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계 내의 설계—무엇을 증명하는가?깨어라!—1983 | 1월 15일
-
-
자연계 내의 설계—무엇을 증명하는가?
우리 모두는 잘 설계된 물건을 보면 경탄하게 된다. 그것은 아름답게 꾸민 방이나 꽃 혹은 ‘컴퓨터’일 수 있다. 훌륭한 설계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설계와 관련하여, 종종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한 가지 추리 방법은 설계는 설계자가 있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오늘날의 과학적으로 발견된 점들이 이러한 논증을 강화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과학적으로 발견된 점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계가 참으로 복잡하고 잘 고안된 것임을 인식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살아 있는 세포의 세계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점들을 생각해 보라. 1세기 전에 세포는 단순한 막덮개에 둘러싸인 작은 원형질 덩어리로 간주되었었다. 오늘날 우리는 심지어 이 외막조차 어떤 물질을 세포 안으로 들여보내거나 밖으로 내보낼 것인가를 조절하는 경이로운 것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세포 내부에는 상호 작용하는 물질들이 놀랍게 배열되어 있다. 그곳에는 단백질, 효소 및 DNA 종합 청사진이 있으며 극히 복잡한 것들이 훨씬,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
형태
우리가 아주 작은 원자와 세포의 세계를 들여다 보거나 수십억개의 별과 은하들로 이루어진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우주를 응시하거나 간에, 거기에는 일정한 형태가 있다. 우리는 질서와 지성—그렇다, 설계를 관찰하게 된다!
일상 생활에서 설계를 볼 때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지성있는 인간의 솜씨라고 추정한다. 집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을 만든 지성있는 건축가가 있음을 인정한다. 당신이 차고 있을지 모르는 손목 시계를 우리는 어떤 시계 제조인이 만든 것으로 인정한다. 탁자 위에 놓인 청사진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어떤 제도가에 의해 그려진 것임을 안다. 화랑에서 그림들을 구경할 때, 우리는 그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그려진 것임을 안다. 그처럼, 심지어 탁자나 의자, 칫솔 혹은 연필까지도 모두 인간 설계자와 만든 자들이 있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그 모든 것들을 누가 만들었는가?’ 하고 질문하여 ‘그것들은 그저 스스로 우연히 생겼기 때문에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는 대답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은 원자, 산 세포, 행성, 동물, 인간 및 우주에 비하면 설계와 기능 면에서 비교적 간단하다. 만일 비교적 간단한 것에 설계자와 만든 자가 있어야 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에 설계자와 만든 자가 없다고 결론내리는 것이 이치적인가?
이러한 사물들을 각 수준 별로 관찰하고 많은 사람들은 감동하여 하나님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사도 ‘바울’의 말에 동의한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로마 1:20.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식의 추리가 그처럼 논리적이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설계자 즉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할 것이다.
[3면 삽화]
작은 원자의 세계로부터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비슷한 설계를 보게 된다
-
-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깨어라!—1983 | 1월 15일
-
-
많은 사람들이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자연계 내의 설계를 관찰하고도 설계자 즉 창조주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처럼 믿지 않는 것은 누군가가 설계에는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는 논증이 틀렸음을 증명하였기 때문인가? 그와는 정반대되는 증거 때문에 자연계 내의 설계가 더는 학식과 추리력을 갖춘 지성인들을 확신시키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논증은 여전히 확고부동하고, 사실 이전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가? 오히려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명백한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핑계할 여지가 없”는 것인가?
지난 날의 견해
이 문제에 관한 역사를 간단히 돌이켜 보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오랜 세월을 통해 많은 무신론자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약 1세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종교 및 과학적인 사고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아이작 뉴우튼’(과학 저술가 ‘아이작 아시모프’에 의해 “이제까지 세상이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과학자”라고 불림)과 같은 과거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다. 그들은 의혹을 그들의 과학적 재능을 입증해 주는 필수적인 신임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 ‘뉴우튼’과 다른 많은 과학자들, 그리고 다른 분야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자연계 내의 설계를 뛰어난 설계자이신 하나님의 존재의 증거로 지적하였다. 그것이 여러 세기 동안 지배적인 사상이었다.
자연계 내의 폭력
그러다가 우주가 사랑 많으신 설계자의 작품이라는 개념에 문제가 발생하였다.
19세기 중엽 무렵 ‘다아윈’, ‘맬더스’, ‘스펜서’와 같은 저술가들이 자연계 내의 폭력에 주의를 이끌었다. 그들의 말대로 큰 동물이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정글’ 밑바닥에서 매일 밤낮으로 생존을 위한 정정당당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확실히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의 추리는 다음과 같이 계속되었다. 생존을 위한 이러한 잔인한 투쟁이 지상 생물의 실상이 아닌가? 심지어 인간의 영역에서도 동물적인 전쟁과 이기적인 투쟁 및 ‘약육 강식의 법칙’이 역사를 주무르는 실제적인 힘이 아닌가? 사랑에 찬 웅대한 설계자에게 기대되는 조화와 평화를 자연계 내에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다아윈’의 친구인 ‘죠오지 로메인즈’는 자연계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우리는 살해를 위해 날카롭게 갈린 이빨과 발톱, 고통을 주도록 틀잡힌 갈고리와 빨판을 보게 되며—어디서나 공포와 굶주림 및 병이 판을 치고, 피를 흘리고, 사지를 떨고, 숨을 헐떡거리고, 잔인한 고통 가운데 죽어 가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