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환영하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환영하신 것처럼 서로 환영하시오.”—로마 15:7, 개역 표준역; 현용 성서.
1. (ㄱ) 국제 연합 기구 회원국으로 맞아들여진 나라는 몇개국이나 됩니까? (ㄴ) 그것은 무엇을 산출하지 못하였으며, 그리하여 무엇에 대한 공포가 그치지 않고 있읍니까?
현재까지 국제 연합 기구로 맞아들여진 나라는 154개국입니다. 그 회원국 모두가 동일한 정치 이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제 연합에서 “우호적인 적”이 되려고 하는 나라들도 있읍니다. 그들은 미국의 저술가이자 시인인 한 사람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한 말이 참됨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국제 연합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기구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1945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미국 정치가 ‘웬델 윌키’가 말한 것, 즉 “한 세계, 한 정부”를 산출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핵 전쟁이 될 제3차 세계 대전의 발발에 대한 공포가 날로 커져가고 있읍니다.
2. 한 나라 안에서도, 어떤 요인들이 한 시민이 동료 시민들에게 맞아들여지는 데 있어서 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읍니까?
2 국제 연합에 속해 있는 국가 내에서도 시민들이 다른 동료 시민들을 자기들의 사회 단체에 맞아들이지 않는 일이 있읍니다. 편견이 문제를 좌우합니다. 부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한 종교 성원들은 다른 종교 성원들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한 정당의 지지자들은 반대 정당의 지지자들을 환영하려 하지 않습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교육을 거의 혹은 전혀 받지 못한 사람들을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의 피부색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에 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읍니다. 인종의 혈통은 차별을 야기할 수 있읍니다. 개인이 하나의 커다란 인간 가족의 동료 성원이라는 것만을 기초로 해서는 공통적으로 동등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없읍니다. 이처럼 개인적 반감과 적의에 의해 어떤 사람이 용인될 수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결정되고 있읍니다.
3. (ㄱ) 그리스도교국은 위와 같은 점들에 있어서 왜 예외가 아니었읍니까? (ㄴ) 국제 연합은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의 표현이 되는 일에 있어서 국제 연맹보다 더 나음을 증명하였읍니까?
3 그리스도교국도 그리스도교 나라들로 된 사회라고 생각되고는 있지만, 이 모든 점에 있어서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은 명목상으로만 그리스도교인들이기 때문에, 이사야 2:4에 예언되어 있는 이러한 말씀을 반복적으로 범해 왔읍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교국에서 명목상으로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은 자기 조국에 대한 애착심에서 자신이 죽기까지 아니면 적대자의 생명을 희생시키기까지 애국적인 투쟁을 벌일 것입니다. 과거 1918년 12월에 미국 그리스도 교회 연방 협의회가 당시에 제창된 국제 연맹을 “하나님의 왕국의 지상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이 국제 연합 기구를 기뻐할 만한 실질적인 이유는 없읍니다. 확실히 국제 연합 기구는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왕국의 표현임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4.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한 한 사람으로서 ‘바울’은 ‘전에 기록된 것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4 그러나, 나라들이 서로 대항하여 칼을 들지 않으며 더는 전쟁을 연습지 않는 일에 관한 위에 인용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본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성취되고 있읍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오래 전에 기록된 ‘이사야’의 예언들을 여러 번 인용하셨읍니다. 그분은 자기의 추종자들을 교훈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읍니다. 그러한 추종자들 중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제1세기에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다음과 같이 상기시켰읍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희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로마 15:4.
5. 인내와 관련하여 ‘바울’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누가 가장 훌륭한 본이 되셨읍니까?
5 성경의 전에 기록된 것들의 성취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정치범처럼 형주에서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모욕과 박해를 인내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러한 극도의 상태까지도 인내하심으로 자기 추종자들로 끝까지 충실하게 인내하도록 강화시켜 줄 완전한 본이 되셨읍니다.
6. (ㄱ) 형주 위에서 예수께서 자기의 희망을 잃지 않았음을 무엇이 보여 주며, 어떻게 그분은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얻으셨읍니까? (ㄴ) 예수의 경우처럼 그분의 추종자들의 경우도 희망과 인내에 있어서 어떻게 이 점이 참됩니까?
6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상 행로를 마칠 때까지 확고 부동하게 인내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희망을 잃지 않으셨읍니다. 그런 까닭에 그분은 자기 옆에 못박혀 있던 동정적인 도둑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 (누가 23:43, 신세) 형주 위에서의 그 격심한 몇시간 동안 예수께서는 자기에 대해 말한 “전에 기록”된 것들을 상기함으로써 많은 위안을 받으셨으며, 그리하여 그분은 강력한 힘을 얻으셨읍니다. 그에 못지 않게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위에 쌓인 모욕을 참고 있는 그분의 헌신한 추종자들도 영감받은 성경적인 장래 희망을 고수합니다. 그들 역시 “전에 기록”된 성경 말씀에 의해 놀라운 위안을 받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성경에 기초한 그들의 희망은 “실망하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5, 새번역.
7. 전체 회중은 누구의 정신 태도를 가져야 하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에 어떠한 영향을 줍니까?
7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수의 세상에서 그 모든 고통을 당하시는 동안 가지셨던 정신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이와 일치하게 사도 ‘바울’은 이러한 기도의 요지를 써 보냈읍니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 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너희 사이에 그리스도 예수가 가졌던 동일한 정신 태도를 갖게 하여, 신세)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로마 15:5, 6)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그러한 정신 태도를 확립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제자들로 된 한 회중으로서 연합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한 집단에 같은 정신 태도가 있게 되면 서로 비슷한 표현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전체 회중은 “한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더 큰 힘을 발휘하고 더 큰 감명을 주게 됩니다. 이것은 대단히 적절한 일입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함께 연합하여 영광스럽게 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읍니다. 우리는 영광받으셔야 할 분에 관한 우리의 표현들을 연합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듣는 사람은 전달되는 소식에 혼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환영
8. 무엇이 ‘바울’이 편지한 ‘로마’ 회중의 연합에 쉽게 영향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까?
8 현 사물의 제도의 많은 조직 혹은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국가적 혹은 인종적 편견 때문에 신입자들을 환영하지 않는 경향이 있을 수 있읍니다. 교육 수준의 차이가 작용하거나 종교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읍니다. 소급하여 기원 1세기의 고대 ‘로마’에도 그러한 분열을 조장하는 육적인 요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9. 당시의 ‘로마’ 회중은 어떠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무엇이 개인적인 교제의 기호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입니까?
9 사도 ‘바울’은 아직 그 국제적인 제국 도시 ‘로마’에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곧 닿으리라는 기대 가운데, 그곳의 회중에게 영감받은 편지를 썼읍니다. 완전한 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접근하기 쉬운 점에 주의를 이끌고 ‘바울’은 계속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또한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생각하고 우리를 환영하신 것처럼 서로 환영하시오.” (로마 15:7, 신세) 한 가지는,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 중에는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과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 즉 비‘유대’인들, 자유인들과 노예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1:7; 3:1-6; 빌립보 4:22) 그러므로 그러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종교적 배경 및 사회적 신분에 차이가 있었으며 이 모든 것은 여러가지 상이한 견해 및 양심상의 감정을 산출하였읍니다. 이로 인하여 또한 특정인과의 교제를 더 좋아하는 일도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10. 우리가 서로 환영해야 하는 방법에 대해 예수께서는 어떻게 본을 세우셨으며, 그분은 무엇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셨읍니까?
10 ‘바울’은 이 모든 것을 제쳐 놓고 그들에게 모두 “서로 환영하시오”라고 훈계하였고, 따뜻하게, 충심으로, 진실하게 동료 그리스도인 곧 동료 신자에 대한 진정한 인식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였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따라야 할 완전한 본이 있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또한 ··· 우리를 환영하신 것처럼” 그렇게 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지상에 계셨을 때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읍니까? (요한 6:37) 그렇습니다! 완전한 인간이셨던 그분은 우리의 불완전함과 죄의 경향으로 인해 우리를 멀리하실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생각하고”라는 말을 첨가하여 그 이유를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을 환영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 가게 하셨읍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관대함과 모든 인간이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통하여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뜻을 돋보이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자신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와 같았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 3:16.
11.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그러한 따뜻한 환영은 어떻게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며,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자기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1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로서 찾는 사람들 모두를 인종, 피부색, 이전의 종교, 사회적 신분 또는 세속 교육에 관계 없이 회중 안으로 환영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기여하는 일이 됩니다. 그것은 그처럼 환영받는 사람들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게 해 줍니다.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 모두를 자기가 영적인 머리로 계시는 회중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심을 나타내시어 “이방의 ‘갈릴리’”에서 자기 제자들에게 해야 할 일을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이사야 9:1; 마태 28:16-20.
12. (ㄱ)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환영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는 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ㄴ) 우리가 집집으로 찾아 가는 것은 하나님께 피흘린 죄가 있다는 비난을 어떻게 상쇄합니까?
12 우리가 찾아 오는 사람들 모두를 차별없이 환영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상당한 자극제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나게 해 줍니다. 그것은 환영받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온정에 넘친 하나님의 관대함을 인식하게 하고 그들 자신이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우리가 집회 장소 문밖으로 나가 집집으로 찾아 가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또한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을 생각하고 우리를 환영하신 것처럼, 서로 환영”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로의 결과로 우리가 찾아가는 사람들이 왕국 소식을 인식하든지 않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가 증거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왕국 소식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들에게 왕국 사자(使者)를 보내주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에 참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소식을 환영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생각하셔서 그분의 충실한 증인들을 보내 주셨던 사실과, 따라서 자기들에게는 하나님을 흠잡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조만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 33:33)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피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 계십니다.
목수로부터 “봉사자”가 되시기까지
13. 하나님께서 나머지 세상 사람들보다 수가 적은 백성에게 최초의 기회를 주셨다고 해서 편애하셨다는 비난을 받으실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그러나, 하나님의 마련으로부터 유익을 받는 최초의 기회는 누구에게로 돌아갔읍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성경이 전달된 통로가 된 백성이었읍니다. 그들은 육적 ‘유대’인들이었읍니다. 그렇다면, 1,900년 전일지라도 비‘유대’인들의 수가 할례받은 ‘유대’인들의 수를 훨씬 능가하였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편애하신 것이 아닙니까?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어느 곳인가를 시발점으로 삼으셔야 하였으며, 바로 그분은 그 조상들을 통하여 특별한 약속들을 하셨던 사람들, 즉 할례받은 ‘유대’인들을 시발점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신 데서 오는 최종적인 유익은 순전히 육적 ‘유대’인들, 즉 ‘히브리’인들에게만 한정돼 있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해 불평할 타당한 근거가 있읍니까? 전혀 없읍니다!
14. 그리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아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시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분은 자기와 같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환영을 받으셨읍니까?
14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합당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육적 후손들, 즉 ‘유대’인들에 관한 파기할 수 없는 약속들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은 그의 천적 아버지의 그러한 약속들을 이행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 오셔야만 하였읍니다. 이로 인하여 그분은 국제적으로 미움을 받는 민족, 하나님과 국가적인 언약을 맺은 백성의 한 성원으로 태어나시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나 ‘유대’인으로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대다수의 동료 ‘유대’인들에게서 환영을 받지 못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지상 행로에 관해 기술한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 하였[느니라.]”—요한 1:11.
15.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어떠한 일을 하셨으며, 그분이 그 일을 하신 것은 “할례받은 자들의 봉사자”의 일을 하신 것입니까?
15 그러므로 성원 모두가 육적 ‘유대’인이 아니었던 ‘로마’의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유대’인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할례받은 자들의 봉사자, 신세)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 15:8, 9) 의붓 아버지인 할례받은 ‘유대’인 ‘요셉’의 고향 ‘갈릴리’ ‘나사렛’에서, 예수는 자라가면서 목수 일을 배웠읍니다. ‘유다’ 지파 출생이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제사직 가문 즉 성전 ‘레위’ 지파에 속하시지 않았읍니다. 육적으로 그분은 ‘예루살렘’의 성전 종들의 직책을 맡으실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단지 목수 일을 하다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할례받은 자들의 봉사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양부 ‘요셉’처럼 목수가 된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읍니다.
16. 예수께서는 목수로서 ‘나사렛’ 마을 사람들을 섬기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하기 시작하셨읍니까?
16 ‘나사렛’에서의 목수 일이 예수의 인생의 전부였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예언된 자기의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어떤 색다른 일, 즉 그분이 “할례받은 자들의 봉사자”, ‘나사렛’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전체 민족을 섬기는 봉사자가 될 일을 시작하셨읍니다. 따라서 그분은 30세에 목수업을 완전히 그만 두셨읍니다.
17. 예수께서 침례받고 기름부음받으신 후에 하신 일은 성전의 ‘유대’인 대제사장의 봉사와 어떻게 비교됩니까?
17 예수께서는 ‘레위’ 사람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신 후에 어떠한 일을 하기 시작하셨읍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실제 하나님의 “봉사자”들이었던 성전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봉사보다 열등한 봉사였읍니까? 확실히 사실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단순한 종교적 직업이 아닌, 공식적 봉사 곧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였음을 인정할 것입니다. 「개역 영문판 성서」는 그것을 이러한 말로 표현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봉사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확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로마 15:8; 또한 「흠정역」 즉 「제임스 왕역」 참조) 그분은 부인의 여지없이 인간의 임명이 아니라 우주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임명에 의한 봉사의 직책을 차지하시고 민족적 봉사를 수행하셨읍니다.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시던 일을 바꾼 후에 행하신 일은 ‘예루살렘’의 ‘유대’인 대제사장들의 종교적 봉사보다 훨씬 더 중요하였읍니다.
18. 어떠한 지상 나라도 “봉사자”로 인정치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왜 “할례받은 자들의 봉사자”가 되셨읍니까?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어떤 종교적 봉사를 수행하셔서 그곳의 제사장들 및 ‘레위’인들과 경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물론, 그분은 비‘유대’ 나라들인 ‘로마’, ‘아덴’, 혹은 다른 곳의 어떠한 사원에서도 종교적 봉사를 수행하실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받은 자들의 봉사자”가 되셔야 하였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그분이 이방인들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인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들을 확증”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세명의 여인을 통해 여러 아들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첫 아내 ‘사라’의 외아들, 즉 ‘이삭’을 택하셔서 ‘아브라함’의 약속을 이어 받게 하셨읍니다. 그 다음 ‘이삭’에게는 쌍동이 아들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쌍동이 중 동생, 즉 나중에 ‘이스라엘’이라고 불리운 ‘야곱’을 택하셔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될 “씨”에 관한 ‘아브라함’의 약속을 물려받게 하셨읍니다. 얼마 후 ‘야곱’의 12명의 아들들에게서 ‘이스라엘’ 12지파가 생겨 났으며,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모세’를 중보로 그들과 한 나라로서 국가적인 언약을 맺으셨읍니다.
19. 예수께서는 왜 ‘레위’ 지파로 태어나지 않으셨으며, 누가 그분을 지상의 어느 곳으로 환영하였읍니까?
19 나중에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의 보이는 대표자로서 인간 왕을 갖는 길을 선택한 후에, 그분은 ‘유다’ 지파의 ‘다윗’ 왕에게 그분의 왕에 대한 약속을 하셨읍니다. 따라서 약속된 ‘메시야’, 즉 그리스도는 ‘다윗’ 가문으로부터 나와야 하였읍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예수께서는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유다’ 지파의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태어나심으로 ‘다윗’의 상속자가 되셨읍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그분을 지상으로 환영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오는 하나님의 아들은 ‘유대’인으로 태어나실 수 밖에 없었읍니다. 그분의 아버지 하나님의 파기할 수 없는 약속이 확증, 즉 입증되어야 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짓말하시는 이가 되도록 방치해 두실 수가 없었읍니다.
20. 예수께서 “할례받은 자들” 중 한 사람이 되셨지만, 무엇이 비‘유대’ 나라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0 예수께서는 아주 기꺼이 자기의 천적 아버지와 협조하셨읍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실제로 “할례받은 자들의 봉사자가 되셨”읍니다. 그분은 그들 중 한 사람처럼 할례를 받으셨읍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받으신 후 3년 반 동안은 할례받은 ‘유대’인들에게 특별한 은혜가 베풀어졌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신권 조직 안으로의 환영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 즉 비‘유대’인들을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이것은 인류에 대한 여호와의 어길 수 없는 약속들을 확증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다음 호에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라는 제목으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