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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가?
    깨어라!—1979 | 6월
    •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로마 5:15) “그런즉 한[‘아담’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로마 5:18, 19.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모세’의 율법하의 희생물은 그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성경은 더 나아가서 이와 같이 말한다. “저희[‘모세’의 율법하에 있던 사람들]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히브리 8:5; 10:1-4 비교) “속죄일에 바치던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브리 9:13, 14)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느니라.]”—히브리 10:12.

      그러므로, 사람들을 자유케 하는 “진리”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그 진리는 ‘모세’의 율법하에 있었던 희생의 전형적인 마련의 성취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죄와 죄의 결과인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요한 3:16.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무슨 의미로?
    깨어라!—1979 | 6월
    • 성서의 견해 2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무슨 의미로?

      한번은 예수의 제자 ‘빌립’이 이렇게 질문한 적이 있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요한 14:8)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요한 14:9)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기 전에, 예수의 말씀에 대한 특별한 설명을 고려해 보자. 일부 사람들은 예수를 본 자는 또한 아버지도 본 것이며 예수께서 그의 아버지 여호와와 온전히 동등한 전능하신 하나님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적용되는 많은 성귀들을 “구약”에서 인용하여 그 귀절들을 그리스도인 성서 필자들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켰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보자.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나 곧 나는 주니라. 나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사야 43:11)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에서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 36:9) 그러나, 그리스도인 성서 필자들은 인류의 구원자와, 생명과 빛의 원천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요한 1:4; 5:26; 8:12.

      이와 같은 유사한 귀절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 사실은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증명하는가? 함께 살펴보자.

      성경은 여러 번 예수 그리스도를 수석 대표자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언급한다. (그 예로 요한 3:17, 28, 34; 5:23, 24, 30, 37을 보라.) 성서가 자주 다른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마치 그들이 실제 본인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두 가지 예를 고려해 보자.

      (1) 「마태복음」은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후에 자기 하인을 낫게 해 달라고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던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다고 설명한다. (마태 8:5-13) 그러나 누가 7:1-10에 나오는 내용과 비교해 보면 우리는 그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 몇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하였다는 것을 보게 된다.

      (2) 「마가복음」에서 우리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요청한 것을 읽게 된다. (마가 10:35-37) 그러나, ‘마태’는 실제로 예수께서 이러한 요청을 한 사람은 그들의 대표자로서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였다고 한다.—마태 20: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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