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하게 하는 일을 힘쓰라’
“그러므로 화평하게 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시오.”—로마 14:19, 새번역.
1. (ㄱ) 이십세기에 무엇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읍니까? (ㄴ)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읍니까?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해야 할 주요한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평화가 필수적이라고 믿고 있읍니다. 그러나 나라들과 백성들은 일체가 되어 자기들의 생활과 목표와 원칙들을 다시 세우는 데 필요한 값비싼 대가를 기꺼이 지불할만큼 평화를 간절히 바랍니까? 그들이 평화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정도를 보면 분명히 그렇지 않습니다. 증거를 고려하여 보십시오.
2. (ㄱ) 세상은 어떻게 평화를 추구하며, 어떠한 결과에 이르렀읍니까? (ㄴ) ‘프랑스’의 한 과학자는 평화가 어떻게 수립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읍니까?
2 세계는 이기주의를 통하여, 세력 균형과 상호 협정과 국제적인 동맹을 통하여 평화를 추구합니다. 세계는 인간 자원을 조종하여 전쟁을 방지하려고 합니다. 세상은 사실 임전 태세가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공포감이 투쟁과 폭력을 억제해 줄 것을 희망합니다. 그러한 평화는 피상적이고 실속없는 임시변통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의미로도 진정한 평화 추구를 대표하지 못합니다. ‘프랑스’의 과학자 ‘레콤 드 노이’가 논평한 바와 같습니다. “국가들과 개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만일 문명국이 평화를 원한다면 그들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전 세대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낡은 발판은 사방으로 금이 가 있다. 임시 변통으로, 몇 줄의 끈으로, 몇 병의 풀로 그리고 매우 품위있는 신사들이 엄숙히 조인한 협약으로 그것을 공고히 할 수 없다. 더욱이, 공고히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평화는 사람을 내부로부터 변화시킴으로 수립되어야지 외부적 구조를 세움으로 수립되어서는 안된다.”
3. (ㄱ) 예언자 ‘이사야’는 평화의 기원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나라들은 왜 그러한 평화를 주장할 수 없으며, 그러나 누가 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그러나 그러한 변화시키는 힘에 의한 평화는 인간들의 정치적 조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의하여 옵니다. 여호와의 예언자 ‘이사야’가 통용 기원전 칠 세기에 이 평화에 대하여 기술한 바에 유의하십시오. 먼저 그는 ‘위에서부터 여호와의 영을 부어주실’ 때까지 참다운 평화가 땅에 결코 올 수 없다고 말하였읍니다. 다음에 ‘이사야’는 이렇게 계속 말하였읍니다.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이사야 32:15-17) 세상의 어떠한 나라가 평화를 위한 그들의 모든 계획에 있어서 그들의 첫째 관심이 하나님의 의라고 주장할 수 있읍니까? 그들은 그렇게 큰 뜻을 품은 일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예언자가 말한 평화를 거두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의에 대한 진정한 염려를 표시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평화의 하나님이시며 평화는 그의 영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후 13:11; 갈라디아 5:22) 적절하게도 그의 증인들은 모든 생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화를 거두었으며, 그 평화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그들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왔읍니다. (빌립보 4:7) 의를 사랑하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모두는 지금 바로 이 평화를 마땅히 고려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조직에 주시는 평화로부터 유익을 얻음
4. 여호와의 조직에는 어떠한 분위기가 감돌며, 이것이 어떻게 예언되었읍니까?
4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조직이 의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그 조직에 풍부한 평화를 주셨읍니다. 이 평화는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 존재하는 조용하고 평온한 상태와 일치조화된 관계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조직을 운영하시는 방법에 대해 반발하거나 쟁론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평화의 분위기가 이사야 60:17에 이렇게 예언되었읍니다. “내가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라.]” 하나님의 의가 없이는 참다운 평화 혹은 지속적인 평화가 없읍니다.
5. 여호와의 조직은 어떻게 평화로운 연합을 유지합니까?
5 여호와께서 교리에 관하여 명확하게 해명하실 때에나 따라야 할 새로운 방침을 알려주실 때에는 질서있게 교훈이 조직의 여러 지부로 보내집니다. 그러면 조직 전체는 계시된 여호와의 뜻에 더욱 일치하게 조정된 길로 순조롭게 나아갑니다. 평화롭게 조정되기 때문에 여러 구성 요소가 서로 다투는 일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조직은 앞으로 전진하며 여호와의 일을 수행합니다.
6, 7. (ㄱ) 여호와의 조직내의 평화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읍니까? (ㄴ) 각자는 ‘베드로’와 ‘요한’의 충고와 같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어떠한 의무를 가지고 있읍니까?
6 성서와 개인적 경험으로 보아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의 평화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며 하나님의 뜻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라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것은 인간들의 독자적인 노력에 의하여 초래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왔읍니다. 그러므로 한편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릅니다. 조직 내에 있는 개개인은 조직의 평화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7 개인의 평화는 단순히 그 개인이 여호와의 평화로운 조직내에 들어 왔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베드로 전 3:10, 11) ‘베드로’의 영감받은 말로 보아, 만일 우리가 여호와의 조직의 평화를 즐기기를 원한다면 평화는 개인의 표준에서 작용하는 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광범위한 조직적 특성이어서는 안됩니다. 사도 ‘요한’도 이 점을 강조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요한 1서 3:18)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행동과 진실함이 필요합니다.
8.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지의 여부를 알아내기 위하여 어떠한 질문을 해 볼 수 있읍니까?
8 회중에서 다른 사람들과 우리와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평화하게 하는 일을 추구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행실이나 혀의 사용이 어떠한 사람과의 긴장된 관계나 어떠한 언쟁을 일으키지 않는지 또는 원한을 품고 있는지 자문함으로 알 수 있읍니다. 우리 가족내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부자연스러운 긴장과 어떠한 언쟁과 비난이 있읍니까? 냉혹함이 있읍니까? 아마 우리 모두는 때때로 그러한 면에서 약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도모할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이러한 면에서 모두 발전할 수 있을 것읍니다.
9. 사도 ‘바울’과 제자 ‘야고보’는 어떠한 사실에 우리의 주의를 이끕니까?
9 여호와의 조직은 평화롭기 때문에 조직내의 각자는 평화를 위하여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화평하게 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시오” 하고 직접 명령함으로써 그 점을 말하였읍니다. (로마 14:19, 새번역) 평화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평화는 하나님께 헌신한 백성들이 실천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증거입니다. 제자 ‘야고보’는 이 점을 명백히 말하였읍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야고보 3:17, 18) 여기에서도 개인의 표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읍니다.
서로 평화를 도모할 기회들
10, 11. (ㄱ) 평화로움을 유지하는 우리의 능력은 언제 시험을 받습니까? (ㄴ) 어떻게 일상 생활 문제가 평화를 도모할 기회가 됩니까?
10 진정한 평화로움은 일이 우리의 방식과 맞게 진행되고 우리의 감정이나 우리의 기호에 맞을 때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상태하에서의 우리의 평화는 시험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종류의 압력을 받을 때에 어떻게 합니까? 그 때에 우리는 평화를 추구합니까? 우리는 긴장 아래에서 우리의 평화로운 자세를 유지합니까?
11 회중 안팎에 있는 개인들간의 보통 관계는 서로 평화를 도모할 많은 기회를 줍니다. 우리가 불완전하므로 다른 사람들과 계속 접촉하다보면 때때로 평화를 깨뜨리는 압력이 생깁니다. 그러한 도전은 우리가 참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가의 여부를 증명하는 시험이 됩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허다한 일이 언쟁을 일으키며 그러한 일들은 일반적으로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문제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언쟁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을 때에 언쟁을 피하기 위하여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매일 이러한 작은 압력들을 받을 때에 우리의 감정을 억제하고 성공적으로 평화를 유지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큰 압력을 받을 때에 평화를 유지할 기초를 놓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니라.]” (누가 16:10) 우리가 작은 일을 문제삼고 싸우는 습관이 있다면 평화에 대한 큰 위협을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12. 평화를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경우가 있읍니까?
12 우리의 가정과 회중에서 평화를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경우가 있읍니까? 왕국회관을 건축할 때에 건축상에 어떤 세부점에 대한 의견 차이로 불친절한 대화가 있을지 모릅니다. 부모가 다른 사람에게 자녀들의 특성을 조소하듯이 이야기하여 부지중에 그들이 자녀들로 하여금 어리석다고 느끼게 할 때에 자녀들은 때때로 화를 냅니다. 아내들은 때때로 자기 남편들의 사사로운 약점에 대하여 슬며시 공개적인 농담을 하여 무의식중에 남편들로 하여금 부끄러워하게 합니다. 참으로 긴장을 조성하는 것은 남편들이 자녀를 감독하지 않거나 바쁜 때에 아내를 돕지 않는 것입니다.
13. 우리는 어떠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하는 것이 좋습니까?
13 당신은 이러한 경우 중 어느 경우 혹은 비슷한 다른 경우에 처하여 있읍니까? 당신은 평화를 위하여 어떻게 합니까? 당신의 생각에서 평화가 위태로와질 때 그것은 항상 다른 사람의 잘못입니까? 당신은 평화를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이 먼저 행동하기를 기다립니까? 사소한 일상의 압력을 극복하면 여호와의 조직내에서의 생활은 더욱 평화로와지고 일이 더욱 즐거워집니다.
14, 15. (ㄱ) 성공적으로 평화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ㄴ) 평화를 추구하는 일과 관련하여 사도 ‘요한’이 말한 원칙은 무엇이며, 예수께서는 형제와 평화롭게 지내는 일의 중요성을 어떻게 강조하셨읍니까?
14 평화는 하나님의 지혜 즉 하나님의 원칙에 따라 생활하고 의를 실천하는 것의 결과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합당한 때에 형식적으로 너그러움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책략을 쓰는 것등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평화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평화는 훨씬 깊은 뜻을 나타냅니다.
15 요한 1서 4:20, 21은 우리에게 그 원칙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여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서로 평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 가운데서 이 점을 이러한 말씀으로 명백히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 할 때에 형제가 네게 어떤 원한 품은 것이 생각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나가서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 그리고 와서 제물을 드리라.” (마태 5:23, 24, 새번역) 다시 말하면 여호와께 대한 우리의 숭배가 가납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형제와 평화한가 하는 바로 이 점에 달려 있읍니다.
16. (ㄱ)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왜 항상 쉬운 것이 아닙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떻게 자신이 평화를 도모하는 자임을 증명하셨읍니까? 예를 몇가지 드십시오.
16 그러나 평화를 추구하는 일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닙니다. 사실, 때때로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읍니다. 흔히 그것은 누가 선수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는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 할 때에 형제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은 것이 생각나거든” ‘네가 먼저 선수를 써서 화해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바울’은 이 점을 확대시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찌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로마 15:1-3) 그러므로 영적으로 강한 사람은 솔선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약하게 되어 그리스도를 부인하였을 때에 평화를 방해하는 행동을 막기 위하여 선수를 쓴 것은 누구였읍니까? 그리스도였읍니다. 그분은 또한 매우 부드럽게 그렇게 하셨읍니다! (요한 21:15-17) ‘도마’가 의심하였을 때 그에게 나타나 그의 믿음을 회복시켜 줌으로 자신이 아니라 ‘도마’를 기쁘게 하신 분은 그리스도이셨읍니다. 이로 인하여 ‘도마’는 그리스도와 다시 평화로운 관계에 있게 되었읍니다. (요한 20:24-29)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훌륭한 본을 세우셨읍니다! 이것은 활동하는 사랑이었읍니다.—누가 22:24-27.
17. 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얼마나 계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까?
17 우리는 형제와 평화스러운 관계를 수립하려고 얼마나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까? ‘바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로마 12:18)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 6:9, 10) 그러나 평화를 도모하기 위하여 우리의 사랑과 양심적인 노력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면 그것은 그의 책임입니다.
여호와와의 평화가 우리의 동기
18. 다른 사람과 평화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기초는 무엇입니까?
18 여호와와 평화하려는 우리의 욕망이 우리가 서로 평화를 세우기 시작하게 하는 동기가 되어야합니다. 여호와와의 평화로운 관계를 기초로 하여 일하지 않으면 우리의 노력은 어떠한 일을 수행할 것입니까? 아무 것도 수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우리가 항상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하여 불만이 있다면, 우리의 생활이 축적된 작은 충돌과 장벽이 많다면 해결책을 구하기 시작할 곳은 여호와와 우리와의 관계에 있읍니다. 우리 자신의 눈에는 과오의 들보가 있을 수 있고 우리 형제의 눈에는 티가 있을 수 있읍니다.—마태 7:1-5.
19. 우리 모두는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며, 사도는 이 점을 어떻게 강조합니까?
19 우리 모두는 각자 개성이 있으며 그것은 불완전으로 오염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이점과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호와와 그의 의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여호와]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 3:13, 15) ‘바울’은 여기에서 불평의 원인들이 있을 것을 인정하였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인류와 달리 하나님과 화해하였읍니다. 그분은 우리를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셨읍니다. 우리는 선한 양심을 받았으며 우리의 헌신과 침례로 여호와로부터 평화로운 출발을 하였읍니다. 선한 양심과 평화로운 입장을 얻게 되었읍니다. 만일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꺼이 용서하시고 잊으신다면 우리가 서로에 대하여 더욱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20. 우리의 형제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갖는 열쇠는 무엇입니까?
20 열쇠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즐기는 여호와와의 평화입니다. 그 평화는 우리의 기호와 감정을 조절하여 우리도 용서하고 잊을 수 있게 하여 줍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형제에 대한 옳지 않은 냉냉한 태도를 갖게 하는 괴롭히는 기억을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의 평화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우리는 화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방법으로 보복하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의 머리에 우리와 우리 형제 사이에 조용히 장벽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동기를 판단하는 일을 겸손히 피하라
21. 평화하게 하는 일을 추구할 때 겸손이 왜 대단히 중요합니까?
21 흔히 작은 일에서 시작하여 마찰이 생기고 확대됩니다. 예를 들면, 문제를 처리하는 당신의 방법이 동료의 방법보다 낫다고 느껴지고 그 점을 증명하기 위하여 격론을 벌인 일이 있읍니까? 당신은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을 그렇게 강력히 주장하여 평화를 위태롭게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서는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말고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라고 말합니다. (로마 12:3, 새번역) 만일 우리가 여호와의 일을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면 특정한 일을 하는 방법이 보통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신권적 일을 수행하는 것은 마련의 능률성보다도 일하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정신에 더 달려 있읍니다.
22. 어떻게 우리는 다른 사람의 동기를 잘못 판단할 수 있으며, 왜 이것은 위험합니까?
22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반응을 나타낼 때 사람들의 동기의 의로움을 의심하기가 쉬울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아마 어떤 사람이 우리의 기대와 달리 왕국회관에서 우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하였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읍니다. 우리는 그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조금 불쾌하게 생각하고 감정을 도사리고 그가 우리에게 적대시하고 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냉대의 장벽을 만들고 쌀쌀함을 보이기 시작합니까? 사람이 자기의 동기를 살피지 않으면 말없이 판단을 내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우리 형제의 그리스도교 정신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의 동기를 의심스럽다고 판단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형제의 행동이 불완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신은 당신이 저지르는 결함있는 행동으로 당신의 동기를 판단받기를 원합니까? 그러므로 분명히 조심할 필요가 있읍니다. 당신의 형제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하고 흠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여 당신 자신에게서 흠잡는 정신이 자라지 않게 하십시오.—마태 7:1, 2.
생명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를 유지함으로 평화를 추구하라
23. 평화를 추구할 때 왜 히브리 13:17에 있는 충고를 청종하는 것이 중요합니까?
23 평화를 추구할 때 우리는 히브리 13:17에 있는 충고를 청종해야 하며 회중에 있는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장로들을 여러 해 동안 사귀어 왔으며, 그의 모든 결점과 사소한 괴벽을 보아왔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결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직책을 맡기는 것을 합당하게 여겨 오셨읍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의 판단에 대하여 왈가왈부할 것입니까? 우리는 흠잡는 정신으로 조직을 해칠 것입니까? 순응하고 협조하고 여호와께서 이러한 마련을 하신 것을 기뻐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24. 고린도 후서 13:11의 가르침을 왜 지금 행하는 것이 긴급합니까?
24 새 질서에서는 논쟁으로 인하여 평화가 손상되도록 허용되지 않을 것인데 우리가 지금 그러한 일을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린도 후서 13:11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형제들이여, [지금] 기뻐하시오. [지금]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시오. [지금] 서로 격려하시오. [지금] 마음을 같이 하여 [지금] 화평하게 지내시오. 그리하면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새번역) 이러한 좋은 충고를 지금 따른다면 우리의 숭배는 순결하게 되고 하나님께 가납될 것입니다.
25. 여호와에 대한 어떠한 견해는 우리가 우리 형제들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25 생명에 관한 여호와의 견해를 유지하도록 우리를 돕기 위하여 에베소 4:32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어떻게 당신은 여호와께서 사랑해 오신 형제에 대하여 원한을 품을 수 있읍니까? 어떤 긴장된 상태에서 두가지 면이 있다는 것과 당신의 어떤 결점이 긴장의 한가지 원인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줄은 양쪽에서 잡아당겨야 팽팽해지는 법입니다. 당신의 형제도 당신만큼 생명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는 당신의 지원을 필요로 하듯이 당신은 그의 지원을 필요로 합니다.
26. 우리는 우리 하나님과 평화하고 서로 평화하기 위하여 어떠한 점들을 기억하고 적용시켜야 합니까?
26 사소한 일로 긴장이 생길 때 중대한 일들을 기억하십시오. ‘왜 우리는 여호와의 봉사자인가? 우리는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가?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고 자문해 보십시오. 항상 이러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당신 앞에 두십시오.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그들 모두가 그분께 고귀합니다. 당신이 그가 당신의 짐을 덜어주기를 바라듯이 당신의 형제의 짐을 덜어주십시오. 영원한 생명의 상을 얻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와 평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당신이 당신의 형제와 평화로울 때에만 보장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있어서 평화를 추구하여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영원한 행복을 얻으십시오.
[398면 삽화]
당신이 언쟁에 말려들 가능성이 있을 때에 당신은 불을 지르는가? 그렇지 않으면 감정을 제어하여 평화를 추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