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고 불리우는 선물을 인식함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전도 9:10.
1. 일부 사람들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어떠한 질문들이 일어납니까?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오늘날은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짧은 동안 일하고 노동의 대가를 더 많이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또한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가 일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검토하여 보는 것은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큰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종업원들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는, 일이라는 것이 가능하면 피해야 할 저주, 형벌 혹은 악운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높아가고 있읍니다. 그들은 일이라는 것이 정력을 소모하고 인생을 즐기지 못하도록 사람을 너무 지치게 만든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삶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이 일인데 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주장합니다. ‘허다한 사람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종업원들은 흔히, 보수 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과 노동 조건을 문제삼는 공업 노동자, 사무원, 사회 사업가들 간에 일어나는 많은 항의와 파업을 지적합니다. 이상적인 생활이란 땀흘려 수고할 필요가 없는 사회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 혹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읍니다. 당신은 일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까? 당신은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단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마땅합니까?
2. (ㄱ) 일에 대한 성경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ㄴ) 성서에서는 게으른 사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ㄷ) 왜 우리는 게으른 사람과 가까이 사귀어서는 안됩니까?
2 성경에서는 일을 권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먹고 마시며 “모든 수고[일, 신세] 중에서 낙을 누리”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전도 5:18; 3:13, 22) 성서 어디를 보아도 게으름, 나태, 태만을 생활 방식으로 격려하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성서에서는 사람이 ‘정력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근면이 높이 평가되어 있읍니다. 사람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해야’ 합니다. (누가 13:24, 신세 참조; 전도 9:10; 히브리 6:10, 11) 게으른 사람은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는 충고가 있읍니다. (잠언 6:6) 안일은 어리석은 자와 관련되어 있읍니다. ‘미련한 자를 멸망시키는 것은’ 안일입니다. (잠언 1:32)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것은 이상적인 생활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조만간 가난에 빠지게 합니다. 잠자고 졸고 손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행복이 아니라 파멸로 인도됩니다. (잠언 10:4; 18:9; 24:33, 34) 그러므로 참 종교, 성서의 종교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태만하고 게으른 사람들과 가까이 사귀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나태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본받아 활동적이고 활기에 넘치는 생활을 하도록 불리움을 받았읍니다. 진정한 행복을 초래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인 이 활동적이고 생산력있는 생활입니다.—요한 5:17.
하나님과 그의 아들은 일하시는 분들이다
3. 일하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분의 일은 인간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옵니까?
3 당신의 주위를 눈여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주위에 일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이 무수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비길데 없이 아름답고 보기에 훌륭합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하나님의 능한 일’이라는 표현에 포함됩니다. (시 145:4, 5; 148:3-10) 위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하늘이 있으며,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땅과 땅에 있는 실로 다양한 동물과 물고기와 초목을 볼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감식력이 예리한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 19:1-4; 104:24) 우주 전체는 실제로 하나님의 작품들로 살아있읍니다. 그 수효가 하도 엄청나서 그 분을 찬양하는 마음이 용솟음칩니다. 그 아름다움은 외경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웅장함과 지혜를 보면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겸손하여집니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 8:3, 4; 92:5; 150:2) 이 모든 창조물들을 하나님께서는 보살피고 돌보십니다.
4. 하나님의 첫 창조물은 누구였으며, 그 분이 훌륭한 일군이라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4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으며 충실하고 참됩니다. 그 모두가 지혜로 만들어져 있읍니다. 성서 「잠언」을 보면, 의인화한 지혜가 창조의 일을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곁에 “노련한 일군”으로 있었다고 설명되어 있읍니다. (잠언 8:12, 22-31) 사도 ‘요한’은 영감을 받아 노련한 일군이 “말씀” 즉 하나님의 첫 창조물이신 독생자라고 밝혔읍니다. 그는 나중에 이 땅에 오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읍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 1:1-3; 골로새 1:17) 하나님의 이 현명한 아들은 지상에서 자신이 노련한 일군임을 보여 주셨읍니다. 그분만큼 많은 일을 하였거나, 인간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그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읍니다. 969세에 죽은 ‘무두셀라’는 기억에 남을 가치가 있는 일을 하나도 남기지 못하였읍니다. 그는 그의 긴 생애를 전적으로 낭비하였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에 대한 복음의 기록을 정밀히 조사하고 나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요한 21:25) 누구의 생활이 더 행복하였읍니까?—예수의 생활이었읍니까, ‘무두셀라’의 생활이었읍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예수께서는 단지 33년 6개월이라는 짧은 인간 생애를 보내셨읍니다. 그 분은 실로 부지런한 일군이었읍니다!
5. 예수께서는 누구의 일하는 습관을 따르셨읍니까? 증거를 말씀하십시오.
5 안식일에 예수께서 친절을 베푸는 일을 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막으려고 하자 그 분은 여호와께서 요일을 상관하지 않으시고 계속 활동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셨읍니다. (요한 5:17) 안식일이라고 하여 선한 일을 해서는 안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양이 안식일에는 빛을 내지 않습니까? 강물이 가만히 있읍니까? 풀이 자라지 않습니까? 과일이 익지 않으며 새가 지저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창조물의 필요를 돌보시는 데 바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이 단순히 안식일이라고 하여 사랑을 베푸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었겠읍니까? 예수께서는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그의 하늘의 아버지를 본받으셨읍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그 분은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4:34) 당신은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누구의 본을 따릅니까? 당신은 일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까?
인간은 일하도록 만들어졌음
6. 인간이 일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으며, 일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일하는 자로 만들어졌읍니다. 성서에서도 이 사실을 가르치고 있지만, 인간의 신체 구조, 근육의 짜임새 및 손발의 설계를 볼 때에, 어떠한 형태이든지 일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복지에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무릇 성장이란 활동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읍니다. 노력이 없이는 신체적 성장도 지적인 향상도 있을 수 없으며, 노력한다는 것은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을 할 때 비로소 인생은 의미와 목적을 지닙니다. 사람이 달성한 일은 바로 그 사람의 척도입니다. 인간의 정력을 요하는 일, 인간에게 만족을 가져다 주고 자기를 표현하게 하는 일은 방탕하고 음탕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줍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하지 않고 돈이나 기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생활에서 큰 행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 시장기를 느끼게 되어 식사 시간이 더 즐거워집니다. 일을 하면 갈증이 생기어 물을 마십니다. 피곤하여 단잠을 자게 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성서에서는 가르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전도 3:13; 2:24) 당신은 당신의 일이 참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일로부터 영속적인 행복과 만족을 얻으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7. (ㄱ) 완전한 환경하에서 산다면 인간에게는 일이 없을 것입니까? (ㄴ) 어떠한 사실이 일을 의미깊게 해 줍니까?
7 첫 사람 ‘아담’은 완전한 환경하에 있었지만 그는 그러한 낙원에서도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뒷짐이나 지고 빈들거리면서 시간을 보내어서는 안되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가꾸고 돌보라고 명령하셨읍니다. (창세 2:15) 이것은 일을 요하였읍니다. 그것은 독창력과 상상력과 창의력을 요하였읍니다. ‘에덴’의 관리인으로서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상상할 수 있었으며 땅에서 창조주의 뜻과 목적을 이룰 수 있었읍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온 땅을 낙원으로 만들고 완전한 인간들로 채우는 것이었읍니다. (창세 1:28) 이것은 결코 사소한 임명이 아니었읍니다. 이 임무를 달성하는 데는 용기와 근면함이 요구되었읍니다. 그러나 ‘아담’의 생활을 의미깊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일이었읍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만족과 기쁨이 있읍니다. 심지어 오늘날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일은 목적과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은 쉽사리 재미없게 되고 진력이 나며 지루하게 되고 영속적인 목표 혹은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8. ‘아담’은 무엇을 추구하였으며, 그 후의 인류는 무엇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8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택하였읍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힘썼읍니다. 그러한 행동은 자신과 그의 후손인 인류 전체에게 재난이 되었읍니다. (로마 5:12) ‘아담’의 시대 이후 대다수의 인류는 ‘아담’이 남긴 좋지 않은 본을 따랐읍니다.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기적인 일을 추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전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있읍니다. (시 10:4; 14:1) 대체로 그들이 하는 일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없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에는 아무런 건설적인 의미가 없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허무감에 젖으며 그들이 하는 일에 불만을 품습니다. (전도 2:22, 23) 인류가 하나님의 목적 곧 이 땅을 낙원으로 만드는 일을 이루려고 기꺼이 노력하여 왔다면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가 되었겠는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또한, 지구상 도처에서 사람들은 그처럼 많은 눈물, 그 처럼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며,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면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특별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음
9, 10. 왜 ‘노아’는 특별한 일을 하라는 임명을 받았으며, 그 일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읍니까?
9 ‘아담’의 창조로부터 ‘노아’가 600세 될 때까지의 1,656년간 인류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추구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비참한 결과를 당하였읍니다.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창세 6:11, 12) 이러한 진술은 오늘날 지상 사물의 상태를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현 사물의 제도의 종말에 관하여 예언하시면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읍니다. 그 분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4:37-39) 땅에서의 그러한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 분을 위하여 특별한 일을 하도록 부르십니다. ‘노아’는 그러한 임명을 받은 사람이었읍니다.
10 이 하나님의 사람 ‘노아’는 자신과 가족과 모든 동물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방주를 건축하라는 명령을 받았읍니다. 방주를 짓는 데는 특별한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였읍니다. 많은 재목과 건축 자재를 모아야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후에 방주에 들어간 많은 동물들을 집합시키는 데도 계획과 질서있는 일이 요구되었읍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는 재료, 동물의 습관, 식품, 건축술, 목공, 방수(防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였읍니다. ‘노아’가 받은 임명에는 또한 의를 전파하고 실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그리고 이 근면한 일군 ‘노아’가 방주를 건축하기 시작한 것은 500세가 넘었을 때였읍니다.—창세 6:9-22; 7:6; 베드로 후 2:5.
11. ‘노아’가 한 일이 그의 구원을 의미하였으며, 단순히 그의 믿음의 증거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만반의 준비를 한 후에 ‘노아’는 자신을 가장으로 하는 조직된 사회와 함께 기원전 2370년에 방주로 들어 갔읍니다. 그가 방주 안에 있었던 일년 열흘(태음 년) 동안에도 그는 일하였읍니다. 그는 틀림없이 숭배를 위한 토론을 사회하였을 것이며, 감사의 기도를 인도하였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었고, 쓰레기를 치웠으며, 시간을 쟀읍니다. 이것은 의미깊은 일이었읍니다. 그것은 그의 구원을 의미하였읍니다. 제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야고보 2:24) ‘노아’의 일은 그의 믿음을 증명하였읍니다. 당신의 일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노아’가 남긴 본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이 합당하고 어떠한 일이 부당한지를 결정하실 분이심을 우리에게 확증하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고 경고하십니다. (전도 12:13, 14) ‘노아’는 그 당시의 도전을 감당하였읍니다. 당신도 그러합니까? 당신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읍니까?
하나님과 함께 일한 나라
12. 어떻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나라가 되었읍니까?
12 한 나라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사람들은 여호와로부터 독특한 일을 임명받았읍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그들이 믿음으로 한 일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끝으로, 기원전 1513년에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는 그의 특유의 목적을 위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조직하셨읍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러한 말씀에 대하여 백성들은 일제히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출애굽 19:5, 6, 8) 그 율법 언약의 목적은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바울’은 말하였읍니다.—갈라디아 3:23-25.
13. (ㄱ) 제사장들의 의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들은 그들이 받은 임명에 있어서 어떻게 뛰어나게 되었읍니까? (ㄴ) 이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어떠한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 줍니까?
13 ‘이스라엘’이라는 독특한 나라 안에서 각 지파는 특별한 일을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예를 들어, 제사장의 의무는 ‘아론’ 계통의 남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었고 ‘레위’ 지파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을 보조하였읍니다. (민수 3:3, 6-10) 장막을 세우고 뜯고 운반하는 것은 제사장 아닌 ‘레위’인들이 하는 일이었읍니다. 그들의 일은 ‘다윗’ 왕의 지시 하에 치밀하게 조직되었었읍니다. 그는 감독, 사관, 재판관, 문지기 및 재무관을 임명하였읍니다. 후에, ‘솔로몬’의 전을 건축한 후에 허다한 사람들이 제물, 희생, 정화하는 일, 무게다는 일, 측정하는 일, 그리고 여러 가지 경비 임무들과 관련하여 뜰과 식당에서 제사장들을 도왔읍니다. 이러한 일은 대개 힘들고 매력없는 일이었읍니다. 한 때에 제사장들의 총수는 1,760명에 달하였는 데, 모두가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자”였읍니다. (역대 상 9:10-13) 이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제사장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제사장들은 날 때부터 자격이 훌륭하였거나 재능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임명되는 어떠한 일이든지 숙달하는 데 매우 쉬웠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그들의 일을 익히는 데 부지런하였고 임명된 의무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여호와의 일에 매우 유능한 사람들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읍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나 싫어하는 일이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줍니다. 전심전력하면 어떠한 일도 사람이 그 일의 품위를 높일 수 없을 만큼 유치하거나 천하지 않습니다. 아무 일도 그 일에 사람이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거나 시시하지 않습니다. 전심 전력하기만 하면, 어떠한 일도 사람의 구상력으로 그 일을 활기띠게 할 수 없을 만큼 따분하지 않습니다.
14. 제사장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보았으며, 사도 ‘바울’이 말한 어떠한 태도가 우리의 일에 도움을 줍니까?
14 여호와의 제사장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이 받은 임명을 특권으로 생각하였지, 해야 할 평범한 일로 생각지 않았읍니다. 그들이 임명받은 일은 천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사도 ‘바울’이 권한 바와 같은 선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리고 또한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영혼, 신세]을 다하여 주[여호와]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31; 골로새 3:23)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생각할 때에도 그들은 전심전력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동료 일군으로 자신을 다 바쳐 정력적이고 근면하게 일하여야 마침내 성취감과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 있읍니다. 당신은 일에 대하여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까?
15. ‘히브리’인들은 일을 어떻게 보았으며, 근면과 능숙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읍니까?
15 제사장들과 같은 고대 ‘히브리’인들은 일의 중요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일을 가장 고귀하게 생각하였고, 신성한 의무,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로 생각하였읍니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었읍니다.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도적으로 키우는 것과 같다.” “노동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를 향상시켜 주고 부양하여 주기 때문이다.” 성서에서는 근면과 일의 능숙함을 이러한 말로 예찬합니다. “네가 자기 사업[일]에 근실한[능숙한, 신세]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언 22:29) 근면은 부와 비슷한 말이었읍니다. (잠언 10:4; 12:27)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도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 후 3:10.
16. ‘히브리’ 여인들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였으며, 잠언에서는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6 ‘히브리’ 여자들도 근면을 높이 평가하였읍니다. 손을 움직여 기꺼이 일하는 여자는 “현숙한 여인”으로 칭송을 받았읍니다. “그는 ··· 손으로 일하[느니라].”—잠언 31:10, 13, 31.
17. 왜 ‘유대’인 포로들은 가치가 있었읍니까?
17 노동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였으므로 ‘히브리’인 나라가 번영한 이유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을 정복한 나라들이 ‘히브리’인 포로들을 가치있게 여긴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두로’ 왕 같이 ‘느부갓네살’도 틀림없이 그가 포로로 잡아온 수천명의 ‘유대’인 가운데서 각 분야의 기술자들 즉 연마공, 금속 세공인, 목수, 석수, 조선 기사, 모직물과 ‘린네르’ 방직공, 제화공, 재단사, 도장공을 발견하였을 것입니다.—역대 하 2:13, 14.
일과 휴식의 가치
18, 19. 우리는 휴식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밤의 목적을 왜 곡해해서는 안됩니까?
18 인생에는 아름다운 율동이 있읍니다. 일할 때가 있고 휴식할 때가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안식일 율법에는 사람의 노동 시간의 7분의 1은 휴식 시간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읍니다. 그 목적은 신체에 휴식을 주고 정신을 향상시켜 사람을 강화하고 원기를 돋구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안식일에 사람은 휴식하고 숭배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신체에는 휴식이 필요하였고 정신과 마음은 숭배로부터, 하나님의 생각을 섭취함으로써 힘을 얻었읍니다. (마태 4:4) 인간은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숭배하여야 하므로 그러한 숭배가 등한히 여겨져서는 안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치적입니다. 일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자신의 노력을 평가하여 보고 그러한 평가로부터 삶의 보람과 성취감을 얻기 위하여 조용히 회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대낮에 몽상을 하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날이 저문 후에 어느 때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밤 시간은 그렇게 하는 데 이상적입니다.
19 밤의 목적을 남용하거나 곡해하여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밤에 ‘로큰롤’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데 시간을 바치기 때문에 낮의 일하는 시간보다 더욱 지치고 기진맥진하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밤을 마련하신 이유는 신체와 정신을 진정으로 회복시키는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서였읍니다. 순수한 일과 같이 순수한 휴식은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20. 사람들은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왜 자문해 보아야 하며, 절망할 이유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사람이 매일 하는 일만큼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여 주는 것은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활동하도록 손과 근육을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각자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계시 20:12)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하여 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무엇을 하였는가?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여 줄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혹은 지적할 수 있는가? 당신이 땅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에 이렇다 할 만한 일을 하지 못하였더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너무 늦지 않았으니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치있는 일을 하여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아직도 있읍니다. 이 위험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일을 가지고 계시며 그 일에 당신도 참여하여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읍니다. 그 일에 대하여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그 일에 참여하여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음 기사에서 논하겠읍니다.
[516면 삽화]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가 건축한 방주 안에 들어간 후에 동물들을 돌보았고, 다른 일을 하였다. 당신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