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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인 한 감람나무파수대—1983 |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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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그리고 이런 방식으로a (희랍어, 카이 오우토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로마 11:25, 26; 비교 에베소 3:3-6)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의 이차적 씨 안으로 요구된 수 곧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받아들이심으로써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나타냄으로써 이 제한된 수의 비‘유대’인들은 영적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일부인 영적 ‘유대’인들임을 증명할 것입니다.—로마 4:16; 2:28, 29; 갈라디아 6:15, 16.
17. (ㄱ) ‘바울’은 어떤 특이한 절차를 묘사합니까? (ㄴ) 찍혀 나간 가지들은 누구를 상징하며, 돌감람나무에서 접붙여진 어린 가지들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ㄷ) 이러한 설명은 교만하고 거만한 ‘유대’인들에 대하여 무엇을 드러내 주었읍니까?
17 ‘바울’은 이 “비밀”이 이루어지는 것을 특이한 원예 절차를 통해 설명하였읍니다. 정상적인 절차는 재배된 나무에서 어린 가지들을 꺾어 내어 야생 줄기에 접붙임으로 그것이 생산적인 것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정원 감람나무, 신세]에 접붙임을 얻었”다고 말하였읍니다. (로마 11:24) 그리하여 그는 ‘아브라함’ 언약 안으로 받아들여질 비‘유대’인들을 돌 감람나무에서 잘라내서 “정원 감람나무”의 줄기에 접붙일 접지 곧 어린 가지에 비하였읍니다. 그들은 찍혀 나간 본래의 가지들을 대신할 것입니다. 찍혀 나간 본래의 가지들은 믿음의 부족으로 인하여 거부된 육적 ‘유대’인들을 상징합니다. (로마 11:17, 19, 20, 24) 이 특이한 비유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교만과 거만함을 강력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읍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돌처럼 생명이 없는, 다시 말해서 돌 감람나무 가지들처럼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로 간주하였읍니다. 그러나 ‘바울’의 비유는, 침례자 ‘요한’이 예고한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확증해 주었읍니다.—누가 3:8, 공동 번역.
18. (ㄱ) 기원 36년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러나 찍혀 나간 가지들 중에는 ‘아브라함’ 언약 나무로 다시 접붙여진 가지들이 있었읍니까? (ㄴ)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연합을 어떻게 촉진시켰읍니까?
18 그렇지만, 영적 씨의 일부로서 ‘아브라함’ 언약 나무 안으로 ‘본성을 거스려 접붙여진’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낄 만한 이유는 없었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저희 [‘유대’인들]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로마 11:23) 육적 ‘유대’인들의 소수의 남은 자들은 일차적 씨를 받아들여 그 상징적 나무의 항구적인 가지가 되었읍니다. (로마 9:27; 11:5) 그러나 ‘유대’인 대다수는 ‘다니엘’이 예언한, 해로 된 70주가 끝난 때인 기원 36년에 ‘아브라함’ 언약 나무에서 꺾여 나갔읍니다. (다니엘 9:27)b 그러나 그 후에 일부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일차적 씨인 메시야 예수에게 믿음을 둠으로써 “자기 감람나무”에 다시 접붙여졌읍니다. (로마 11:24; 사도 13:5, 42, 43; 14:1) ‘바울’은 이러한 점들을 지적함으로써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연합을 촉진시켰읍니다. 왜냐하면 모두는 “하나님의 인자”로 말미암아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로마 11:17, 22.
온전히 생산적인 감람나무
19. ‘아브라함’ 언약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도록 어떻게 점차 영적 씨를 산출해 왔읍니까?
19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고 특히 이 종말의 때의 상당 부분에 걸쳐 그외의 ‘유대’인들과 비‘유대’인들이 그 상징적 감람나무에 접붙여졌읍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언약은 영적 씨를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를 산출하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 곧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참 ‘이스라엘’ 사람들인 144,000명의 성원으로 된 영적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로마 11:12, 25, 26; 9:6-8; 계시 7:4.
20, 21. (ㄱ) ‘아브라함’ 언약의 이 가장 중요한 부분의 성취를 볼 때 우리는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읍니까? (ㄴ) 다음 기사에서 무엇을 살펴볼 것입니까?
20 여호와께서 이 상징적 나무의 줄기와 온전한 수의 가지들을 산출하심으로써 ‘아브라함’ 언약의 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성취시켜 오신 놀라운 방법을 볼 때 우리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바울’처럼 우리는 이렇게 외치게 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로마 11:33-36.
21 그러나, 상징적 가지들(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아브라함’ 언약 나무가 산출하는 씨를 통하여 현재 스스로를 축복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접붙여진 감람나무의 비유로부터 어떠한 실용적인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읍니까? 이러한 부면들이 다음 기사에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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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여 열매를 맺는 자들파수대—1983 |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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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하여 열매를 맺는 자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한 15:8.
1. 성서는 여호와께서 과일 나무들을 매우 가치있게 보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라.]” (창세 2:9) ‘이스라엘’에서 새로 심은 과일 나무는 삼년 동안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였으며 그동안 그 주인은 어떠한 목적으로도 그 열매를 사용할 수 없었읍니다. 네째 해가 되어 열매가 맺힌다 할지라도 그것은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해야 했읍니다. 오년째가 되면 주인은 첫 열매들을 여호와께 드린 다음에, 수확한 과일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었읍니다. (레위 19:23-25; 신명 26:1-10; 느헤미야 10:35-37) ‘모세’ 율법 아래서는 전시에 과일 나무들을 특별히 보호했읍니다.—신명 20:19, 20.
비생산적인 나무들이 잘리다
2, 3. 예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 앞 기사에서 나오는 상징적 감람나무(로마 11장)의 원 가지 다수가 꺾여 나가고 돌감람나무의 가지들로 대치되었음을 살펴 보았읍니다. 그 비유에서 찍혀 나간 가지들은 감람나무 줄기 즉 일차적 씨인 메시야 예수를 인정하기를 거절한 믿음이 없는 ‘유대’인들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는 그와는 다른 비유에서 ‘유대’ 민족을 하나의 전체 나무, 이번에는 감람나무가 아니라 무화과나무에 비하셨읍니다.
3 기원 32년 가을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누가 13:6-9.
4. 예수께서는 자신이 충실한 “과원지기”임을 어떻게 증명하셨읍니까?
4 예수께서 이 무화과나무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는 그분이 “과원지기”로서 삼년에 걸쳐 ‘유대’인들 사이에 믿음을 배양하고자 노력해 오신 때였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언약과 율법 언약 아래 있어 많은 이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 민족의 소수의 남은 자들 만이 메시야를 받아들였읍니다. (로마 9:4, 5, 27) 봉사의 직무의 네번째 해 중에 예수께서는 ‘유대’인들 가운데서의 자신의 노력을 배가하여 ‘유대’와 ‘베리아’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 안과 주위에서 열정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심으로써 상징적으로 ‘유대’ “무화과나무” 주위를 두루 파고 거름을 주셨읍니다.—누가 복음 10장부터 19장까지.
5. ‘유대’ “무화과나무”는 어떻게, 그리고 왜 베어졌으며, 언제 그것은 “불에 던지”웠읍니까?
5 그러나, 그 네번째 해 중간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죽기 며칠 전 ‘예루살렘’에 대해 우셨으며 ‘유대’ 민족의 수도에게 그 집이 버린 바 되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3:37-39) ‘유대’ 무화과나무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는 열심히 돌본 그 네째 해에 그 나무를 다시 한번 검사하셨던 것입니다. 한 민족으로서 그 나무가 열매가 없음을 알게 되시자 그분은 예수께서 마태 복음 7:19에서 말씀하신 원칙과 일치하게 그 나무를 베어 버리라고 명하셨읍니다. 그리하여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왕국을 빼앗겼으며 그 왕국의 열매를 맺는 한 나라 즉 영적 ‘이스라엘’에게 그 왕국이 주어졌읍니다. (마태 21:43) 이처럼 옮겨지는 일이 같은 해인 기원 33년 오순절에 있었읍니다. 그보다 삼십 칠년 후인 기원 70년에 그 베어낸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과 ‘유대’ 민족이 멸망됐을 때 “불에 던지”웠읍니다.—마태 3:9, 10; 누가 19:41-44.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6.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접붙여진 감람나무의 비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어떻게 강조합니까?
6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여호와의 참으심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려 주듯이, ‘바울’의 감람나무의 비유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강조하는 한편 그분이 준엄하심도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침례자 ‘요한’을 ‘유대’인 “원 가지”들에게 보내셔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게 하셨읍니다. (마태 3:8; 사도 19:4) 그들은 믿음의 부족 때문에 “꺾이”었읍니다. ‘유대’인 “원 가지”의 수의 이러한 감소는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읍니다. 왜냐하면 이방인 ‘돌 감람나무 가지’들이 ‘아브라함’ 언약 나무에 접붙여져서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로마 11:12, 17, 20, 21.
7. ‘바울’은 무슨 경고의 말을 부가하였읍니까?
7 그러나 ‘바울’은 경고의 말을 부가합니다. 그는 기름부음받은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준엄, 새번역]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유대’인들]에게는 엄위[준엄, 새번역]가 있으니 너희[이방인들]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로마 11:21, 22) 여호와의 인자하심에 거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언약 나무에 접붙여진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일차적 씨에 대한 강한 믿음을 나타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믿으므로 섰”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열매 즉 ‘그들의 몸을 살아있고, 거룩하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로, 거룩한 봉사에 바침’으로써 그 믿음을 증명해야 하였읍니다.—로마 11:20; 12:1, 신세.
8. ‘바울’은 감람나무의 비유로부터 무슨 다른 실용적인 교훈을 이끌어 냅니까?
8 ‘바울’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 언약 나무가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된 144,000 “가지”의 온전한 수를 산출할 수 있게 하시는 놀라운 방법으로부터 또 하나의 실용적 교훈을 이끌어 냅니다. 그는 계속해서 두 가지 종류의 “가지”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로마 12:3-5)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나 비‘유대’인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아브라함’의 영적 씨 안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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