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과 그 상징
1.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의 진실한 ‘유대’인들의 경우에서처럼, 어떤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표는 어떻게 좋은 것이 될 수 있읍니까?
어떤 사람의 신분이나 공적 지위를 나타내 주는 표나 상징은 좋은 것, 그렇습니다, 필요한 것일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예루살렘’이 기원전 607년에 멸망되려 할 때, 상징적인 한 “사람”이 파견되어 의로운 마음을 가진 ‘이스라엘’인들의 이마에 표를 하여 그들이 살륙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읍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가 되었어야 할 그곳 한 가운데서 ‘자행되는 모든 가증한 일들’에 대해 분개한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을 위한 표를 받았었읍니다.—에스겔 9:1-7.
2. 계시록 7장에는 신분을 밝히는 어떠한 요인이 논의되고 있으며, 이 일이 어떻게 구원과 관련이 있읍니까?
2 오늘날에는 바야흐로 “큰 환난”이 전세계에 닥치려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7:1-8은 땅의 네 모퉁이에 배치된 “네 천사”들이, 일정한 수의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이 이마에 인맞기까지 사방의 바람을 붙들어 그것이 불지 못하게 하여 매우 파괴적인 폭풍우, 즉 “큰 환난”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음을 알려 줍니다. 또한, 이것은 “큰 무리”도 “어린 양의 피”에 자신들을 깨끗이하여 “큰 환난”을 생존하기에 합당한 신분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줍니다.—계시 7:9-14; 마태 24:21, 22.
3, 4. ‘유대’인 대제사장의 경우 그의 관 위에 새긴 ‘헌신의 상징’은 무엇을 상기시켜 주었을 것입니까?
3 고대 ‘이스라엘’에는 제사직이 제정되어 있었읍니다. ‘모세’는 대제사장을 구별시켜 주는 의복을 만드는 데 대한 여호와의 특별 지시를 이행하였읍니다. 관(冠)에 관하여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그들이 또 정금으로 거룩한(그들의 거룩한 헌신의 상징[표]으로, 신 영어 성서, 신세계역) 패를 만들고 인을 새김 같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야훼께 성별됨’, 예루살렘 성서]이라 새기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전면에 달았[더라.]”a—출애굽 39:30, 31; 29:6; 레위 8:9.
4 이 ‘헌신의 상징’은 대제사장과 모든 관찰자들에게 그가 헌신한 백성을 위한 거룩한 봉사를 위해 하나님에 의해 “성별” 혹은 바쳐졌음을 상기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그와 그의 동료 제사장들은 백성을 교육시키고 가납될 속죄 제물을 바치는 일을 주도할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해 줄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그 나라의 거룩한 헌신한 신분에 기여할 것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이 경고받았듯이, 만일 여호와를 버리면 그분도 그들을 버리시고 그들의 적에게 내 맡기실 것이었기 때문입니다.—신명 28:15, 25, 63.
5. 오늘날 ‘아론’계의 대제사장이라고 자신을 밝힐 수 있는 ‘코헨’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은 없지만, 우리의 경우가 절망적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이스라엘’ 백성의 비참한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재난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과 그분께 대한 헌신적 봉사로부터 등을 돌린 결과로 겪은 것들입니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두번째 멸망을 당한 이후로 대제사장은 그 관의 헌신의 상징과 함께 사라져 버렸읍니다. 오늘날 (“제사장”을 의미하는) ‘코헨’이라는 성을 가진 ‘유대’인 어느 누구도 자신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임을 증명할 수 없읍니다. 그러면 우리의 상태는 절망적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럽게 되신 아들에 관한 이러한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리셨음이니라.]”—히브리 7:26, 27.
6, 7.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제사직 지파에서 태어나셨읍니까? 그러면 그분은 어떻게 대제사장이 되셨읍니까?
6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기 위해 ‘레위’ 지파나 ‘아론’의 제사직 가문의 일원이셔야 할 필요가 없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마련에 따라 그렇게 되실 수 있었읍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자기의 조상 왕들보다 높아지게 될 이 뛰어난 후손에 관해 이렇게 예언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후회를 느끼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1-4.
7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물질적인 헌신의 상징을 가졌던 고대 ‘이스라엘’의 대제사장들보다 더 높으신 왕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이 그러한 직위에 계신 것은 ‘레위’계 제사장이시기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로 인한 것입니다.
“즐거이 헌신”하는 자들을 위한 상징
8. 왜 오늘날은 그리스도의 “권능”의 날이며, 현재 즐거이 헌신하는 사람들은 이와 관련하여 어떻게 합니까?
8 왕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들은 현재 그분의 “권능”의 날에 “즐거이 헌신”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이 왕 대제사장의 이름으로 헌신하고 그 헌신의 상징으로 물 침례를 받습니다. 이들의 완전한 수는 “큰 환난”이 발발하기 전에 마침내 봉함될 것임에 틀림 없읍니다. 마치 새벽 이슬과도 같이, 이들은 그들의 반려자들인 “큰 무리”와 함께 생기를 주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에 “즐거이 헌신”합니다.—계시 7:2-4, 9, 10, 14.
9. 로마서 12:1, 2에서 ‘바울’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하였읍니까?
9 사도 ‘바울’은 1,900년 전의 제자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연민으로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는데, 여러분의 몸을 살아있고, 거룩하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로, 즉 여러분의 이지력으로 섬기는 거룩한 봉사에 제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사물의 제도를 본받지 말고, 여러분의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로마 12:1, 2, 신세.
10, 11. (ㄱ) ‘바울’은 무엇을 논한 데 뒤이어 ‘로마’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처럼 간청하였읍니까? (ㄴ) 이 마련은 어떻게 하나님의 크신 연민의 표현이었읍니까?
10 ‘바울’은 상징적인 감람나무에 대해 논한 직후에 위와 같은 간청을 합니다. 정원의 감람나무의 가지들처럼 헌신한 ‘이스라엘’ 나라는 하나님의 “벗”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들이었읍니다. 그러한 신분으로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에 따라 “‘아브라함’의 씨”가 될 수 있는 일차적인 대열에 있었읍니다. (창세 12:3; 22:17, 18; 갈라디아 3:16, 29, 난외주; 야고보 2:23) 그러나 오직 육적 ‘유대’인들의 남은 자들만이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였으며 지적 ‘아브라함’의 육적 씨라는 신분에서 옮겨져 더 큰 ‘아브라함’이신 여호와의 영적 씨가 되었읍니다. (로마 11:5, 7) 나머지는 “가지”들로서 잘리워졌읍니다. 그들을 대치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비‘유대’인들, 즉 상징적인 야생 감람나무에게 주의를 돌려 충분한 “가지”들을 자르셔서 더 큰 ‘아브라함’, 즉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뿌리를 둔 144,000개의 가지들로 구성될 영적 정원 감람나무에 접붙이셨읍니다.—로마 11:13-33, 신세 참조; 계시 14:1.
11 그러므로 ‘로마’인들과 다른 모든 할례받지 않은 비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통하여 지상의 모든 민족을 축복할 ‘아브라함’의 영적 씨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커다란 연민의 표현이었읍니다. (에베소 2:12; 갈라디아 3:26-29) 이것은 그들에게 자기 희생적인 행로를 걷게 하였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인간 피조물에게 제시하신 유일한 특권이었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었읍니다! 합당한 한계를 넘어서지 않으면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제공하며, 신세]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과분하신 친절, 신세] 아래 있음이니라.”—로마 6:13, 14.
12. 그리스도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에게 말한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제공]”하라는 말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한 말입니까?
12 ‘바울’은 이미 헌신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즉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제공]”하라고 말하였 때 그들이 처음에 헌신하면서 행한 일을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은 그 헌신과 일치한 희생적인 행로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치된 가지들인 그들 역시 잘려지고 말 것입니다. (로마 1:7; 11:21, 22) 더우기, 영감하에 기록된 이러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장래 제자들이 읽고 하나님과의 이러한 헌신하고 침례받은 관계 안으로 들어와 그 상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계를 밟게 하는 강력한 고무제가 될 것이었읍니다. 일단 맺은 하나님과의 헌신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자기의 지체를 죄라는 주인에게 복종시키지 않고 의의 병기로 삼고자 끊임없는 투쟁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 16:24.
“큰 무리”의 상징자들
13. 땅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이것을 물 침례로 상징하는 것이 온당합니까?
13 오늘날 전세계에 걸쳐서 2,3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대 다수는 헌신의 상징으로 물 침례를 받기 위해 자신을 제공하였읍니다. 연례 기념식인 주의 만찬에서 이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10,000명 미만의 사람들이 표상물인 떡과 포도주를 취하여 자기들이 천적 희망을 가진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을 표명합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들도 헌신하고 그것을 물 침례로 상징하는 것이 온당합니까? 매우 명백하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이들도 임박한 “큰 환난”에서 생존하여 하나님의 “새 땅”의 일원으로서 유업을 받으려면, 선한 목자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베드로 후 3:13; 계시 21:1-4.
14.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한 무리” 안에 적절하게도 어떠한 훌륭한 관계가 편만합니까?
14 그러므로 여호와의 헌신한 증인들 중 압도적 다수는 하늘 왕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 후사가 되는 천적 희망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영으로 출생한 영적 ‘이스라엘’인들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한 무리”의 성원들로서 영적 ‘이스라엘’인들의 남은 자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읍니다. (요한 10:16) 그들에게 있어 이것은 놀라운 일이며 성경적으로 옳은 일입니다.
15. (ㄱ) 육적인 ‘유대’인들에 더하여 누가 ‘애굽’을 떠나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 갔으며, 그곳에서 그들은 무엇으로 간주되었읍니까? (ㄴ) 그들은 오늘날 누구를 상징합니까?
15 이제 성경 고린도 전서 10:18이 우리에게 하라는 것처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으로부터 탈출하였을 때 그곳에서 나온 모두가 육적인 할례받은 ‘이스라엘’인들은 아니었읍니다. “중다한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읍니다. (출애굽 12:38) ‘이스라엘’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 갔을 때 그러한 사람들은 “문 안에 유하는 객”들이 되었읍니다. (출애굽 20:10; 민수 35:15; 레위 19:9, 10) 그 고대의 중다한 잡족은 오늘날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다른 양”의 “큰 무리”를 상징하였읍니다.—요한 10:14, 16; 계시 7:9-17.
16, 17. (ㄱ) 상징적으로 말해서 “중다한 잡족”은 어떠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인들과 함께 침례를 받았읍니까? (ㄴ) 오늘날 ‘애굽’의 실체로부터 누가 탈출하였으며, 홍해에서의 사건과 같은 상황하에서 누가 멸망을 당할 것입니까?
16 ‘모세’ 시대에 비-‘이스라엘’인들의 “중다한 잡족”은 할례받은 ‘이스라엘’인들과 비슷한 경험들을 하였는데, 그 중에는 놀라운 침례도 들어 있읍니다. 그 침례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0:1-4에서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 [안에]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신세 참조) 그러므로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인들과 “중다한 잡족”은 모두 문자적으로 물에 젖지는 않았지만 모두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17 마치 그들이 문자적으로 ‘모세’ 안에 침례를 받은 양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그들에게 침례베푸시는 일이 그분께서 주신 인도자인 ‘모세’에게 위탁되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뒤쫓던 ‘애굽’인들의 경우에서처럼 죽음 안의 침례가 아니었읍니다. (출애굽 14:1-15:21) 오늘날 우리는 그와 비슷한 상태에 가까이 가고 있읍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충실한 남은 자들과 그들의 동료인 “큰 무리”는 ‘애굽’의 실체에서 나왔읍니다. (계시 11:7, 8) 그들은 그리스도의 천년 왕국하의 새로운 사물의 질서를 향해 전진하고 있읍니다. 더 큰 ‘모세’이신 영광스럽게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원수 세상은 그들이 안전 지대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하려고 결심한 나머지 그들을 뒤쫓고 있읍니다. ‘애굽’인들의 실체는 하나님의 전쟁터인 ‘아마겟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읍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불의 침례를 받아 멸망될 것입니다. 그들 중 아무도 살아 남아 그 끔찍한 이야기를 하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 (계시 16:14-16; 마태 3:11, 12) 홍해의 그 사건에서처럼, ‘아마겟돈’의 살륙자는 더 큰 ‘모세’의 영적 ‘이스라엘’이나 “다른 양”의 “큰 무리” 중 아무도 함께 살륙하지 않을 것입니다.
18. “큰 무리”의 성원들은 어떻게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을 떠난 “중다한 잡족”과 같이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까?
18 “큰 무리”의 충실한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지 않으며 바로의 실체인 ‘사단’ 마귀의 지배하에 있는 재앙으로 강타당한 ‘애굽’의 실체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전진하면서 마치 “한 무리”처럼 영적 ‘이스라엘’인들의 남은 자들과 끊임없는 관계를 유지합니다. (요한 10:16) “중다한 잡족”이 홍해를 통과하여 생존한 것처럼 현대의 “큰 무리” 성원들도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의 큰 날에 전쟁” 후에 구원의 해안에 서게 될 것입니다.
19. 특히 언제 이후로 오늘날 “큰 무리”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물 침례를 받아들였으며, 그들은 하나님께 순결한 숭배를 드리기 위해 자신들의 신분을 어떻게 깨끗이 하였읍니까?
19 특히 1935년 이후로 현재 “큰 무리”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더 큰 ‘모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전적 헌신의 상징으로 물침례를 받아들였읍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의복을 더 큰 ‘모세’인 “어린 양의 피에 ··· 씻어 희게” 하였읍니다. (계시 7:9-14) 그들은 하나님께 순결한 숭배를 드립니다.
20. “큰 무리” 성원들은 여호와를 어디에서 숭배하며, 이것이 스가랴 8:20-23에 어떻게 예언되어 있읍니까?
20 순결한 숭배자들의 이 “큰 무리”는 밤낮으로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 있읍니다. (계시 7:15-17)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어 여호와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회복된 후 그곳에서 숭배할 것으로 예언자 ‘스가랴’가 내다 본 사람들로 예표되었읍니다. 이에 관하여 스가랴 8:20-23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 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
21. “큰 무리”는 어떠한 의미에서 “‘유다’ 사람 하나의 옷 자락을 잡”으며, 무엇으로 인하여 “큰 환난”을 생존할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까?
21 이들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의 태도는 살아계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그러한 헌신은 지상에 살던 가장 위대한 “‘유다’ 사람”이신 단번에 바쳐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가납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제공의 상징으로만이 아니라, 그에 더해 그들의 경우는 그 동일한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헌신의 상징으로도 물침례를 받아들임으로 예수를 충실하게 본받습니다. 144,000명의 영적 ‘유다’ 사람들의 남은 자들의 ‘옷자락을 잡’음으로 그들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천적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백성”과 함께 모입니다. 아직 지상에 남아 있는 남은 자들로 대표되는 영적 성전에서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밤낮으로 “거룩한 봉사”를 드립니다. 그들의 희망은 “큰 환난”에서 생존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지상에서 영원히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분이 전적으로 헌신하고 침례받은 하나님의 종으로 올바로 식별됨으로 그들은 이를 위한 대열에 서게 되며, “[아버지께서] 영과 진리로 ··· 숭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심을 확신하게 됩니다.—요한 4:23, 24, 신세.
[각주]
a “헌신의 표”라는 표현은 ‘네제르’라는 ‘히브리’ 단어를 번역한 말인데, 「스트롱의 성서 완전 컨코단스」는 그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합당[하게] 구별된 그 어떤 것, 즉 (제사장이나 ‘나실’인의) (추상[적인]) 헌신, 그러므로 (실제[적인]) 자르지 않은 머리털, 또한 (암[시]적으로) (특[히] 왕가의) 화관—성별, 왕관, 머리털, 구별.”
당신은 다음 복습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는가?
●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한 봉사에 바쳐진 대제사장직에 어떻게 주의를 이끌게 하셨는가?
● 예수께서는 어떻게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었는가?
● 로마서 12:1, 2(신세)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게 되어 있는가?
● 침례와 관련하여 “큰 무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애굽’에서 나온 “중다한 잡족”과 어떻게 비교되는가?
● 침례와 관련하여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은 어떻게 예수를 본받고 있는가?
[16면 삽입]
전세계에 걸쳐 오늘날 2,3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있다
[15면 삽화]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봉사에 헌신한 물질적 상징물을 가졌던 고대 ‘이스라엘’ 제사장들보다 더 높은 왕 대제사장이시다
[17면 삽화]
“큰 무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무조건 헌신하는 것의 상징으로 물 침례를 받아 왔다. 당신도 그처럼 하나님께 무제한 헌신하였고 또 그것을 상징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