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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프리카’의 거대한 강깨어라!—1973 |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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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류에까지 가다
‘스탠리’ 폭포를 뒤로 하고 상류로 가지만 우리는 거의 정남으로 가는 것이다. 거대한 초승달 처럼 강줄기는 처음에 북동 쪽으로 진행하다가 적도를 건너 동쪽으로 방향이 바뀌며 나중에는 남쪽으로 구부러진다.
강 유역에는 적도 양쪽으로 각각 다른 계절에 따라 비가 내리므로 다른 많은 강에서 볼 수 있는 일 즉 물이 지나치게 붇거나 주는 일이 방지된다. 수위가 낮을 때와 높을 때의 비율은 1대 3이다. (다시 말하면 수위가 계절에 따라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에 비하여 미국의 ‘미시시피’ 강은 1대 20이며, ‘나일’ 강은 1대 48이다.
‘스탠리’ 폭포 상류의 강을 이 곳에서는 ‘루알라바’라고 부른다. 이 강은 ‘자이레’ 내륙 지방으로 뻗쳐 있어 ‘루붐바시’(이전의 ‘엘리자베스빌’) 근처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더 먼 원류는 북동 ‘잠비아’에서 시작된다.
중앙 ‘아프리카’의 거대한 강! 이것은 현재 ‘자이레’ 강으로 알려진 거대한 ‘콩고’ 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강은 주로 이 강에 의존하여 생활 필수품을 얻고 있는 나라의 이름을 따서 현재는 ‘자이레’ 강으로 명명된 것이다. 참으로, 이 강은 무한한 경이의 하나이며 지성있는 창조주의 지혜와 막강한 능력을 알려 주는 또 하나의 증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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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사용깨어라!—1973 | 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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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십자가의 사용
만일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친구가 억울하게 사형을 당한다면 당신의 느낌은 어떠하겠는가? 당신은 사형 도구, 이를 테면 교수형 집행의 올가미나 전기 의자의 복제물을 만들겠는가? 그 복제물에 ‘키스’를 하거나 그 앞에 촛불을 켜놓거나 장식물로 만들어 그것을 목에 걸겠는가?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고 당신은 말할 것이다.
그러나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들은 그들을 위한 큰 사랑의 표현으로 생명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들은 예수께서 죄가 없지만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였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그들의 교회와 가정과 몸을 십자가로 장식하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그 앞에 촛불을 켜 놓고 그 앞에서 절을 하지 않는가? 그러한 일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역사적 증거에 의하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숭배에 십자가를 사용하지 않았다. 「신 가톨릭 백과 사전」은 이렇게 알려 준다. “‘골고다’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묘사하는 일은 초기 그리스도인 세기의 상징주의 미술에서 볼 수 없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새긴 우상에 대한 구약의 금지조항에 영향을 받아 주님의 수난의 도구도 묘사하는 것을 꺼려했다.” 분명히 그들은 결코 십자가 앞에서 절을 하거나 십자가에 입을 맞추지 않았다.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예수의 죽음의 방식은 모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그의 옆에서 사형을 당한 행악자들과 똑같이 가장 비천한 죄수같이 사형을 당하셨다. (누가 23:32) 그러므로 그의 죽음은 가능한 최악의 방법으로 그에게 모독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형 도구 자체를 매우 불쾌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것을 받들어 모시는 것은 그것으로 저지른 그릇된 행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일을 미화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비그리스도인들은 오랫 동안 십자가를 거룩한 종교적 상징물로 숭배하였었다. 「의식과 건축 및 예술상의 십자가」라는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오래 전부터,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교회의 가르침에 접하지 않은 나라에서 십자가가 거룩한 상징물로 사용되어 온 것은 이상스럽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희랍의 ‘바카스’, ‘두로’의 ‘담무스’, ‘갈대아’의 ‘벨’, 옛 ‘스칸디나비아’의 ‘오딘’, 이 모든 신들을 상징하기 위하여 숭배자들은 십자가를 사용하였다.”—1면.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또 다른 질문 즉 ‘그리스도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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