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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사람을 도[우라]”파수대—1979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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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악한가, 혹은 단순히 약한가? 하는 질문을 고려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약함 때문이라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꾸준히 나타낼 때 그 사람은 좋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잘못한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도움을 베풀어 왔는가?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그의 행로를 바꾸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그 사람의 마음에 도달하도록 베풀어질 수 있었는가?
개인의 관심사가 중요하지만, 회중에 미치는 그의 행동과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입장 역시 중요하다. 만일 장로들이 회중에서 악을 제거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고린도 전 5:6-13) 한편 조급하거나, 사랑이 없이 혹은 분별력 없이 문제가 다루어 질 수도 있다. 만일 그 결과로, 해가 그의 악함 때문이 아니라, 약함 때문에 죄지은 개인에게 미친다면, 이것은 또한 회중에도 해를 입히고,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입장에도 불리하게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올바른 길로 걸어 가게 하기 위해서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그리스도인이 이 점에서 노력함에 따라 진정한 약점을 식별할 뿐만 아니라, 그 때에 가장 필요로 한 도움과 충고와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도 그의 지각력이 증가한다. (히브리 5:14) 만일 그 문제에 대한 그의 노력에서 잘못했다면, 그것이 친절과 자비를 나타내는 데 실수한 때문이어서는 안된다.—시 25:6, 7; 51:1; 야고보 2:13; 유다 22, 23.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잘못된 판단을 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할 것인가? 우리가 그들을 즉시 비난하는 대신에 그들을 도와 주려고 하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어떤 사람이 회중내에서 심각한 실수를 저지를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위하여 바치는 우리의 노력을 배가하는가? 이것은 형제들 사이에서 그 사람의 실수를 화제거리로 삼는 것보다 훌륭한 도움이 된다. 그리고 대화가 다른 사람의 약점에 돌려질 때에 토론의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그것은 얼마나 사려 깊은 일인가! 아마 그 문제에 있어서 베풀어질 수 있는 도움을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고 영감받은 잠언은 말한다.—잠언 17:9; 11:13.
어떻게 약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가?
돕고자 하는 정신을 갖는 것, 경멸하는 식으로 약한 사람을 보지 않는 것이 그들을 돕는 데 으뜸가는 필수 조건들이다. 다음에 우리는 기본적인 문제들을 확인하고자 해야 한다. 고독한가? 이해 부족인가? 가정에 사랑이 전혀 없는가? 경제적 긴장이나 개인적 실망인가? 쇠약해지는 건강이나 나이 많아 쓸모 없다는 느낌인가? 이 질문들은 약한 자들에게서 힘을 앗아가는 원인이 될 수 있는 몇 가지의 가능성있는 점들에 불과하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나 성서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갖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개인의 생활 환경을 주의깊이 고려하고 온정과 진심에서 우러나온 방문은 기본적인 어려움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약한 사람을 돕는 데 진실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본을 그들의 지침으로 삼는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냐]?” (고린도 후 11:29) ‘바울’은 모든 사람을 동정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반영하였고, 그들의 고통을 심려하였다. 어느 정도로? 사도행전 20:35의 그의 충고로 판단해 볼 때, 그의 연민은 확실히 친절한 말을 능가하였다.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도우라.]” 그는 사도 ‘요한’의 후기 훈계의 정신으로 약한 사람에 대하여 좋은 반응을 보였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한 1서 3:18.
약한 사람을 돕도록 강력히 권고하지만 성서는 개개인이 어떻게 도움을 베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이러한 교훈이 얼마나 광범위하든지 간에 결코 모든 환경을 다 고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는 우리가 약한 사람들에 대하여 참되고, 인정있는 동정심을 발전시킬 것을 확실히 알려 준다. 우리는 그들의 필요에 응하여 행동해야 한다. 이 교훈은 단순하고 보편적이지만, 올바른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독특한 결과를 가져온다.
회중과 연합하고 있는 각자가 소중하다
회중에 있는 모두는 회중의 각 성원들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약한 사람을 돕는 책임을 이행하도록 격려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어떤 성원이 약하여 도움을 받아야만 할텐데, 그가 무슨 실제적인 가치가 있는가? 그는 회중에 대하여 오히려 부담이 되지 않는가? ‘바울’은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자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느니라.]” (고린도 전 12:22-25) 모든 성원들을 귀중하게 여기고, 그들의 능력의 범위 안에서 수행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활동을 소중히 여기는 회중은 따뜻하고 행복한 회중이며, 생기가 충만하다.
약한 사람을 돕는 데 바치는 노력이 어떤 성과를 가져올 것인지에 대하여 누가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 11:6) 특히, 우리가 영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때에 하나님의 도움을 확신할 수 있다. 오늘날 여호와의 훌륭한 종들 가운데 그들이 약했을 때에 지속적인 영적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약한 사람이 갑자기 강해질 수는 없다. 마치 신체적으로 약한 사람의 회복이 느릴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이가 영적으로 강하게 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약한 사람들에 대하여 인내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강하였을 때와 다름 없이 그들을 정말 사랑하는가? 이와 같은 사랑이 표현될 때, 모두에게 훌륭한 축복이 이르게 된다! 약한 형제들은 그의 어려움에 대한 보살핌과 후원으로 축복을 받는다. 강한 형제들은 오로지 주는 데서 더 큰 축복이 온다는 것을 인정한다. 전체적으로 회중은 각 성원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 관심을 나타냄으로 끊임없이 자라가는 온정을 경험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지상의 종들 사이에서 그분들의 비길 데 없는 도움이 약한 사람들에게 반영될 때 그분들에게 영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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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왕국에게 분쇄될 인간 통치권파수대—1979 |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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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왕국에게 분쇄될 인간 통치권
강력한 왕 ‘느부갓네살’의 인도하에 ‘바벨론’은 성서 역사상 세째 세계 강국의 지위에 올랐다. 고대 중동의 모든 정부들은 ‘바벨론’의 파괴적인 군사력 앞에 굴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충실 때문에 그 당시의 여호와의 모형적인 신권 통치도 무너지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과 참 숭배의 전을 멸망시킴으로써 자신과 자신의 신인 ‘말둑’이 ‘히브리’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다윗’ 계통의 왕들보다 더 위대해졌다고 생각하였다.
수도인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고 왔을 때, ‘느부갓네살’은 예언적으로 ‘바벨론’ 왕에 관하여 묘사된 다음과 같은 태도를 나타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 집회의 산[‘이스라엘’ 백성이 ‘시온’ 산의 전에서 숭배하던 곳]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이사야 14:13, 14.
그 예언은 계속하여 ‘바벨론’의 왕조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라고 말한다. (이사야 14:15) ‘느부갓네살’의 왕조가 무너지기 수십년 전에 여호와께서는 이 교만한 왕이 정신병에 걸리게 함으로써 그를 낮추셨다. ‘느부갓네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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