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생명을 취하라
“명하여 ···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디모데 전 6:17-19.
1-3. (ㄱ) “이 사람” 예수를 죽음에 처하라고 요구하는 격분한 군중의 광경을 설명하십시오. (ㄴ) 예수께서는 그러한 환경하에서 무엇을 생각하셨을 것입니까? (ㄷ) 이러한 일들은 어떠한 의문이 생기게 합니까?
“보라! 이 사람이로다!” 그분은 부르짖는 군중 앞에 서 계셨읍니다. 그리고 이 군중 가운데는 “못 박게 하소서!” “못 박게 하소서!” 하고 외치는 제사장들과 ‘유대’인 관리들이 끼어 있었읍니다. ‘그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라고 외치는 그들 심중에는 살의가 가득하였읍니다. 피를 갈구하는 적의로 가득찬 이 군중을 우리의 머리로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은 누구의 피를 원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였읍니다.—요한 19:4-7.
2 ‘빌라도’ 궁전 밖에 서 계신 예수의 머리에는 틀림없이 여러가지 일이 떠 올랐을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하늘에서 내려 왔음을 아셨읍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는 자기가 형주에서 죽는 것이 들어 있음을 이해하셨으며, 이것이 바로 자기 눈 앞에 다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는 어떠합니까? 자기는 부활될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가 맡은 모든 일에 충실하였다고 판단 받을 것인지 그리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이 무서운 압력을 인내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계셨읍니다.
3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의 끝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읍니까? 그리고 죽어가는 예수께서 어떻게 참된 생명을 취하실 수 있읍니까? 우리에게는 이러한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4, 5. (ㄱ) 예수는 어떻게 해서 ‘베들레헴’에서 출생하게 되셨읍니까? (ㄴ)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발표가 있었으며, 그것은 누구에게 발표되었읍니까?
4 때는 기원전 2년이었읍니다. 그때 천사 ‘가브리엘’은 ‘나사렛’이라는 조그만 동리에 사는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와서 그가 아들을 낳게 될 터인데 그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 해 늦게 ‘마리아’와 ‘요셉’은 ‘가이사 아구스도’의 영에 따라 등록하기 위하여 남쪽으로 약 90‘킬로미터’ 떨어진 ‘베들레헴’ 시로 여행하였읍니다. 이 영이 내린 시기는 하나님의 섭리였읍니다. 그들이 도착하자 ‘마리아’는 구유에서 예수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은 이미 예언된 그대로 일어났읍니다.—누가 1:26-35; 2:1-7; 미가 5:2.
5 여호와의 천사는 이 역사적인 밤에 그 도시 근방에 있는 목자들에게 이 중대한 사건을 발표하였읍니다. “내가 ···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들은 “이 이루어진 일을 보”려고 즉시 그 곳으로 갔읍니다. 그들은 양떼에게로 돌아오면서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렸읍니다.—누가 2:8-20.
예수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
6. 예수께서 나신지 8일만에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6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예수는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받았으며, 40일이 되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제공되었읍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여호와의 법’에 따라 올바른 희생을 드려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성전에서 그들은 ‘시므온’이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주[여호와]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었읍니다. ‘시므온’은 이 아기를 팔에 안고 여호와를 송축하면서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아오니 ···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또한 84세된 여 예언자 ‘안나’가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읍니다.—누가 2:21-38.
7, 8. 어떠한 일련의 사건들이 예수의 가족으로 애굽으로 갔다가 다시 ‘나사렛’ 동리로 돌아오게 하였읍니까?
7 이러한 일이 있은지 얼마 후에, 흥미롭게도 (그리스도교국의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바로 그날 왔었다고 알려져 있는 점성가들이 도착하였읍니다. 그들은 먼저 ‘예루살렘’으로 갔었으며, 거기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와서 그들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들은 보물함을 열어 값진 예물을 바친 후에 꿈에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경고를 받고 동방 그들의 나라로 직접 돌아갔읍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천사는 ‘요셉’에게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 까지 거기 있으라”고 알렸읍니다.—마태 2:1-15.
8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신생아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바로 그때부터 이미 어떤 자가 그를 원치 않았음을 알 수 있으며, 그 자는 바로 여호와의 대적 ‘사단’ 마귀였읍니다. ‘사단’의 대행자 ‘헤롯’은 그가 점성가들에게 속은 줄 알게 되자 매우 분노하였읍니다. 그는 ‘베들레헴’에 있는 두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이게 하였읍니다. 마귀와 그의 지상 도구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려는 시도를 오랫 동안 끌고 나갔음이 분명합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가 애굽 땅에서 ‘나사렛’으로 돌아와 정착한 것은 ‘헤롯’이 죽은 후였읍니다.—마태 2:19-23.
9, 10. (ㄱ) 예수께서 열두살 되시던 해 유월절에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ㄴ) 그 후 예수의 10대에 관하여 우리는 어떠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읍니까?
9 이 ‘갈릴리’ 지역에서 어린 예수는 양부와 어머니 그리고 이부 형제 자매들과 함께 자랐읍니다. 그는 목수 일을 배웠으며, 그는 계속 “자라며 강하여”졌읍니다. 예수에 관하여 더 들어 보면 역사 기록은 그가 열두살 되었을 때에 유월절에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였음을 알려 줍니다. 어떤 일로써 부모와 헤어졌으며 마침내 그들은 사흘 후에 그를 찾았는데 그는 성전에 있었읍니다. 거기에서 그는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겼읍니다. 이 소년 예수는 그 도시에 있는 청소년 범죄자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 않았읍니다. 그는 놀래는 부모들에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고 말하였읍니다.—누가 2:39-50.
10 예수께서는 ‘나사렛’으로 돌아와 계속 부모에게 순종하였읍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는 분명히 앞으로의 생활을 위하여 어렸을 때에 그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지혜와 신체적 힘과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였읍니다.—누가 2:51, 52.
예수께서 그의 정력적인 봉사를 시작하시다
11. 기원 29년에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11 기원 12년에 있었던 일 후에는 예수께서 30세 되신 기원 29년 가을에 그의 친척되는 침례자 ‘요한’에게 오셔서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고자 하신 때까지 그분에 관한 특별한 기록이 없읍니다. 침례를 받으신 직후 ‘요한’은 예수에게 성령이 비둘기의 형태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을 뿐 아니라 또한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음성을 들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여호와의 정력적인 힘의 후원을 받으셨읍니다.—마태 3:13-17.
12, 13. ‘사단’은 예수께서 봉사를 시작하셨을 때 어떻게 그를 없애려고 하였으며, 그러나 그의 간교한 음모는 어떻게 실패하였읍니까?
12 예수께서는 그의 큰 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성령에 이끌리어 ‘유대’ 광야로 가서 40일간 금식하셨읍니다. 이 기간 끝에 예수께서는 신체적으로 약한 상태에 계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마귀가 그의 성실을 깨뜨릴 희망을 가지고 세가지 유혹으로써 그에게 접근하였읍니다. 그는 예수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 시장한 배를 채우라고 제안하였읍니다. 그러나 이 유혹은 실패하였읍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라고 유혹하였읍니다. 이 유혹에도 실패하였읍니다. 그러자 “이 세상 임금”인 마귀는 예수에게 만일 ‘사단’에게 엎드려 단 한번의 숭배 행위를 한다면 모든 인간 왕국을 주겠다고 제공하였읍니다. 이 유혹도 실패하였읍니다. 신체적으로 정신 능력으로 완전한 이 인간 예수는 이러한 제공에 어떠한 반응을 보이셨읍니까? 예수께서는 머리에서 그러한 제안들을 참작하고 생각하고 저울질 해 보셨거나 그것들의 바람직함에 유혹되셨읍니까? 그분은 인간의 이론이나 ‘랍비’의 논리로써 마귀에게 대답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매번 그분은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서 “기록되었으되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대답과 변호를 하셨읍니다.—마태 4:1-11; 요한 12:31.
13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의 특별한 지상 봉사 바로 시초부터 천적 아버지 여호와께 성실과 충실 및 충성을 지키며 걸으셨읍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기가 불명예스럽게 못박힘을 당하실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자기가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취하려고 노력하심을 확실히 증명하셨읍니다!
14. (ㄱ) 우리는 예수의 모양이 어떠하였었는지를 알 수 있읍니까? (ㄴ) 그렇다면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14 당신은 예수의 모양이 어떠하셨었는지 이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사람이었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해 본 일이 있읍니까? 그분의 모양이 어떠하였었는지에 관하여 성서는 침묵을 지킵니다. 성서는 그분의 머리 색갈이나 눈동자의 색갈이 어떠하였다든지, 키가 얼마나 되고, 무게가 얼마나 된다든지 기타 그분의 모양의 특성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중요치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어떠한 사람이었었는지는 매우 중요하며 이에 관하여 우리는 그분이 하신 일과 말씀하신 일 그리고 말씀하신 방법과 그분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읍니다.
15. 역사적으로 예수는 과거나 현재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어떻게 일한 분이었읍니까?
15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밟은 사람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에 논란의 여지가 없음은 인정된 사실입니다. 그의 생애 전의 인류의 모든 역사는 그의 오심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그 후에 모든 역시는 그의 도착을 중심으로 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또한 놀라운 것은 그의 짧은 생애에 그분이 수행한 막대한 일입니다. 예수께서 단 3년반 동안에 다른 사람들이 일생을 통하여 한 일보다 백배는 하셨다고 해도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에 의심이 간다면 사도 ‘요한’의 영감 받은 다음과 같은 말을 다른 피조물이 수행한 것과 비교해 보십시요.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하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예수께서 열심히 일한 사람이라는 데는 조그만 의심도 없읍니다.—요한 21:25.
16. 예수께서 죽으심을 당하신 후에 예수의 연합자들은 전파하고 제자를 삼는 일을 수행할 준비가 잘 되어 있었읍니까?
16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신 직후 그분은 앞으로 자기와 함께 여행하고 자기의 봉사 기간에 자기와 가까이 연합할 얼마의 제자들을 택하셨읍니다. (요한 1:35-51) 당신은 부활되신 예수께서 자기의 지상 봉사가 끝날 때 이들 연합자들에게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을 상기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은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명을 주어서 그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된 후 약 3년간 그분을 가까이 관찰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께서 시작하신 일을 수행할 훌륭한 훈련과 준비를 했던 것입니다.—마태 28:19.
17. 예수의 봉사 첫 6개월간 어떠한 일들이 있었으며, 이 기간에 그분은 얼마나 구역을 돌으셨읍니까?
17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이 자기가 메시야임을 믿도록 강화시키는 표시로서 첫 기적을 행하신 곳은 ‘갈릴리. 가나’였읍니다. 그후 그분은 ‘가버나움’으로 가서 기원 30년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 얼마 동안 거기에서 전파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전파하고 제자를 삼은 처음 6개월간 예수께서는 ‘요한’이 침례를 베풀던 ‘요단’ 남쪽 골짜기에서 북쪽 ‘갈릴리’ 바다 근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서쪽 언덕과 그 다음 남쪽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실 때까지 상당한 여행을 하셨읍니다.—요한 2:1-13.
활동적인 “이 사람”
18. 예수께서 기원 33년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 어떠한 감동적인 성품을 나타내셨읍니까?
18 만일 ‘빌라도’가 예수께서 어느 유월절에 손에 채찍을 들고 성전 구역을 거니시는 것을 보았다면 그는 틀림없이 “보라, 이 활동적인 사람을” 하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숭배의 집을 장사군의 집으로 바꿔 놓은 것을 보셨을 때 그분은 참으로 의분심으로 가득찬 담대하고 용감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활동을 개시하여 양과 소를 몰아 내시고, 돈을 쏟고 탁자를 엎으셨읍니다.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하셨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국의 예술이 흔히 예수를 묘사하는 바와 같이 그렇게 무기력한 분이 아니셨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이 활동적이고 씩씩한 사람을 바라보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고 한 시편 69:9의 예언이 바로 눈 앞에서 성취되고 있다고 말하였읍니다.—요한 2:14-17.
19, 20. (ㄱ) ‘니고데모’는 누구였으며, 예수께서 그와 어떠한 대화를 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떠한 심판이 악인인지 선인인지를 들어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9 예수께서 나타내신 또 다른 감동적인 성품은 통치자들 앞에서도 담대하게 주저함이 없이 진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었읍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밤에 그분을 찾아 왔을 때에 이것이 나타났읍니다.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는 예수를 올바로 알아 보고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대답하셨읍니다. 이 ‘바리새’인이 이해력이 둔함을 나타내자 예수께서는 그를 견책하시면서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공평하셨읍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이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똑 같이 진리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야 말로 하나님의 독생자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자들만 참된 생명을 취하게 될 것이라는 진리입니다. “저[아들]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리하여 ‘니고데모’ 자신이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받을 것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하셨읍니다.—요한 3:1-12, 16-18.
20 ‘산헤드린’ 법정의 일원인 이 사람은 아마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어두운 때에 예수를 찾아 왔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기가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을 ‘유대’인에게 들키면 위신에 손상이 올 것을 두려워한 모양입니다. 이것이 아마 예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이런 말로 끝맺으신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한 3:19-21
21. 어떤 사실이 침례자 ‘요한’의 일이 쇠함을 보여 주었읍니까?
21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예수와 제자들은 ‘유대’ 촌으로 가셨으며, 많은 신자들에게 침례를 베풀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베푸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베풀었읍니다. 사실상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침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이러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요한’에게 물었읍니다. ‘요한’은 여러 말로 대답하는 중에 “그[예수]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하였읍니다.—요한 3:22-4:2.
22. ‘시가’ 도시에서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때가 오면 참된 생명을 취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22 침례자 ‘요한’이 투옥되자 예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리’로 가셨읍니다. (마태 4:12) 예수께서 동료들과 함께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시는 길에 ‘시가’라는 도시 한 우물가에 있는 여인에게 “비공식 증거”를 하셨읍니다. 그분은 “행로에 곤”하셨지만 자기의 신분을 들어내실 기회를 포착하셨읍니다. ‘사마리아’인들 역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에서의 이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의 결과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러 도시에서 나왔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함께 머무시기를 강권함으로 이틀을 그들과 함께 머무셨으며,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읍니다.—요한 4:3-43.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에서 큰 봉사를 시작하시다
23. ‘갈릴리’ 지방으로 돌아오신 후 이제 예수께서는 자기의 소식에 어떠한 주제를 포함시키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3 기원 30년 유월절 얼마 후에 이 정력적인 전도인은 ‘갈릴리’ 지방으로 돌아 오셨으며, 다음 2년간의 상당한 부분을 이 지역에서 보내셨읍니다. 이에 관하여 기록은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다고 하였으며, 그것은 ‘갈릴리’ 사람들이 그의 가장 기이한 일들의 얼마를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성령의 권능에 의한 그분의 소식은 이제 투옥으로 말미암아 잠잠해진 침례자 ‘요한’이 사용하던 주제 곧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라는 주제가 처음으로 들어 있는 것이었읍니다.—누가 4:14, 15; 마태 4:17; 마가 1:14, 15; 요한 4:43.
24. (ㄱ) ‘나사렛’ 회당에서 어떠한 특이한 일이 있었읍니까? (ㄴ) 그러나 그곳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4 예수께서는 “성령의 권능으로” 안식일에 자기의 고향인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사야」 두루마리에서 61:1, 2을 읽어 주셨읍니다. “주[여호와]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다음 예수께서는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선언하셨읍니다. 그들은 그분의 쾌활한 말씀에 놀랬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의 대접을 기적을 행해서 보답할 것을 거절하시고 오히려 청중을 예언자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믿음없던 ‘이스라엘’ 사람들에 비하시자 그들은 “다 분이 가득하여” 그분을 절벽으로 끌어내어 밀쳐 내리치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강력한 영의 인도를 받으신 예수께서는 그들 사이를 지나 ‘가버나움’을 떠나셨읍니다. 그분은 아직 죽으실 때가 오지 않았으며, 그것이 그분이 죽으셔야 할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누가 4:16-31.
25, 26. (ㄱ) 예수께서는 고향 ‘나사렛’에서 학대를 받았기 때문에 ‘갈릴리’ 지역에서 전파하는 일을 그만 두셨읍니까? (ㄴ) 그분은 어떤 기적을 행하셨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25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예수께서는 자기 봉사에 수행할 네 제자 곧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부르셨읍니다. 그 다음 그 기록은 열심히 제자를 삼는 이 분이 어떻게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는지를 알려 줍니다. 이 소식이 ‘시리아’ 전역에 퍼졌으며, 사람들의 무리가 온갖 병을 앓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으며,—그들 중에는 간질병자, 중풍병자, 악귀들린 자들이 있었다—그분은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읍니다.—마태 4:18-24.
26 또한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고 간구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손을 대시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그 일을 말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제사장들에게 보이고 율법에 따라 요구된 제물을 바치라고 하셨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기적을 이야기하였음으로 곧 그 소식은 퍼졌으며, 예수께서 알게 도시로 들어가실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읍니다. 그래서 그분은 도시 밖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가셨읍니다. 그러나 곧 무리들이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왔읍니다.—마가 1:40-45; 누가 5:12-16.
27.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극단적으로 참을성이 있으셨음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27 우리는 이 일이 예수의 시간과 정력을 얼마나 고갈시키는 것이었는가를 상상할 수 있읍니다. 완전한 인간이셨지만 그분에게는 얼마의 쉴 시간이 필요하였읍니다. 그러나 불구를 고치려는 열망 때문에(그것도 값 없이) 이 사람들은 예수에게 권리가 있는 그 조그만 고려도 베풀려고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욱 재미있는 일은 예수께서 그들의 고려의 부족을 불평하시거나 화를 내신 일이 결코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또 다른 훌륭한 성품 곧 사람들에 대한 극단적인 참을성을 보여 주는 것이었읍니다.
28. (ㄱ) 예수께서 ‘가버나움’에서 어느 중병환자를 고치신 때에 특히 무엇이 들어났읍니까? (ㄴ) 이 기적을 구경한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였읍니까?
28 며칠 동안 ‘가버나움’을 떠나 계시다가 돌아 오시자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머무시는 집 주위에 몰려 있든지 사람이 들어갈 수도 없었다고 알려 줍니다. 따라서 중풍병 들린 자의 네명의 열정적인 벗들은 지붕에 구멍을 뚫고 그를 누인 상을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들어 내렸읍니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본 이 놀라운 광경을 기억하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의를 끄는 묘기를 보인 것뿐 아니라 이들이 가진 믿음을 나타냈으며,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셨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이것을 듣는 모든 사람이 좋아한 것은 아니었읍니다. 어떤 서기관들은 심중에 예수의 결점을 찾아 냈읍니다. 그들의 심중을 알아차리시고 예수께서는 그들과 추론하셨읍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사이에 어느 것이 더 쉬우냐?’고 물으셨읍니다. 그리고나서 그분은 왜 처음 표현과 같은 말씀을 하셨는지를 설명하셨읍니다.—“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하려 하노라.” 이것은 그러한 서기관들을 견책하는 친절한 방법이 아니었읍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왕국에 관한 놀라운 증거가 이렇게 해서 행해졌으며, 대부분을 구경한 사람들은 “우리가 이러한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마가 2:1-12; 마태 9:2-8.
29. 반대자들이 예수께서 세금 징수원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을 때 그분은 어떻게 적절한 대답을 하셨읍니까?
29 이 영감에 의한 역사적 기록을 읽는 사람들에게 크게 감명을 받게하는 일들 중의 하나는 흔히 예수께서 반대자들을 잠잠케 하기 위하여 얼마나 정확하고 알맞는 대답을 하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세금 징수원인 ‘레위’를 추종자의 하나로 선택하신 후에 이 사람은 큰 잔치를 베풀고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 및 많은 세금 징수원들과 죄인들을 초대하였읍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은 그들 보기에 죄인이요 부패한 자들이며, 멀리하고 피해야 할 자들로 멸시받는 자들과 함께 예수께서 식사하시는 것을 험잡았읍니다. 그러면 이들 ‘바리새’인 조소자들을 잠잠케 하기 위한 예수의 완전한 대답은 무엇이었읍니까? 이러하였읍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 5:27-32.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한 “이 사람”
30, 31. (ㄱ) 예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못에 가셨을 때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시는 것이 정당함을 어떻게 말씀하셨읍니까?
30 기원 31년 봄에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유월절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셨읍니다. 그 도시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그분은 거기에서 가슴 아픈 정경을 보셨읍니다. 많은 환자들 즉 맹인, 절름발이, 손 발이 마른 자들이 병낫기를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38년간 앓은 사람을 택해서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거러가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사람은 완전히 고침을 받아 그렇게 하였읍니다.—요한 5:1-9.
31 그러나 이 일을 본 ‘유대’인들은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는커녕 예수에 대하여 불평을 말하였읍니다. 그분이 안식일에 병고치는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읍니까? 그분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결코 일하는 것을 쉬지 않는 즉 안식일에도 햇빛을 보내시고 비를 내리게 하시는 지존하신 일군의 본을 받아 이 우두머리 일군이신 예수 역시 안식일에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선한 일을 하시는 것을 끝이지 않으셨읍니다.—요한 5:10-17.
32, 33. 안식일에 기적으로 병을 고치는 것을 반대하는 일 외에 반대자들은 예수에게 어떤 다른 비난을 하였으며, 그분은 어떻게 대답하셨읍니까?
32 무리는 예수의 설명을 받아 드렸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더욱 더 격분하여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종교적 전통에 눈이 어두워 그 분이 메시야라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보고도 그들은 예수를 통하여 이 사람을 고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계속 그들과 이치적으로 이야기하셨으며,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 모든 영예를 돌렸읍니다. 이제 그들은 더 큰 일을 하시는 것을 볼 것이었읍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 부활로 나오리라.”—요한 5:18-30.
33 그 무리에게 이 위대한 진리를 말씀하실 때 예수께서는 참으로 자기가 메시야이심을 그들에게 확신시키신다고 생각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예수는 그렇게 우직한 분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대화를 이렇게 결론지으셨읍니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요한 5:46, 47.
34. 또 다른 경우 예수의 제자들에게 왜 안식일을 깨뜨리는 자들이라는 비난을 하였읍니까?
34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이 끝난 후 ‘갈릴리’ 지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수의 제자들이 밭을 지날 때 얼마의 곡식 이삭을 잘라 먹었읍니다. ‘바리새’인들은 다시 그들이 안식일을 깨뜨리는 자들이라고 비난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그뿐 아니라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마가 2:23-28.
35.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반대자들에게 안식일에 기적을 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이치적으로 설명하셨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35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계셨고 ‘바리세’인들은 그분이 마른 손 가진 사람을 고침으로써 안식일을 범하는가를 살피고 있었읍니다. 예수에게서 비난 꺼리를 얻기 위하여 그들은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하고 물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대답으로서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셨읍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 사람에게 마른 손을 내밀게 하시니 즉시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었읍니다. 다시 이들 ‘바리새’파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의 메시야임을 증명하는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격노하여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다시 우리는 이 “안식일의 주인”이 이러한 악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음을 볼 수 있읍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선을 행하셨으며, 일주일에 칠일간 여호와께서 그분에게 맡끼신 일을 하셨읍니다.—마태 12:9-14; 누가 6:5-11.
우두머리 선생님은 중단없이 전진하셨다
36. 이제 예수께서 봉사를 시작하신 때보다 왜 더 긴급하게 되었읍니까?
36 기원 31년 유월절 후 3개월만에 예수께서는 제자를 삼는 기간의 반에 일으셨읍니다. 이제 그분이 임무를 완수하고 참된 생명을 취하는데는 다만 1년 9개월 밖에 남지 않았읍니다. 허비할 시간이 없었읍니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았읍니다.
37. ‘가버나움’ 근처에서 예수께서는 어떤 유명한 연설을 하셨으며, 우리가 그것을 읽으면 특히 어떠한 유익이 있읍니까?
37 이 때 쯤해서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이라는 그 유명한 연설을 하셨읍니다. 그 산이 어디였었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것이 ‘갈릴리’ 바다의 ‘가버나움’ 근처였읍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마태 복음 5장 3절부터 7장 27절에 그 연설 내용이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읍니다. 이 연설에서 예수께서는 청중에게 참으로 생각해야 할 많은 점들을 제시하셨으며, 그것은 사실상 몇마디로 반복할 수 없을 정도의 것이었읍니다. 우리도 앉아서 그 연설을 읽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는 것은 유익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자기 아버지께서 영감으로 지시하신 대로 하나님의 사상을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상을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그 내용을 읽고 묵상하기 위하여 시간을 내야 할 것입니다.
38. 예수의 가르치시는 방법이 특히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38 청중은 이 노천에서 행한 예수의 연설을 어떻게 생각하였읍니까?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분은 과연 보통 지상 인간이 아니라 우두머리 선생님이심을 증명하셨읍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방법 중 매우 효과적이었던 점들 중에는 수수함, 간결성, 명료함, 꽉짜인 논리, 생생한 비유 및 꿰뚫는 질문등이 있었읍니다. 그러한 질문은 청중으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을 살펴서 진리를 지지하든지 반대하든지 결정을 내리게 하였읍니다.—마태 7:28, 29.
39. 놀라운 가르치심 외에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메시야이심을 확신하도록 계속 어떠한 일을 행하셨읍니까?
39 이 위대하신 선생님께서는 가르치시는 데 효과적 방법을 사용하신 일 외에 봉사 후반기에는 여러 곳으로 옮기시면서 기적을 행하는데 주력하셨읍니다. ‘가버나움’에서 그분은 비-‘이스라엘’ 군대 장교의 중풍병 앓는 종을 고쳐 주셨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과부의 외아들의 시체를 멘 사람들이 ‘나인’ 공동묘지로 가는 길에 예수께서 손을 대고 명령하시자 그 젊은이는 다시 살아났읍니다. 이 일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증거하는 얼마나 훌륭한 일이었겠읍니까!—마태 8:5-13; 누가 7:11-17.
40. 투옥된 침례자 ‘요한’은 예수가 참으로 메시야이신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게 되었읍니까?
40 이 놀라운 일의 소식이 투옥되어 있는 침례자 ‘요한’에게 미쳤으며, 그러므로 그는 사람을 보내 예수에게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 하고 묻게 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이 직접 본 일—맹인이 보고, 절름발이가 걷고, 문둥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먹어리가 듣고, 죽은 자가 일으킴을 받고, 불쌍한 자가 좋은 소식을 듣게 된 것을 보고하라고 대답하셨읍니다. 이 소식은 확실히 ‘요한’에게 “오실 그 이”가 오셨음을 확신하게 하였을 것입니다.—누가 7:18-23.
41, 42. (ㄱ) 예수께서 어느 ‘바리새’인과 함께 식사하실 때에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ㄴ) 우두머리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자들은 죄를 사함받는 것이 적을 것임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41 예수께서는 식사하실 때에도 항상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칠 기회를 엿보셨읍니다. 예를 들면 그분이 어느 ‘바리새’인 집에서 식사를 하기 위하여 앉아 계실 때에 죄인으로 이름 난 어느 여인이 예수께서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을 바라며, 와서 울고 있었읍니다. 그 여인은 예수의 발을 눈물로 씻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부드럽게 발에 입마추고 비싼 향유를 발에 발랐읍니다. 이것을 본 ‘바리새’인은 마음으로 예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고 사실상 그는 이 모든 광경을 경멸하였읍니다. 그러나 우두머리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다음과 같은 비유로써 이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바리새’인이 쉽게 잊어버릴 수 없는 교훈을 하셨는지 유의하십시오. 두 사람이 어떤 빚장이에게 빚을 졌는 데 한 사람은 그에게 5백 ‘데나리온’을, 다른 사람은 50‘데나리온’을 빚졌읍니다. 빚진 사람들이 그 돈을 갚을 수 없음을 알고 그 빚장이는 이 두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었읍니다. 물론 더 많이 빚진 사람이 빚장이를 더 많이 사랑할 이유가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이 비유를 그때 일어났던 일에 적용시키셨읍니다.
42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온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끝이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런고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누가 7:36-50.
43.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을 두번째로 방문하셨을 때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43 이 일이 있은 바로 후에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들과 얼마의 경건한 제자들을 수행하시고 두번째로 ‘갈릴리’에 있는 모든 도시와 마을을 방문하기 시작하셨읍니다. 이 여행에서 그분은 더 많은 악귀들을 내어 쫓으셨고, ‘바리새’인들로부터 더 많은 반대를 받으셨고, 더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고, 더 많은 맹인들의 눈을 열어 주셨고, 더 많은 죽은 자들을 일으키셨고, 영광스러운 왕국의 좋은 소식으로써 더 많은 압제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셨읍니다.—마태 12:22-45; 13:1-52; 누가 8:1-3.
44.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 전파에 대한 ‘가다라’ 지방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44 이 순환 여행에서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다라’ 지방에 이르셨읍니다. 이 새로운 구역은 이 위대하신 선생님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입니까? 그분이 몇 사람에게서 악귀의 “군대”를 쫓아내시자 그 악귀들은 도야지 떼를 절벽으로 떨어져 죽게 하였읍니다. 그러자 그곳 사람들은 예수를 그 지방에서 떠나도록 촉구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과 싸우시고 떠나기를 거절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렇게 할 만한 시간이 없었읍니다. 그분은 이미 증거를 하셨읍니다. 적어도 악귀들렸던 사람들 중 하나는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는 예수로부터 그의 친척과 열개의 도시로 이루어진 ‘데가볼리’에 이 좋은 소식을 전파하라는 사명의 상을 받았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거기에 남아 계실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분이 계신 곳에서 축복을 받기를 원하여 ‘갈릴리’를 건너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더 가치있는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그러한 사람들 중에는 딸이 죽은 ‘야이로’와 아무 의사도 고칠 수 없었던 혈루병을 12년 동안이나 앓는 어느 여자가 있었읍니다. 인식이 부족한 반대자들과 허비할 시간이 없었읍니다.—마태 8:28-34; 마가 5:1-43.
45.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께서 다시 돌아 오셔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으며, 예수에게 무엇을 생각나게 하였읍니까?
45 예수께서 고향 ‘나사렛’을 다시 방문하시면 그들이 마음을 고쳤음을 보시게 될 것입니까? 그들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장 특출한 시민을 기쁨으로 환영할 것입니까? 예수께서 돌아 오셔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그들은 그 분의 지혜에 놀래면서도 그분이 단순히 “목수의 아들”이라는 생각때문에 걸려 넘어졌읍니다. 이에 대하여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께서는 아마 예언자 ‘예레미야’를 생각하셨을 것이며, 그가 고향 사람들에게 어떻게 배척을 받았는가를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마태 13:54-58; 예레미야 1:1; 11:21.
광범위한 증거를 위하여 조치를 취하심
46, 47. (ㄱ) 2년간의 강력한 증거 후에 우리는 예수께서 봉사 활동을 감소시키셨음을 알게 되었읍니까? (ㄴ) 세번째 방문한 구역에서 사람들의 영적 상태에 대한 그분의 평가는 어떠하셨으며, 그분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까?
46 약 2년간 철저히 전파하셨고, 여러 구역을 다시 방문하셨고, 수천명이 목격한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으므로 이제 예수께서는 활동을 감소시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전도하는 일에 속도를 가하시고 확장시키셨음을 보게 됩니다.
47 우선 예수께서는 친히 ‘갈릴리’로 세번째 여행을 하셨으며,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읍니다. 이 순회 여행에서 그분은 어느때보다도 전파하는 일을 힘껏 증가시켜야 할 필요를 확신하게 하셨읍니다. 가는 곳마다 무리를 보시고 그분은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음을 느끼셨읍니다. 그분은 어떻게 하실 수 있었읍니까? 예수께서는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교훈하셨읍니다.—마태 9:35-38.
48. 예수께서는 전도하는 일을 위하여 열두 사도들을 내어 보내실 때에 어떠한 교훈을 하셨읍니까?
48 이 활동적이고 열성적인 이분은 자기의 열렬한 기도와 일치하게 야외로 더 많은 좋은 소식의 전파자들을 내어 보낼 조치를 취하셨읍니다. 그분은 열두 사도들을 모으시고 그들을 둘씩 둘씩 왕국 전파자의 여섯 ‘팀’을 만들어서 여섯 구역으로 보내셨읍니다. 이 전 시간 전도인들을 보내시면서 그분은 그들이 어디로 갈 것이며, 어떤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을 피할 것인가에 관한 특별한 교훈을 하셨읍니다. 그들은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것을 본 그대로 말하고 행하라는 교훈을 받았읍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가까왔다 하[라.]” 그들은 성령의 힘으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경건한 병 고침을 행한 데 대하여 돈을 받아서는 안되었읍니다.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라는 것이 그들이 따라야 할 법칙이었읍니다.—마태 10:1-42; 마가 6:7-13.
49. 예수와 사도들은 왜 한적한 곳으로 가려고 하였으며, 그러나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49 열 두명이 돌아 와서 그들이 즐긴 훌륭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도시 밖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제안하셨읍니다.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와 제자들보다 앞서 가서 그들이 가려는 곳에 먼저 가 있었읍니다. 비이기심과 관대하심의 완전한 본이 되는 이 위대하신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읍니까? 그분은 그들을 보시자 “그 목자 없는 양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읍니다. 시간은 흘러 때는 저물었읍니다. 그들은 모두 시장해졌읍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행하는 이 하나님의 사람은 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로 5,000명을 먹이셨으며, 그 후에도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나 남았읍니다.—마가 6:30-44.
50. 짧은 기간에 예수께서는 얼마나 널리 흩어져 있는 곳들에서 봉사하셨음이 알려져 있읍니까?
50 이 일이 있었던 것은 32년 유월절 전후였읍니다. 그것은 이제 예수께서 자기의 일을 마치고 충성을 위한 상으로서 자기를 위하여 보존된 참된 생명을 받을 가치가 있는가를 증명할 시간이 약 1년밖에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더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증거하려고 노력하심으로써 더 짧은 기간에 더 넓은 지역에서 전파하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먼저 그분은 ‘갈릴리’ 바다 북쪽에 있는 ‘가버나움’ 근방에서 전파하셨읍니다. 다음에 그분은 ‘두로’와 ‘시돈’ 근처 지중해 연안에서 기적들을 행하셨음을 알 수 있읍니다. 바로 그후에 그분은 거기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 바다 동쪽과 ‘요단’ 상류에 있는 ‘데가볼리’라는 열개 도시에서 전파 하셨고, 그 구역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셨읍니다.—마가 7:24-37.
51. 예수께서는 틀림없이 어떠한 어려움과 불편을 경험하셨을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들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임이 분명합니까?
51 예수께서는 이 널리 흩어져 있는 곳에 가시기 위하여 참으로 많이 걸으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틀림없이 자기가 견디어야 할 더위나 비, 먼지나 진흙으로 인한 어려움이나 육체적 고역에 대하여 결코 불평하시지 않았읍니다. 사실상 이러한 것들은 너무나 사소한 일이기 때문에 언급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하신 생명을 구원하는 전파 사업이었읍니다. 이것이 영감받은 성서 필자들이 그들의 기록 가운데서 강조한 것입니다.
52. 누가 예수의 가장 큰 반대자들이었으며, 그들이 결코 회개하고 메시야를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52 이것은 성서에 예수께서 봉사에서 고통 받으신 일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서에는 그분에게 닥친 박해와 반대에 관한, 특히 종교 지도자들에게 받으신 박해에 관한 기록이 많이 있읍니다. 그분의 지상 봉사 처음부터 끝까지 그분은 계속적인 도전과 싸우시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이제 2년이 넘도록 그분은 사람들에게 자기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서 연속적인 기적을 행해 보이셨읍니다. 이제 막 떡 일곱 덩이와 생선 두 마리로 수천명(여자와 어린이들을 제외한 남자 4천명)에게 먹이셨는데—의심을 가지고 믿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확신을 줄만한 업적을 행하셨는데—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가 메시야라는 하늘로부터의 징조를 구하였읍니다. 예수의 반응은 어떠하셨읍니까? 그분은 그들에게 단순히 이전에 말씀하신바를 반복하셨읍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후에 증명된 사실로써, ‘요나’가 고기 배속에 있었던 바와 같이 예수께서 3일간 땅속에 들어가 계심으로 “‘요나’의 표적”이 일어났지만 이들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은 믿기를 거절하였읍니다.—마태 15:32-16:4; 12:38-40.
53. 예수의 2년간의 ‘갈릴리’ 봉사가 끝날 무렵 어떠한 중요한 일이 있었으며, 어디에서 있었읍니까?
53 2년간의 대부분을 차지한 이 큰 ‘갈릴리’ 봉사를 끝맺으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셨읍니다. 그곳은 아마 고도 3,000‘미터’에 달하는 ‘헤르몬’ 산이었을 것이며, 거기에서 그들은 변화하신 광경을 보았읍니다.—마태 17:1-13.
예수께서 온 관심을 남쪽으로 기우리시다
54. 마지막 6개월간 예수의 활동은 어디에 중점을 두셨읍니까?
54 예수께서 활동의 중심을 남쪽으로 ‘예루살렘’과 그 주위 및 ‘유다’와 ‘베리아’ 지방으로 옮기신 것은 기원 32년 가을 초막절 때였읍니다. 그분은 지상 봉사 마지막 6개월간의 전파를 그곳에 집중하셨읍니다.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다른 곳에서와 같이 사람들에게 현명한 교훈과 의로운 원칙을 가르치셨으며, 많은 경우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서 그렇게 하셨읍니다. 이 남쪽에서의 활동에서 그분은 얼마의 가장 중요한 선언과 예언을 하셨읍니다.
55. 반대를 받으시면서 예수께서는 어디에서 전파하셨으며, 그분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55 끝이 가까와 오고 적의 책동이 더욱 심해짐에 따라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오기 전에 그들이 자기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더욱 조심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요한 7:1-19, 25) 그러나 이 열정적인 전파자는 산에 가서 숨거나 자기의 소식을 타협함으로 교직자의 종교적 민감성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관습대로 담대하게 성전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읍니다. 그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반대자들에게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고 하셨읍니다.—요한 8:31, 32, 44.
56. 예수의 봉사의 남은 기간이 매우 짧았을 때 사람들을 분리하는 일을 어떻게 가속시켰읍니까?
56 예수께서는 이 구역에서도 ‘추수할 것은 많으나 일군이 적’음을 느끼셨읍니다. 그러므로 제한된 시간 밖에 없는 이 때에 지난 2년동안 북쪽에서 하신 바와 같이 이 구역에서도 효과적 증거를 하시려면 힘드는 일을 하셔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셨읍니다. 이것은 지난 해에 ‘갈릴리’에서 여섯 쌍을 사용하신 것과는 달리 이제 서른 다섯 쌍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외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메시야가 그들의 도시를 방문하셨을 때 그분을 지지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를 속히 결정할 수 있게 하였읍니다.—누가 10:1-16.
57. 일흔명의 복음 전도자들이 돌아와서 악귀들이 그들에게 복종한 사실을 기꺼이 말했을 때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뜻은 무엇이었읍니까?
57 70명이 기쁘게 돌아와서 예수께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라고 보고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을 들었읍니다. 사실상 악귀들에 대한 이 능력은 그들에 대한 여호와의 능력을 증명한 것이었으며,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는 것은 충성에 달려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악귀들을 내어 쫓든지 그보다 덜한 일을 하든지 충성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하였읍니다.—누가 10:17-24.
58. 위대하신 선생님께서 남쪽에서 봉사를 하시는 동안 가르치신 중요한 진리 몇가지는 무엇입니까?
58 결코 피곤할 줄 모르는 이 선생님이 여러 가지 다른 환경으로 옮기시면서 자기의 봉사를 수행하실 때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위대한 진리 얼마를 생각해 봅시다. 그분은 날마다 아버지의 지혜와 지식의 보고로부터 새로운 진리를 꺼내 내시는 것 같았읍니다. 이웃 사람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는 참다운 이웃 사랑과 자비에 대한 훌륭한 교훈이었읍니다. ‘마르다’는 물질에 관하여 지나치게 염려함으로 견책을 받았으며, ‘마리아’는 그의 태도로 말미암아 칭찬을 받았읍니다. 악귀들은 “귀신의 왕” ‘사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 가락”에 의하여 내어 쫓아졌읍니다. (누가 10:24-42; 11:14-22)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결코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왕국을 계속 구하면 모든 필요한 것이 공급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적은 무리”는 그들의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왕국에 참여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였읍니다. “진실한 청직이”야 말로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맡길 자입니다.—누가 12:22-32, 41-44.
59. 예수께서는 다시 안식일에 병을 고친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반대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읍니까?
59 안식일에 십팔년 동안 꼬부라져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고치신 것을 비평하는 자에게 예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고 말씀하셨읍니다. 다시 안식일에 그분은 수종병으로 고생하는 한 사람을 고쳐 주시고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 내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셨읍니다.—누가 13:10-17; 14:1-6.
60. 위대하신 선생님께서 사용하신 흥미있는 비유 몇가지를 말씀하십시오.
60 이 위대하신 선생님께서 사용하신 비유는 참으로 흥미있으며 실제적이었읍니다! 그러므로 흔히 그분은 청중의 비평을 막기 위하여 적절한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그러한 비유 얼마를 간단히 고려해 봅시다.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히지 않은 한 부자가 큰 곡간을 지으려고 작은 곡간을 헐었으나 그 밤에 죽습니다. (누가 12:13-21) 하나님의 왕국은 큰 나무로 자라나는 작은 겨자씨와 같으며, 또한 가루를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습니다. (누가 13:18-21) 잔치에 참석한 손님은 그들이 나중에 높임을 받기를 원한다면 낮은 좌석에 앉아야 합니다. 탑을 짓는 사람은 먼저 비용을 예산하며, 전쟁에서 승산이 없는 왕은 속히 평화를 모색합니다. 목자는 안전한 아흔 아홉마리의 양보다도 찾아낸 잃었던 양 한 마리를 더 기뻐하며, 여자는 잃지 않은 아홉개의 동전보다도 찾아낸 잃었던 동전 한 푼을 더 기뻐합니다. (누가 14:7-11, 28-33; 15:4-10) 또한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있으며,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유명한 비유가 있읍니다. (누가 15:11-32; 16:19-31) 성가시게 하는 한 과부가 악한 재판관에게서 공의를 베풀어 달라고 단순히 그를 괴롭힌다는 이유로 청원을 허락받습니다. 성전에서 두 사람이 기도하는데 세금 징수원인 죄인의 기도는 응답되지만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바리새’인의 기도는 응답되지 않습니다. (누가 18:1-14) 이것은 이 우두머리 스승이 사용하신 많은 비유 가운데 얼마에 불과합니다.
예수의 봉사의 영화로운 마지막 날들
61. 지상 봉사를 완수하시기 전에 예수께서는 무엇을 더 경험하시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61 예수께서는 자기가 경험하게 될 고통과 죽음이 가까왔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세번째로 사도들에게 자기가 당한 일을 경고하셨읍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예수께서는 이러한 일 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며, 그것은 다만 죽기까지 충성을 증명하고 위 하늘에서 영원한 생명을 취하게 할 뿐이었읍니다.—누가 18:31-33.
62, 63. (ㄱ) 왜 어떤 사람들은 기원 33년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 것인가의 여부를 의심하였읍니까? (ㄴ) 그러나 ‘니산’월 14일이 오기 5일전 일요일에 어떻게 그 의심이 풀렸읍니까?
62 유월절 준비가 한창일 때 ‘예루살렘’ 주위에서는 예수께서 나타나실 것인지 아닌지로 화제가 집중되었읍니다. 그 이유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하라 명령하였”기 때문입니다.—요한 11:55-57.
63 이와같이 열띤 분위기 가운데서 예수께서 나타나셨고, 그것도 매우 놀라운 방법으로 나타나셨읍니다. 그분은 나귀를 타시고 개선 행렬로 도시로 들어오셨으며, 사람들은 겉옷과 종려가지를 그 앞에 깔고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고 소리쳤던 것입니다. 이 결과로 “온 성이 소동”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은 서로 “볼찌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저를 좇는도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일요일 날이 어두워지자 예수께서는 안전을 위하여 성밖에서 밤을 새우셨읍니다. 그분이 열렬히 일을 수행해야 할 날이 아직도 닷새가 남아 있었읍니다.—누가 19:36-38; 마태 21:1-11; 요한 12:12-19.
64. 예수께서는 이 마지막 주간 월요일에 무슨 일을 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64 다음 날 월요일에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상인들을 내어 쫓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엎으심으로써 성전을 깨끗이 하셨읍니다. 이분은 폭동이나 혁명을 선동하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었읍니다. 이분은 하나님의 의로운 아들이었으며, 자기의 행동을 뒷받침하는 다음과 같은 성귀를 인용하셨읍니다.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이 일은 3년 전에도 예수께서 이와 같이 탐욕적인 상업 분자들을 성전에서 깨끗케 하심으로써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에 대한 그분의 불타는 열심을 나타내셨던 것을 생각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번째 깨끗케 하신 일에 대한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더라.]” 그리하여 그들은 개심하지 않았고 또 개심할 수도 없음을 증명하였읍니다.—마태 21:12, 13; 누가 19:45-48.
65, 66. (ㄱ) 예수께서 화요일에 성전에 모인 군중에게 말씀하신 것들 중 얼마의 내용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 다음 사도들에게 예언과 비유로 예수께서는 어떠한 부가적 지식을 들려 주셨읍니까?
65 화요일은 이 피곤할 줄 모른 분 같이 보이는 예수에게 또 다른 바쁜 날이었읍니다. 그분은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권위에 대하여 도전받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읍니다. 두 아들과 악한 농부들, 그리고 혼인 잔치에 관한 비유는 이들 불충실한 종교 지도자들에게 직접 적용시키신 것이었읍니다. (마태 21:23-22:14) 납세 문제와 부활 문제, 그리고 율법중에 가장 큰 계명이 어느 것이냐는 유도 질문을 받으셨을 때 예수께서는 반박할 수 없는 논증으로 그 모든 질문을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온전히 증명하셨읍니다. 그 다음 그분은 메시야가 누구의 자손인가를 물으셨으며, 이 질문은 그들을 아주 잠잠케 만들었읍니다.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마태 22:15-46) 이 때에 예수께서는 또한 위선적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통렬한 비난을 하셨으며, 이것은 가장 특출한 고발장이었읍니다.—마태 23:1-39.
66 예수께서는 성전 구역을 떠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는 예언을 하셨읍니다. 그 다음 그분과 사도들은 감람산으로 가셨으며,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에 관한 긴 예언과 열 처녀와 ‘달란트’의 비유 및 염소로부터 양을 분리시키는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마태 24:1-25:46.
67. 수요일은 어떤 흉악한 사건으로 기억에 남는 날입니까?
67 수요일에 예수께서는 ‘베다니’에 남아 계셨고, ‘예루살렘’에 있는 적들은 비밀리에 예수를 잡으려고 마귀의 영감에 의한 음모를 꾀하였읍니다. “그 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더라.]” 이 범죄 행위를 위하여 때에 알맞게 손쉰 도구로 나타난 것은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고 물은 ‘가룟 유다’였읍니다. 은 삼십으로 동의를 보았읍니다.—마태 26:3-16.
68. 목요일 해진 후에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68 목요일은 일년에 한번씩 오는 유월절 준비의 마지막 날이었읍니다. 해가 지자 저녁에 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이제 율법 언약 아래 마지막 법적 유월절이 될 그 절기를 기념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큰 다락방에 모였읍니다. 이것은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읍니까! 다시 해가 지기 전에 예수께서는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 불멸성을 취하기 위하여 자기의 지적 생명을 희생해야 하셨읍니다.—마가 14:12-16.
69. 마지막 유월절을 기념하신 후에 예수의 생애의 남어지 시간에 어떠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읍니까?
69 다락 객실에는 예수와 열두 사도들만이 조용히 있었읍니다. 이 밤은 하나님의 이 충성스러운 아들이 잠못자고 지루하게 보낼 밤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몇시간 동안 참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열세 사람이 유월절 식사를 합니다. 예수께서 사도들의 발을 씻기십니다. ‘유다’가 배반자임이 들어납니다. 그는 홀연히 나가 버립니다. 그다음 기념 만찬이 시작되었고, 충성스러운 열한명이 예수와 왕국 언약에 참예하도록 초대됩니다. 예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그다음 열한명과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으로 떠납니다. 거기에서 예수께서는 배반당하여 붙잡히시기 전에 강렬한 기도를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안나’에게서 ‘가야바’에게로, ‘산헤드린’으로, ‘빌라도’에게로, ‘헤롯’에게로, 그리고 다시 ‘빌라도’에게로 끌려 다니시며 조롱을 당하는 재판을 받으십니다.—마태 26:20-27:2; 누가 23:1-16.
70. 총독 궁전 밖에서 왕의 문제가 열띤 쟁점이 되었던 광경을 설명하십시오.
70 잠간 상상해 보십시오. 부르짖는 폭도와 조금도 겁없이 그들 사이에 조용히 서 계신 한 완전한 인간. ‘빌라도’는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묻습니다. 예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십니다. 아무 험도 발견하지 못한 ‘빌라도’는 다시 예수를 폭도 앞에 내어 주며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고 말합니다. 폭도는 “못박게 하소서” “못박게 하소서” 하고 외칩니다. ‘빌라도’는 “내가 너희 왕을 ··· 못박으랴?” 하고 묻습니다.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고 대답합니다.—요한 18:28-19:16.
71. 하나님의 무죄한 아들이 ‘로마’ 군대의 손에 죽임을 당하시는 광경을 설명하십시오.
71 매를 맞고, 가시로 찔림을 당하고, 뺨을 맞고, 침 뱉음을 당하신 이 의로운 사람은 형주에 못박혀 오랜 시간 사투를 계속하십니다. 마침내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금요일 오후 세시경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 하고 외치시면서 마지막 숨을 거두십니다.—마가 15:16-20; 요한 19:1-3, 30.
72, 73. 복습으로, 예수께서 이 지상에서 짧은 봉사 기간에 수행하신 일 얼마를 설명하십시오.
72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온전히 이루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고통받으신 일로 순종을 배우셨으며, 마귀가 거짓말장이임을 증명하셨으며, 우주 주권 문제에 있어서 여호와의 입증자로서 자격을 갖게 되셨읍니다. 그분은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하여 오셨으며, 그분은 바로 그 일을 하셨읍니다. 그분은 가난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셨으며, 슬픈 자들을 위로하셨고, 높고 낮은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나님의 신원 곧 복수의 날을 선포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선한 일을 하셨으며, 선한 일에 풍부하셨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시간과 정력을 가장 관대하게 사용하셨고, 위대하신 지식과 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으며 마침내 참다운 생명 즉 하늘에서 아버지와 함께 가지실 영원한 생명을 취하게 되셨읍니다.—요한 18:37; 디모데 전 6:12, 18, 19; 히브리 5:8.
73 예수께서는 또한 이 모든 일로써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도록 본을 남기셨읍니다.
[106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세번째 여행을 하여 “모든 성과 촌”을 방문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는 봉사를 강화하셨다
갈릴리
고라신
가버나움
벳새다
마가단
갈릴리 바다
가나
디베랴
에스드렐론 평야
나사렛
다볼 산
가다라
나인
요단 강
요단 건너 베다니
[107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예수께서는 아주 짧은 기간에 그것도 거의 걸어서 ‘베니게’에서 ‘데가볼리’에 이르기까지의 구역을 망라하셨다
지중해
베니게
시돈
두로
아빌레네
헤르몬 산
이두래
가이사랴 빌립보
드라고닛
갈릴리
고라신
가버나움
벳새다
가나
마가단
갈릴리 바다
디베랴
나사렛
나인
요단 건너 베다니(?)
사마리아
살림(?)
애논(?)
사마리아
그리심 산
야곱의 우물
데가볼리
다메섹
라바나(?)
힙포스
디온
가나사
가다라
아빌라(?)
씨도폴리스
벨라
게라사
마일 축척 0——10——20
[100면 삽화]
열 두살 되셨을 때 예수는 여호와의 전에서 듣기도 하고 질문도 하셨다
기원 29년에 침례를 받으시자 예수께서는 정력적인 봉사를 시작하셨다
[102면 삽화]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전을 장삿군의 집으로 만든 자들을 그곳에서 열심히 쫓아 내셨다
[103면 삽화]
예수께서는 어부 ‘야고보’와 ‘요한’을 자기 봉사에 수행하도록 부르셨다
[104면 삽화]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셨다
[105면 삽화]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청중에게 생각할 만한 많은 것들을 말씀하셨다
[106면 삽화]
여기 ‘바리새’인 집에서 있었던 바와 같이 식사시에도 예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깨어 계셨다
[109면 삽화]
예수께서는 봉사 마지막 기간에 증인들 서른 다섯쌍을 보내서 자기 앞의 길을 예비하게 하심으로써 자기의 활동을 확장시키셨다
[110면 삽화]
죽음을 당하시기 몇일 전에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시고 개선 행렬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으며, 온 시가 소동하였다
[112면 삽화]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험을 발견할 수 없었으나 폭도는 그를 “못박게 하소서” 하고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