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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한 감람나무파수대—1983 |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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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생산적인 감람나무
19. ‘아브라함’ 언약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도록 어떻게 점차 영적 씨를 산출해 왔읍니까?
19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고 특히 이 종말의 때의 상당 부분에 걸쳐 그외의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이 그 상징적 감람나무에 접붙여졌읍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언약은 영적 씨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를 산출하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 곧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참 ‘이스라엘’ 사람들인 144,000명의 성원으로 된 영적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로마 11:12, 25, 26; 9:6-8; 계시 7:4.
20, 21. (ㄱ) ‘아브라함’ 언약의 이 가장 중요한 부분의 성취를 볼 때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읍니까? (ㄴ) 다음 기사에서 무엇을 살펴볼 것입니까?
20 여호와께서 이 상징적 나무의 줄기와 온전한 수의 가지들을 산출하심으로써 ‘아브라함’ 언약의 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성취시켜 오신 놀라운 방법을 볼 때 우리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바울’처럼 우리는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로마 11:33-36.
21 그러나, 상징적 가지들(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아브라함’ 언약 나무가 산출하는 씨를 통하여 현재 스스로를 축복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접붙여진 감람나무의 비유로부터 어떠한 실용적인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읍니까? 이러한 부면들이 다음 기사에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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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여 열매를 맺는 자들파수대—1983 |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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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여 열매를 맺는 자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한 15:8.
1. 성서는 여호와께서 과일 나무들을 매우 가치있게 보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라.]” (창세 2:9) ‘이스라엘’에서 새로 심은 과일 나무는 삼년 동안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였으며 그동안 그 주인은 어떠한 목적으로도 그 열매를 사용할 수 없었읍니다. 네째 해가 되어 열매가 맺힌다 할지라도 그것은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해야 했읍니다. 오년째가 되면 주인은 첫 열매들을 여호와께 드린 다음에, 수확한 과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었읍니다. (레위 19:23-25; 신명 26:1-10; 느헤미야 10:35-37) ‘모세’ 율법 아래서는 전시에 과일 나무들을 특별히 보호했읍니다.—신명 20:19, 20.
비생산적인 나무들이 잘리다
2, 3. 예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 앞 기사에서 나오는 상징적 감람나무(로마 11장)의 원 가지 다수가 꺾여 나가고 돌감람나무의 가지들로 대치되었음을 살펴 보았읍니다. 그 비유에서 찍혀 나간 가지들은 감람나무 줄기 즉 일차적 씨인 메시야 예수를 인정하기를 거절한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와는 다른 비유에서 ‘유대’ 민족을 하나의 전체 나무, 이번에는 감람나무가 아니라 무화과나무에 비하셨읍니다.
3 기원 32년 가을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누가 13:6-9.
4. 예수께서는 자신이 충실한 “과원지기”임을 어떻게 증명하셨읍니까?
4 예수께서 이 무화과나무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는 그분이 “과원지기”로서 삼년에 걸쳐 ‘유대’인들 사이에 믿음을 배양하고자 노력해 오신 때였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과 율법 언약 아래 있어 많은 이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민족의 소수의 남은 자들 만이 메시야를 받아들였읍니다. (로마 9:4, 5, 27) 봉사의 직무의 네번째 해 중에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가운데서의 자신의 노력을 배가하여 ‘유대’와 ‘베리아’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 안과 주위에서 열정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심으로써 상징적으로 ‘유대’ “무화과나무” 주위를 두루 파고 거름을 주셨읍니다.—누가 복음 10장부터 19장까지.
5. ‘유대’ “무화과나무”는 어떻게, 그리고 왜 베어졌으며, 언제 그것은 “불에 던지”웠읍니까?
5 그러나, 그 네번째 해 중간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기 며칠 전 ‘예루살렘’에 대해 우셨으며 ‘유대’ 민족의 수도에게 그 집이 버린 바 되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3:37-39) ‘유대’ 무화과나무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는 열심히 돌본 그 네째 해에 그 나무를 다시 한번 검사하셨던 것입니다. 한 민족으로서 그 나무가 열매가 없음을 알게 되시자 그분은 예수께서 마태 복음 7:19에서 말씀하신 원칙과 일치하게 그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명하셨읍니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겼으며 그 왕국의 열매를 맺는 한 나라 즉 영적 ‘이스라엘’에게 그 왕국이 주어졌읍니다. (마태 21:43) 이처럼 옮겨지는 일이 같은 해인 기원 33년 오순절에 있었읍니다. 그보다 삼십 칠년 후인 기원 70년에 그 베어낸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과 ‘유대’ 민족이 멸망됐을 때 “불에 던지”웠읍니다.—마태 3:9, 10; 누가 19:41-44.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6.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접붙여진 감람나무의 비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어떻게 강조합니까?
6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여호와의 참으심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려 주듯이, ‘바울’의 감람나무의 비유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강조하는 한편 그분이 준엄하심도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침례자 ‘요한’을 ‘유대’인 “원 가지”들에게 보내셔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게 하셨읍니다. (마태 3:8; 사도 19:4) 그들은 믿음의 부족 때문에 “꺾이”었읍니다. ‘유대’인 “원 가지”의 수의 이러한 감소는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읍니다. 왜냐하면 이방인 ‘돌 감람나무 가지’들이 ‘아브라함’ 언약 나무에 접붙여져서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로마 11:12, 17, 20, 21.
7. ‘바울’은 무슨 경고의 말을 부가하였읍니까?
7 그러나 ‘바울’은 경고의 말을 부가합니다. 그는 기름부음받은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준엄, 새번역]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유대’인들]에게는 엄위[준엄, 새번역]가 있으니 너희[이방인들]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로마 11:21, 22) 여호와의 인자하심에 거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언약 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일차적 씨에 대한 강한 믿음을 나타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믿으므로 섰”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열매 즉 ‘그들의 몸을 살아있고, 거룩하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로, 거룩한 봉사에 바침’으로써 그 믿음을 증명해야 하였읍니다.—로마 11:20; 12:1, 신세.
8. ‘바울’은 감람나무의 비유로부터 무슨 다른 실용적인 교훈을 이끌어 냅니까?
8 ‘바울’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 언약 나무가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된 144,000 “가지”의 온전한 수를 산출할 수 있게 하시는 놀라운 방법으로부터 또 하나의 실용적 교훈을 이끌어 냅니다. 그는 계속해서 두 가지 종류의 “가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 12:3-5)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나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아브라함’의 영적 씨 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읍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네가 뿌리[여호와]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라고 상기시켰읍니다. (로마 11:18) “찍히는 바” 되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그리스도 안의 한 몸’으로서 그들의 연합을 보존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해야 할 것입니다.—로마 11:22.
9. 여기에는 “다른 양”들을 위한 무슨 교훈이 들어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무엇을 주의해야 합니까?
9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이 경고에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교훈도 들어 있읍니까? 확실히 그러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 언약이 산출한 영적 씨의 일부가 아니므로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하기는 하였지만, 이들 “다른 양”들이 그 씨를 통하여 스스로를 축복할 수 있는 “땅의 모든 민족들” 중의 일부임은 명확합니다. (요한 10:16ㄱ; 창세 22:18, 신세) 따라서 그들은, 역시 땅의 생명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의 자취를 좇”아야 합니다. (로마 4:11, 12, 16) 그들은 ‘아브라함’의 일차적 씨인 선한 목자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아브라함’의 이차적 씨의 남은 자들과 협력하여 그들과 함께 “한 목자” 아래서 “한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 10:14, 16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거하지 않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브라함’ 언약 나무에서 “찍히는 바” 될 위험성이 있다면, “다른 양” 역시 여호와의 선의를 상실하게 할 만한 어떠한 일도 하지 않으려고 매우 주의해야 하지 않겠읍니까?—로마 11:22.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10. 어떤 ‘유대’인이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이것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10 감람나무의 비유에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양”에게 적용될 수 있는 또 다른 일반적인 교훈이 담겨 있읍니다. 우리는 그 교훈을 다음과 같은 로마서 11:23의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읍니다. “저희도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또다른 부면을 보게 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썼을 때는 (기원 56년 경) ‘유대’ 민족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로서 베어진 지 오래된 때였읍니다. 혹은, 다시 감람나무의 비유로 말하여, 대부분의 “원 가지”들이 메시야이신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찍힌 바’ 되었었읍니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 개인이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를 상징적 감람나무에 다시 접붙이심으로 그가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한 성원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처럼 회개한 ‘유대’인에게 있어서 여호와께서 그를 다시 받아 주시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로마 11:14, 15.
11. “다른 양”의 일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 오늘날, “다른 양”의 얼마의 사람들은 나태해졌으며 믿음의 부족으로 인하여 여호와 섬기는 일을 중단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분의 백성과의 활동적인 연합에서 스스로를 베어 냈읍니다. 그들 가운데는 심한 곤경에 빠진 사람들이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경고가 ‘그들의 처지를 깨닫게 한’ 경우가 있읍니다. 그들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늦었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의 “땅” 밖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이 모든 [경고한]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곤경, 공동 번역]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신명 4:29-31.
12. (ㄱ) ‘충성된 종’은 그처럼 곁길로 빗나간 “다른 양”들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ㄴ) 감사하는 마음으로 양떼에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려 주는 예로서 당신은 어떠한 예들을 말할 수 있읍니까?
12 ‘아브라함’ 언약 나무 안에 있는 열매를 맺는 가지들의 연합된 무리로서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 중 지상에 남아 있는 자들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은 “다른 양”의 일부 사람들이 나태 상태로부터 깨어나 다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필요성이 절박함을 매우 잘 알고 있읍니다. (마태 24:45-47) 그러한 목적으로 그 “종”은 1983년 7월 15일호 「파수대」에 나오는 ‘너희 영혼의 목자에게 돌아오라’와 같은 기사들을 발행하는 마련을 합니다. 「우리의 왕국 봉사」도 1982년 2월호로부터 동일한 주제의 일련의 기사들을 실었읍니다. 주인의 “종”이 베푸는 이러한 굳건한 인도는 열매를 맺는 결과를 산출하였읍니까? 자기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었읍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였읍니다. 위에 나오는 대표적인 예들을 살펴보십시오.
계속 “과실을 많이 맺으”라
13. 나태해졌던 사람은 누구든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며, 예수의 무슨 말씀에 그 점이 나타나 있읍니까?
13 그렇습니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나 그들의 반려자들인 “다른 양” 중에 나태해졌거나 비생산적이 된 사람들은 경고를 청종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에 호응하고 도움을 받아들임으로 다시 한번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감람나무의 비유 및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와는 몇 가지 면에서 다른 한 가지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포도나무 줄기에 비하시고 자신의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은 포도나무의 가지들에 비하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한 15:1-8.
14. (ㄱ)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두 가지 면으로 계속 “과실을 많이 맺”어야 합니까? (ㄴ) “참 포도나무”의 비유에서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다른 무슨 요구 조건을 알려 줍니까?
14 “다른 양”은 ‘아브라함’ 언약 “감람나무”의 가지도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이신 “참 포도나무”의 가지도 아니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들은 모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 “가지”들처럼, 계속 “과실을 많이 맺”어야 합니다. 그들이 “영의 열매”를 포함한 그리스도와 같은 특성들의 새로운 성품을 산출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마태 28:19, 20; 골로새 3:5-14) 그러나 참으로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 그들은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그러한 특성들을 적극적으로 나타냅니다. (마태 24:14, 신세) “참 포도나무”의 기름부음받은 “가지”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거해야 하는 것처럼, “다른 양”은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인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과 밀접히 연합한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그들이 ‘창세로부터 그들을 위해 예비된 나라를 상속’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마태 25:31-40.
이미 스스로를 축복하고 있는 ‘땅의 민족들’
15. ‘아브라함’ 언약이 약속된 “씨”를 산출하는 일을 끝마쳐감에 따라, 로마서 11:12은 무슨 부가적 의미를 지니게 됩니까?
15 거룩한 “뿌리의 진액”(여호와)과 튼튼한 줄기(그리스도)를 가진 ‘아브라함’ 언약 감람나무가 ‘유대’인 및 이방인 “가지”들의 충만한 수를 산출하는 일을 끝마쳐감에 따른 결과로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들이 이미 풍성한 축복을 받고 있읍니다. ‘바울’은 이것을 미리 내다보고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저희의[육적 ‘유대’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기름부음받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충만함이리요!”—로마 11:12.
16. (ㄱ) ‘유대’인들의 “넘어짐”은 어떻게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읍니까? (ㄴ) 현재 접붙이는 일은 어떠한 단계에 있읍니까?
16 이미 우리는 ‘유대’ 민족 전체의 “넘어짐”이 이방인들에게 커다란 영적 부요함이 되었음을 살펴보았읍니다. 그러나 이들 돌 감람나무 가지들이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성원들이 되는 것은 상징적 감람나무로부터, 그 나무에 남아 있었거나 기원 36년 이후에 ‘다시 접붙여진’ 원래의 가지들—충실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144,000가지들 중에는 ‘유대’인의 “충만한 수”와 비‘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포함되어 있읍니다. (로마 11:12, 25) 사실들에 의하면 이 접붙이는 일은 1930년 중반까지 계속되었읍니다. 오늘날 이 늦은 때에 ‘유대’인 및 이방인 가지 모두의 “충만한 수”가 접붙여졌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읍니다. 1935년 이래 접붙여지는 가지들은 어떠한 가지이든, 이치적으로, 불충실로 인해 찍혀 나간 ‘유대’인 혹은 비‘유대’인 가지들을 대신하는 것들일 것입니다.
17. 씨의 성원을 온전히 채우는 일은 어떻게 “이방인”에게 한층 더한 부요함이 됩니까?
17 이제 ‘바울’은 이처럼 ‘아브라함’의 씨의 성원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 ‘이방인들에게 부요함’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영적 부요함과 축복들은 기름부음받은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수만명에게 (로마서 11:12의 첫 부분의 성취로서) 뿐 아니라 상징적 감람나무에 속하지 않는, 문자적으로 수백만명의 “이방인”들에게 혜택을 주므로 참으로 훨씬 더 그러합니다.
18. ‘아브라함’ 언약에 들어있는 약속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의 어느 부분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하였음이 분명합니까?
18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브라함’ 언약을 다시 살펴보게 됩니다. 일차적 씨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현재 하늘 보좌에 좌정하여 계십니다. 그분은 ‘아브라함’ 언약의 우리 안으로 이차적 씨의 성원들을 모아들여 오셨읍니다. 이제 그분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과 나머지 ‘사단’의 보이는 조직을 멸망시키심으로써 “원수의 대문을 장악”하시려 하고 있읍니다. (창세 22:17, 18, 신세) 그러므로 ‘아브라함’ 약속을 끝맺는 다음과 같은 부분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하였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네 씨로 인하여 땅의 모든 민족들이 확실히 그들 스스로를 축복할 것이다.”
19. (ㄱ) “땅의 모든 민족들”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 스스로를 축복하기 시작하였읍니까? (ㄴ) 그들의 희망은 무엇입니까?
19 그렇습니다. 적지 않은 육적 ‘유대’인들을 포함한 ‘각 나라에서 나오는 큰 무리’는 이미 그들 스스로를 축복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더 큰 ‘아브라함’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가운데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합류하여 지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면서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고 있읍니다. (계시 7:4, 9-17) 그들은 그 씨를 통하여 계속 그들 스스로에게 축복이 임하게 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까지 이를 것입니다.
이해하십니까?
◻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며, 그것은 언제 베어졌고, 언제 불에 탔읍니까?
◻ ‘유대’인 및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만 “감람나무”에서 찍혀 버리지 않을 수 있으며,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무슨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읍니까?
◻ 회개한 ‘유대’인들을 다시 접붙이는 것은 곁길로 빗나간 사람 모두에게 왜 위안이 될 수 있읍니까?
◻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계속 열매를 맺어야 합니까?
◻ “이방인”들 다수는 어떻게 이미 그들 스스로를 축복하고 있읍니까?
[18면 네모와 삽화]
‘자기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온 사람들—베드로 전서 2:25.
‘프랑스’ ‘노르망디’에 사는 한 여인은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10년이나 무활동으로 있으면서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으로 돌아가려는 몇 차례의 무익한 시도를 해보고 나서도 여전히 저는 조처를 취하기를 망설였읍니다. 저는 회중을 떠난 후의 저의 비 성경적 행실을 생각해 보고 여호와의 징계와 장로 및 온 회중의 책망하는 눈초리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였읍니다. 시부모님과 휴가를 즐기던 중에 저는 「파수대」 한부를 집어 들고는, 저의 상황과 아주 흡사했던 한 무활동 형제의 경우에 관한 기사를 읽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참으로 친절하였고, 장로들이 그에게 참으로 사랑에 찬 도움을 주었고, 회중 성원들이 그를 다시 환영하여 맞이하였음을 읽고 저는 여호와의 조직으로 돌아올 힘을 얻었읍니다.”
‘프랑스’ 동북 지방에 있는 한 회중의 ‘증인’인 ‘수잔느’는 이렇게 편지한다. “저는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게, 무활동자들에게 베풀어 준 도움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 자신이 무활동이었을 때 장로들이 저를 찾아와 저를 위해 성서 연구를 마련할 것을 제안하였읍니다. 저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읍니다. 지금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이제 다시 집회에 참석하고 있고 전파 사업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야 저는 격려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매다운 사랑을 나타낼 줄 알게 되었읍니다.”
역시 ‘프랑스’인 ‘증인’인 ‘욜랑드’는 수년간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호와의 식탁을 경시하였다는 죄책감을 느꼈기 때문에 그는 기도하는 것도 중단하였었다. 다시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 활동을 하도록 도움을 받은 그는 이렇게 편지한다. “저는 여호와께 저를 도와 주시어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저는 어떤 이유에서인가 약해진 사람들 모두에게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온 마음을 다해 권하는 바입니다.”
[삽화]
사랑에 찬 격려로 많은 무활동자들이 다시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고 있다
[17면 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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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감람나무 비유는 ‘아브라함’ 언약이 어떻게 온전한 영적 “씨”를 산출하는지를 알려 준다
‘아브라함’ 언약 (창세 22:16-18)
일차적 씨 이차적 씨
그리스도 (갈라디아 3:16) (갈라디아 3:27-29)
“원 가지”의 “충만한 수” “돌 감람나무” 가지들의
(‘유대’인 남은 자들과 “충만한 수”
후에 회개하는 ‘유대’인들— (기름부음받은 비‘유대’인
“땅의 모든 민족들”의 축복을 위한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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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주의에 대응하는 우리의 싸움파수대—1983 |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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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임주의에 대응하는 우리의 싸움
“우리는 ··· 하늘에 있는 허다한 악한 영들을 상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이 주시는 전신갑주로 무장하시오. 그래야 악한 날이 올 때에 그들을 대항[하고] ··· 설 수 있을 것입니다.”—에베소 6:12, 13, 새번역.
1. 오늘날 세상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인 느낌은 무엇입니까?
현 악한 세상의 공중에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읍니다. 당신은 그것을 포착할 수 있읍니까? 확실히 우리 대부분은 이 세상의 사고 방식과 행실에 편만해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불건전하고 치사적인 것이 틀림없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그 결과로서,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병든 사회를 볼 수 있읍니다.
2. 인류의 병의 명백한 증세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2 이 병의 명백한 증세 한 가지는 방임주의입니다. 그것은 쉽사리 불법으로 인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바람직한 품행에 관한 평범한 원칙으로부터만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실상 온갖 제한 요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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