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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기가 부모들에게 그토록 어려운 이유깨어라!—1983 |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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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대두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가족의 저축을 침식해 버릴 수 있다.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할 수 있다. 겉보기에 부모된 신분을 벗어버린 것같이 보여, 어떤 사람은 심지어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어떤 부모들이 자녀들을 보내주기를 완강히 거절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붙잡고 싶은 마음은 저항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반드시 자녀를 잃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들과의 관계가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들이 떠남으로 인해 자신의 생활에 남은 빈자리를 채워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리고 그들을 보내는 것이 장성한 자녀들과 건전한 관계를 가지는 데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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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 떠나”깨어라!—1983 | 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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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 떠나”
“어느 날 우리 아들이 집에 들어왔읍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마음에 품고 있음을 알수 있었읍니다. 그 애는 우리와 함께 앉더니 ‘어머니, 아버지, 결혼하려고 교제해 온 여자가 있어요’라고 말했읍니다”라고 ‘톰’은 회상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을 때 이와 같은 장면을 예견하셨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창세 2:24) 그러므로, 자녀가 떠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자녀들이 장성하기 전에 집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편 필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라.]” 조만간 화살은 화살통을 떠나 생활을 시작한다.—시 127:4.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성인이 된 자녀는 떠나고 나면 기본적으로 부모의 관할에서 벗어난다. 결혼하면, 그는 자기 가족의 머리가 된다. 딸은 자기 남편의 권위 아래 있게 된다.—에베소 5:21-28, 33.
하지만 성서는 아마 당신이 이러한 새로운 독립에 익숙해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알려 준다. 예를 들어 예수의 어머니는, 심지어 예수가 장성하여 ‘메시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도, 분명히 그에 대해 얼마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결혼 잔치에서 ‘마리아’는 예수에게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좀 하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호하지만 친절한 말로 자신이 독립하였음을 그에게 상기시켰으며, 그의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다.—요한 2:2-11.
족장 ‘야곱’도 그의 아들을 보내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은 그가 ‘베냐민’이라고 이름지은 아들을 낳고 죽었다. 그가 이 아들에게 느꼈을 감정적 애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베냐민’을 애굽에 가는 여행에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야곱’은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렵다”고 반대하여 그를 집에 데리고 있었다.—창세 35:16-18; 42:4.
그러나, 붙잡아 두고 싶은 것이 정상적이지만, 현명한 길은 그가 성인이라는 점과 그의 독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네가 얼마나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보아라”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멀리 가버려야만 하는가?’라고 어떤 부모들은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그들이 우리 가까이 살면서도 독립해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멀리 떠나갈 때 마음이 아프게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서는 ‘리브가’가 결혼하기 위해 상당히 먼 거리를 여행하도록 요청받았다고 말한다. 그의 어머니와 오빠가 이같이 간청했다. “소녀[리브가]로 며칠을 적어도 열흘을 우리와 함께 있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그를 보내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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