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을 굳게 하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 22:32.
1, 2. (ㄱ) 왜 오늘날 특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필요가 있읍니까? (ㄴ) 하나님의 종들이 침울해져서 굳게 될 필요가 있을 수 있읍니까?
확실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필요가 있읍니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불행한 상태—편견, 불공평, 주택난, 인구 범람 등—로 인하여 상심하고 있읍니다. 쓰라린 실망, 신체의 쇠약, 개인적인 실패감 혹은 자신들이 무용지물이 아닌가 하는 의혹으로 인하여 낙심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2 하나님의 종들도 예기치 않게 매우 침울해지고 자신들이 그러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놀라고 당황할 수 있읍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은 절망하여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가? 내가 무슨 일을 했지? 다른 사람들을 내가 굳게 해 주어야 하는데, 나 자신도 굳게 할 수가 없으니 내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졌나?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
3, 4. (ㄱ) 그리스도인 시대 이전의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 굳게 될 필요가 있었던 사람들의 예를 드십시오. (ㄴ)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굳게 될 필요가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3 그러나,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전혀 놀랄 필요가 없읍니다. 그러한 감정은 그 사람만이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하나님의 종들도 비슷하게 느꼈으며 따라서 굳게 될 필요가 있었읍니다. 예를 들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슬퍼한 「시편」 필자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시 42:9) ‘엘가나’의 사랑을 받은 아내 ‘한나’는 출산을 못하는 데 대하여 몹시 실망하고 그와 겨루는 아내로부터 고통을 받아 “울고 먹지 아니하”곤 하였읍니다.—사무엘 상 1:5-7.
4 또한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굳게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회중에게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권고하였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예수 그리스도의 사후에, ‘글로바’와 그의 동료는 깊은 침울감에 빠졌읍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그들은 “슬픈 빛을 띄고 머물러 서”서 그들의 실망감을 실토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구출하실 줄로 기대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세번째로 부인한 후에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는 사람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의 주를 부인하게 된 데 대하여 몹시 비통해 하였읍니다.—누가 24:13-21; 22:62.
5.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어떠한 명령을 하셨으며, 그 명령이 그에게 주어진 것은 왜 적절하였읍니까?
5 그러나, 예수께서는 신성으로서의 예지에 의하여, ‘베드로’가 자기를 부인할 것을 미리 아셨읍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몇시간 앞서서 이에 대하여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22:32) ‘베드로’는 자기의 쓰라린 경험을 통하여 침울해져서 굳게 될 필요를 느끼는 상태가 어떤 것인지 온전히 인식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참으로 적절하였읍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굳게 할 수 있는가?
6. 이 명령이 또한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그 환경에서 예수의 명령은 ‘베드로’에게 주어졌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절한 명령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주 한 사람 혹은 단지 소수에게 이야기하셨지만, 그들을 말하자면 공명판으로 사용하여 그의 교훈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하셨읍니다. 또 다른 경우에 그분은 바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동일한 교훈이 옆에 있던 다른 사도들에게 적용되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 목자들에게 반복되었읍니다. (베드로 전 5:1, 2; 사도 20:28) 그리고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의 명령을 받은 것은 그의 최초의 추종자들 뿐이었지만, 이 명령은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됩니다.—요한 21:15-17; 마태 28:19.
7. 여기에서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7 그러므로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신의 욕망이고 당신 자신이 강하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굳게 할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결코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수행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신 명령의 의미는 무엇이었읍니까? 우리가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어떻게 굳게 해 주어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계셨읍니까?
8, 9. (ㄱ)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예수의 명령의 의미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굳게 하라”고 번역된 원 희랍어 단어는 어떻게 이 점을 입증합니까?
8 예수께서는 특히, 음식의 형태로 인체를 굳게 할 수 있는 신체적 도움을 베풀라는 뜻으로 말씀하지 않았읍니다. (사도 9:19) 그것이 아니라, 그분이 염두에 두신 것은,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을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굳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가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확신과 희망을 증가시키고, 그들을 위안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인의 길에 고정시키는 혹은 확립시키는 방법으로 말하거나 행동하라는 의미였읍니다. “굳게 하라”고 번역된 원래의 희랍어는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9 예를 들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그 분이 사용한 희랍어 ‘스테리조’는 “견고히 정착시키다, 견고하게 고정시키다, 굳히다, 받치다, 지지하다”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희랍어는 또한 신세계역에서 ‘굳게 하다’로 번역되었읍니다. (로마 1:11; 16:25; 데살로니가 후 2:17; 베드로 전 5:10) 성경에서 ‘강화하다’로 번역된 다른 희랍어들은 앞으로 살펴 보겠지만, “활기를 돋구다, 지지하다, 혹은 굳히다, 그리고 위로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선, ‘베드로’가 영적으로 굳게 될 필요가 있었던 이유를 살펴 봅시다. 그러한 고초를 통하여 우리는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실패
10. ‘베드로’는 자기의 영적 힘에 대한 과신을 어떻게 나타내었으며,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엇을 예언하셨읍니까?
10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하기 직전의 사건에 관심을 돌려 보십시다. 예수께서 자신이 처형되기 전 마지막 밤에 사도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하고 자신만만해 하였읍니다. (마태 26:31-35) 사건 진행에 대한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읍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느니라.]” 그러나 ‘베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하고 역설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고 대답하셨읍니다. (누가 22:31-34) 예수의 말씀이 바로 그날 밤에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살펴 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11, 12.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떻게 예수의 말씀에 반복적으로 불순종하였읍니까?
11 긴 기도를 한 후에, 예수와 그의 사도들은 그들이 유월절을 기념한 다락방을 떠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갔읍니다. (요한 16:33-18:1) 거기에서, 예수께서는 혼자 기도하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떠나기 전에 ‘베드로’와 그의 다른 두 사도에게 “너희는 여기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였읍니까? 성서 기록은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그 때에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너희는 모두 깨어 있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마가 14:32-38, 새번역.
12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순종하였읍니까? 성서 기록은 이렇게 계속합니다.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읍니다. 그리고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또 자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듣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다시 기도하기 위하여 떠나기 전에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이 깨어 기도하도록 더욱 긴급하게 격려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번째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아직도 자느냐? 아직도 쉬느냐? 그만하면 넉넉할 것이다. 때가 왔다. 보라,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하고 말씀하셨읍니다.—마가 14:39-41, 새번역.
13. (ㄱ) 예수께서 체포되어 연행되었을 때에 ‘베드로’는 어떻게 하였읍니까? (ㄴ) 어떠한 상황에서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하였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하였읍니까?
13 그 직후 ‘베드로’는 자신이 매우 깨어 있음을 나타냈읍니다. 그는 칼을 뽑아, 예수를 체포하려고 온 사람들과 함께 있던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읍니다. (요한 18:10, 11) 예수께서는 잡혀서 연행되었으며 사도들은 도망하였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분명히 자신의 생명에 대한 우려와 예수의 신변에 대한 깊은 염려가 섞인 가운데 멀찌감치에서 따라갔읍니다. 그들은 대제사장의 관저에 왔으며, ‘베드로’가 세 차례에 걸쳐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고, 만일 자기가 예수를 안다면 자기가 저주 혹은 단죄를 받을 것이라고까지 말한 것은 바로 이 대제사장의 뜰에 있을 때였읍니다. 그 순간 닭이 울었으며,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를 보셨으며 ‘베드로’는 밖으로 나가 통곡하였읍니다.—누가 22:47-62; 마가 14:71, 72.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14. (ㄱ) ‘베드로’의 실패는 성서의 어떠한 경고와, 무슨 교훈을 강조합니까? (ㄴ) ‘베드로’가 이 교훈을 받았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4 ‘베드로’는 자기의 영적 힘을 참으로 자신하였지만 실족하였으며 충실한 그리스도인 행로를 유지하지 못하였읍니다. 그의 경험은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고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합니다! (고린도 전 10:12)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여기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우리 중 아무도 우리가 넘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믿고 우리의 영적 힘을 과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넘어질 수 있읍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배우고, 나중에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기술하였읍니다.—베드로 전 5:8.
15. (ㄱ) 우리 모두는 여기에서 다른 어떠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까? (ㄴ) 굳게 해 주는 도움의 주요 근원은 무엇입니까?
15 우리가 그 날 밤에 있었던 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우리 모두가 굳게 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계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하도록 권고하시면서 그 필요한 도움을 베풀려고 노력하셨읍니다. 그들은 특히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도움을 필요로 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견고케 하실 수 있’읍니다. 즉 그분은 우리가 어떠한 압력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굳게 하고 고정시키실 수 있읍니다. (로마 16:25, 신세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잠자는 동안 그 동산에서 있었던 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분도 이러한 굳게 하는 것이 필요하였읍니다.
16, 17. (ㄱ) 예수께서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ㄴ) 천사는 분명히 예수를 어떻게 굳게 하였읍니까?
16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기도하고 계셨읍니다. 성서 기록은 그분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에니스크후오’]”라고 알려 줍니다. (누가 22:41-43)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생애에서 가장 중대했던 그 순간에 그곳 동산에서 천사를 통하여 도움을 베푸셨읍니다!
17 천사는 예수께 활기를 주는 정보를 제공하고 그분 안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 말을 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이것을 여기에서 “힘을 돕”다라고 번역된 희랍어 ‘에니스크후오’라는 말이 암시합니다. 그것은 성서 사도행전 9:19에 단지 한번 더 나오는데, 사도 ‘바울’이 음식을 먹고 “강건하여”졌다고 언급되었읍니다. 그러나 반면에 예수께서는 음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천사의 도착과 분명히 천사의 격려적인 말에 의해 굳게 되셨읍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자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와 같이 굳게 될 입장에 있지 않았읍니다.
18. (ㄱ) 우리는 영적 힘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필요로 하며, 우리는 그것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읍니까? (ㄴ) 자문해 볼 만한 어떠한 좋은 질문들이 있읍니까?
18 당신은 어떠합니까? 당신은 굳게 할 영적 마련에 깨어 있읍니까? 기억하십시오. 성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마태 4:4) 굳게 해 주는 하나님의 이러한 말씀은 예수의 경우와 같이 보통 천사를 통하여 제공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정기적으로 복습하고 토론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있읍니다. 당신은 이러한 집회에 참석하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의를 기울입니까? 그러한 경우에 당신은 토론하는 내용으로부터 당신이 필요로 하는 영적 힘을 받고 있읍니까? 우리의 생명 자체가 이러한 영적 음식에서 우리가 섭취하는 힘에 달려 있읍니다.
‘베드로’는 어떻게 힘을 얻었는가
19, 20. (ㄱ) 부인하는 말을 반복한 ‘베드로’는 자신을 어떠한 입장에 두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돌아오는 것과 관련하여 무슨 일을 하셨읍니까?
19 ‘베드로’는 반복적으로 부인하는 말을 함으로써 사실상 예수 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도 버렸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돌아올 것을 확신하셨읍니다. 그분은 ‘베드로’가 기본적으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단순히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압도되었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셨읍니까? 그분은 ‘베드로’가 아무런 도움이나 격려 없이 스스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셨읍니까?
20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돕는 일을 하셨읍니다. 우선, 그분께서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구하셨으며 그의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읍니다. (누가 22:32) 그러나 그 뿐 아니라 예수께서는 부활한지 얼마 후 ‘베드로’에게 특별히 나타나셨으며 제자들은 흥분하여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보고하였읍니다. (누가 24:34) 또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으로 볼 때, 이것은 분명히 예수께서 부활 후 일찍 나타나신 경우 중 하나였읍니다. (고린도 전 15:4-8) 왜 예수께서는 자기를 그렇게 격렬히 부인한 ‘베드로’에게 그러한 특별한 주의를 돌리셨읍니까?
21. (ㄱ)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특별한 주의를 돌리신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여기에서 우리는 어떠한 영향을 받아야 합니까?
21 그것은 ‘베드로’를 굳게 하고 그분이 아직도 그를 사랑하시며 그를 제자로 원한다는 것을 그에게 보증하기 위해서였읍니다. 우리는 ‘베드로’에 대한 이러한 자비로운 배려에 감동을 받지 않습니까? 예수의 행동은 탕자였다가 회개한 아들을 팔을 벌리고 환영하여 맞은 아버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누가 15:11-32) 당신은 예수의 행동이 ‘베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이라면 어떠한 영향을 받았겠읍니까? ‘베드로’는 굳게 되었읍니다. 그는 영적으로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읍니다. 그는 돌아왔읍니다. 그리고 당신은 예수께서 돌아온 ‘베드로’와 우리 모두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셨는지 기억합니까?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믿음에 머물도록 견고히 정착 혹은 확립시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따라야 할 본들
22.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형제들을 가장 잘 강화할 수 있읍니까?
22 최상의 방법은 예수의 본을 따르는 것, 그분이 ‘베드로’ 및 굳게 될 필요가 있었던 사람들을 다루신 방법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듯이 예수께서는 자비롭고 너그러우셨읍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대함으로써 굳게 할 수 있으며, 믿음에 머물도록 견고히 정착시킬 수 있읍니다. 성서의 이러한 충고를 청종할 필요가 있읍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 4:32.
23. (ㄱ) 특히 장로들은 예수의 본과 관련하여 무엇에 유의해야 합니까? (ㄴ) 장로들은 그들이 예수의 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23 그리스도인 회중의 장로들은 특히 형제들을 굳게 하는 도움을 베풀 책임이 있으며 따라서 예수의 본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던 종교적 ‘바리새’인들과 전혀 다르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3:4; 11:28, 30) 그러므로, 장로 여러분, 사물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반영하는 그리고 그들을 약화시킬 수 있는 “무거운 짐”과 같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규칙으로 여러분의 형제들을 얽어매지 않음으로 그분을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의 형제들이 마음으로부터 감동을 받아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도록 여호와께 대한 진정한 인식을 그들 속에 배양시켜 주십시오. 바로 이것이 그들을 믿음 안에 머물도록 견고히 정착시켜 줄 것입니다.
24. (ㄱ) ‘베드로’는 어떻게 그의 형제들을 굳게 하였읍니까? (ㄴ)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그들의 형제들을 굳게 하였읍니까?
24 ‘베드로’는 성공적으로 그의 형제들을 굳게 해 주었읍니다. 예를 들면, 조롱과 반대를 받으면서도 전파하는 일에서의 담대함과 두려움없음을 나타낸 그의 훌륭한 본은 그들에게 격려의 근원이었읍니다. (사도 2:14-5:42) 또한 그의 고무적인 편지는 참으로 굳게 해 주는 것이었으며 첫째 편지는 ‘격려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읍니다. (베드로 전 5:12, 신세 참조) 제1세기의 다른 장로들도 그들의 형제들을 격려함으로써 굳게 하였읍니다. 성서는 ‘바울’과 ‘바나바’에 대하여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들이]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니라.]” 또한 ‘유다’와 ‘실라’는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였읍니다. 후에 ‘바울’은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였읍니다.—사도 14:21, 22; 15:32, 41.
25. (ㄱ) ‘굳게 하다’라고 번역된 말들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까? (ㄴ) 그러므로 현대 장로들은 어떻게 그들의 형제들을 강화할 수 있읍니까?
25 여기 「사도행전」에서 ‘굳게 하다’로 번역된 희랍어 ‘에피스테리조’(‘스테리조’의 확장된 형태)는 확증하다 혹은 지지하다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새번역」은 사도행전 14:22을 “신도들의 마음을 더욱 굳세게 하고”라고 하였읍니다. 「예루살렘」 성서는 “그들이 제자들에게 참신한 마음을 넣어주었다”고 하였읍니다. 여러분 장로들은 이 본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야외 봉사에서의 여러분의 열성스러운 본으로, 반대받을 때 두려움없는 태도로, 격려의 말로 그리고 감동적인 연설로 여러분의 형제들을 굳세게 해 줄 것이며 그들에게 참신한 마음을 넣어주고 그들이 믿음 안에 굳게 머물게 할 것입니다.
26. 그리스도인 회중의 각 성원은 어떻게 그들의 형제들을 굳게 할 수 있읍니까?
26 그러나 장로들만이 형제들을 굳게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동일한 일을 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주로 여호와의 요구 조건에 순종하는 면에서 훌륭한 본을 보임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예를 들면, 정기적으로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집회에 참석하여 단지 우정적인 미소를 짓거나 유쾌하게 인사하는 것만으로도 침울감에 빠져 있는 형제를 굳게 할 수 있읍니다. 회중 집회 중에 당신이 대답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 고무적입니다. 만일 그러한 대답을 마음으로부터 한다면, 당신이 그것을 아무리 사소하다고 생각할지라도, 형제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으며 그들을 굳게 할 수 있읍니다. (히브리 10:23-25) 또한, 악천후나 신체의 허약과 같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활동적으로 전파함으로써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좋은 본을 받도록 훌륭하게 할 수 있읍니다.
27. 여기에서 사용된 희랍어 단어가 암시하듯이, 사도 ‘바울’의 세 동료는 그에게 어떻게 굳게 해 주는 도움이 되었읍니까?
27 심지어 믿음 안에 견고히 정착한 사람들도 예수의 경우와 같이 굳게 될 필요가 있을 수 있읍니다. (누가 22:43) 우리는 그러한 도움을 베푼 ‘아리스다고’와 ‘유스도’와 ‘마가’의 본을 받을 수 있읍니다. ‘로마’에 수감된 사도 ‘바울’은 그들에 대하여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읍니다. (골로새 4:10, 11) 그렇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었읍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여기에 “위로가 되었”다고 번역된 희랍어 ‘파레고리아’는 위로, 위안을 의미합니다. “그 말의 동사형은 자극을 가라앉히는 의약을 의미한다”고 ‘더블류. 이. 바인’ 저 「신약 용어 설명 사전」은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바울’과 밀접히 일함으로, 그를 위안하고 격려함으로 그에게 굳게 해 주는 도움이 되었읍니다.
28. 이러한 성서의 본과 일치하게, 우리가 형제들을 굳게 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들이 있읍니까?
28 오늘날도 동일하게, 침울감에 빠진 혹은 시련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위안함으로써 당신은 그들에게 굳게 하는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당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당신이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는 것 만으로도 그들에게 격려가 될 것입니다. 흔히 사람은 이야기할 대상, 마음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동정적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 당신은 형제들을 굳게 할 수 있읍니다. 모든 사람은 격려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우리가 자주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읍니까? “나는 오늘 어떤 사람에게 적어도 한가지 사랑있는 행동—아마 친절한 한마디, 마음이 산란한 혹은 침울한 혹은 격려를 필요로 하는 어떤 사람에게 동정적인 생각을 한 것을 기억할 수 있는가?” 그렇습니다. 성서에서 알려 주듯이 우리가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데살로니가 전 5:11.
지금 형제들을 굳게 하라!
29. 우리가 형제들을 굳게 하는 것이 왜 특히 지금 중요합니까?
29 우리가 서로 굳게 하는 일을 의식하는 것이 특히 지금 중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제 일세기와 같이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갑자기 혹독한 시련을 당한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도 이 사물의 제도의 끝이 더욱 가까와 옴에 따라 더욱 큰 믿음의 시험을 직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들에게 굳게 해 주는 도움을 베풀고 그들로부터 동일한 도움을 받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회중 내에서 다른 사람들을 세워주고 굳게 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들의 본을 받으십시오. 그러나 특히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의 본을 고려하십시오.
30, 31. (ㄱ)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은 다른 사람들을 굳게 하는 면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그러한 훌륭한 본을 세우셨읍니까? (ㄴ) 당신은 무엇을 하기로 결심해야 하며,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읍니까?
30 우리가 그들의 본을 고려할 때에 두드러지는 것은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한 굳게 하는 영향을 참으로 비이기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솔선하여 사랑을 나타내신다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사실 성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합니다. (로마 5:8)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께 대하여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아마 그의 존재를 부인하고 극악한 방법으로 그의 율법을 범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마련을 해 주셨읍니다. (요한 3:16) 그리고 그분의 아들은 인류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행동하십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하고 있을 때에도 ‘베드로’를 계속 사랑하셨읍니다.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후에, 그 분은 부활되신 다음에 그에게 특별히 나타나 그의 사랑을 보증해 주셨읍니다.
31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과 같이 되십시오. 당신의 형제들을 굳게 하십시오. 그들을 마음으로부터 열렬히 사랑하십시오. 솔선하여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그 결과로, 당신은 그들의 사랑을 받고 굳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좋은 일일 것입니다!
[417면 삽화]
“네 형제를 굳게 하라”는 예수의 명령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굳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