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의 질문
● 여러 세기를 통해 다른 강국들이 있었다는 것이 분명한데 ‘왙취타워’ 출판물에서는 단지 일곱 세계 강국만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미국의 독자로부터.
단지 일곱 세계 강국만을 언급하는 것은 ‘왙취타워’ 출판물이 독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밀하게 성서에 고착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며 일반적인 즉 세속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 「계시록」에 보면 특별히 “일곱 왕”을 언급합니다. 계시록 17:10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여러 세기를 통해 문자적인 일곱보다 훨씬 더 많은 “왕”들이 통치권을 행사해 온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언급된 일곱 “왕”들은 특별한 왕국 혹은 제국을 의미해야 하며 그 여섯째는 사도 ‘요한’이 그 말을 기록한 당시에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읍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이 제국 중 세개의 이름을 밝힐 수 있는데 즉 ‘바벨론’, ‘메대’ 및 ‘바사’의 이중 강국 그리고 희랍입니다. (다니엘 2:37-43; 7:1-7; 8:20, 21 비교) 이 세 강국 모두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었던 고대 ‘이스라엘’ 백성과 직접 관련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다니엘」서의 이러한 단서를 통해 계시록 17:10에 언급된 일곱 “왕”들 중의 다른 “왕”들을 식별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고대 백성이나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제자들로 구성된 하나님의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 백성과 직접 관련을 가진 강한 제국임에 틀림없읍니다. (로마 2:28, 29; 갈라디아 6:16)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유다’ 땅을 황폐시키기 전에 다른 두 개의 강한 제국이 ‘이스라엘’ 백성 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읍니다. 그 첫째는 오랫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화한 애굽이고 두번째는 ‘이스라엘’ 열 지파 왕국을 멸망시키고 수많은 ‘유대’ 도시를 황폐케 한 ‘앗스루’입니다. ‘바벨론’ 다음에 희랍인들이 ‘바사’의 통치를 대신할 때까지는 ‘바사’가 ‘유대’를 다스렸읍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로마’가 ‘유대’인들을 지배하였읍니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때(기원 96년경)까지 “망”한 다섯 “왕”들은 애굽, ‘앗스루’, ‘바벨론’, ‘메대-바사’ 그리고 희랍입니다. 그 당시에 다스리고 있던 세계 강국은 ‘로마’였읍니다. 그 다음에 설 강국에 대해서는 고대 ‘로마’ 시대 이래 강력한 권위를 행사해 온 강국들 중에서 영-미 강국이 가장 탁월하게 부각됩니다. 그리고 역사는 양차 세계 대전 중 영-미 강국이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항에서 강력한 조치를 취하였음을 증명합니다.a
그러므로 다른 강국들이 있었지만 이들 중 단지 일곱 강국만이 “일곱 왕”들이라고 성서에서 지칭한 것에 해당됩니다.
● 로마서 6:7은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고 하였는데, 지상에서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사람들은 그때에도 불완전하고 ‘아담’의 죄로 인한 고통을 받을 것입니까?—미국의 독자로부터.
로마서 6:7을 읽어보면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라고 되어 있읍니다. 문맥을 고려해 보면 사도 ‘바울’이 그 당시에 살고 있는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 관해서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들은 아직 살아 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침례를 받았고 천적 생명의 확고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고 하나님의 영적 아들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이전 생활 방식에 대하여 죽어야 하고 그들의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하며 인간 완전성을 입게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 관해서 이 말을 할 때 ‘바울’은 일반적이고 실제적인 예를 사용하고 있었읍니다. 넓은 의미로 죽은 사람이 죄에서 벗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죽음 그것이 죄에 대한 온전한 벌인 것입니다. 성서에서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고 말합니다. (로마 6:23) 이것은 사람이 죽을 때 그의 죄의 기록이 더 이상 그를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나 그 사람을 부활시킬 하나님의 계획이 없다면 그는 다시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경우를 재심리하여 그의 죄 때문에 다른 종류의 벌을 선고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죄로부터 벗어난 상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범죄 때문에 감옥에서 복역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 비유할 수 있읍니다. 일단 그의 형기를 마치게 되면 그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다시 재판받고 처벌되지는 않습니다.
이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지상의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사람의 경우에 그를 죽게 한 죄의 기록은 그를 더이상 불리한 입장에 있게 하지는 않습니다. 형기를 마친 사람과 마찬가지로 법을 준수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부활된 사람은 아직도 동일한 인간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그는 개성과 죄로 향하는 경향에 대하여는 아무런 변화도 받지 않았읍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은 죄와 불완전의 모든 흔적이 없어진 완전한 인간이 되지는 않았읍니다. 그의 죽음으로 그가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전과자의 경우에서와 같이 그의 육체적인 약함에 굴복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죽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입장에서 출발해야 하고 지상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으로부터 온전한 유익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죽기 전에 누렸던 생활 때문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죄로 향하는 경향이 더 클 것입니다. 사실상 성서는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24:15, 새번역) 그러므로 죽을 때 불의하였던 사람은 지상의 생명으로 부활될 때 불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죄의 기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지만 그 개인으로서 사람됨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상의 생명으로 부활되는 개개인은 죽었던 바로 그 동일한 사람이며 죄인 ‘아담’의 후손인 것입니다. 오래 전에 ‘엘리야’나 ‘엘리사’,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 그리고 ‘바울’에 의해 부활된 사람들이 불완전한 인간이었던 것 같이 그들도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과거에 개개인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그들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완전한 인간으로 변화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새 질서에서 지상으로 부활되는 사람들에 있어서도 예수의 대속의 마련을 적용할 때에만 죽음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됩니다.
성서 「계시록」에서 대속의 마련을 포함한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이 생명수의 강으로서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읍니다. (계시 22:1, 2) 그러므로 부활된 사람들이 죄짓는 모든 경향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서 완전한 인간이 되는 것은 이 ‘강’을 ‘마심’으로써입니다.
그들이 완전한 인간이 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온전한 의미에서 생명에 이르렀다고 보십니다. 지상의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사람들에 관해 그들이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고 성서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 기간 중에 그의 대속의 희생의 유익이 인류에게 적용될 것입니다.—계시 20:5.
[각주]
a 자세한 내용이 「파수대」 1960년 218, 219면의 “당신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이다.” 기사 및 「깨어라!」 1971년 4월 8일호 14-16면에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