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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종사함’파수대—1981 |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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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종사함’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과분하신 친절로 인하여, 내가 열국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의 공복이 되어 하나님의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종사[할] ···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로마 15:15, 16, 신세.
1, 2. 우리의 말과 행실은 왜 중요합니까?
사람의 평판이란 그 사람의 언행에 좌우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 사람이 행하는 것과 말하는 것을 보고 듣는 대로 그 사람과 그 사람의 됨됨이에 대하여 결론을 내립니다.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비록 아이라도 그 동작으로 자기의 품행의 청결하며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언 20:11; 마태 7:16-20.
2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말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의 행실과 말에서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읍니까? 성서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순결하며 그분의 원칙이 의롭고 선한 열매를 맺는다고 보증합니다. (이사야 6:3; 욥 34:10; 신명 32:4)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영을 흡수하고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생활에서 분명히 표현되어야 합니다.—에베소 5:1.
3, 4. (ㄱ) ‘이스라엘’의 숭배와 역사는 어떠한 결과를 산출했읍니까? (ㄴ) 그리스도교를 관찰함으로 사람들은 어떠한 영향을 받습니까?
3 우리의 생활에서 참 숭배가 표현될 때 사람들은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다. 예로서, 한동안 여호와께서는 주로 ‘이스라엘’과만 상대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위 19:2; 비교 출애굽 19:5, 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신 식사, 위생, 및 도덕에 관한 법으로 인해 그들은 주위 이방인들에게 만연된 불결한 여러가지 습관으로부터 보호를 받았읍니다. 많은 외국인들은 참 숭배의 길이 어떻게 성공적이었는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고 계신가를 볼 수 있었읍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여호와를 숭배하게 되었읍니다.—열왕 상 8:41, 42; 10:1; 룻 1:16.
4 참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지시와 일치하게 생활할 때 동일하게 좋은 결과를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된 생활과 ‘선한 행실’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전 2:12, 15; 3:1, 2; 디도 2:7, 8; 데살로니가 전 4:11, 12) 그러나 성서에서 명백한 것은, 그리스도교가 단순히 깨끗한 도덕적 생활을 하고 “영의 열매”를 반영하는 훌륭한 특성을 발전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에베소 4:22-24)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특징처럼 중요한 것으로서, 예수의 참된 추종자들이 되기 위하여는 또한 수행해야 할 독특한 일이 있읍니다.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
5. (ㄱ) 예수의 본에 의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또한 무엇입니까? (ㄴ) 이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어린 소년으로서, 나중에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를 공경하였읍니다. 그분의 생활 방식과 특성은 다른 사람들에게 훌륭한 본이 되었으며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읍니다. (누가 2:49, 52)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자 마자 ‘자기 일을 시작’하셨으며 두루다니면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힘을 다하셨읍니다. (누가 3:23; 마태 4:17, 23, 신세) 그분은 다른 사람들이 이 일에 참여하도록 훈련하기까지 하셨으며, 그들을 내보내시어 사람들을 가르치게 하셨읍니다. (누가 10:1, 8, 9) 처음에는 가르치고 제자를 삼는 이 일은 오직 ‘유대’인들 가운데서만 행해졌읍니다. 그러나 나중에 확장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로마서 15:8, 9에서 사도 ‘바울’이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땅의 모든 민족이 도움을 받아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었읍니다.
6, 7. 사도 ‘바울’이 수행한 “거룩한 일”이란 무엇이었읍니까?
6 ‘바울’ 자신은 그 목표를 향해 활동적으로 일하였읍니다. 로마서 15:16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열국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 예수의 공복”이라고 불렀읍니다. 그 ‘봉사’에는 무엇이 수반되어 있었읍니까? 그는 부언하기를, “하나님의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종사하여, 제물 즉 열국 사람들이 ··· 가납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까?
7 ‘거룩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룩한 일에 종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희랍어 동사(‘히에루르군타’)는 성서에서 로마서 15:16에서 오직 한번만 사용되고 있읍니다.a 그러므로 ‘바울’은 그가 하나님의 좋은 소식 즉 그리스도의 소식을 열국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거룩한 혹은 성결한 일에 활동적으로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읍니다. 그 소식을 받아 들이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 즉 여호와께서 승인하시고 성령으로 축복하신 제물과 같았읍니다.—로마 1:1, 16.
8. ‘바울’은 어떻게 ‘유대’인 사이에서 이 일을 수행하였읍니까?
8 ‘바울’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을 수행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소식을 전파하였읍니까? “좋은 소식”으로 생명을 구원할 수 있었으므로 그들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때때로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에게 연설할 수 있었읍니다. (사도 13:14-42; 14:1; 18:4) 그러나 ‘바울’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비‘유대’인인 절대 다수의 “이방인”들에게 전할 수 있었읍니까?
9. 비 ‘유대’인들을 돕기 위하여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방법들을 사용할 수 있었읍니까?
9 그리스도인들은 시장과 같은 공개 장소에서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사도 17:17-22) 그러나 단지 그렇게 하는 것으로는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이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러 성읍으로 전파하도록 제자들을 내보내셨을 때와 같이 사람들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은 어떠합니까? (마태 10:5-13; 누가 9:2-6)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 방법도 또한 사용하였으며, 동시에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는 “거룩한 일”에 열정적으로 종사하였읍니다.
10. 믿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돕기 위해 호별 방문 증거가 행해졌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0 우리는 이 점을 ‘바울’이 ‘에베소’ 회중의 장로들이 된 사람들에게 한 말로부터 알 수 있읍니다. 지난 날에 전파한 일, 즉 그가 그리스도교를 그들에게 소개하였을 때에 대하여 말하면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여러분의 영혼에 유익한 그 일들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전파하는 일을 소홀히하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나는 거리에서 또 집집에서 가르쳤읍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과 ‘아랍’인들[혹은 이방인들]에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였읍니다.” (사도 20:20, 21, ‘시리아’어로부터 번역된, ‘조오지 M. 람사’역)b ‘바울’이 여기에서 아직 믿지 않는 사람들 즉 회개하고 예수께 믿음을 둘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전파하고자 노력하고 있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그러한 믿지 않는 사람들의 집을 찾아갔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승인하시고 축복하실 “거룩한 일”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낯설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전파하는 일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읍니다.
11. (ㄱ)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 “거룩한 일”을 수행합니까? (ㄴ) 호별 방문 전파에 참여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11 오늘날에도 또한 ‘여호와의 증인’은 사람들을 만나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는 주된 방법으로서 호별 방문 증거를 활동적으로 수행해 왔읍니다. 물론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을 의무이자 특권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적절한 때는 언제나 친척들, 급우들, 직장 동료들, 이웃 사람들 및 낯선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데 그 기회를 사용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광포한 종교적 요소나 경찰 국가의 극단적인 압제 때문에 호별 방문을 통해 공개적으로 증거하기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나라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여 증거를 계속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극단적이 아닌 모든 나라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조직적으로 각 집을 방문합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철저한 증거’가 수행되고 있으며, 다른 방법으로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사도 4:19, 20; 20:21; 비교 에스겔 9:3, 4.
효과적인 증거 방법?
12-14. 호별 방문 전파가 효과적임을 무엇이 알려줍니까?
12 그러나 이 전도 방법이 아직도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종사”하는 효과적인 방법입니까? 증거는 그렇다! 라고 외칩니다. 1977년에 「소시얼 컴퍼스」지는 영국의 사회학자 ‘브라이언 윌슨’의 “일본의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기사를 실었읍니다. 그는 그들이 일본의 어느 ‘신흥 종교’보다도 “복음 전도 사업에 훨씬 더 주력하고 있다”고 썼읍니다. 또한 그가 주도한 조사는 다음과 같은 점을 밝혀 줍니다.
“‘증인’이 된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58.3‘퍼센트’]은 그들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여호와의 증인’ 중 한 사람의 호별 방문을 통해서라고 말한다.”
13 ‘여호와의 증인’이 전파하는 성서에 기초한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종교인들까지도 ‘증인’들이 수행하는 호별 방문 복음 전도의 효과를 인정합니다. 다음의 글을 보십시다.
“아마도 [교회들이] 심히 등한히 하고 있는 것으로서 절대적인 부분을 이미 ‘증인’들이 면밀히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원시 교회의 사도적 방법론에 속하는 가정 방문이다. 교회들이 그들의 집회 장소 내에서만 자주 설교하는데 자신들을 국한시키고 있지만 [‘증인’들은] 호별 방문의 사도적 방법을 따르고 있다.”—‘컬럼비아, 보고타’ 「엘가톨리시스모」지, 1975년 9월 14일.
‘제 1회 전국 복음 전도 회의 참석자들은 복음 전도에 있어서 ‘가톨릭’교인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뒤를 따라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미네아폴리스타’ 「트리뷴」지, 1977년 8월 29일.
14 ‘여호와의 증인’의 호별 방문 복음 전도가 너무나도 특이하기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집주인은 문을 열고 “‘여호와의 증인’이지요” 하고 말할 것입니다. 성서를 사용하여 전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달성된 유익이 있읍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주의가 기울여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이 그분의 소식을 가지고 그 곳에 간 것은 집주인에게 인상을 줍니다. (마태 6:9; 이사야 12:4; 에스겔 33:6-9, 29) 그러나 위의 인용문들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종종 더 많은 성과가 있게 됩니다.
15. 방해가 있는 일부 지방에서 이 효과적인 사업이 어떻게 수행되었읍니까?
15 가정에서 대면해서 증거하는 것이 사람들을 만나는 데 매우 유익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에 심지어 어려운 상황하에 있는 ‘증인’들도 그렇게 하도록 커다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읍니다. 당국이 이 성서에 기초한 활동을 금지한 한 ‘아프리카’ 나라에서 그러하였읍니다. 지방 그리스도인들은 이 복음 전도 방법이 유익한 방법이고, 그들이 ‘사람보다 통치자로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고 또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는 예수의 충고를 적용해야 함을 알고 있었읍니다. (사도 5:29; 마태 10:16, 17) 그들은 어떻게 하였겠읍니까?
그들은 집 호수에 따라 긴 거리나 구역을 몇 사람이 나누어 맡을 수 있게 마련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2로 끝나는 모든 집들(2, 12, 22, 32 등)을 맡아 어떤 순서로든지 그가 원하는 대로 자기에게 가능한 때에 방문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은 3으로 끝나는 집들(3, 13 등)을 맡아 다른 날에 방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철저한 증거를 할 수 있었다.
접근하는 방법 역시 상이한 방법이 사용될 수 있다. 한 그리스도인은 계란이나 과일을 담은 작은 바구니를 가지고, 집주인에게 이것들을 사라고 권한다. 그러나 시장 값보다 비싸게 부른다. 매상고는 적을 것이지만 오늘날의 물가고와 생활난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 반응이 좋은 것 같으면 성서 예언의 성취를 지적해 준다.
혹은 야채를 살 필요가 있는 그리스도인은 이를 기회삼아 자기 “구역”에 있는 사람들을 접근한다. 시장에 가기 전에 야채밭이 있는 집들을 방문하여 야채를 팔지 않겠는가 물어 볼 수 있다. 그 결과 야채를 사든지 않든지 간에 종종 성서의 견해를 담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방 그리스도인들은 전에 호별 방문 전파에 어려움을 끼친 정치 불량배들의 괴롭힘을 피하였읍니다. 그러면서도 그 지방에서 철저한 증거를 수행하였읍니다.
16. 이 전도 방법이 계속 효과적인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증인’들이 어떠한 다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읍니까?
16 다른 지방에서는 필요에 따라 또 다른 방법이 사용될 수 있읍니다. 과거 몇년 동안 많은 집주인들이 가정에 있는 오전에 집들을 방문하는 것이 상례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서 이제 그 때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에 나간다면 그것은 이 전도 방법이 실용적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각 가정과 ‘아파트’의—모든 사람들을 만나 “좋은 소식”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그들에게 줄 수 있겠읍니까? 아마 가족 성원들이 집에 있는 오후나 이른 저녁에 방문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읍니다. 요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돕는 것입니다.—사도 16:13, 비교.
17. ‘바울’의 예를 염두에 두고, 우리는 이 일을 수행할 때 어떻게 개인적으로 조절할 수 있읍니까?
17 사도 ‘바울’은 기꺼이 자기의 방법을 적응시켜 사람들에게 적합한 접근을 시도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고린도 전 9:19-23) 동일한 적응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예로서, 만일 당신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와 성서에 대한 관심을 잃은 지방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에 따라서 당신의 접근을 조절하겠읍니까?
‘벨기에’의 한 ‘증인’은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나는 성서를 손에 펴들고 있지만 그것을 [성서라고] 즉시 밝히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댁에서 문간까지 나오실 동안에 저는 여기에 씌어져 있는 글을 보고 있었읍니다.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 5:5] 댁에서는 우리 이웃에 아직도 온유한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백발 백중 대화가 시작되고 그럼으로써 나중에 성서가 더욱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일
18.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계심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어떠한 이유가 있읍니까?
18 온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그러하십니다. ‘바울’은 이 일에 그가 참여하여 얻게 되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져서 성령이 부어지는 제물과 같다고 말하였읍니다.—로마 15:16, 신세.
19.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이 사업은 어떻게 효과적일 수 있읍니까?
19 사람들을 찾아내어 도와주는 중요한 호별 방문 활동을 포함한 이 전파 사업을 하나님께서는 계속 인정하시고 축복해 오셨읍니다. 단지 하나의 예로서, 광범위한 지역의 회중들을 방문하는 한 봉사자는 ‘매릴랜드’(미국)의 한 그리스도인이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방문에 함께 가자는 초대를 받아들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집주인에게 그가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를 물었읍니다. 그 부인은 말하기를, 자기는 종종 되는 대로 성서를 펴서 손에 잡힌 귀절을 읽곤 하였지만 결코 읽은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읍니다.
“하루는 심각한 가족 문제로 매우 침울해 있었읍니다. 또 다시 성서를 펴서 한 귀절을 읽었읍니다. 이해할 수가 없게 되자 침울함과 실망으로 울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부인은 하나님께 기도하여 성서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누구인가를 보내 달라고 하였읍니다. 바로 그 기도의 말을 마치자, 초인종이 울렸읍니다. 나가 보니 ‘여호와의 증인’이었읍니다. 그 ‘증인’의 첫마디는 ‘댁에서는 성서를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까?’ 하는 것이었읍니다. 집주인은 그를 안으로 초대하여 즉시 정기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입니다.”
20-23. 호별 방문 전파 사업에 더 많이 참여함으로 어떠한 축복을 받을 수 있읍니까?
20 대부분의 집에서, 그들이 전하는 “좋은 소식”이 거절당하는 것 같은 때에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읍니다.
한 십대 소녀가 토요일 오후에 남‘아프리카’의 벽촌에서 호별 방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좋은 반응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 지방의 종교 단체가 ‘여호와의 증인’의 도움이 되는 그리스도인 노력을 반대하는 편견을 현저히 조성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집집마다 그의 면전에서 재빨리 문들을 닫아버렸다. 그의 노력은 무익한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이 소녀는 모르고 있었지만 길 건너편 창문으로부터 호기심있는 눈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 든 한 부인이 냉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타내고 있는 ‘증인’의 인내심을 관찰한 것이다. 이 그리스도인은 분명히 다른 청소년들과 달랐다.
그 집에 이르렀을 때, 이 나이 든 부인은 ‘증인’을 안으로 초대하였다. 이 소녀가 주로 영어 밖에 몰랐고 여자는 ‘아프리카’어만 알았지만, 이 두 사람은 우리 시대에 대한 성서의 중요한 소식을 교환할 수 있었다. 후에 ‘아프리카’어를 말하는 봉사자가 이 관심자를 방문하였으며, 나이 든 이 부인은 하나님의 말씀의 정규 연구에 기꺼이 동의하였다.
21 사실상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 면으로 느껴집니다.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우오올리안즈’ 지역의 회중들을 방문하는 한 여행하는 봉사자는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복음 전도 정신은 더욱 더 강해지고 있읍니다. 우리가 방금 방문을 마친 8, 9개 회중은 전파 활동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바치고 있읍니다. 이와 같은 증가된 노력으로 ‘좋은 소식’에 관심을 가진 더 많은 사람들을 찾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형제 자매들이 ‘좋은 소식’의 전파에 더욱 부지런하기 때문에 참으로 평화와 즐거움의 영이 회중들 사이에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읍니다.”
22 이러한 평화와 즐거움은 또한 “좋은 소식”을 힘차게 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개인 및 가족 생활에 증가하고 있읍니다. 물론 아직도 어떤 문제들과 생활의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불완전하고 현 악한 사물의 제도가 존속하는 한 이러한 일들이 지속할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더욱 전념한다면 생활이 더욱 충실(充實)하고 풍만하고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20:35) 이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실천 가능성이 있읍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하였고 오늘날의 수백만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23 다른 사람들 또한 당신이 어떠한 종류의 그리스도인인가를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관찰할 것입니다. 그들은 이 일과 그리스도인들의 기타 활동이 당신의 생활에 가져다 준 평화와 즐거움을 볼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 면으로 당신이 반영하는 그리스도인 특성과 “영의 열매”에 유의하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 4:24; 갈라디아 5:22, 23, 신세) 그렇습니다. 당신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이 성공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보게 할 것입니다.
24. 이 일에 온전히 참여하는 일에 대하여 당신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읍니까?
24 “좋은 소식의 거룩한 일에 종사”하는 일에 관해 말한 다음에, ‘바울’은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크게 기뻐하는, 신세] 것이 있[느니라.]” (로마 15:17)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역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크게 기뻐할 수 있도록 일합시다.
[각주]
a 일부 번역자들은 ‘히에루르군타’를 “제사장으로서 일하다” 혹은 비슷한 문귀로 번역하였다. 침례자 ‘요한’의 부친 ‘사가랴’와 관련하여 관련 동사가 사용된 누가 복음 1:8을 비교하라.
b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이 다른 언어로 번역된 최초의 것은 ‘시리아’어였음이 분명하다. ‘제임스 머어독’ 교수의 ‘시리아’어로부터의 번역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여러분의 영혼에 유익이 되는 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하면서, 거리에서 또 집에서, 여러분에게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읍니다.”
[16면 삽화]
오순절에 시작된 ‘더 큰 일’
[17면 삽화]
오늘날 ‘증인’들이 온 땅에서 수행하고 있는 “더 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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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에서의 성서 교육파수대—1981 |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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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에서의 성서 교육
북부 ‘이탈리아’의 ‘아드리아’ 해 부근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 있다. 전 국토는 61평방 ‘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사면 팔방이 ‘이탈리아’ 공화국에 의해 둘러 싸여 있는 독립 공화국인 ‘산 마리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도인 ‘산 마리노’로 들어 가면서, 방문객들은 중세 양식의 건물들을 보고는 이내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달마시아’(현재의 ‘유고슬라비아’의 해안 지방)에서 온 ‘마리누스’라는 이름의 석공이 기원 4세기에 그 공화국을 설립하였다고 전해 내려 오고 있다. 그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그리스도인 박해를 피해 그 곳으로 도망했다.
‘산 마리노’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은 약 20년 전에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에, 한 연로한 ‘이탈리아’인 남자 간호원이 이 공화국 주민들에게 성서 진리를 전해 주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반대를 받게 되었다. ‘가톨릭’ 사제들의 선동을 받은 지방 경찰은 여러 차례, 그를 국경으로 호송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 남자 간호원은 성서에 언급된 담대한 그리스도인들을 본받아서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하였다. (사도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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