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왕국을 선포하도록 기름부음받은 회중
1. 이천년 전에 세계 구원에 관한 어떠한 질문들이 있었읍니까?
오늘날 우리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질문들에 직면해 있읍니다. 그러한 질문들은, 만일 우리가 근 이천년 전에 중동에 살고 있었다면 직면하였을 질문들과 관계가 있읍니다. 당시 그러한 질문들은 세계적으로 중요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질문들은 세계의 구주 메시야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그분이 처음으로 나타나기에 합당한 때였읍니다. 그러므로 관심가진 사람들은 그분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었읍니다. 그분이 출현하시면 그분은 온 세계 인류로부터 환호를 받으실 것이었읍니까? 아니면 그 때에 임명받은 일을 수행하심으로 그들을 실망시킬 것이었읍니까? 누가 그분을 성경이 예언한 바대로 행하신 메시야로 확신하고 그분을 자기들의 인도자로 삼고 추종할 것이었읍니까? 누가 그를 보고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그분에게 이끌릴 것이었읍니까? 오늘날 누가 세계를 구원하시는 메시야에게 이끌리고 있으며, 어떻게 이끌리고 있읍니까?
2. (ㄱ) 하나님의 “여자”의 “씨”의 주된 분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었읍니까? (ㄴ) 여자의 “씨”의 다른 구성원들은 누구일 것이었으며,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을 것이었읍니까?
2 오늘날 우리가 안전한 인도를 받기 위하여, 참 메시야는 하나님의 “여자”의 예언된 “씨”의 주된 분이며 큰 뱀 ‘사단’ 마귀에게 ‘발꿈치를 상함’받게 되어 있었음을 기억합시다. “여자” 즉 “씨”의 어머니는 거룩한 영물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아내같은 천적 조직입니다. 여자의 약속된 “씨”는 그 여자의 아들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가운데서 주된 분은 메시야이고 다른 구성원들은 그분의 영적 추종자들입니다. 여자의 “씨”의 이들 차등 구성원들에 대한 언급을 우리는 상징적 “여자”에게 주어진 이사야 54:13의 말에서 볼 수 있읍니다. “네 모든 자녀[아들들, 신세]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아들들, 신세]는 크게 평강할 것[이니라.]” 적절하게도, 여자의 천적 남편이며 “씨”의 아버지이신 여호와로부터 “자녀”들이 가르침을 받을 것이었읍니다.—이사야 54:5.
3. 예수께서는 이사야 54:13의 “자녀”라는 말을 누구에게 적용시키셨으며,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데 이들은 현재 어떻게 가르침을 받고 있읍니까?
3 여자의 “씨”의 주된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 54:13에 있는 여자에게 주어진 말을 적용시키셨읍니다. 무엇과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메시야인 자기에게 이끌리지 않고 투덜거리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여호와, 신세]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요한 6:44, 45) 물론, 여호와께서는 누구에게도 보이는 선생님이 아니시지만, 그분은 우리에게 영감받은 교과서를 마련하여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의 성령의 작용을 통하여, 그분은 자기의 “여자”의 메시야 “씨”에 관한 사실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분은 “씨”의 차등 구성원들을 으뜸 “씨”이신 메시야에게 이끄셨으며 한 회중을 구성하셨읍니다.
4. 예수의 공적 봉사의 세째 해가 되어서는,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사도들의 견해와 일반 사람들의 견해가 어떻게 대조를 이루었읍니까?
4 예수의 공적 봉사의 세째 해인 그 때쯤에는 ‘유대’인들은 기적을 행하시는 이 분이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는 분인가에 대한 어떤 결정을 했어야 하였읍니다. 그들 중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메시야와 관련하여 자기들이 “여호와의 교훈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냈읍니까? 예수께서 이에 대하여 자기의 사도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신 것은 시기에 적절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읍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이 대답했읍니다. ‘대개는 세례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 다시 살아 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읍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읍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그리스도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엄히 명령하시고 ‘인자가 큰 고난을 겪어야 하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읍니다.”—누가 9:18-22, 새번역; 또한 마가 8:27-32 비교.
5. 마태복음 16:16-19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질문에 대답한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5 사도 ‘마태’의 기록은 그 문제를 확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하데스’의 문들, 신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압도하지 못할 것이다, 신세].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 16:16-19.
6. ‘베드로’가 “반석”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지 않았음을 무엇이 증명하며, ‘바울’은 “반석”이 누구라고 말하였읍니까?
6 ‘베드로’에게 주어진 이 칭찬의 말로 볼 때에, ‘베드로’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고 그분으로부터 배웠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께 이끌렸고, 그분을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그분께 왔읍니다. ‘베드로’의 이름은 “돌” 혹은 “돌 조각”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께서 그분의 회중을 세우는 데 사용할 기초로서의 “반석”이 ‘베드로’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읍니다. 또한 “반석”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한 ‘베드로’의 신앙 고백도 아니었읍니다. “반석”은 예수 자신이었읍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지 않았읍니다. 베드로 전서 2:4-10에 의하면, 그는, “반석”(희랍어, ‘페트라’)이 자신이라고 결코 주장하지 않았읍니다. 더우기, ‘베드로’가 영감받은 성경의 일부로 인정한 사도 ‘바울’의 기록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인들이]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린도 전 10:4; 베드로 후 3:15, 16.
7, 8. (ㄱ) 사도들은 메시야 왕국이 어떠한 왕국일 것으로 잘못 생각하였읍니까? (ㄴ) 천국의 “열쇠”는 누구에게 주어졌으며, 그러나 회중은 누구 위에 세워질 것이었읍니까?
7 예수께서 왕국에 관하여 그분의 사도들에게 말씀하셨을 때에, 그들은 ‘다윗’ 왕이 통치하던 ‘예루살렘’에 수도를 둔 정부를 기초로 하는 왕국을 생각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시므로 ‘다윗’ 왕의 계승자로서 ‘예루살렘’에 그분의 정부를 수립하실 것으로 기대하였읍니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였었다는 증거로, 그들은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신 예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질문한 바 있읍니다. (사도 1:6) 기원 33년 오순절이 되기 전 한 동안 그들은 일으킴받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지적 ‘이스라엘’ 나라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다스리는 초인간적인 왕국일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 후에, 예수께서 “천국” 문제를 논제로 삼으신 것은 매우 적절하였읍니다.
8 그분은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고 계셨읍니다. (마태 16:19) 그러나, 회중은 왕이신 “반석” 즉 메시야 왕 위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질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하데스’의 문”들이 기초인 “반석”을 압도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째날 무덤에서 일으킴을 받으실 것과 같이, “‘하데스’의 문들”은 메시야의 회중을 압도하지 못할 것이었읍니다. 회중도 역시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회중을 보이지 않게 돕는 자
9.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함께 모여 무엇을 구성할 것이었으며, 그러나 그들은 또한 고대 ‘이스라엘’과 같이 무엇이 될 것이었읍니까?
9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달리,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께서 여호와의 목적 안에서 어떠한 분인가에 대해 혼동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받아 들인 ‘이스라엘’인 개개인들은 함께 모여 새로운 민족을 구성할 것이었읍니다. 이 민족은, 고대 ‘이스라엘’과 같이, 한 회중이 될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메시야 왕과 그의 왕국을 선포하는 회중이 될 것이었읍니다!
10. 베드로 전서 2:8-10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그 주목할 만한 사실을 지적하였으며, 선포되어야 할 “아름다운 덕” 가운데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읍니까?
10 “여호와의 교훈을 받”은 사도 ‘베드로’는 바로 이 주목할 만한 사실을 배워 알았읍니다. 그가 동료 신자들에게 쓴 마지막 말 가운데는 이러한 말이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이는 저희[믿지 않는 ‘이스라엘’인들]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 전 2:8-10) 그 기이한 분의 “아름다운 덕” 가운데는 그분의 아들 메시야를 배척하는 자들의 어떠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메시야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는 능력이 포함될 것입니다. 그분의 “소유된 백성”은 그분의 메시야 왕국에 대하여 여호와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이사야 43:21.
11, 12. 왜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돕는 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예수께서는 돕는 자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1 그 새롭고 “거룩한 나라”는 적의의 세상 가운데서 그러한 의무를 스스로의 힘으로 수행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적들에게 체포되어 연행되기 전에 그분의 충실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너희를 ··· 버려두지 아니하고 ··· 보혜사[돕는 자, 신세]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또한,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돕는 자]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니라.”—요한 14:18, 26; 15:26, 27.
12 예수께서는 또한 이렇게 부언하셨읍니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돕는 자]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도착하면, 신세]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요한 16:7, 13-15.
“돕는 자” 곧 성령의 도착
13. 약속된 “돕는 자”는 누구의 이름으로 보내질 것이었으며, 누구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보내질 것이었읍니까?
13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사도들에게 그 약속을 하시기 거의 오백년 전에, ‘예루살렘’의 총독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하신 일에 관한 기도를 기록하였읍니다.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또 선지자로 말미암아 주의 신[영]으로 저희를 경계하[셨나이다.]” (느헤미야 9:30) 그리고 이제, 예수 메시야께서 그분의 제자들로부터 육체적으로 떠나 계시는 동안에, 여호와 하나님의 그 동일한 영이 그들을 도울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단지 예수의 이름으로만 그들에게 보내질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예수가 참 메시야의 이름임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보내질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언제 처음으로 보내졌읍니까?
14, 15. (ㄱ) 예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에게 ‘요한’의 침례와 다른 무엇을 약속하심으로 부활 후 사십일간의 절정을 이루셨읍니까? (ㄴ) 이 약속된 침례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있을 것입니까?
14 기원 33년 ‘니산’월 16일 일요일에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신 후 사십일 동안, 그분은 이곳 지상에 계셨지만, 보이지 않으셨읍니다. 때때로, 그분도 고대의 거룩한 천사들과 같이, 인간의 형체로 물질화하여, 그분의 제자들에게 자기가 참으로 죽은 자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셨다는, 그러나 영으로 일으킴을 받으셨다는 증거를 보이셨읍니다. 그들에게 그처럼 나타나실 때에 그분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읍니다. (사도 1:1-3) 사도들 중 일부는 침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었읍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사십일째 되는 날 즉 그분이 승천하시던 날,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분의 제자들의 기대를 부풀게 하셨읍니다.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사도 1:4, 5) 회개하는 ‘유대’인들에게 베푼 ‘요한’의 침례는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그들의 죄에 대한 회개를 상징하였읍니다.
15 그러한 물 침례는 그들에게 선한 양심과 아울러 안도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제자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면 어떠한 영향을 받을 것이었읍니까? 그것은 활기를 돋우어 줄 것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성령은 그분의 거룩하고 보이지 않는 활동력이기 때문입니다.—마태 3:11.
16. 사도행전 1:6-8에 있는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성령은 그들로 무엇을 하도록 활기를 줄 것이었읍니까?
16 하나님의 성령은 도착하면 그것을 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게 할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자기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 1:6-8) 그러한 말 속에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읍니다. 즉, 그것은 성령을 받는 사람들이 예수께서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세계적으로 증거하도록 활기를 돋우어 줄 것이라는 것입니다.
17. 부활하신지 오십째 날, 어떠한 환경하에서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그분의 약속이 성취되었읍니까?
1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읍니다. 열흘이 경과하였읍니다. 부활하신지 오십째 날이 도래하였읍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의 칠칠절 즉 오순절(“제 오십째 날”을 의미함)이 진행 중이었읍니다. 아침 일찍 약 백 이십명의 제자들이 절기를 지키는 성전이 아니라 다락방에 모여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 2:1-4.
18, 19. ‘베드로’가 설명한 바와 같이, 오순절 날에 어떠한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예언이 있은지 얼마 후에 성취되었읍니까?
18 마침내, 요엘 2:28-32의 예언은, 그 예언이 있은지 8백여년 후에,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다. 놀란 ‘유대’인들은 그 사건을 보기 위하여 모였읍니다. 일부 사람들은 제자들이 술에 취하였다고 주장하였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담대하게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19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사도 2:16-21.
20. 거기에서 어떠한 침례가 있었으며, ‘베드로’는 그 침례를 베푸는 데 사용된 분을 누구라고 밝혔읍니까?
20 성령 안의 침례는 예수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이루어졌읍니다. 영이 ‘부어진다’는 표현은 그것이 침례를 위한 액체와 같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침례자 ‘요한’에게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 줄 알리기 위하여 예수에 대한 표를 주셨음을 기억합니다. (요한 1:33) 이 사실과 일치하게, 사도 ‘베드로’는 영광받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대행자였다고 밝혔읍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오순절을 축하하는 그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사도 2:32, 33.
21. ‘베드로’는 영광받으신 예수께서 부어 주신 것을 그들이 보고 들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었읍니까?
21 그들은 성령의 작용을 보고 들었읍니다. 즉 제자들의 머리 위에 있는 불길같은 혀를 보았고 제자들이 기적으로 말하는 외국어를 들었읍니다.
22. 물에서 침례를 받고 난 후의 예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것과 일치하게, 제자들에게 그 때에 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22 그러나, 그 오순절 날,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 안에서 침례를 받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을 성령으로 기름붓는 일도 있었읍니다. 예수께서 물에서 침례를 받고 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그리스도 혹은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신 것 같이, 그분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읍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고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23. 또한 ‘바울’이 고린도 후서 1:21, 22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제자들은 무엇으로 인을 받았읍니까?
23 더우기, 그들은 장차 받을 영적 유산의 상징으로서 그 영으로 인을 받았읍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고대 희랍의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이렇게 편지한 사실과 일치합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린도 후 1:21, 22.
24. 사도 ‘요한’은 요한 1서 2:20, 27에서 기름부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기술하였읍니까?
24 성령이 부어지던 그 오순절 날 거기 있었던 사도 ‘요한’은 발생된 일을 이해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동료 신자들에게 이렇게 썼읍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한 1서 2:20, 27.
성령으로 출생함
25.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이 천적 유산을 바라보려면, 그에게 성령의 어떠한 작용이 있어야 하였읍니까?
25 하나님의 활동력의 이러한 작용에는 또 다른 면이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 3:3, 5) 천적 유산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은 물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그의 주인 예수를 본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대한 자신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마태 28:19, 20) 그러나 그 사람에 대한 성령의 작용이 또한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5:50에서 기술하였듯이,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6. 사도 ‘요한’은 기름부음에 대하여 쓴 후에, 기름부음받은 자들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26 만일 제자들이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갈 대열에 서려면, 그들은 “거듭 나”야 하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자신의 경우에서와 같이,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아들입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기름부음을 받은 사도 ‘요한’은 기름부음에 대하여 말한 후, 요한 1서 3:1-3에서 이렇게 계속 말합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27. 인간 부모는 그리스도인이 “거듭 나”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 요한복음 1:11-13에 어떻게 지적되어 있읍니까?
27 인간 부모는 사람이 “거듭 나”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읍니다. 사람은 자신의 확신에서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 들이고 그분을 하나님께서 천적 메시야 왕국의 왕으로 기름부으셨음을 인정하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다음에, 그러한 그리스도의 추종자를 성령으로 나게 할 것인지는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읍니다. 인간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 갈 자녀를 출생시킵니다. 사도 ‘요한’이 말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십구 세기 전에 ‘유대’ 나라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한 1:11-13) 하나님께서 낳으심으로 그들은 그분의 영적 아들들이 됩니다. 그분은 그들을 모태에서 낳게 하시지 않습니다.
“새로운 피조물”
28. 하나님을 위한 영적 자녀들을 둘 것을 결정하시는 분은 누구이며, 한 가지 의미에서 이들은 어떻게 “피조물의 첫 열매”입니까?
28 인간 부모는 자기들의 혈육의 자녀를 두는 데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누구를 천적 유산을 받을 영적 아들로 출생시킬 것인가를 결정하십니다. “그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읍니다. 우리를 피조물의 첫 열매로 삼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제자 ‘야고보’는 그가 “흩어져 사는 열 두 지파”라고 칭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게 썼읍니다. (야고보 1:1, 18, 새번역) 농업에서, “첫 열매”는 새로운 수확에서 골라지며, 거룩하고 하나님께 합당한 것으로 하나님께 바쳐집니다. 그러면 그 영적인 첫 열매는 누구입니까? 천적 아버지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게 하신 자들입니다. 그분은 바로 이들을 인류 가족 가운데서 뽑아 천국 반열로 삼으십니다.
29. 베드로 전서 1:3, 4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들어 가려면 무엇이 요구됩니까?
29 그 “첫 열매” 반열에게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썼읍니다. “너희가 거듭 난 것[새로 남, 신세]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 전 1:23) 그리스도인이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는 “새로 남” 혹은 “거듭 남”이 요구되었읍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 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베드로 전 1:3, 4; 또한 요한 1서 3:9 참조.
30, 31. (ㄱ) “아들의 명분”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엇이라고 외칩니까? (ㄴ) 아들의 명분을 가진 사람들은 어떠한 언약 안에 있으며 어떠한 나라를 형성합니까?
30 “아들의 명분”을 받은 ‘로마’의 ‘갈라디아’ 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라디아 4:5-7.
31 ‘바울’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은 예언자 ‘모세’를 중보로 한 율법 언약 아래 더 이상 있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이며 ‘모세’보다 더 큰 예언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는 “새 언약” 안에 있게 되었읍니다. 그 새 언약은 ‘모세’의 구 율법 언약이 산출하지 못한 것 즉 “제사장 나라 ··· 거룩한 백성”을 산출합니다. (출애굽 19:5, 6; 히브리 8:6-13; 디모데 전 2:5, 6) 그러므로 그 새 언약 안에 있는 “거룩한 나라”는 내적으로 ‘유대’인 즉 ‘이스라엘’인들인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이들은, 외적으로 육체의 할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에 할례를 받았읍니다. 로마서 2:28, 29에서 그러한 내용을 읽을 수 있읍니다.
32. 고린도 후서 5:16-18에 의하면, 왜 우리는 아무 그리스도인도, 심지어 그리스도 자신도, 육체대로 알지 않습니까?
32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에 대한 이 모든 새로운 특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도 ‘바울’이 “새로운 피조물”에 대하여 말한 모든 것에 대해 놀랄 이유가 있읍니까? 아닙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천적인 영적 아들로 일으킴을 받으신 사실로부터 추론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그리스도인]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느니라.]”—고린도 후 5:16-18.
33. 천국에 들어가려면 육적인 할례가 필요합니까? 아니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33 이 모든 사실로 볼 때, 사람이 족장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으로 혹은 선천적인 ‘유대’인으로 육적인 할례를 받는 것은 우리가 메시야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기 위한 요구 조건이 아닙니다. 하늘로 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경우, 참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영감받은 사도 ‘바울’은 이러한 솔직한 말로 대답합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찌어다.” (갈라디아 6:15, 16) 이 “하나님의 ‘이스라엘’” 전체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34. 육적 할례가 영원한 구원에 필요한지의 여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안디옥’ 회중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34 오늘날 육적인 할례를 받는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인 영감받은 사도 ‘바울’의 그러한 말을 반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망, 부활 및 승천 후 16년 동안에도, 영원한 구원을 얻는 데 육적인 할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운 곳인 ‘시리아 안디옥’에서 그러하였읍니다. (사도 11:26) 그래서 어떻게 하였읍니까? ‘안디옥’ 회중은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그의 선교인 동료 ‘바나바’와 몇몇 다른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냈읍니다. (사도 15:1, 2) 그러므로 ‘예루살렘’ 회중의 사도들과 장로들의 회의가 열렸고, 그리스도를 믿는 비‘유대’인 신자들이 외적으로 육체에 할례를 받을 필요가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였읍니다.
35. ‘예루살렘’ 회의가 발표한 결의 사항과 성령은 어떠한 관계가 있었으며, 결의 사항의 내용은 어떠한 것이었읍니까?
35 마침내, 그 문제에 관련된 많은 토론과 증거 제시가 있은 후, 제자 ‘야고보’는 아모스 9:11, 12 즉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았고 성령의 인도하에 이미 성취되고 있던 적절한 말씀에 주의를 이끌었읍니다. 명백히 이것은, 외부적인 육체의 할례가 열방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택함을 입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필요하지 않다는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였읍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성령은, ‘야고보’의 정신에 이 결정적인 귀절을 상기시켰고 또한 ‘예루살렘’ 회의에서 발표한 결의문에 포함시킬 두드러진 점들을 추천하는 데 있어서 그를 인도하였읍니다. 그 회의의 결의 사항은 이러하였읍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사도 15:3-29; 21:25)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천적 유산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외부적인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임이 결론으로 내려졌읍니다.
36. 영으로 출생한 회중은 기름부음을 받았으므로 어떠한 임무를 수행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와 관련하여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36 당시 기원 제1세기에, 그리스도인 신자들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에 대하여 즐거워하였읍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도 그 영감받은 결정에 대하여 즐거워할 수 있읍니다. 성경으로부터 우리는, 영으로 출생한 “새로운 피조물”인 그리스도인 회중은 그 회중의 으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회중은 그 기름부음이 그들에게 위임하는 것 즉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할 의무가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이 의무를 회피하지 않고 그분의 모든 추종자들을 위해 본을 보이셨읍니다. (이사야 61:1-3)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로서 그들은 그분으로부터의 “아름다운 소식”으로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하여 여호와의 교훈을 받고 있읍니다. (이사야 54:13) 여호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본과 말씀으로,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만방에 알려야 할 생명을 구하는 소식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임을 가르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