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고난 중”에 있는 미망인들과 고아들을 도와줄 수 있는가?
1, 2. (ㄱ) 고난 가운데 있는 사람을 “방관하는 것”과 “돌보는 것”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읍니까? (ㄴ) 야고보서 1:27에 의하면 참 숭배는 어떠한 책임을 갖게 합니까?
고난에 처한 사람을 방관하는 것과 그를 돌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읍니다. 참 숭배는 동료 신자들에 대하여 무관심한 관찰자가 아니라 도움을 베푸는 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신앙[참 숭배, 신세]은 고난 중에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 주며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야고보 1:27, 새번역.
2 야고보서 1:27에 나오는 “돌보아 주다”라는 원 희랍어는 ‘간호하는 것, 부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희랍어는 사람을 방문해서 필요한 도움을 베푸는 것을 생각나게 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도움을 받은 사람은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가치있는 도움을 베풀 수 있다
3, 4. (ㄱ) 디모데 전서 5:4에 의하면 미망인들을 돕는 데 염려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ㄴ) 홀어버이 밑에 있는 자녀들은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으며, 이 자녀들이 받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3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미망인들을 돕는 데 관하여 누가 마땅히 염려해야 할 것인가를 지적하였읍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디모데 전 5:4) 이 교훈은 성장한 자녀들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린 자녀들도 자기들을 위하여 그렇게도 수고해 온 부모에게 “보답”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전념을 나타내는 것을 배울 수 있읍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떤 소년들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하였읍니다. 한 소년은 틈틈이 일해서 모은 돈 전액을 예기치 않았던 비용에 쓰도록 내놓았읍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쁨에 넘친 얼굴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열네살된 아들로부터 이런 도움을 받게 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격려가 됩니다.”
4 돈으로 도움을 베풀 수 없는 자녀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훨씬 더 중요한 것—감사와 순종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잠언 23:22; 에베소 6:1-3) 대부분의 홀어버이들은 이렇게 자문합니다. “나는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가?” 어린 자녀가 혼자된 아버지에게 “저는 아빠를 사랑해요. 아빠가 얼마나 애를 쓰시는가를 잘 알고 있어요” 하고 쓴 ‘카아드’를 보았을 때 그 아버지의 즐거움이 어떠하였겠는가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이 홀어머니나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고 있는 자녀라면 당신이 그분의 노고에 대하여 감사한다는 말을 최근에 한 일이 언제였읍니까? 당신은 잘 순종합니까? 설겆이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숙제를 하고, 제시간에 집에 돌아오고, 청소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규칙적으로 성서 연구를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합니까? 이런 자진적인 순종은 홀어버이를 받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법입니다.
회중이 도울 수 있는 방법
5. (ㄱ) “동정”을 나타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이것은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ㄴ) 우리 회중은 홀어버이에게 어떻게 그러한 동정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5 열일곱달된 쌍둥이를 포함하여 여섯명의 자녀를 가진 한 홀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때로는 지쳐버리는 수가 있읍니다. 그러나 때때로 [회중에 있는] 형제나 자매가 ‘자매는 참으로 장합니다. 반드시 그만한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읍니다. 나에 대하여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 때 큰 도움이 됩니다.” 이것을 볼 때 누구나 다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권고하였읍니다. “여러분은 모두 한 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자비심을 가지[시오.]” (베드로 전 3:8, 새번역)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십시오. 친절한 한 마디의 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미소가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읍니다. 비평적이 아니라 부드러운 인정을 나타내도록 하십시오.
6. 요한 1서 3:17에 묘사된 바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왜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비난받을 만한 사람입니까?
6 진정한 사랑은 친절한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으로 행하라고 권고하기 바로 전에 이렇게 썼읍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요한 1서 3:17) “보고도”라는 말의 원 뜻은 무심결에 흘긋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살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은 군대에서 시찰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시찰하는 사람은 자세한 점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볼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그린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도울 힘이 있는 사람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의 형제를 조심스럽게 살펴 본 후에 그의 마음의 문을 닫고 잠가버립니다. 그는 도움을 베풀기를 거절합니다. 얼마나 냉정한 일입니까! 다행히도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는 이러한 부정적 반응이 거의 없읍니다. “궁핍”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도움을 베푼 보고는 수없이 많습니다.
7. 궁핍한 홀어버이 가족이 소홀히 다루어지는 경우는 보통 어떠한 문제 때문이며, 어떻게 함으로 이것이 극복될 수 있읍니까?
7 그러나 소홀히 한 경우들도 있었읍니다. 그런 일이 있는 이유는 보통, 도움의 필요성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이 관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회중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미망인들과 고아들의 형편을 잘 알고 있읍니까? 그들에게 무심결에 인사 정도로 그치지 않고 관심을 기울인 적이 언제였읍니까? 그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도록 식사나 사교적 모임에 그들을 초대한 일이 있읍니까? 우리가 참으로 홀어버이 가족의 상황을 ‘보’고 있는지를 살피려면 이러한 질문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8. 회중 내의 일부 사람들은 궁핍한 홀어버이 가족을 어떻게 도왔읍니까?
8 도움을 베푸는 데 큰 재산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참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얼마의 음식을 나누어 먹거나 자기의 자녀들이 자라서 못입게 된 옷을 주기도 하였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홀어머니에게 양재와 같은 기술을 가르쳐 줌으로 살림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하였읍니다. 옛 속담에 “한 마리의 생선을 주면 하루를 먹지만 고기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평생을 먹는다”는 말이 있읍니다. 한 홀어머니는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한 자매는 나에게 재봉틀과 얼마의 옷감을 주었고 또 재봉 기술을 가르쳐 주었읍니다. 그 후에 상당한 돈을 절약해 왔읍니다.”
9. 다른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받는 것에 관하여 홀어버이 가족들은 어떠한 균형 잡힌 견해를 가져야 합니까?
9 그러나 홀어버이들은 보통 도움의 “홍수”를 기대하고 도움이 그렇게 들어오지 않으면 실망해야 합니까? 여기에도 균형잡힌 견해가 필요합니다. 받는 도움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나는 내 처지에 합당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한 홀어버이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무도 가외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없읍니다. 자기 자신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전적인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이 두 발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성서에는 다른 사람들의 봉사를 기대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충실한 미망인들의 본이 있읍니다. (누가 2:36-38; 마가 12:42-44) 두 자녀를 키우기 위하여 여러 해 동안 많은 고생을 한 가난한 한 홀어머니 방에는 이러한 패가 걸려 있었읍니다. “다른 사람의 생애에 햇빛을 비추어 주는 사람은 그것을 자기에게만 간직할 수 없다.” 12년간이나 전 시간 복음 전도자로서 봉사해 온 그 부인은 바로 그런 일을 했읍니다. 이 부인은 열심히 일했고, 지금 73세가 되어서도 아직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고 있읍니다. 그 결과 이 부인은 결코 궁핍이라는 것을 몰랐읍니다.—잠언 11:25.
10. 장성한 자매들이 제1세기 미망인들과 고아들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0 제1세기에 장성한 여자들이 틀림 없이 미망인들과 고아들을 돕는 일에 큰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어떤 미망인들은 아마도 홀어머니 가족들을 포함해서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읍니다. (디모데 전 5:10)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서 사도 ‘바울’이 문안한 사람들의 사분의 일은 회중과 함께 혹은 회중을 위하여 충실하게 봉사한 여자들이었읍니다. 어떤 여자들은 직접적으로 “주 안에서” 수고한 것으로 언급되었읍니다. (로마 16:3-15) “교회의 일군”인 ‘뵈뵈’(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궁핍을 돌보는 일을 비공식적으로 한 것 같다)는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고 묘사되어 있읍니다. 의심할 바 없이 이 여인은 솔선해서 “여러 사람”을 도와서 회중을 튼튼하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뵈뵈’처럼 장성한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그들의 물질을 사용해서 “환난당한 자들”을 도와주는 일을 포함해서 사랑의 격려와 도움을 베풉니다.—로마 16:1, 2.
11. (ㄱ) 장성한 자매들은 홀어머니들에게 어떠한 종류의 도움을 베풀 수 있읍니까? (ㄴ) 어떠한 예를 들 수 있으며, 여러분이 알고 있는 다른 예들이 있읍니까?
11 많은 연로한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므로 영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도움을 베풉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이해성있는 충고를 줌으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할 수 있읍니다. (디도 2:3-5) 한 예로서, 한 홀어머니는 결혼 생활에 관한 성서 강연을 들은 후 눈물을 흘리고 있었읍니다. 연로한 그리스도인 자매가 무슨 일인지를 물었읍니다. “나 자신이 서글퍼서 그러겠지요”라고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였읍니다. 이 연로한 자매는 그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 자매는 이 우울한 자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읍니다. 이 연로한 자매는 일찌기 20년간이나 남편에게 버림을 받은 생활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젊은 자매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연로한 자매는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읍니다. 나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려 주었고 함께 전도 봉사에 참여하도록 초대해 주었읍니다. 나에게 큰 사랑을 베푸는 분이었읍니다.” 많은 장성한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이러한 젊은 여자들을 접근하여 모든 하소연을 들어주는 상대가 되어 주었고, 심지어 그리스도인 남자들이 올바로 다루기 어려운 매우 사적인 문제들까지도 이야기하여 도움을 베풀 수 있었읍니다.
장로들이여—‘미망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라’
12. 장로들은 어떻게 ‘미망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읍니까?
12 그리스도 전 시대의 ‘욥’은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욥 29:13) 그는 미망인들이 경험하는 고통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는 생각없는 말이나 행동으로 그 고통을 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회중의 장로들도 그러한 미망인들에게 회중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가족이라는 것을 재확인시키고 그들로 그 가족의 한 부분임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감독자들은 충실함으로 얻게 될 축복을 알게 하는, 위안이 되는 성귀를 보여줄 수 있읍니다. “동정”을 갖는다면 많은 홀어머니들이 당하는 허다한 감정적 그리고 정신적 압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 전 3:8) 따라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그들에게 와서 도움을 받고자 할 것입니다. 이들 영적인 사람들 각자는 참으로 “폭우를 가리우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입니다.—이사야 32:1, 2.
13. 홀어버이들은 왜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장로들에게 가까이 가서 도움을 얻는 것이 좋으며, 어떤 종류의 도움이 주어져야 합니까?
13 성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고대 백성 사이에 유능한 “모사들” 곧 고문들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하였읍니다. (이사야 1:26)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홀어버이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충고를 얻기 위하여 장로들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장로들에게 접근하면 장로들은 고려되는 문제와 관련된 성서 원칙을 인정하도록 묻는 사람을 도와 “도략” 즉 “기술적인 지도”를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장로이든지 또는 다른 사람이든지 도움을 요청받은 사람의 역할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고문’이 되는 것입니다.—잠언 11:14, 신세; 갈라디아 6:5.
14. (ㄱ) 장로들은 왜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을 “바로잡아” 주려고 해야 합니까? (ㄴ) 제1세기에 “바로잡다”라는 희랍어가 어떻게 사용되었으며, 이런 뜻을 이해함으로 ‘바로잡는’ 일을 어떻게 행해야 합니까?
14 어느 홀어버이가 압력을 받아 믿지 않는 자와 ‘데이트’하는 것과 같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장로가 알게 되는 경우가 있읍니다. 당사자는 그런 길의 심각성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수가 있읍니다. 그래서 성서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들이여,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잘못을 저지를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영적 자격을 가진 여러분은 온유한 정신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 잡아 주려고 하십시오.” (갈라디아 6:1, 신세) 그렇게 해서 장로들과 다른 사람들은 제멋대로 걸어가는 “잘못”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잡다”라는 희랍어는 또한 ‘깁다’ 혹은 ‘수리하다’로 번역됩니다. (마가 1:19) 제1세기에 그 말은 부러진 뼈를 맞추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읍니다. 의사는 뼈를 맞추는 데 어느 정도 압력을 가해야 할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조심스럽게 할 것입니다. 목적은 상한 것을 고치는 데 있고 악화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를 원하는 장로들은 “온유한 정신으로” 그 사람과 이유를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추리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충고를 적용하는 것이 그에게 최선의 유익이 되는 이유를 이해하도록 도와서 영적으로 고침을 받게 할 것입니다.
15. (ㄱ) 장로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미망인들을 위하여 어떻게 조직하는 일이 필요할 경우가 있읍니까? (ㄴ) 장로들은 왜 회중 내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읍니까?
15 때때로 장로들은 외로운 미망인들을 돕기 위하여 조직해야 할 경우가 있읍니다. ‘트리니다드’에서 79세 된 미망인이 치명적인 암으로 심각하게 앓아 누어 이십사 시간 돌봄이 필요하였읍니다. 이 노인은 정부로부터 소액의 양로 연금을 받고 있었지만 아무도 돌보아 줄 친척이 없었읍니다. 장로들은 소수의 자매들만 책임을 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도움을 베풀기를 자진한 그리스도인 여자들의 ‘팀’을 조직했읍니다. 이들은 6개월 이상이나 이 영적 자매를 위하여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이곳 저곳으로 옮기는 일을 하고 세탁을 하고, 심지어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목욕을 시키는 일까지 하였읍니다. 이것은 이웃 사람들을 진실로 감명케 한 사랑의 본이었읍니다. 이런 경우 장로들이 필요한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에게도 보통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며, 이러한 환경에서 도움을 베풀려는 자진적인 사람들이 있을 때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형제들이여—‘고아를 건져 주라’
16. (ㄱ) 아들들에 대한 홀어머니들의 큰 염려는 무엇입니까? (ㄴ) 누가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어떻게 그러합니까?
16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홀어머니는 자연히 가정에서 특히 아들들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것을 염려하게 됩니다. 회중내에 있는 남자들은 마땅히 ‘욥’과 같이 느껴야 합니다. 그는 “내가 ···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욥 29:12) 흔히 필요한 것은 진실한 관심입니다. 이런 소년들을 초대해서 당신과 함께 증거에 참여하도록 하거나 왕국회관에서 있는 일 혹은 심지어 건전한 오락까지도 함께 즐길 수 있읍니다. 이러한 관심은 세상적인 길로부터 그 소년을 “건져”내서 그를 회중 안으로 이끌 수 있읍니다.
17. (ㄱ) 누가 ‘고아를 건져내는’ 데 좋은 본이 되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다른 자녀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데 있어서 결혼한 형제들은 무엇을 고려해야 합니까?
17 사도 ‘베드로’는 ‘고아를 건진’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요한 마가’를 “내 아들 ‘마가’”라고 부를 정도로 그와 친했읍니다. (베드로 전 5:13)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혼자 된 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기록을 보면 ‘베드로’가 그의 아버지 집이 아니라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12:12) 틀림없이 ‘마가’가 ‘베드로’와 기타 그리스도인 남자들과 가졌던 훌륭한 영적 교제는 그가 선교인이 되고 성서를 기록하기까지 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홀어머니의 양육을 받는 환경에 있는 소년들에게 좋은 본이 됩니다. 결혼한 형제들은 누구나 자기 가족을 첫째로 돌보아야 할 성경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 가족”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이들 고아들에게 유익하고도 환경이 허락하는 한도내에서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많은 유익이 될 수 있읍니다.—디모데 전 5:8.
그러한 도움의 기초—자기 희생적 사랑
18. (ㄱ) 순수한 그리스도교를 알아내게 하는 것은 어떠한 사랑이며, 예수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18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분을 알리는 표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희생적 사랑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 13:34, 35) 예수께서 자신을 내주신 본이 표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읍니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읍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이러한 사랑의 형태의 본을 따름으로써만 미망인들과 고아들이 “고난 중에” 필요한 돌봄과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읍니다.—로마 15:3; 고린도 후 8:9, 새번역; 갈라디아 1:4; 야고보 1:27, 새번역.
19, 20. (ㄱ) 자기 희생적 사랑을 나타내기가 언제나 쉬운 일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특히 누구를 돕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19 압력이 심해 가고 우리 자신의 문제를 돌보기가 점점 어려워짐에 따라 다른 사람들의 곤경에 대하여는 무감각해지고 우리 자신의 문제에만 몰두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심지어 제1세기에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을 받”은 일부 사람들에게 “더욱 더 그렇게 하기”를 권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4:9, 10, 새번역) 우리는 불행한 환경에 처해 있는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솔직하게 검토해 보아야 하지 않겠읍니까? 예수께서 나타내신 바와 같은 사랑은 우리도 우리의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희생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이라도 기꺼이 버려야 한다면 ‘우리의 형제가 궁핍함을 보’았을 때 우리의 “양식”을 나누어 먹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느껴야 하겠읍니까?—요한 1서 3:17.
20 우리 모두가 우리의 성경적 책임을 돌보는 데도 매우 바쁩니다. 우리는 좀 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여 기꺼이 한다면 여호와께서 우리의 한계를 아시므로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승인하실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라디아 6:10.
환난을 인내하는 데 모두 함께 노력하자
21. (ㄱ) 홀어버이들은 오늘날의 압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ㄴ) 회중내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으며, 이러한 도움을 베푸는 일은 중요합니까?
21 이제 요약하면 홀어버이들은 다음과 같이 함으로써 인내할 수 있읍니다. (1) 현재 계속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모두의 소원을 만족케 하실 때에 얻게 될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바라보는 일. (시 37:3, 4) (2) 성서 연구와 열렬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 (3) 왕국 증거 활동과 집안 일을 돌보는 일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포함하여 바쁘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 자기 희생적 사랑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홀어버이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데 민감하도록 회중내의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동정”을 나타냄으로, 그들의 자녀들에게 관심을 보임으로, 영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그들을 도와 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도움을 베푸는 일은 얼마나 가치있는 일입니까? 한 홀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기억하기를 원치 않는 참으로 많은 불행한 일을 경험하였읍니다. 그러나 한 가지 할 말이 있읍니다. 충실한 형제 자매들의 사랑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결코 그러한 경험을 견디어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22. 도움을 필요로 하는 미망인들과 고아를 돌보아 줌으로 오게 되는 결과는 어떠할 것입니까?
22 그렇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홀어버이 가족을 순수하게 “돌보는” 사람들은 이들이 충실하게 인내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야고보 1:27, 새번역) 그러나 그들은 또한 “고아와 과부를 붙”들어 주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성품을 빛나게 반사할 것입니다.—시 146:9.
[39면 삽화]
장성한 그리스도인 부인들은 물질적 도움을 포함하여 친절한 격려와 도움을 베풀 수 있다
[40면 삽화]
홀어머니들이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기술을 배우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41면 삽화]
홀어머니 가족을 식사에 초대해서 그들과 더 잘 사귀려고 한 일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