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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파수대—1979 |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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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어느 때에나 주는 일을 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당신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그것은 선물을 교환하는 세상적 축일을 이름을 바꾸어 기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예수를 기쁘시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호와의 승인을 얻게 할 것이며, 그분께서는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하에서의 평화로써 즐거이 주는 사람에게 보답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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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파수대—1979 |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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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가?
분별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세상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 사는 사람이나 인생을 즐기기를 원하지만, 그러한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이 허다하다.
앙등 일로에 있는 물가로 인해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기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범죄, 가정 파탄, 빈곤, 사회 질서의 파괴, 전쟁 등의 문제들이 인류 가족을 괴롭히고 있다.
생활의 압력이 증대함에 따라 이 모든 문제로부터 헤어날 길을 찾아낼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우리 시대에 “땅에서는 민족들이 ··· 혼란과 불안으로 절망”하리라고 하신 예수의 예언이 그대로 적중하고 있다.—누가 21:25, 새번역.
또한, 1979년 초에 이러한 ‘민족들의 혼란’에 의미심장한 또 다른 것이 부가되었다. 국제 공산주의 사상 최초로, 공산 국가간에 전쟁이 있었다.
“전쟁에 돌입한 붉은 형제”라는 제목의 「뉴우요오크 타임즈」지 주요 사설은 이렇게 논평하였다.
“그들은 자손들의 시체로 공산주의 창시자들의 희망을 덮으면서 이번 주 ‘아시아’ 전쟁의 양측에서 ‘혁명가’를 부르고 있다.
“한 때 공산주의자들은 ··· 자기들끼리는 서로 싸울 수 없는 형제지간이라고 느꼈다. ··· 아직도 발생할 수 있는—사실 ‘불가피한’—국제 전쟁은 자본주의 내에 존재하는 모순에서 발전되는 전쟁 뿐이라고 붉은 형제들은 믿었다.”
그러나 공산국가간의 적대 감정이 지난 이십여년간 증대해 왔다. 마침내, 이러한 적대 감정이 1979년초 공산 월맹이 공산 ‘캄보디아’를 침공했을 때 폭발하였다. ‘캄보디아’를 지지하는 중공은 다음에 ‘베트남’을 침공했고, ‘베트남’을 지원하는 국가는 소련이기 때문에 중공과 소련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 전쟁은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타임즈」지는 그 의미를 이렇게 지적하였다.
“이번 주말 ‘캄보디아’로부터 중공과 ‘베트남’ 국경으로, 그리고 중공과 소련간의 신랄한 설전으로 번진 전투는 어떠한 이념도 인간을 민족적, 인종적 투쟁이나 침략 및 배타주의로부터 막지 못한다는 최종적 증거이다. 무기력한 국제 연합이 방관하는 가운데 뚜렷한 경제적 이해 타산도 없이 성미급한 정부들이 전면 전쟁도 서슴지 않는다. 추악한 국가주의가 인류 가운데서 다시 한번 승리를 거둔 셈이다.”
그러므로, 이전의 다른 모든 정치 이념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역시 온 인류에게 진정한 평화와 연합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타임즈」지가 이렇게 결론지은 것과 같다. “국가들은 고금을 막론하고 무법자들이다.”
당신은 당신의 생애에 발생해 온 여러 가지 서글픈 세상사로 인해 낙심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러나, 성서 예언에 비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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