실수를 하는 것이, 성서 예언의 성취에 대해 영적으로 조는 것보다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모세’도 40년을 잘못 계산하여 ‘이스라엘’의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해 제 시기보다 앞서서 행동하려 하지 않았읍니까? (창세 15:13; 사도 7:6, 17, 23, 25, 30, 34)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왕국이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왕국이 설립되는 것을 보는 것을 지나치게 열망하지 않았읍니까? (사도 1:6; 비교 누가 19:11; 24:21) ‘데살로니가’의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여호와의 날”을 조급하게 보고 싶어하지 않았읍니까?—데살로니가 후 2:1, 2, 신세.

      15.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만한 시기를 알아내기 위한 노력으로 연대를 사용하는 것이 비성경적이 아님을 어떠한 예들이 알려 줍니까?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 다수는 무엇이라고 외쳐 왔읍니까?

      15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지정된 때”를 알기 위한 노력으로 연대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기본적으로 비성경적인 일이 아닙니다. (하박국 2:3, 신세)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황폐가 끝나게 되어 있는 때를 계산하였읍니다. (다니엘 9:1, 2) 제 1세기의 충실한 ‘유대’인 남은 자들이 메시야가 오기를 기대한 것도 그들이 예언에 기초하여 한 시대의 끝을 계산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9:25; 누가 3:15)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그리스도인들이 1914년 훨씬 이전부터 하나님의 왕국의 통치를 기대하며 살 수 있게 되었던 것도 그들이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나게 되어 있는 시기를 계산하였기 때문입니다. (누가 21:24, 신세; 다니엘 4:16, 17) 그러므로, 성서에서 시기를 알려 주는 점들을 사용하여, 오랫동안 기다려 온 희망들이 실현될 시기를 알아 내려고 애쓰는 이유는 이해할 만한 것입니다. 과거의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은 “주[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하고 외쳤읍니다.—이사야 6:11; 시 74:10; 94:3.

      “예비하고 있”어야 할 이유

      16. (ㄱ) 마가 복음 13:32은 우리가 끝이 올 시기에 대해 무관심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까? (ㄴ) 무슨 “표징”을 명백히 볼 수 있읍니까? 그러나 우리는 무슨 다른 “표징”을 기다리고 있읍니까?

      16 예수께서 명백히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에게, ‘임’하여 ‘사단’의 악한 사물의 제도를 치라고 지시하실 “그 날”이나 “그 때”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하셨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릅니다. ‘끝을 기대하며 생활하는 것이 그토록 긴급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이 긴급한 이유는 사실상 곧이어 예수께서는 이렇게 부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 깨어 있으라.” (마가 13:32-35) 예수의 ‘파로우시아’의 “표징”은 1914년 이래 명백히 볼 수 있읍니다. 우리는 이제 “인자의 표징”을 기다리고 있읍니다. 그때 그분은 여호와의 심판 집행관으로 ‘오’실 것입니다.

      17, 18. (ㄱ) 예수께서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임박한 멸망의 표징을 보는 즉시 ‘예루살렘’으로부터 도피하라고 지시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 시대의 긴급성을 단순한 이론상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위험스러운 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제1세기 ‘유다’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도피할 때가 되었음을 알게 할 표징을 밝혀 주시면서 예수께서는 즉각적인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읍니다. (누가 21:20-23) 기원 66년에 그 표징이 나타난 때부터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실제로 멸망되기까지는 거의 4년이나 경과하였는데, 그토록 긴급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그들이 지체했다가는, 도피하는 일을 미루고 결국에는 ‘로마’ 군대의 공격을 받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18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시대의 긴급성을 단순한 이론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끝이 가까왔다는 것에 대한 의심을 반영하는 “만사 태평”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극히 위험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19. ‘베드로’와 예수는 무엇이라고 경고하였읍니까?

      19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곧 임재가 시작된 지 현재 70년이나 되었으며, 그분이 “여호와의 날”(신세)에 “오”셔서 ‘사단’의 세상을 심판하실 때는 급속히 다가오고 있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 날이 “도적같이 오”겠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고 부언하였읍니다. (베드로 후 3:10-12)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읍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 깨어 있으라.”—누가 21:34-36.

      20. 우리는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기대는 우리를 어떻게 보호해 줄 것입니까?

      20 ‘여호와의 증인’은 충실하고 방심않는 “종” 반열에 의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히 여겨야 하겠읍니까!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기대는 이 위험한 “마지막 날” 중에 우리를 보호해 주고 우리가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도록 고무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계속 깨어 살피고 “의의 거하는” 새로운 사물의 제도로 생존하여 들어가도록 돕게 될 것입니다.—디모데 후 3:1-5, 신세; 마태 24:14; 베드로 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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