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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상—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함파수대—1978 | 7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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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여행중 지치고 피로한 ‘이스라엘’인 방랑자들을 비겁하게 공격했었다. (신명 25:17-19) ‘사울’은 백성과 함께 양떼 중 가장 좋은 것과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았으므로, ‘사무엘’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그 후 ‘사무엘’은, ‘사울’을 인하여 크게 슬퍼하지만 그를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사무엘 상 15:1-35.
그 직후 여호와께서는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내어 막내 아들 ‘다윗’을 ‘이스라엘’의 다음 왕으로 기름붓게 한다. 이제 여호와의 영이 ‘사울’을 떠나고 그는 정신적 고통을 당한다. ‘다윗’이 훌륭한 수금 연주가였으므로, ‘사울’ 왕 앞에서 연주하여 그를 위안하도록 ‘다윗’이 선택된다. 다음에 ‘다윗’은 물매와 돌 하나로 교만한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살해한다.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다윗’의 믿음과 열심을 보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게 된다. (사무엘 상 18:1) ‘요나단’이 아니라 ‘다윗’이 ‘이스라엘’의 차기 왕이 될 것이 확실해지는데도, ‘요나단’은 ‘다윗’에게 계속 충성스러운 우정을 보이고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의 편을 든다.
이제 ‘다윗’은 전쟁에 매우 능숙해져서 ‘이스라엘’의 여인들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고 노래한다. 이러한 노래를 듣고 ‘사울’은 질투심이 가득하여 격노한다. 이제 그의 생애에서 최우선 관심은 ‘다윗’을 제거하는 것이다. ‘사울’이 ‘다윗’을 야생 동물처럼 찾아 다니는 동안, ‘다윗’은 두번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를 가지지만,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치’기를 거절한다.—사무엘 상 18:1-24:22; 26:1-25.
도망자 ‘다윗’은 고난을 겪는 다른 ‘이스라엘’인들의 지원을 받으며, 그들은 불법 단체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농부들과 그들의 양떼를 약탈자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다윗’은 돈 많은 양떼의 소유자 ‘나발’에게 사례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요청에 대해 모욕적으로 거절하며, 이에 대해 ‘다윗’은 즉각 벌을 가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사태를 알고 두려워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관대한 선물을 가지고 ‘다윗’에게 나아가 그의 노를 가라앉힌다. 그 결과, ‘나발’이 갑자기 죽자,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청혼하고, ‘아비가일’은 기꺼이 수락한다.—사무엘 상 25:1-42.
‘블레셋’인들이 다시 공격하기 위해 모이자, ‘사울’ 왕은 여호와의 인도를 구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은 그로부터 떠났다. ‘사울’의 기도에 응답이 없고 제사장들은 여호와로부터 왕을 위한 말을 듣지 못한다. 자포자기하여 ‘사울’은 신접자를 찾는다. 신접한 여인은 ‘사울’에게 나쁜 소식만 알려 준다. ‘사울’의 마지막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참패를 당하며, 그의 아들 ‘요나단’은 살해되고 ‘사울’ 자신은 중상을 입고 자살한다.—사무엘 상 28:1-31:13.
「사무엘」은 참으로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미리 기록된 것의 일부이다. 그것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우리가]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해 준다. 「사무엘 상」은 특히 순종의 중요성과 불순종의 비극적 결과를 강조해 준다.—로마 15:4; 디모데 후 3:1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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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돋친 채찍을 뒷발질하는 것”파수대—1978 | 7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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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돋친 채찍을 뒷발질하는 것”
‘바울’(사울)은 개종하기 전에 하나님의 참다운 종들을 몹시 박해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에게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돋친 채찍을 뒷발질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도 26:14, 새번역)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추종자들에게 하는 것이 곧 자기에게 하는 것으로 보신다. (마태 25:40, 4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바울’은 사실상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후원하시는 일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해가 되는 일이었다. ‘바울’이 바로 “가시돋친 채찍을 뒷발질”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가시돋친 채찍이란 끝이 뾰족한 막대기로서 때로는 금속을 끝에 달았는데, 가축을 몰거나 쟁기질을 하는 짐승을 모는 데 사용되었다. 끝이 뾰족한 가시 채찍을 발로 차서 저항하는 고집센 짐승은 조금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 해를 입힐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데서 아무런 유익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일에 기울이는 그의 노력은 짐을 끄는 짐승이 가시달린 채찍의 가시를 저항하는 것과 같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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