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1.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라]”는 예수의 말씀은 오늘날 살아 있는 어떤 반열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6:54에 있는 이 독특한 말씀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은 다가오는 “큰 환난”을 생존하는 살아 있는 “큰 무리”에게 적용될 수 없읍니다. (계시 7:9-17)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19세기 전에 누구를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까?
2.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그리고 자기와 관련된 ‘유대’인의 어떠한 절기가 가까왔을 때 부활에 관한 그 말씀을 하셨읍니까?
2 요한복음 6:54의 전후 문맥을 볼 때 예수께서는 단순한 ‘유대’인만이 아니라 자기의 열 두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이스라엘’인 제자들에게 그 말씀을 하셨음을 알 수 있읍니다. 기원 32년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왔읍니다. (요한 6:4) 그 명절을 위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 어린 양을 잡고 제사장들은 그 피를 그릇에 담아 제단 밑을 향해 뿌릴 것입니다. (‘맥클린톡’과 ‘스트롱’ 백과사전 제 7권 1난 4항 1-34행; 또한 1874년 ‘알프렛 에데르샤임’ 저 「성전—예수 그리스도 당시의 그 활동과 봉사」 190, 191면 참조.) 예수께서는 기원전 1513년 ‘애굽’에서 거행된 첫 유월절을 기념하려고 그 축제에 참여하셨읍니다. 그분 자신은 사실상 실체적 유월절 양 즉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읍니다.—요한 1:29, 36.
3. 왜 ‘유대’인들은 그 전날의 기적이 있은 후에 예수를 추적하였으며, 그 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들은 그분에게 어떤 점을 지적하였읍니까?
3 제자들을 포함한 그 ‘유대’인들은 그분이 ‘가버나움’에서 그들과 위와 같은 대화를 하시기 전날에 한 가지 독특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목격하였읍니다. 그분은 떡 다섯 덩이와 두 마리의 물고기로 자기의 말을 듣는 수천명을 먹이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국적인 생각을 가진 ‘유대’인들은 그분을 그들의 메시야이며 지도자인 왕으로 삼기를 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천적 메시야 왕이 되셔야 했기 때문에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는 그 사람들을 피하셨읍니다. 그 후에 그분은 바다 위로 걸어 가셔서 ‘갈릴리’ 해상에서 배에 타고 있던 자기의 열 두 사도들과 합류하셨읍니다. (요한 6:14-21) 그러나 그 ‘유대’인들은 땅의 인간 메시야를 추종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전날의 기적을 기억하고 그분을 추적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물질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능력을 발휘하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러한 것을 공급할 수 있는 메시야 왕을 원하였읍니다.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들은 예수에게 ‘시내’ 반도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기적의 ‘만나’ 형태로 “하늘에서 내린 떡”을 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켰읍니다.—요한 6:22-31.
4. 예수께서는 ‘모세’가 그들의 조상에게 ‘하늘로부터 참다운 떡’을 주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설명하셨읍니까?
4 그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모세’가 그들의 조상에게 하늘로부터 참다운 떡을 준 것이 아니라고 답변하셨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요한 6:32, 33.
5. 그 때 ‘유대’인들은 예수에게 무엇을 요청하였으며, 그분은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어떻게 설명하셨읍니까?
5 이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고 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그 떡임을 다음과 같이 밝히셨읍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한 6:34-40.
6. 왜 이 사물의 제도 중에 예수에게 와서 그분을 메시야로 믿는 사람들에게는 부활이 보증됩니까?
6 그리하여 예수에게 와서, 이 현 사물의 제도 중에 그분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지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마지막 날에 죽음에서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부활을 보증합니다. 이 경우에 예수께서는 사람이 먼저 부활을 받고 그 후에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믿음을 가지고 그분에게 와서 그분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여기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모세’, ‘다윗’ 그리고 침례자 ‘요한’과 같이 죽어서 이미 기억의 무덤에 들어가 있는 자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여러 제자들을 포함하여 ‘모세’의 율법하에 있던 그 당시 살아 있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7. ‘유대’인들이 수근거린 데 대해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와서 영생을 가진 사람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7 그 ‘유대’인 청중들은 예수의 기원에 관한 주장 때문에 서로 수근거리기 시작하였읍니다. 그에 관한 예수의 설명을 보면 그분이 누구에 관해 말씀하시는지 식별할 수 있읍니다.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선생님으로서의]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느니라].”—요한 6:41-47.
8. 예수께서는 어떠한 예언을 인용하고 계셨으며, 그분은 자기의 말을 듣는 ‘유대’인들에게 어떠한 기회를 제공하고 계셨읍니까?
8 예수께서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여자”인 천적 ‘시온’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이사야 54:13의 예언을 인용하셨읍니다.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는 크게 평강할 것이[니라].”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입니다. 이들은 예수에 대해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수에게 이끄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부활시켜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시겠다고 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생명은 여호와의 천적 영의 조직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의 많은 제자들을 포함하여 그의 ‘유대’인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여자”인 천적 ‘시온’의 아들들이 될 기호를 제공하고 계셨읍니다.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
9-11. (ㄱ) 예수께서 자기가 주는 “떡”이 자기의 “살”이고 이것이 “세상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떠한 질문을 제기합니까? (ㄴ) ‘바울’은 고린도 전 10:2-11에서 그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변합니까?
9 예수께서는 반복하여 자기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 후에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내 말을 듣는 너희 중 어떤]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한 6:51.
10 그러므로 예수는 생명을 주는 하늘로부터의 참 ‘만나’였읍니다. 그분은 이 상징적 떡이 자기의 살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분은 이 살이 “세상의 생명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부언하심으로써 ‘모세’ 당시에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스럽게 된 회중의 천년 통치 기간에 살 인류 “세상”을 상징한다는 것을 지적하셨읍니까?
11 ‘바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같은 신령한 식물[‘만나’]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린도 전 10:2-11; 출애굽 16:1-35; 민수 11:1-9.
12. 이 사물의 제도에서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는 천년기중의 인류 세상의 상태와 어떻게 비교됩니까?
12 그러므로 ‘시내’ 광야에서 ‘모세’의 인도를 받았던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사물의 제도에서 살고 있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이 제도는 영적으로 말해서 죽음을 가져오는 제도입니다. 지금은 영적 ‘이스라엘’인들이 희생된 예수 그리스도 즉 실체적인 천적 ‘만나’를 먹을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에 부활된 인류는 ‘시내’ 광야와 같은 황량한 상태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전 지구를 낙원으로 회복하는 일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지금 선생님으로서 영적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듯이 인류를 예수에게 “이끌지” 않으실 것입니다. (요한 6:44) 그렇게 하시지 않고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를 다스릴 왕으로 세우시고, 이 왕이 죽은 자들을 무덤에서 불러 내게 하십니다.
13. 이 “살”이 고대 ‘만나’의 실체가 되려면 어떠한 것 혹은 어떻게 처리된 것이어야 합니까?
13 곡식으로 만든 빵은 고대 ‘만나’처럼 피가 들어 있지 않은 식품입니다. 예수께서는 실체적 ‘만나’인 “생명의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자기의 살”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고대의 ‘만나’와 상응하려면, 이곳에서 사용된 “살”이라는 말은 피를 빼낸 살로 이해되어야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신 것은 피가 아니라 물이었읍니다.
14. 예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왜 예수께서 피를 뺀 “살” 심지어 인간 살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였읍니까?
14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 ‘유대’인들은 그런 식으로 이해하였읍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말씀에 대하여 그들은 “이 사람이 어찌[어떤 방법으로]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하고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6:52) 그들은 피에 관한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있었읍니다.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식품을 확대시키셨을 때 그분은 인류에게 동물의 피를 마시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고형 식물로서 동물의 고기를 주시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물을 마시게 하셨고 피를 뺀 고기를 먹게 하셨읍니다. 그분은 피는 혈육을 가진 모든 피조물의 생명의 수여자이신 자기에게 돌리도록 요구하셨읍니다. (창세 9:1-4)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모세’의 율법하에서 동물의 피에 관한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레위 17:10-12; 신명 12:16, 22-27) 피를 뺀 경우라 할지라도 인간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의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일이었읍니다. 그들은 식인종이 되기를 원치 않았읍니다.—열왕 하 6:26-31.a
15, 16. (ㄱ) 예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요한복음 6:53-59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이 점을 어떻게 더욱 강력하게 말씀하셨읍니까?
15 예수께서는 자기의 말을 듣는 ‘유대’인들이 자기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면으로 먹는 것임을 이해하기를 원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다음에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훨씬 더 못마땅할 일을 말씀하셨읍니다.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내 말을 듣는 ‘유대’인인]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말을 듣는 너희중에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의 말을 듣는 너희 중에서]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요한 6:53-59.
17. (ㄱ) ‘유대’인 회당에서 하신 예수의 그 말씀이 심지어 그분의 여러 제자들에게 준 영향이 어떠하였읍니까? (ㄴ) 그러므로 요한복음 6:53에 있는 예수의 말씀은 주로 누구에게 하신 것이며, 이들은 무엇이 되었읍니까?
17 여기 “회당에서”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요한복음 18:20에서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라고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것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세’의 율법 언약 안에 있는 ‘유대’인 청중에게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의 여러 제자들이 끼어 있었읍니다. 우리는 그분이 자기 살을 먹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 피를 마시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을 때 예수의 말씀이 준 충격을 가히 상상할 수 있읍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라고 하였다].” (요한 6:60) 이 말은 예수의 제자들 모두가 그분의 말씀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님을 알려 줍니다. 충격을 받은 사람들 외에도 열 두 사도를 포함한 또 다른 “제자”들이 있었읍니다. (요한 6:61-66) 그러므로 예수께서 요한복음 6:53에서 하신 말씀은 주로 자기의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며, 범위를 확대하면 “마지막 날”이 되기 전에 자기 제자가 될 사람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영적 ‘유대’인, 영적 ‘이스라엘’인들이 되었읍니다.—로마 2:28, 29.
18, 19. (ㄱ) 희생물의 피는 누구에게 속해 있었으며, 그러므로 예수의 피와 살을 먹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어떤 이방인 군대 장교의 믿음 때문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러한 식사에 관하여 말씀하셨으며, 또 식사시에 예수의 말씀을 듣고 한 ‘유대’인이 한 말을 들으시고 어떻게 그러한 식사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까?
18 ‘모세’의 율법 언약하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희생물의 피와 기름이 여호와께 속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레위 3:16, 17) 예수께서 승천하여 여호와 앞에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여호와께 속가(贖價)로서 자기 “피” 즉 그것의 가치를 여호와께 바치셨읍니다. (히브리 9:12-14; 요한 6:61, 62) 피는 여호와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 피를 마시고 예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여호와와 함께 식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의 제자들과 함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취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믿음을 가진 이방인 “백부장”과 같은) 많은 이방인 신자들이 지구 각처로부터 와서 “‘아브라함’[여호와]과 ‘이삭’[예수 그리스도]과, ‘야곱’[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 회중]과 함께 천국에 앉으”리라고 예언하셨을 때 그분은 더 큰 ‘아브라함’이신 여호와와 그러한 식사를 하는 것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마태 8:5-12.
19 예수께서는 한 때 갚을 힘이 없는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함으로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실 때 그 가치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읍니다.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식사하는 특권을 생각케 해 주었읍니다. 이러한 반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누가 14:12-15) 이런 반응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어떤 집주인이 베푸는 “큰 잔치”에 관한 비유를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모두가 왕국에서 하나님과 식사하는 즐거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셨읍니다.—누가 14:16-24.
“너희 속에 생명”
20. 그리스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심으로써 자신들 ‘안에 생명’을 얻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생명을 가지며, 그들은 언제 어디서 이러한 역량을 사용할 것입니까?
20 요한복음 6:53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5:26에 나오는 비슷한 표현이 이곳에도 나오기 때문에 「미국역」은 요한복음 6:53을 다음과 같이 옮겼읍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너희가 인자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가 자존하는 생명을 가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떤 특정한 역량을 가진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요한 6:54) 이러한 영원한 생명은 지상에서가 아니라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것을 얻는 사람이 즐기게 될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 날”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부활될 때에 그러한 생명으로 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처럼 ‘생명을 속에’ 가진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인간 희생의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대속된 인류가 “마지막 날”에 기억 무덤에서 불려 나올 때 그렇게 할 것입니다.—요한 5:28, 29.
21, 22. (ㄱ) 어떤 점에서 예수의 살과 피는 그것을 먹는 사람들을 위한 “참 양식”입니까? (ㄴ) 그처럼 그것을 먹는 사람들은 그분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며 그분에게 어떻게 의존합니까?
21 하늘에서 얻게 될 “영생”의 질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왜 예수께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라고 하셨는지 인식할 수 있읍니다. (요한 6:55) 그 말씀을 하신 후에 그분은 다음과 같이 부언하심으로써 순종하는 그분이 제자들이 즐기게 될 특별한 관계를 보여 주셨읍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한 6:56, 57)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이 자기와 함께 연합하는 것과 자신이 그들과 연합해 있는 점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후에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여 그분은 다음과 같이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22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 15:4, 5.
23. 그러면 ‘가룟 유다’는 왜 ‘자기 안에 생명’을 얻지 못하였읍니까?
23 ‘가룟 유다’는 일년 이상이나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었으나 그는 자기 주와 계속 연합해 있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기원 33년 오순절부터 그 이후 예수의 희생되신 몸을 먹거나, 그 피를 마시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 안에 생명’을 얻지 못하였읍니다.—요한 6:66-71.
24. (ㄱ)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었읍니까? (ㄴ) 예수께서 어떻게 아버지로 인하여 사셨으며, 그를 먹는 자들은 어떻게 그로 인하여 삽니까?
24 그러나 예수께서는 ‘유다’와 ‘가버나움’ 회당에서 자기의 말을 듣던 ‘유대’인 청중에게 그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만나’를 먹었었는가를 상기시키셨읍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결론을 내리셨읍니다.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요한 6:58) 그분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말씀”이셨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육신이 되”셨읍니다. (요한 1:14) 그리하여 완전한 육신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분은 실체적 ‘만나’인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었읍니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상징적 ‘만나’b 역할을 한 그분의 살은 또한 “세상의 생명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요한 6:51)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영의 생명으로 부활시키셨기 때문에 그의 천적 아버지로 인하여 하늘에서 불멸의 생명을 가지고 계십니다. 따라서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실체적 ‘만나’(그리스도의 “살”)를 “먹”는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로 인하여 살”게 될 것입니다. 살아계신 예수께서 그를 “마지막 날”에 부활시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요한 6:54, 57, 58.
25. (ㄱ)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하늘에서도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까? (ㄴ) 그들은 어떠한 거룩한 지위에서 봉사할 것이며, 인류에게 어떠한 유익을 줄 것입니까?
25 부활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하늘에서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을 때는 더 이상 예수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요한 6:53)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 봉사할 특권을 받을 것이며 그리하여 인류에게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의 영속적인 유익을 전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시 20:6) 하늘에서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사장직에 후계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그들은 천년기 전체를 통해 계속적으로 제사장보로서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인류를 지상에서 인간 완전성으로 끌어올리는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할 것입니다.
완전한 인간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
26. 언제 이후로 “큰 무리”가 형성되어 왔으며, 그들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어떻게 할 필요를 느끼고 있읍니까?
26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현 20세기 30년대 중반 이후로 그리스도의 “다른 양”의 “큰 무리”가 형성되어 왔읍니다. (계시 7:9, 10; 요한 10:16) 그들도 천년간의 이러한 제사장들의 봉사 기간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입니다. “큰 무리”에 관한 계시적인 환상을 본 사도 ‘요한’에게 그들도 역시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읍니다. 그들은 그 피를 깨끗하게 하는 마련으로서 인식하고 있읍니다. ‘요한’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시 7:14) 이들은 그들이 더러운 옷을 입은 채로 그분의 거룩한 성전에서 가납된 봉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스가랴 3:3-10 비교.
27. 그들에게 부활은 필요하지 않을지라도 천년기의 어떤 봉사로부터 유익을 얻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까?
27 “큰 무리”는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억의 무덤에서 부활되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큰 환난”에서 “구원”되는 것에 대해 영예를 돌립니다. 그들은 그러한 “큰 환난”을 살아서 보존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복음 6:54에서 언급된 사람들처럼 ‘마지막 날’에 부활될 필요가 없읍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144,000 제사장보들의 천년기 봉사로부터 유익을 얻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8. 대속된 죽은 인류와 관련하여 어떤 “때”가 다가오고 있으며, 그들 앞에는 어떤 기회가 놓이게 될 것입니까?
28 이제 놀라운 “때”가 다가오고 있읍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배심 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억의 무덤에 있는 모든 자들’을 대속된 자들로서 나오라고 부르시게 될 “때”입니다. 그들 모두는 자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분의 천국의 지적 신민이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지상 낙원에서 완전한 인간 생명에 이를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요한 5:28, 29.
29. 그 때 “큰 무리”와 부활된 인류는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이며, “큰 무리”는 그 때 어떤 예외적인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까?
29 그리스도의 신민은 그 때 무엇을 마셔야 할 것입니까? 그들은 무엇을 먹어야 할 것입니까? 사도 ‘요한’에게 주어진 「계시록」은 그 때에 “생명수의 강”이 여호와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 아래로부터 흐르게 될 것을 알려 줍니다. 그 “강”의 양편에는 매달 과실을 산출하는 “생명 나무”가 있읍니다. 그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한 것입니다. “큰 무리”와 부활된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그러한 마련으로부터 먹고 마실 것입니다. (계시 22:1-3) 인식을 가지고 있고 순종하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 하나님의 이러한 모든 과분하신 친절의 마련을 온전히 이용함으로써 그들의 부활을 “생명의 부활”이 되게 할 것입니다. 부활을 받지 않은 그리스도의 “다른 양”의 “큰 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그 때 죽어서 땅의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각주]
a “식인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인간을 먹는 자”를 의미하는 ‘오켈 아담’ 혹은 “자기와 같은 종류의 아들을 먹는 자”라는 의미인 ‘오켈 벤미노’ 기원 70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이러한 예의 무서운 일에 관하여 ‘요세퍼스’의 「유대인의 전쟁」 제 6권 제 3장 참조.
[17면 삽화]
‘만나’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생명을 유지시킨 바와 같이 “생명의 떡”인 예수께서 지금 영적 ‘이스라엘’의 생명을 유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