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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도에 우선권을 두는가?깨어라!—1971 |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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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도 그만큼 힘을 받을 것이다. 두 가지 부면은 무엇인가?
한 가지는, 기도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과 더 가까운 생활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불쾌하게 할 것을 더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한 두려움은 지혜의 시작이다. 왜냐 하면 그 두려움은 악에서 떠나도록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혹을 물리치도록 힘을 줄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과 더 가까운 생활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더 큰 열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 바로 사도 ‘요한’이 알려 준 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잠언 8:13; 9:10; 요한 1서 5:2, 3.
만일 우리가 다른 문제보다도 여호와께 대한 기도에 우선권을 둔다면, 하나님께 어떤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문제도 기도에 포함시킬 것이다. 「시편」에는 이런 점에 좋은 본들이 들어 있다. 엄격하게 말한다면 「시편」은 노래들이지만, 본질에 있어서 찬양과 감사와 간구의 기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시편 136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시 136:1-3, 26.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와 간청과 탄원을 할 때에 지나치게 당돌하여 하나님께 명령이나 요구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 전도를 하거나 설교를 해서는 안된다. 사실 우리는 구걸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태도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신 예수의 태도와 같아야 할 것이다.—마태 26:39.
만일 우리가 기도에 우선권을 둔다면, 간구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만한 이유가 있는 간구를 해야 할 것이다. 들어 줄 만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관련된 문제이거나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와 사랑의 친절을 좋아하시는 점이 될 수도 있다. (출애굽 34:6, 7; 다니엘 9:16-19) 또한 우리는 ‘다윗’ 왕과 같이 우리의 부모로부터 유전받은 죄 때문에 용서를 간구할 수도 없다.—시 51:1-5.
그리고 기도할 때에 우주의 최고 통치자 곧 지존자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단어나 말씨를 잘 사용해야 한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또한 참으로 겸손하고 가능한 최고의 존경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간구할 때에 성서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아야 한다.—마태 6:7.
또한 우리는 “하나님, 나와 내 아내 내 아들과 내 며느리 이 네 사람만 축복해 주시옵소서. 더 이상은 필요없읍니다.”라고 기도한 옛 사람과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광범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는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우리 형제들’의 복지를 생각하고자 한다.—베드로 전 5:9; 마태 6:9, 10.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인정한다면 기도에 우선권을 두고 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도에 마땅히 여러 가지를 포함시킬 것이며 기도에 합당한 훌륭한 말로 기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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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 동행함깨어라!—1971 |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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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과 동행함
● ‘에드윈 더불류. 라이스’는 그의 저서 「성서의 땅에 있어서의 동양식」에서 “손님과 이별할 때 상당히 멀리까지 ··· 어떤 때는 몇 시간 동안 동행하는 것은 동양의 예절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높은 형태의 예절이다. 그리고 ‘손님을 모셔다 드리는 일’이라 붙리운다.”고 기록하였다. “그 다음 그 저자는 다음과 같은 ‘시리아’인의 경험담을 알렸다. “어떤 사람이 떠날 때 친구들은 그와 같이 수 ‘킬로미터’나 함께 가서 이별의 ‘키스’를 한다. ··· 내가 ‘레바논’ 산에 살고있는 친구를 떠날 때 그들은 더 와서는 안된다고 내가 만류할 때까지 두시간이나 나를 따라왔다.”
이 습관이 그리스도인 사랑으로서 보강되었으므로 사랑받는 사도 ‘바울’은 ‘밀레도’와 ‘두로’, ‘가이사랴’를 떠날 때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동행하는 것을 경험하였다.—사도 20:37, 38; 21:5, 1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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