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혜택이 어떻게 지옥에 있는 모든 죽은 자들에게 미치는가?
“주는 나를 음부[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소서.]”—욥 14:13. ‘로마 가톨릭’ 「예루살렘 성서 번역」 참조.
1, 2. (ㄱ) “지옥”에 관한 이 「파수대」지의 확언은 어떠한 질문들을 일으킵니까? (ㄴ) 그 때에 살고 있을 사람들은 그들 자신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일어날 것입니까?
옛날 옛적에는 “지옥”이 없었읍니다. 그리고 또 다시 “지옥”이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이러한 확언을 듣고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게될 것인가? 누가 그러한 일이 있게 할 것인가? 우리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때까지 살 것인가?
2 “지옥”이 없어질 때를 우리가 살아서 볼 것에 관하여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하게됩니다. 즉 이 일은 그때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혜택이 될 것인가? “지옥”이 없어진다면 이 땅에는 악한들이 우굴대어 도덕적 사회적 상태가 오늘날 보다 더 악화될 것이 아닌가? 그러한 일은 생각만 해도 충격적이요 소름이 끼치는 일입니다. 이런 일로부터 이익을 받을 자가 누구이겠읍니까? 하나님에게나 인간에게나 특히 이미 여러가지 고난과 그리고 고난의 원인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 수 있겠읍니까? 이러한 질문들은 매우 어려운 질문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질문에 대한 믿음직한 해답이 있읍니다. 틀림없이 우리 모두는 이러한 해답을 듣는 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제로 다가 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3. ‘틴달’, ‘루터’ 및 ‘제로움’은 마태 11:23에 나오는 희랍어 원어를 어떻게 번역하였으며, ‘단테’는 그 곳을 어떻게 묘사하였읍니까?
3 “지옥”은 언제나 종교와 관련을 가져 왔읍니다. 그러므로 가장 오래된 종교 서적인 성서는 마땅히 올바른 해답을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해답을 해 줍니다. “지옥”—영어로는 “hell”—이라는 말은 여러 세기 동안 설교 혹은 대화에 사용되어 왔읍니다. 예를 들면 박해받은 성서 번역자 ‘윌리암 틴달’이 1525년에 원문 성서의 희랍어 부분을 번역할 때 마태복음 11:23에서 “지옥”(hell)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읍니다. 그 귀절은 이러합니다. “너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성 싶으냐? 지옥[음부, 개역 한글판]에 떨어질 것이다.”(공동번역) ‘마르틴 루터’ 박사가 1522년에 이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그는 영어와 비슷한 발음의 독일어 ‘흴레’(Hoelle)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읍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 성인 ‘제로움’이 기원 383년에 같은 성경을 공통 희랍어로부터 ‘라틴’어로 번역하였을 때 그는 “인페르누스”(infernus)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읍니다. 그러므로 14세기의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게리’가 「신곡」(神曲)이라는 유명한 시를 썼을 때 그의 시 제1편을 ‘인페르노’ 즉 “지옥편”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는 “인페르노”를 단죄받은 인간의 육체가 죽은 후에 그의 영혼이 고통을 당하는 점점 좁아지는 구덩은 깊이로 묘사하였읍니다. ‘단테’의 묘사는 정확한 것입니까?
4.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지옥”[혹은 음부]에 대하여 넣어 주는 영상은 그들이 가르치는 어떤 교리에 근거하고 있읍니까?
4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교직자들은 그들의 교인들의 머리에 “지옥”[혹은 음부]에 대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영상을 심어 주었읍니다. 그 영상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들이 오랫 동안 가르쳐온 “지옥” 사상은 그들이 가르치는 인간 영혼에 관한 교리에 근거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인간 영혼이 인간 육체와 분리 구별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인간의 육체는 멸하고 썩지만 인간 영혼은 불멸이고 썩지 않는 것이며, 그것은 영(靈)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고 우리의 촉각으로 감촉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교직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어디로 간다고 가르치며, “지옥”은 하늘과 어떻게 다르다고 가르칩니까?
5 그러므로 교직자들은 인간 육체가 죽을 때 인간 영혼은,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죽지 않고 생존한다고 말합니다. 이제 영혼이 지금까지 살고 있던 육체를 떠남으로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계로 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간단히 말하면, 선한 사람의 영혼은 천당 곧 하늘로 가고, 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지옥의 반대편에 두어 하늘은 영원한 행복과 축복의 장소인데 반하여 지옥은 영원한 고통과 무한한 고초의 장소라고 합니다. 교직자들은 지옥에 불과 유황이 있다고 말합니다.
6. 성서는 “지옥”이 있다고 가르칩니까? 그러한 곳이 어떠한 곳인가를 결정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6 여러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지옥”에 대해 그렇게 가르쳐 왔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가르침이 바로 “지옥”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함으로, 우리는 성서로 직접 가서 이 점에 대하여 성서는 과연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아 보지 않으면 안되겠읍니다. 사실 여러 성서 번역판에는 “지옥”[혹은 음부]이라는 말이 수십번 나오며, 그러한 번역판에 의하면 성서는 “지옥”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서 필자들이 이 “지옥”을 무엇이라고 알려 주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 필자들이 말하고 알려 준 것을 따를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성서 필자들의 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 성서 필자들이 말한 바를 억지로 해석하려고 함으로써 자신을 속일 수 있읍니다.
지옥은 얼마나 오래 전에 있었는가?
7. 적어도 얼마나 오래 전에 “지옥”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며, 고대 언어로 처음 사용된 “지옥”에 해당하는 단어는 무엇이었읍니까?
7 우리는 이 “지옥”이 적어도 기원전 1750년 즉 3,720여년 전에 있었음을 압니다. 그때는 ‘야곱’의 아들 ‘요셉’의 시기심이 가득한 이복 형들이 ‘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판 해였읍니다. 그후 이들 이복 형들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가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일어난 일을 속였읍니다. 그들은 그에게 ‘요셉’이 들짐승에게 죽임을 당하였다는 인상을 갖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족장 ‘야곱’은 슬퍼하면서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자기 아들 ‘요셉’이 이제 어디에 있다고 그는 말하였읍니까? ‘야곱’은 ‘히브리’인이었으며, ‘로마 가톨릭’ 「예루살렘 성서 번역판」은 ‘야곱’이 사용한 ‘히브리’말을 알려 줍니다. 창세기 37장 35절(천주교역)을 보면 이러합니다. “이에 그이의 아들들과 딸들이 모조리 일어나 그이를 위로 하였으나, 그이는 위로 받기 싫다하고 이르되 ‘나는 울며 울며 나의 아들을 찾아 ‘셔올’[스올; 음부, 한글판]로 내려 가겠노라’ 하며, 그의 아버지가 그 때문에 울었[더라.]” 여러 해 후에 ‘요셉’의 이복 형들이 ‘요셉’의 친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게 해 달라는 허락을 요청하였을 때 ‘야곱’은 다시 그 ‘히브리’ 단어를 사용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길가는 도중 저에게 흉사가 닥쳐오기나하면, 너희는 이 늙은 나로 하여금 통곡하며 ‘셔올’[스올]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리라.”—창세 42:38, 천주교역; 또한 44:29, 31, 천주교역 참조.
8. (ㄱ) ‘제로움’은 이 ‘야곱’의 말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 무슨 단어를 사용하였읍니까? (ㄴ) 영어 「두웨이역 성서」는 무슨 단어를 사용하였으며, 그러므로 ‘야곱’은 자기 아들 ‘요셉’이 어디에 있다고 믿었읍니까?
8 ‘로마 가톨릭’ 교인들은 그들의 성인 ‘제로움’이 ‘야곱’의 말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 ‘히브리’말 ‘스올’(혹은 ‘셔올’)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간과하여서는 안됩니다. 그 번역판은 “지옥”이라는 말의 ‘라틴’어 “인페르노스”와 그 관련어인 “인페리”를 사용하였읍니다. 그러나 영문 ‘로마 가톨릭’ 「두웨이 번역판」은 이 네군데를 모두 “지옥”이라는 말의 “헬”(hell)을 사용하였읍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히브리’ 족장 ‘야곱’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스올’에, “지옥”인 ‘인페르노스’ 또는 ‘헬’(hell)에 있다고 믿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야곱’은 자기 아들과 함께 있기 위하여 그곳으로 가기를 원하였음을 의미합니다.
9. 말라기 1:2, 3을 볼 때 왜 우리는 ‘야곱’이, 교직자들이 오랫 동안 가르쳐 온 그러한 곳에 갈 것으로 기대했다고 믿기가 어렵습니까?
9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야곱’은 과연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여러 세기 동안 교인들에게 설명한 바와 같은 “지옥”에 가기를 원하였읍니까? ‘야곱’은 자기 영혼이 불의 고초를 당할 곳, 자기가 결코 벗어 나올 수 없는 곳으로 가기를 원하였으며, 그는 자기의 이 귀중한 아들 ‘요셉’이 그러한 곳에 가 있다고 믿었읍니까? 그리하여 ‘야곱’과 그의 아들 ‘요셉’은 그들이 죽은지 3,6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영원한 불의 고초의 장소에 있읍니까? 이렇게 믿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영감에 의한 「‘히브리’어 성경」 마지막 책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언자 ‘말라기’를 통하여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그의 쌍둥이 형]는 미워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더욱 그러합니다.—말라기 1:2, 3.
10. ‘야곱’은 언제 “지옥”에 갔으며, 그는 그곳에서 누구와 함께 있게 되었읍니까?
10 하여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족장 ‘야곱’은 언제 ‘스올’로, “지옥”으로, 음부로 갔읍니까? 그것은 기원전 1711년 그가 사망한 후였으며, 그 때에 살아 있던 ‘요셉’과 그의 형제들은 향료를 넣은 그 시체를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읍니다. 이곳은 오늘날 ‘이스라엘’ 땅의 ‘헤브론’ 시에 있읍니다. 이 굴에는 ‘야곱’의 부친 ‘이삭’과 조부 ‘아브라함’이 묻혀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스올’에서, “지옥”에서, 음부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있게 된 것입니다.—창세 49:33로 50:13.
11. (ㄱ) ‘마르틴 루터’와 ‘제임스’ 왕의 「흠정역」은 이 “지옥”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ㄴ) ‘유대’인 번역자들은 그들의 말 ‘스올’이라는 ‘히브리’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였으며, 이 말은 뜻에 있어서 얼마나 광범합니까?
11 이들 ‘히브리’ 족장 세 사람이 모두 영원한 불의 고초의 장소인 “지옥”에서 오늘날 고통을 받고 있다고 믿을 만한 성서적 이유가 없읍니다. 우리는 다른 성서 번역자들을 통하여 이해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예를 들면 전에 ‘로마 가톨릭’ 사제였던 ‘마르틴 루터’는 ‘스올’이라는 말을 “구덩이”(die Grube)로 번역하였읍니다. 그리고 ‘루터’ 보다 1세기 후인 기원 1611년에 영국왕 ‘제임스 1세’의 흠정에 의하여 번역된 영문 성서는 ‘스올’을 “무덤”(the grave)으로 번역하였읍니다. ‘유대’인들인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말인 ‘스올’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 유대인 출판 협회’가 번역한 영어 성서 번역판은 그 말을 “무덤”(the grave)이라고 하였읍니다. (기원 1917년) 그리고 ‘유대’교 ‘랍비’ ‘이삭 리서’가 번역한 영문 번역판(기원 1853년)에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스올’이 “한 무덤”(a grave)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 주의하십시오. 그것은 정관사(the)가 있는 “무덤”(the grave)으로서 죽은 모든 인류의 일반 무덤입니다. 우리가 “지옥”에 관하여 성서에서 가르치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그것은 죽은 인류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2. “스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 몇 번 나오며, 어떤 사람들이 「‘히브리’어 성경」에서 그 말을 사용하였읍니까?
12 이 ‘히브리’어 “스올”은 영감에 의한 「‘히브리’어 성경」 서른 아홉권(39) 전체에 ‘야곱’이 사용한 것을 비롯해서 65회나 나옵니다. 이 말을 예언자 ‘모세’가 사용하였으며, ‘욥’, ‘사무엘’, ‘다윗’, ‘솔로몬’, ‘이사야’, ‘예레미야’ (「열왕기」에서),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요나’ 및 ‘하박국’이 사용하였읍니다.
13. ‘제임스’ 왕 흠정역 성서는 어떤 단어들의 의미가 서로 같음을 알려 주며, 전도서 9:5, 10은 무엇이 “지옥”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 줍니까?
13 성서 번역자들은 ‘스올’이라는 말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는데 통일성 있게 번역하지 않았읍니다. 예를 들면 왕 ‘제임스 1세’의 「흠정 영어 성서」에는 ‘스올’이 서른 한번은 “지옥”(hell)으로 서른 한번은 “무덤”(the grave)으로 세번은 “구덩이”(the pit)로 번역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이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감에 의한 ‘히브리’어 성경 가운데서 “지옥”이라는 말이나 “무덤” 및 “구덩이”라는 말이 하나이며 같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이나 유황이나 영원한 고초와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성서에서 전도서 9:5, 10을 찾아 보면 이러한 내용을 볼 수 있읍니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지옥, 두웨이역]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
14. (ㄱ) ‘욥’은 왜 욥기 14:13에서 “지옥”에 관하여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까? (ㄴ) ‘요나’와 ‘다윗’ 역시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4 그러므로 족장 ‘욥’이 무서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주는 나를 음부[지옥, 두웨이역]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욥 14:13) 족장 ‘욥’은 하나님께서 ‘스올’에, 음부에, “지옥”에 있는 자들을 기억하심을 알았읍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에 대한 자기의 충성스러운 성실 때문에 자기를 영구히 기억하실 것을 믿었읍니다. 예언자 ‘요나’ 역시 그 사실을 인식하였읍니다. 그가 지중해에서 큰 고기 뱃속에 있을 때에 그는 이렇게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지옥, 두웨이역]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 2:2) 그리고 또한 다음과 같이 기록한 시편 필자 ‘다윗’이 있읍니다. “이는 당신이 나의 영혼을 지옥[음부, 한글판]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오며 당신은 성인이 썩어지게 버려두지 않으실 까닭이로소이다.”—성영 15:10, 천주교역.
“지옥”이 없었던 때
15. “지옥”이 없었던 때는 언제였읍니까?
15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하여 성서 자체로부터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되었으므로 이제 “지옥”, 음부, 혹은 ‘스올’이 없었던 때는 언제였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때는 거의 6천년 전 첫 남녀 ‘아담’과 ‘하와’가 ‘에덴’ 낙원에 있었던 때였읍니다. 그 행복했던 때에 관하여 우리는 이러한 기록을 볼 수 있읍니다. “그리고 천주 야훼께서 동녁 ‘에덴’에 한 동산을 나무 심어 꾸미시고, 그 빚어내신 사람을 거기에 두시니라.” 그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담’ 옆에 첫 여자를 두셨읍니다.—창세 2:8-23; 1:26-28, 천주교역.
16. 그때 “지옥”이 존재하기 시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그때에 지상에는 “지옥” 곧 ‘스올’이 존재하지 않았읍니다. 그때에는 하나님이나 사람이 판 묘지도 없었읍니다. 그때에는 오늘날 존재하는 인간의 일반 무덤도 있지 않았읍니다. 그때에는 그러한 것이 필요치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주 하나님께서 인류를 마침내 “지옥”(스올)이나 천당으로 가도록 창조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게도 인류가 지상에서 낙원 상태 가운데 영원히 살기를 원하셨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의 아내 ‘하와’가 창조되기도 전에 “저 선악 아는 나무, 그 나무에서는 도무지 따먹지 말찌니, 네가 그 나무에서 따먹는 날에는 꼭 죽어야 되기 때문이니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창세 2:17, 천주교역.
17. (ㄱ)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불순종에 대하여 경고하실 때 무엇에 관하여 말씀하시거나 말씀하시지 않은 것에 유의해야 합니까? (ㄴ) ‘아담’에게 죽음을 선고하실 때의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창조 기록과 일치하며, 그러므로 ‘아담’이 죽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없읍니까?
17 우리는 이 중요한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됩니다. 즉 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가 금단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지옥”으로 가서 영원히 의식을 가지고 불의 고초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가 불순종하면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읍니다. ‘아담’이 그의 아내의 본을 따라 금단의 실과를 먹은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는 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을 수 있을 것이요, 이렇게 하기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하리니, 이는 네가 흙으로써 이루어진 까닭이니라. 너는 실상 먼지임으로 먼지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세 3:19, 천주교역) 이 말은 인간 창조에 관한 기록과 일치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때 천주 야훼께서 땅에서의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내어, 그 콧구멍에 살리는 넋[생명의 호흡, 두웨이역]을 불어 넣으시니, 이에 사람이 생명체[산 영혼, 두웨이역]가 되었느니라.” (창세 2:7, 천주교역) 인간은 창조될 때 산 인간 영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때 그는 산 영혼으로서의 존재가 끝이는 것이며, 그러므로 살아남는 영혼이 없으며, 영원히 유황불에서 의식을 가지고 고초를 받을 수 있는 살아남은 영혼이 없읍니다.
18. 「창세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누가 죽어 장사되면서부터 “지옥”이 존재하였읍니까?
18 ‘아담’은 단죄된 상태로 낙원 밖에서 약 930년 동안 살았으므로 그의 둘째 아들 ‘아벨’이 죽은 후에도 800여년간을 살았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아벨’은 그의 질투심이 강한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녀로서 그보다 먼저 죽은 자녀가 있다는 기록이 없음으로 “지옥”(스올, 음부)은 ‘아벨’이 죽어 장사되면서부터 존재한 것입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살인자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무슨 짓을 하였느뇨?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보라. 그런즉 이제 너의 손으로 흘린 네 아우의 피를 삼키려고 제 입을 크게 벌렸던 이 땅에서, 너는 저주 받은 몸이 되어 멀리 쫓겨나리라.”—창세 4:1-11; 5:1-5, 천주교역.
19. 성경은 ‘아벨’이 ‘스올’로 갔으며, 기억될 것임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9 ‘아벨’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읍니다. 히브리 11:4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또한 요한 1서 3:12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벨’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3:35) 그런 까닭에 주 하나님께서는 죽어 있는 ‘아벨’을 기억하시며, 그런 까닭에 ‘아벨’이 죽어 장사되어 간 곳은 ‘스올’이며, “지옥” 곧 음부였읍니다. 그는 아직도 죽은 인류의 일반 무덤에 누어 있읍니다. 그의 죽음은 선고를 받은 죄인 ‘아담’과 ‘하와’의 죽음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족장 ‘욥’을 기억하실 것처럼 ‘아벨’을 기억하실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읍니다.—욥 14:13.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 나오는 “지옥”
20. 예수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지옥”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을 하게 하며, 「새번역 성서」에 의하면 여기에서 ‘누가’의 기록에는 무슨 단어가 사용되었읍니까?
20 우리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였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지옥”에 문자적 불이 있음을 가르치시지 않았는가? 하고 묻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읍니다. 부자가 죽음의 세계[지옥, 두웨이역; 음부, 한글판]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읍니다’ 하고 애원하였읍니다.” (루가 16:22-24, 공동번역) 이 비유는 그리스도의 제자 ‘누가’가 희랍어로 쓴 것이며, 그러므로 그는 ‘히브리’어 ‘스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읍니다. 「새번역 성서」는 ‘누가’가 사용한 희랍어 단어를 알려줍니다. 그 성서를 보면 “부자도 죽어서 땅에 묻혔다. 부자가 ‘하데스’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 보니”라고 되어 있읍니다. (‘로마 가톨릭’ 「예루살렘 번역 성서」 참조) 그렇습니다. 여기 사용된 희랍어는 ‘하데스’입니다. 그러면 ‘하데스’에는 죽은 자들에게 고초를 주는 불이 있읍니까?
21. 여기의 희랍어 ‘하데스’는 왜 ‘호머’의 ‘하덴스’ 사상이 아니라 ‘스올’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읍니까?
21 그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우리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여기에서 지옥(음부)으로 번역된 희랍어 ‘하데스’는 왜 ‘히브리’어 ‘스올’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그 단어는 왜 이교 희랍 신화에서 가르치는 ‘하데스’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희랍 시인 ‘호머’ 시대(즉 기원전 700년 이전) 이후에는 고유 명사인 ‘하데스’가 “망령들이 있는 곳”을 의미할 뿐 아니라 “무덤”과 “죽음”도 의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리델’과 ‘스코트’ 공편 「희-영 사전」 1843년 초판 발행, 제 1권 21면 2난 ‘하데스’ 제하 2. 참조)
22. 그러므로 희랍어 「칠십인역」에서 ‘야곱’이 ‘하데스’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그리고 예수께서 ‘하데스’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으로 번역하였을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22 그러므로 희랍어를 사용하던 애굽 ‘알렉산드리아’의 어떤 ‘유대’인들이 기원전 280년경에 영감 받은 「‘히브리’어 성경」을 공통 희랍어로 번역하여 지금 희랍어 「칠십인역」으로 알려져 있는 번역을 하였을 때 그들은 ‘히브리’어 ‘스올’을 번역하는데 ‘하데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7:34; 42:38; 44:29, 31에 나오는 족장 ‘야곱’의 말을 번역할 때 그들은 ‘야곱’이 ‘하데스’에 관한 ‘호머’의 거짓 사상이 아니라 “무덤”(the grave)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 것으로 번역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데스’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으로 번역할 때 그것은 영원히 불의 고초를 당하는 장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게헨나”
23, 24. (ㄱ) 예수께서 무슨 단어를 불과 관려시켜 말씀하셨으며, 그것은 문자적으로 무엇이었으며, 그러나 그것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마태 5:22, 29, 30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게헨나’에 대하여 어떻게 경고하셨읍니까?
23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곳은 ‘하데스’가 아니라 ‘게헨나’였읍니다. ‘게헨나’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즉 문자적으로 ‘예루살렘’ 남쪽과 서남쪽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예수 당시에 이 골짜기는 도시 오물 처리장으로 사용되었으며, 오물을 소각하기 위하여 유황불이 타고 있었고, 거기에는 인류의 일반 무덤인 ‘하데스’에 매장하기에는 너무나 악하다고 생각되는 범죄자의 시체를 버리기까지 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상징적 의미로 ‘게헨나’라는 말을 사용하셨으며, ‘게헨나’는 완전하고 영원한 멸망, 존재로부터 영원히 소멸되는 것의 상징이었읍니다. 절멸(絶滅)을 의미한 것입니다! ‘게헨나’라는 이름은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 가운데 단지 열두번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 말을 처음 사용하신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그 말이 마태 5:22, 29, 30에 나옵니다. 그 내용을 보면 이러합니다. (새번역):
24 “형제를 향하여 성내는 사람은 누구든지 재판을 받게 되고 형제더러 미련한 놈이라고 말하면 의회에 끝려가게 될 것이요 또 형제더러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불붙는 ‘게헨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네 오른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버리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더라도 온 몸이 ‘게헨나’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더라도 온 몸이 ‘게헨나’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낫다.”—마가 9:43-47 참조.
25. ‘게헨나’가 영원한 멸망의 상징임을 증명하는 예로 예수께서는 마태 10:28에서 영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5 ‘게헨나’가 완전하고 영원한 멸망의 상징임을 증명하는 예로 예수께서 열두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읍니다.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몸을 모두 죽여 ‘게헨나’에 넣을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태 10:28, 새번역) 자, 이제 “영혼”이라는 것이 죽임을 당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의식을 가지고 유황불에서 영원히 고초를 겪을 수 있겠읍니까? 암흑 시대에 종교 박해자들이 소위 “이단자”의 몸을 기둥에서 영원히 불타게 하지 못하였읍니다. 불은 아무도 보존시키지 못합니다.
26. 이 희랍어 단어가 나타나는 모든 곳에서 ‘제로움’의 ‘라틴’어 번역은 무슨 단어를 사용하였으며, 이곳에 처하여질 자들은 누구입니까?
26 또한 ‘게헨나’라는 단어가 나타나는 곳은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 18:9; 23:15, 33; 누가 12:5 및 야고보 3:6입니다. 이 모든 경우에 ‘제로움’의 ‘라틴’어 「벌게이트역」은 ‘인페르누스’가 아니라 ‘게헨나’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게헨나’로 상징된 영원한 멸망에 처하실 자들은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과 같이 도저히 시정되거나 의롭게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기 때무에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의 비유 가운데서 염소와 같은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거라.”—마태오 25:41, 공동번역.
“지옥”에서 영원히 멸망되는 것이 아님
27, 28. (ㄱ) 누구의 특수한 경험이 “지옥”에 간 사람이 거기에서 영원히 멸망될 것인지의 여부를 알려 줍니까? (ㄴ) 시편 16:10에서 ‘다윗’은 자신에 관하여 말한 것입니까? ‘베드로’는 오순절날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27 그러면 “지옥”(음부) 즉 “하데스” 혹은 “스올”에 가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영원히 멸망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즉 앞으로 영원히 그곳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까? 만일 누군가 “지옥”(음부, ‘하데스’, ‘스올’)을 벗어나와 영원히 다시는 그리로 들어가지 않을 자가 있음을 성서에서 알려 준다면 그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시편 필자 ‘다윗’이 기록한 바를 기억하십시다. “이는 당신이 나의 영혼을 지옥[음부, 한글판]에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오며, 당신은 성인이 썩어지게 버려두지 않으실 까닭이로소이다.” (성영 15:10, 천주교역; 시 16:10) 여기에서 ‘다윗’은 자기 자신에 관하여 말한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기원 33년 오순절날에 ‘베드로’는 ‘다윗’의 이 시를 인용해서 그것을 올바른 분에게 적용하였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28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지옥, 두웨이역]에 버려두시지 않고 당신의 경건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치겠읍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대선조이신 ‘다윗’에 관해서 분명히 말씀드려야겠읍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남아있읍니다. ‘다윗’은 예언자였으며 자기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주시겠다고 하신 하느님의 굳은 맹세를 알고 있었읍니다. ‘다윗’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내다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미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세계[지옥, 두웨이역]에 버려두시지 않았고 그의 몸을 썩지 않게 하셨읍니다.’ 바로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사도 2:27-32, 공동번역.
29. 교회에서 암송되는 “사도 신경”은 “지옥”이 불타는 영원한 고초의 장소인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29 교회에 다녀본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는 “사도 신경”이라는 것을 함께 암송한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하여 음부(곧 지옥)에 나리신지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여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그리하여 이 신경 암송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음부[곧 지옥]에 나리신” 것을 믿는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말로써 예수께서 지하 유황불이 타는 곳으로 내려가서 인류를 대신해서 그곳에서 영원히 고초를 받으신다는 뜻입니까? 그런 뜻일 수는 없읍니다. 왜냐 하면 바로 계속해서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자신은 사도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 “지옥”[혹은 음부]은 죽은 사람이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고초를 느끼지도 않으셨읍니다.
30, 31. (ㄱ) 전도서 9:5, 10에 의하면 “지옥”에서의 그리스도의 경험은 어떠하였으며, 그러므로 어떻게 하시는 것과 같았읍니까? (ㄴ)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있는 죽은 자들 중 “첫 열매”라고 불리웠으므로 이것은 그곳에 있는 남어지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30 예수 그리스께서는 사흘 동안(기원 33년 ‘니산’월 14-16일) “지옥”(음부, ‘하데스’ 혹은 ‘스올’)에 계셨읍니다. 전도서 9:5, 10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그곳에 계시는 동안 예수는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하셨읍니다. 그곳에서 그에게는 일도, 계획도, 지식도, 지혜도 없었읍니다. 그분은 참으로 죽어 있으셨지만 마치 잠자는 것 같이 무활동이었고, 아무 것도 모르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죽은 자로부터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하고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20) 그러므로 “지옥”(음부, ‘하데스’ 혹은 ‘스올’)에 있는 죽은 자였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부활의 혜택을 받으셨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은 “지옥”에 있는 남어지 모든 죽은 자들에게도 혜택을 미치게 하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곳에서 죽음의 잠을 자는 자들 중 “첫 열매”에 불과합니다. 인간 죽은 자들이 많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깨워 일으킴을 받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영감받은 말의 주요 사상입니다.
31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서 온 것처럼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해서 왔읍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모두 죽는 것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I 고린토 15:21, 22, 공동번역.
32. “지옥” 안에 있는 자들이 풀려 나올 것을 알리는 예수의 어떠한 말씀이 묵시록 1:17, 18에 있읍니까?
32 그 “지옥”(음부, ‘하데스’ 혹은 ‘스올’)으로부터 부활을 통해 모든 죽은 자들이 나올 것은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써 확실해졌읍니다.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원 96년경 즉 ‘네로’ 황제가 ‘로마’ 시를 불태운지 32년 후에 환상 가운데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읍니다. 이 환상이 「묵시록」 혹은 「계시록」이라는 성서 마지막 책에 들어 있으며, 거기에서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고 살아있는 존재이다. 나는 죽었었다. 그러나 나는 영원무궁토록 살아있고 죽음과 지옥[음부, 한글판]의 열쇠를 내 손에 쥐고 있다.”—묵시 1:17, 18, 공동번역.
33, 34. (ㄱ)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척이나 벗이 먼저 돈을 바쳐야 열쇠를 사용해서 죽음과 지옥에 있는 자들을 놓아 주실 것인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 줍니까? (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무엇으로부터 놓임을 받으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왜 그분에게 그 “열쇠”를 맡기셨읍니까?
33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신 목적은 죽음과 지옥에 있는 자들을 영원히 가두어 두기 위한 것입니까? 혹은 죽은 자들의 친척이나 벗이 먼저 그분에게 돈을 바치면 그분은 열쇠를 사용해서 죽음과 지옥에 있는 자들을 내어 주실 것입니까?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특권을 이용해서 그렇게 한다면 얼마나 이기적이고 상업주의적인 것이겠읍니까!
34 그러한 생각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서 예수께서는 자기의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사실은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러 온 것입니다.” (마태오 20:28, 공동번역)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지상에 계실 때에 죽은 사람들을 살려 주셨을 때에도 그들에게서 은전 한 ‘데나리온’도 받으신 일이 결코 없었읍니다.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사용하시는 목적은 죽은 자들을 영원히 가두어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자하고 너그럽게 그들을 놓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옥”으로부터 부활시키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그분에게 이 “열쇠”를 맡기신 것입니다.
35. (ㄱ) 예수께서는 자기가 “지옥”의 열쇠를 사용할 즐거운 때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ㄴ) 부활의 목적은 왜 그리고 어떻게 유익한 것입니까?
3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일을 행하실 즐거운 때를 바라보시면서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읍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할 권리까지 주셨읍니다. 그는 사람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내 말에 놀라지 마시오. 죽은 이들이 모두 그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나올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가 오면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살아나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살아나 단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요한 5:26-29, 공동번역) “지옥”에 있는 이들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은 그들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분명합니다. “지옥”에서 부활된 자들 중에 다시 고의적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 부활된 자들은 단죄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멸망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목적은 죽은 자들의 영원한 유익을 고려할 때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부활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 영원한 생명을 즐길 기회를 열어 줍니다.
36, 37. “지옥”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에 관하여 누구에게 환상이 주어졌으며, 그 사람은 그 광경을 어떻게 묘사하였읍니까?
36 사도 ‘요한’에게 보여주신 그 계시 혹은 묵시 가운데서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옥”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의 실상을 보여 주셨읍니다. 그 때는 이 낡은 세상적 사물의 제도가 멸망된 후이며,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 즉 새로운 하늘 정부와 새로운 지상 인간 사회를 창조하신 후 입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묘사하면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37 “나는 또 크고 흰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읍니다. 땅과 하늘도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읍니다. 나는 또 죽은 자들이 인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 옥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읍나다. 많은 책들이 펴졌고 또 다른 책 한권이 펴졌읍니다.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읍니다. 죽은 자들은 그 많은 책 안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그들의 행적을 따라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바다는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냈고 죽음과 지옥[음부, 한글판]도 자기들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놓았읍니다.”—묵시 20:11-13, 공동번역.
38. (ㄱ) 그러면 “지옥”이 어떻게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며, 「계시록」은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 줍니까? (ㄴ) 어떻게 “죽음”과 악이 끝날 것입니까?
38 그렇습니다. “지옥”(음부, ‘하데스’ 혹은 ‘스올’)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가로 바치신 인간 생명의 혜택을 받을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 안에 있는 마지막 죽은 자를 내어 놓으면, 지옥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 땅 어디에서나 거민들은 단 하나의 묘지나 단 하나의 묘비도 구경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류의 일반 무덤은 영원히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묵시록 20:14, 15(공동번역)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죽음과 지옥(음부, 한글판)이 불바다에 던져졌읍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죽음입니다. 이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올라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다 이 불바다에 던져졌읍니다.” 그것은 얼마나 영화로운 심판 날일 것입니까! “지옥”(음부)이 치명적 강타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온 인류가 죄인 ‘아담’과 ‘하와’로 부터 유전받은 죽음은 모든 순종하는 인류가 회복된 낙원에서 인간 생명의 완전성을 갖게 됨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처하여지고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고의적으로 악하게 된 자들 모두가 멸망되어 둘째 죽음의 형벌을 당하게 되므로써 악행은 중단될 것입니다.
[176면 삽화]
첫 남녀 ‘아담’과 ‘하와’가 ‘에덴’ 낙원에 있었던 때에는 지상에는 “지옥” 곧 ‘스올’이 없었다
[183면 삽화]
“지옥”이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 안에 있는 마지막 죽은 자를 내어 놓으면 지옥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