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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친절—행복의 필수요소파수대—1978 | 6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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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
우리가 인간적인 친절을 나타내면 개인적으로 어떠한 유익을 얻게 되는가? 개인적인 만족감과 정신의 평안을 통한 풍부한 보상을 얻게 된다. (잠언 19:22, 23)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친절을 나타낼 때 즐거워하신다. (미가 6:8)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선한 이웃이 됨으로써 인간적인 친절을 보인다면 우리는 여호와와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의 동료 인간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누가 6:38) 이러한 보상이 즉시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풍부한 정신의 평안을 느끼고 자신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친절을 나타내는 것은 가치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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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넷째와 다섯째 행복파수대—1978 | 6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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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넷째와 다섯째 행복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의 네번째 ‘행복’으로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옳은 일[의, 신세]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마태 5:6, 공동번역) ‘누가’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누가 6:21, 공동번역.
「누가복음」만 보면 예수께서 전적으로 물질적인 음식에 굶주린 사람들을 이야기하신 것으로 생각될지 모른다. 그러나 ‘마태’는 그분의 말이 옳은 일에 대해 강력히 열망하는 사람들에 관한 것임을 명백히 알려 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상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문자적으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한 사람들은 종종 현 사물의 제도에 만연된 불공평에 관하여 훨씬 더 예리한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그들의 옳은 일에 대한 굶주림 혹은 의의 충만을 열렬히 바라는 것은 더욱 절실한 것일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온전히 일치한 의로운 특성을 의미한다. 시편 필자는 예수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표현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를 “사모함으로 ··· 상”한다고 말하였다.—시 119:20; 이사야 26:9, 10 비교.
예수께서는 이러한 행복의 선언과 대조적으로 명백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누가 6:25, 공동번역) “배불리 먹”는 자들은 이 세상이 제공하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고 있다. 아마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주장할지라도 그들은 그분이 절실히 필요함을 인식하지도 않고 그분의 의의 표준을 사모하지도 않는다. (계시 3:17) 그러나 재난의 때는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그러한 굶주림을 일깨울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은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하나님께서 현 사물의 제도를 멸망시키실 때에 특히 그러할 것이다. (마태 24:21; 계시 7:14) 이전에 자기 만족에 빠졌던 그러한 사람들은 그 때 “주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를 열렬히 구하여도 응답이 없을 것이다. (사무엘 상 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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