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하나님께서는 왜 지상의 고통을 허락해 오셨는가?
1, 2. 인류는 어떻게 출발하였으며, 그 출발은 어떠하였읍니까?
과학적인 증거와 성서는 모든 사람이 원래 한 쌍의 부부로부터 유래하였다고 증언합니다. 그 다음, 홍수 후, ‘노아’의 세 아들의 후손들로부터 인류 가족의 삼대 족속이 형성되었읍니다.—창세 3:20; 9:18, 19.
2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이]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니라.]” (사도 17:26) 그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완전하게 창조되었읍니다.—신명 32:4; 창세 2:18, 21-23.
3. ‘아담’은 창조된 때에 천사들과 어떻게 비교되었읍니까?
3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며, 하나님의 가족의 온전히 인정받은 성원이었으며,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만들어졌읍니다. (누가 3:38) 천사들은 인간보다 힘과 능력이 큰 영물들입니다. (베드로 후 2:11) 그러나 성서 어디에서도, 천사들이 더 큰 도덕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에게서 태어난 인간으로 지상에 계실 때 그분의 도덕적 성실은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우주적 가족 내에 있는 누구의 성실과도 같았읍니다.—시 8:4, 5; 히브리 2:6-9; 7:26.
4, 5. 어떻게 병과 재난과 고통이 전체 인류에게 있게 되었읍니까?
4 그런데 어떻게 인류에게 불완전과 그에 수반된 고통, 질병 및 고생이 있게 되었읍니까? 성서는, ‘아담’과 ‘하와’ 이래 온 인류는 자신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완전하게 태어났다고 설명합니다. 성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 5:12.
5 유전 법칙에 의하면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성향과 특성 및 결함을 유전받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아담’이 어떻게 결함있고 불완전한 죄인이 되었읍니까? 그 때 이후로 왜 재난과 고통이 허락되어 왔읍니까?
‘아담’의 훌륭한 지위
6. ‘아담’은 어떠한 면에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읍니까?
6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읍니다. (창세 1:26) 이것은 그가 도덕적 특성과 영성을 위한 능력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하나님에 관하여 알고 배울 수 있었으며 하나님 앞에서 아들같은 관계를 누릴 수 있었읍니다. 그는 추리력과 양심의 능력 곧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아담’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표하여, 하나님의 영광 즉 하나님의 훌륭한 속성을 차후 태어날 후손에게 반영할 수 있었읍니다.
7. (ㄱ)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새로 등장한 ‘아담’에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공급하셨읍니까? (ㄴ) ‘아담’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어야 합니까?
7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통신하셨으며, 아마 매일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창세기 3:8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날이 서늘할 때”라고 하였읍니다. 이처럼 하루 중 특정한 때를 언급한 것은 이 때가 아마도 하나님께서 습관적으로 그와 통신한 때였을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지존자께서는 지상에 새로 등장한 ‘아담’을 가르치기 위하여 분명히 시간을 내셨읍니다. (창세 1:28-30) 이 첫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도움과 교훈이 필요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는 하등 피조물에 대한 적절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었읍니다. ‘아담’은 영적으로 발전하고 사랑을 배양할 온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는 배우는 일에 진보함에 따라 창조주께 대한 그의 인식과 사랑은 더욱 더 강해질 수 있었읍니다. (요한 1서 4:7, 8) 그는 그분과의 더욱 친밀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읍니다.
8. ‘아담’은 식물과 동물에 대하여 많이 배우는 것이 왜 필수적이었읍니까?
8 성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되는 기간 동안 그분의 아들에게 교훈을 주셨는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우선 식물과 동물에 대하여 배우는 것이 필수적이었읍니다. 공원을 가꾸고 가축을 돌보는 기술에 있어서 전문 재배자 및 자녀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어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 2:15, 19) 이렇게 하는 데는 분명히 시간이 걸릴 것이었읍니다.
9. 창세기 2:19, 20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어떠한 임명을 주셨으며, ‘아담’은 어떻게 그 일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었읍니까?
9 ‘아담’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집인 ‘에덴’ 동산에 거주하였읍니다. 그곳은 아마도 광대한 지역이었을 것이며 ‘아담’은 그 지역 일대를 여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담’은 동물들을 천연 서식지에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그 일을 수월하게 하실 것이었읍니다. 다음에 ‘아담’은 그 동물들의 특성과 특징에 따라 이름을 지을 수 있었읍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읍니다.—창세 2:8, 19, 20.
10. ‘아담’은 자기가 받은 교육으로 무엇을 할 수 있었으며, 그러나 그는 무엇에 조심성을 나타내야 하였읍니까?
10 ‘아담’은 자기 지식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는 ‘땅을 정복’하는 방법에 있어서 설계자이며 인도자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에덴’ 동산 밖의 경작되지 않은 땅은 장차 있게 될 수십억의 사람들을 위한 “집”이 되어야 할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건축자가 건축 기사의 청사진을 따르듯이, 땅을 인류에게 아름답고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장소로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현명한 지시를 충실히 따라야 할 것이었읍니다.—누가 16:10.
11. ‘아담’은 어떻게 처음에 자기의 책임을 이행하였으며, 그의 앞에는 어떠한 의무가 있었읍니까?
11 ‘아담’은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그에게 주신 것에 대해 어떻게 하였읍니까? 한 동안 그는 잘 하였읍니다. 그는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배운 대로 아내를 가르쳤읍니다. (창세기 2:16, 17을 창세기 3:2, 3과 비교) 여호와는 창조주이시므로 그들의 하나님이셨읍니다. 하나님과의 적절한 관계를 계속 누리려면, ‘아담’과 ‘하와’는 주권 통치자이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께 순종해야 하였읍니다. 그들이 그들의 가족을 늘려 땅을 덮게 함에 따라, 질서와 조화를 위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필수적이 될 것이었읍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교육시킴으로써 자녀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읍니다.
‘지식의 나무’
12. 창세기 2:17에 의하면, ‘아담’과 ‘하와’는 어떠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읍니까?
12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제외하고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자유로이 먹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창세 2:17) 영원한 생명이 그 부부와 그들의 후손 앞에 놓였으며, 유일한 조건은 그들이 순종해야 한다는 것 뿐이었읍니다. ‘아담’이 매우 불경하게도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전체 가족에게 수치일 것이었읍니다.
13, 14. (ㄱ) ‘아담’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왜 전적으로 올바르고 적절하였읍니까? (ㄴ) ‘아담’은 그가 가진 좋은 것들에 대하여 무엇을 하지 않았으며, 그는 어떠한 태도를 발전시켰읍니까?
13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그가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셨읍니다. ‘아담’ 자신은 땅이 훌륭한 식품을 생산하도록 만들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의 아름다운 반려 ‘하와’를 창조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가 가진 것들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기 자신의 신체를 만들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아담’은 친절하게도 자기에게 주어진 훌륭한 생활을 사랑하고 즐겼지만, 그는 순종적으로 생활하지 않았읍니다.
14 마침내 ‘아담’은 자기가 상상한 관심사를 그의 천적 아버지의 관심사보다 중요시하게 되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가족 및 그에게 있게 될 후손에 대해서보다, 자기의 목전의 욕망을 더 생각하였읍니다. 불완전한 인간들도 자기 가족을 저버리고 자기의 자식을 노예 상태와 사망으로 팔아 버리는 사람을 경멸합니다. ‘아담’은 바로 그러한 행동을 하였읍니다.—로마 7:14.
15, 16. (ㄱ)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실제 나무였읍니까? (ㄴ) 이 나무에 대하여 어떠한 다른 질문들이 생깁니까?
15 ‘아담’의 죄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읍니까? 그 죄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관련되어 있었읍니다. 지금까지 이 나무에 대하여 여러 가지 억측이 있었읍니다. 그것은 실제로 나무였읍니까? ‘아는 것’ 즉 지식과 “선악”은 무엇이었읍니까? 하나님께서는 동산에 왜 그러한 나무를 두셨읍니까?
16 성서는 동산의 과일 나무 중 하나로 이 나무를 언급함으로써 그 나무가 실제 나무였음을 암시합니다. (창세 2:9) 그 나무가 대표한 ‘아는 것’ 즉 지식은 무엇이었읍니까? ‘가톨릭’ 「‘예루살렘’ 성서」는 창세기 2:17 각주에서 이러한 적절한 해설을 하고 있읍니다.
17. ‘가톨릭’계 「‘예루살렘’ 성서」의 각주에 의하면, 그 나무가 대표한 ‘아는 것’ 즉 지식은 무엇이었읍니까?
17 “이 지식은 하나님께만 있는 특권인데, 인간이 범죄함으로써 그 특권을 장악하였다. [창세기] 3:5, 22. 그러므로 그것은 타락한 인간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전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도덕적 판별력도 아니다. 왜냐 하면 타락하지 않은 인간은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성적인 존재에게 허락 안하실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 인간이 창조된 존재로서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완전한 도덕적 독립권이다. 그 최초의 범죄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침해였으며 자만심으로 인한 죄였다.”
18. (ㄱ) 그 나무는 무엇의 상징이었읍니까? (ㄴ) 완전한 사람이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범죄하려면 그는 먼저 무슨 결정을 할 것입니까?
18 그 나무는 요컨대 인간의 합당한 영역의 경계—경계선—혹은 한계의 상징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 경계를 알리는 것은 올바르고 합당하고 또한 필요불가결한 일이었읍니다. 완전한 인간이 그 나무의 실과를 먹으려면 그의 뜻에 따라 고의적으로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순복에서 이탈하여 독립적으로 행동하여 자기 자신의 결정에 따라 “선” 혹은 “악”을 행하기로 사전에 결의하였음을 시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도전받음
19. ‘아담’의 고의적인 죄로 인하여, 로마서 1:28의 원칙과 일치하게, 자신과 자기의 자녀들은 어떠한 결과를 당하였읍니까?
19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등지는 길로 갔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자유 의지를 방해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아담’의 그릇된 선택으로 인하여 그와 그의 자녀들은 온갖 고통스러운,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 휩싸이게 되었읍니다.—로마 1:28.
20. ‘아담’의 그릇된 행동은 어떻게 온 인류를 포함한 의문을 일으켰읍니까?
20 더우기, 그 문제는 ‘아담’과 그의 아내의 단순한 반역 이상이 관련되어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지적 아들의 반역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였읍니다: 즉 하나님의 지적 가족 내에서, 자기의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통치권에 충성하기로 결정하고 불순종을 통해 이기적인 소득을 얻고자 하는 유혹 혹은 압력을 받아도 하나님께 충성을 유지할 사람이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존재하게 될 모든 남녀의 성실성, 충실성은 하늘과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의 정신 속에 있는 의문일 것입니다.
21. ‘아담’의 범죄는 인간의 성실성의 의문보다 훨씬 더 큰 어떠한 문제를 제기하였읍니까?
21 그러나 이 의문은, 약 2,500년 후의 사태 발전으로 예시된 바와 같은 훨씬 더 큰 문제—하나님의 주권 혹은 통치권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에 종속적인 혹은 이차적인 것이었읍니다. 관련된 그 문제는 ‘욥’이라는 사람의 실제 생애에 있었던 일로 예시되었으며, 그 기록이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보존되었읍니다.
22. 「욥기」는 모든 인간의 성실성과 충실성이 실제로 논쟁점이 되었는지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22 「욥기」는 하나님의 한 천사가 그 도전의 조장자였다고 밝혀 줍니다. 그는 지존자 앞에 나타나 하나님의 헌신한 종 ‘욥’을 오만불손하게 비난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욥’의 충성은 전적으로 이기심에 기초하였다고 말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자가 ‘욥’에게 커다란 고난을 주는 시험을 하도록 허락하셨읍니다. ‘욥’은 시험 아래에서도 충실성을 증명하였지만, 그 반역자는 ‘욥’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여전히 비난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성실 즉 비난받을 것이 없음, 하나님께 대한 충실]을 굳게 지켰느니라.” 그 천사는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욥 2:2-5.
23. ‘욥’이 심한 고통 아래에서도 충실성에 고착한 데 대한 결과는 무엇이었읍니까?
23 하나님께서는 ‘욥’이 충실을 유지할 것을 아시고 그가 시험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읍니다. 그리고 ‘욥’은 한 동안 고통을 당하면서도 사실상 상실한 것이 없었읍니다. 시험 끝에,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140년 더 연장하는 것을 포함하여 그가 이전에 누렸던 것 이상으로 ‘욥’에게 상을 주셨읍니다.—욥 42:12-16; 또한 히브리 11:6 비교.
24. (ㄱ)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선동자 및 조장자는 실제로 누구였읍니까? (ㄴ)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변명의 여지가 있었읍니까?
24 보이지 않는 천적 사건에 대한 이러한 간단한 계시는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신 것에 대한 진정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단’ 마귀라고 알려진 그 도전한 천사는 실제로 반역의 선동자였읍니다. 그러나 ‘사단’이 처음에 도전을 시작하였을 때 ‘사단’편에 선 첫 인간 부부는 고의로 잘못을 저질렀으며, 변명의 여지가 없었읍니다.
25, 26. (ㄱ)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 대해 ‘아담’을 공격한 자가 ‘사단’ 마귀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부당하게도 ‘아담’이 공격을 당하도록 방치하셨읍니까? (ㄴ) ‘사단’은 ‘하와’를 공격하기 시작할 때 어떻게 추리하였을 것입니까?
25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온전한 준비를 갖추도록 필요한 모든 교훈과 기회를 주셨읍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종이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당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10:13) 그 결과, 전적으로 자유로이 자기 의지를 사용할 수 있었던 ‘아담’은 굳게 서서 충성과 충실을 나타낼 수도 있었읍니다. 오늘날 불완전한 인류에게 있어서 처럼 죄를 범하게 하는 불가항력적인 요인이 그에게는 없었읍니다. 그의 죄는 전적으로 고의적이고 계획적이었읍니다.
26 그러나, 하나님의 대적이며 반역적인 영자는 우주 가운데서 반역을 일으킬 기회를 찾았읍니다. 그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그의 도전을 촉진할 수단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였읍니다. 성서 기록은 그가 처음에 여자를 공격하였다고 알려 줍니다. ‘사단’은 ‘하와’를 성공적으로 공격하고 나서 ‘아담’에게 큰 압력을 가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였읍니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
27. 뱀이 ‘하와’에게 말하였지만, 우리는 뱀이 실제로 마귀의 수단에 불과하였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27 ‘사단’이 염두에 두었던,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도전은 실제로 어떻게 시작되었읍니까? 성서 기록은 들의 비천한 짐승인 뱀이 ‘하와’에게 말하였다고 보고합니다. 물론, 동물은 스스로 말할 수 없읍니다. 뱀을 사용하여 실제 말한 것은 ‘사단’ 마귀였읍니다. 이러한 속임수 때문에 그리고 뱀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옛 뱀[속이는 자]”이라고 부르셨읍니다. (계시 12:9) 예수께서는 ‘사단’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의 선동자이심을 지적하여 마귀가 “거짓의 아비”이며 ‘에덴’에서의 반역적 행로의 시초부터 살인자라고 부르셨읍니다. (요한 8:44) 이 최초의 거짓말과 반역에 대한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28. 창세기 3:1-5의 기록으로부터: (ㄱ) ‘하와’에게 한 ‘사단’의 질문은 어떻게 ‘하와’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셨다고 암시하였읍니까? (ㄴ) ‘하와’는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읍니까?
28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 3:1-5.
29, 30. ‘하와’는 ‘사단’이 거짓말을 하기 전에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어떻게 여겼으며, 거짓말을 들은 후에 그는 그것을 어떻게 보았읍니까?
29 그 이전까지 여자는 뱀이 언급한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순종했었읍니다. 그에게는 온갖 식품이 있었으며 전혀 궁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 나무의 실과를 먹을 때의 결과가 나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읍니다. 그 과일이 독물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죽음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어떤 사람이 숲속에서 옻나무나, 먹으면 위험한 열매를 맺는 어떤 나무를 본다면, 그는 그것을 만지거나 가지거나 먹고 싶은 매력이나 충동을 느낍니까? 아닙니다. 그러한 나무에는 아무런 매력이 없읍니다. ‘하와’의 경우가 그러하였읍니다. 그러나 ‘사단’의 거짓말은 이제 그 나무에게 매력을 부여하였읍니다. 그는 비천한 뱀을 통하여 나온 말을 그의 창조주의 말보다 더욱 믿었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30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으니라.]”—창세 3:6.
‘하와’가 속임을 당함
31. 뱀이 자기에게 말을 할 때 ‘하와’는 어떻게 추리하였을 것입니까?
31 ‘하와’는 왜 아연실색하지 않았으며, 왜 ‘하와’는 놀랍게도 뱀이 자기에게 말할 때 도망하지 않았읍니까? 성서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하와’는 나무에 있는 뱀을 보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뱀의 행동이 ‘하와’의 시선을 끌었을 것입니다. ‘하와’는 뱀이 매우 조심성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뱀은 매우 슬기로와 보였을 것이며 뱀이 말을 할 때 뱀은 특별한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32, 33. (ㄱ) ‘하와’는 그 실과를 먹으면 어떠한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까? (ㄴ) ‘하와’는 남편을 앞지르는 행동을 함으로써 실제로는 어떻게 자유를 상실하였읍니까?
32 아무튼, 이 동물의 입에서 나온 거짓말은 ‘하와’가 그 실과를 먹어도 죽지 않을 것임을 그에게 납득시켰읍니다. 오히려 ‘하와’는 자기가 특별한 능력을 얻을 것이라고, 즉 하나님과 같이 되어 어떠한 행로를 취할 것인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유와 독립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읍니다. ‘하와’는 아무에게도 의존하거나 종속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확실히 ‘하와’는 자기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말해 준 자기 남편에 대한 종속 관계를 버렸읍니다. ‘하와’는 주제넘게도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고 그 실과를 먹었읍니다.
33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여자의 복종을 강조하였읍니다. 그는 ‘하와’가 절대적인 독립을 얻는다고 생각하다가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로 자신에게 최대의 재난을 가져왔음을 지적하였읍니다. ‘하와’는 자기에게 합당치 않은 일을 하고자 시도하였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담’이 속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임을 당하고 죄에 빠진 것입니다.”—디모데 전 2:11-14, 새번역.
‘아담’의 믿음의 부족
34, 35. (ㄱ) ‘아담’은 속지 않았는데, 왜 반역에 가담하였읍니까? (ㄴ) ‘하와’의 범죄로 야기된 문제는 ‘아담’이 ‘에덴’ 동산을 돌보는 매일 매일의 문제보다 ‘아담’에게 왜 더욱 큰 문제였으며, 그는 어떻게 믿음의 약함을 나타냈읍니까?
34 ‘아담’은 속지 않았으므로, 그가 자기 아내와 함께 반역에 가담하도록 촉진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는 자기의 아내인 ‘하와’를 위한 자기의 욕망을 하나님과의 자기의 관계보다 더 중요시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아내를 보았을 때 그에게서 그 실과를 받아 먹었읍니다.—창세 3:6.
35 성서는 ‘아담’과 ‘하와’ 사이에 있었던 대화에 대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때 매우 심각한 문제가 갑자기 그에게 대두되었읍니다. ‘아담’은 동물들을 다스리고 동산을 가꾸는 일과 관련하여 해결할 문제들이 있었을 것이지만, ‘하와’와의 이 입장은 자기의 마음 속에 파고 들어 그의 충성을 시험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는 이러한 의문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행복한 생활 중에 그렇게 갑자기 그리고 나에게 충격적이게 그러한 일이 왜 발생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왜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셨는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이 시험을 받았읍니다. 그는 하나님께 대한 탁월한 사랑을 나타냈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지하실 것을 알았어야 합니다.—시 34:15.
36, 37. (ㄱ) ‘아담’은 믿음의 부족에 부가하여 어떻게 자기 변명을 하고 있음을 나타냈읍니까? (ㄴ) 그러나 그는 어떻게 자기의 반역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이 있었읍니까?
36 확실히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충성을 증명하였더라면 그분의 아들인 ‘아담’을 돌보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조종하여 ‘아담’이 완전한 행복을 얻게 하셨을 것입니다. (시 22:4, 5 비교) 그러나 ‘아담’은 이 믿음을 실천하지 않았읍니다. 더우기, 그는 이러한 말로 변명하고자 하였읍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세 3:12.
37 ‘아담’의 자기를 변명하는 대답은 그 여자를 죄있는 사람으로 비난하였읍니다. 그러나 전적인 책임은 ‘아담’에게 있었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장인 그와 직접 상대하셨읍니다. 그는 비난받을 만하였읍니다. 실제로 ‘아담’은 야고보 1:13-15에 묘사된 행로를 택하였읍니다.
38. 야고보 1:13-15은 완전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된 과정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38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전인류가 해를 입음
39. (ㄱ) ‘아담’은 어떠한 면에서 그가 범죄한 “그 날” 죽었읍니까? (창세 2:17) (ㄴ) 그가 영성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그는 신체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자녀들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읍니까?
39 그리하여 ‘아담’은 죄인이 되었읍니다. “죄”에 대한 ‘히브리’어의 의미에 의하면 그는 ‘과녁을 빗나갔’읍니다. 그는 더 이상 완전한 표준에 이를 수 없었읍니다. 그는 영적으로 사망하였으며 또한 그 날 신체적으로 죽기 시작하였읍니다. ‘아담’에게는 이제 결핍, 그에게 신체적으로도 영향을 준 도덕적 약함이 있게 되었읍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15:56) ‘아담’의 영성은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의 정신적 기능은 균형을 잃었고, 이것은 그의 신체의 불균형과 타락을 조장하였읍니다. ‘아담’은 죽어야 하였읍니다. (창세 3:19) 그는 자기의 자녀에게 도덕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온전한 힘을 물려 줄 수 없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그것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아담’이 한 때 완전했던 시절에 반영했던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읍니다.—로마 3:23.
40. (ㄱ)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한 후에 왜 ‘아담’을 ‘에덴’ 동산 밖에 두셨읍니까? (ㄴ) 고린도 전서 5:11-13에서 지적하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회중도 어떠한 동일한 행동을 취합니까?
40 ‘아담’은 죄인이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과 친교를 즐길 권리가 없었읍니다. 그는 낙원에서 더 이상 살 권리가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그분의 천적 맏아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 이 아들을 창조 사업 중에 사용하셨었읍니다. (골로새 1:13, 15, 17)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세 3:22, 23) 이와 동일하게 오늘날도, 성경은 회개하지 않는 나쁜 사람 혹은 부도덕한 사람을 그리스도인 회중과의 친교와 연합에서 제명시키라고 명령합니다.—고린도 전 5:11-13.
41. 모든 사람이 약함을 유전받았으므로, 각자는 자기의 모든 악행에 대해 이 사실에 책임을 돌릴 수 있읍니까? (로마 3:23; 5:12)
41 이 모든 것은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그 결과 유전적 약함이 있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자기가 행하는 모든 나쁜 일에 대하여 이 사실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실제로 모든 사람은 고의적으로 죄를 범할 수 있으며 따라서 개인적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류 가운데서 죄가 증대하였으며, 그 결과, 여러 가지 고통과 슬픔을 수반하는 극단적인 악행이 나타나게 되었읍니다. 죄는 거의 모든 생각과 행동에 침투하여 인류를 다스리는 왕으로 통치하여 왔읍니다. 깊이 배어든 이기심이 있읍니다.—로마 5:14.
도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42. (ㄱ) 하나님의 통치권 혹은 주권에 대한 무엇이 도전을 받았읍니까? (ㄴ) 이에 대한 마귀의 주장 혹은 지론은 무엇이었읍니까?
42 다행히도, 하나님의 과분한 친절과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 때문에 그분은 인류가 영구적으로 멸종되도록 인류를 버리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처하신 입장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분의 통치권, 그분의 주권이 정당한가, 의로운가, 합당한가 하는 점이 도전을 받았읍니다. 마귀는 여호와께서 사랑으로 다스리시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지성적인 피조물들이 순종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사랑하거나 그것을 다른 모든 것보다 더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하였읍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지지를 받는 것은 그분께서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결과, 요컨대 하나님께서 뇌물의 형태로 통치하시는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읍니다. (욥 1:9-11) 더우기, 마귀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그들이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읍니다. 이러한 허락되지 않는 것 중 하나는 그분으로부터의 완전하고 개별적인 독립,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라는 것이었읍니다.—창세 3:5.
43.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왜 그 때 즉석에서 마귀를 멸하시지 않고 악이 한 동안 존속되게 허락하셨읍니까?
4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통치권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읍니다. 그분은 그 때 즉석에서 마귀를 멸하실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셨다면 제기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아담’과 ‘하와’의 지지를 받은 ‘사단’의 도전은 하나님의 이름과 정부를 중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주 가운데 있는 모든 지성적 존재자의 이름을 손상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으로서의 그분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고 그 때와 미래에 살 충실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분의 전 가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악이 제한된 기간 동안 존속하도록 허락하셨읍니다.
44. (ㄱ)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즉각 멸하셨다면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는 어디에 있을 것입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차차 태어날 사람들에 대하여 무엇을 확신하셨으며, 이 확신은 정당하셨음이 증명되었읍니까?
44 만일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즉시 죽음에 처하셨더라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류 중 아무도 태어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악하게 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후손 모두가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임을 아셨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마귀의 온갖 시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길 것임을 그분은 아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불법자인 ‘사단’이 존속하도록 허락하셨고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출산하도록 허락하셨읍니다. 그들의 후손 중 많은 사람들은 충실을 유지하였음을 성서 기록은 증언합니다.—히브리서 11장.
45. (ㄱ)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신 동안 가장 오래 고통을 당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ㄴ) 하나님께서 악을 한 동안 허락하신 일에서 참으로 유익을 얻은 것은 누구입니까?
45 세상 상태는 불우하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지금까지 짧은 기간이나마 살아있는 것을 즐겨 왔읍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받았대야 그들의 생애 중 비교적 짧은 기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태어난 사실을 기뻐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약 6천년간 악과 고통을 관찰하면서 이러한 악을 관용해 오셨읍니다. 이 일은 우주 가족의 아버지이신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읍니다. (시 78:40 비교.) 그분은 어느 때라도 악을 중지시킬 능력이 있었지만, 억제하셨으며 그 목적은 그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와 앞으로 영원히 있게 될 우주의 지성적 피조물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읍니다. (누가 18:7, 8; 욥 35:6-8) 세계 역사와 성서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가 가까왔음을 지적합니다.
46. 하나님의 통치권 문제가 온전히 심리되려면 약 6,000년이 걸리지만 그 일로부터 어떠한 유익이 있을 것입니까?
46 하나님의 행동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예를 들면, 한 사건이 대법원에 회부되어 여러 가지 변론 끝에 최종 판결이 나면, 대법원의 판결은 그 후 모든 개별적 사건에서 동일한 문제를 결정하는 판례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대법정에서 해결된 이 우주적인 문제도, 판례가 될 것입니다. 다시는 고통을 수반하는 악이 우주에 혼란을 야기하도록 허락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법정에 대한 묘사가 다니엘 7:9, 10에 있읍니다.
47. 하나님의 주권의 정당성에 관한 우주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또 무엇을 마련하셨읍니까?
4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우주 주권 문제가 해결되도록 악과 고통을 허락해 오셨읍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또한 인류를 그 슬픈 상태에서 구해 내실 마련도 하셨읍니다. 이 마련으로 인류에 대한 죄의 다스림이 초래한 모든 해로운 결과가 제거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마련을 하셨는가 하는 것이 제 6장에서 고려할 흥미있는 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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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아담’은 동물들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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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사건이 공정하게 심리되었을 경우, 그 판결은 판례가 된다. 그와 같이 하늘의 대법정에서 우주 주권 문제에 판결이 나면, 모든 피조물은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